Column

반일과 극일의 차이 

 

2019년 한국의 여름은 훗날에 어떤 시기로 기억되고 평가될 것인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제목을 원용하면, 1930년대 미국의 여름은 ‘분노의 포도’ 시대였다. 당시 미국은 실업률이 최대 25%에 이르는 대공황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 없이 생계가 막연했다. 굶주린 미국인들은 루즈벨트 행정부의 농업조정법 때문에 멀쩡한 농축산물이 고의 폐기되는 것을 지켜보며 더욱더 절망하고 분노했다. 농업조정법은 농산물 가격과 농가 소득을 지지할 목적으로 농업 생산을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이며,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1933년 5월에 시행한 법령이다. 이와 관련 존 스타인벡은 그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감자는 강물에 버려지고 수많은 돼지들이 구덩이에서 살처분되었다. 오렌지는 산더미처럼 쌓인 채 악취를 내며 썩어갔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대실패가 벌어지는 일을 지켜봐야 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은 솟아오르는 분노로 이글거렸다. 사람들 영혼은 분노의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포도의 수확을 기다리면서 알알이 커져갔다.’

2019년 여름, 한국에서는 다른 이유로 분노가 격랑(激浪)처럼 넘쳐나고 있다. 분노와 불안이 한여름의 폭염과 열대야를 압도한다.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내리자, 일본의 아베 내각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의 한국 수출을 통제하고 한국을 수출 간소화 국가(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는 무역보복 조치를 취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일본의 의도와 조치에 분노한 한국에서는 일본에 가지도 말고 일본 기업 제품을 사지도 말자는 ‘노노재팬’의 반일운동이 들끓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 지경이 되기까지 사태를 관리하지 못한 문 정부의 나태함과 정치·외교 무능을 탓하는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어디를, 누구를 향한 것이든 올 여름 한국인의 분노는 무더위보다 뜨거운 일상이 되었다. 분노의 칼끝이 겨누는 방향이 나와 다르면 ‘토착왜구’니 ‘종북좌빨’이니 하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고 내편, 네편을 갈라 마녀사냥식의 증오를 내뿜는 양상은 과도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양편에 공통점이 없지는 않다. 언젠가 분노의 끝이 왔을 때 한국 경제와 안보 상황은 어찌 될지에 대한 불안만큼은 공통적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의 분노를 가열하는 또 다른 불쏘시개가 되어 한일 갈등에서 비롯된 분노는 노원의 불길마냥 사회 전반에 퍼져가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게 지금은 매우 위험한 시기이다. 미국과 중국 간에 길어지는 무역전쟁 여파로 국제교역의 기회는 계속 줄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 정책’ 실패와 규제 리스크의 팽창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기업들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여기에 한일 무역분쟁이 발생하고 앞으로 파장과 기간을 가늠하기 어려우니 수출·수입으로 먹고 사는 기업들로서는 업친 데 덥친 격의 설상가상(雪上加霜) 위기이다. 더구나 직원 조회 시간에 반일운동을 비판한 유투버 영상을 방영했다는 이유로 불매운동의 몰매를 맞는 한국콜마 사례에서 보듯이 기업은 자칫하면 두 갈래로 갈라진 분노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이래저래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일은 갈수록 위험한 직업이 되고 있다.

지금이 위중한 시기라 함은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역사에 필연은 없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호사든 흉사든 국가적 중대 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떤 나라는 이를 계기로 흥하는 길로 가고 또 어떤 나라는 정반대의 길로 가기도 한다. 14세기 유럽 전역에서 창궐했던 흑사병이 그랬다. 중국에서 유입된 흑사병으로 당시 유럽 인구 중 적게는 4분의 1, 많게는 3분의 1이 죽임을 당했다. 인구의 대폭 감소를 초래한 이 사건을 계기로 서유럽에서는 농노제도와 봉건체제가 해체되고 시민사회와 시장, 상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흑사병 이전까지는 서유럽과 차이가 없었던 동유럽은 흑사병 사건 이후 농노제도를 한층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퇴행했다. 흑사병을 계기로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제·사회 제도는 발전과 퇴보의 상반된 길로 갔다. 무엇이 이 같은 차이를 만드는가?

우리에게는 불편한 또 다른 사례로 일본과 조선의 강제개방 사건을 들 수 있다. 일본은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몰고 온 흑선의 무력시위에 놀라 굴욕스런 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메이지 유신을 하고 아시아 최초로 산업혁명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20여년 후인 1875년, 일본은 페리 제독이 했던 것처럼 군함 운요호(雲揚號)로 무력시위를 하고는 조선에 강화도조약 체결을 강요한다. 그 이후 조선 역사의 진행은 일본과 달랐다. 임오군란(1882), 동학혁명(1894) 등 내부 개혁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조선 왕가와 사대부들은 외세를 등에 업고 개혁을 외치는 민중을 학살하고 정권 유지에만 골몰했다. 그 결과는 왕가의 몰락에 그치지 않고 국가 실패와 국민의 기나긴 고통으로 이어졌다.

국가적 중대 사건은 국가 운명의 앞날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위기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될 수 있고 기회는 호사다마(好事多魔)의 위기가 될 수 있다. 한일 갈등의 중대 국면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한국의 미래는 아주 다를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 정치인들이 앞장서 동학혁명의 죽창가를 소환하고, 임진왜란의 의병까지 거론하며 반일감정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것은 권력투쟁을 위한 퇴보적 대응이며,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이성적이고 발전적인 대응이 아니다.

더 나아가 반일 종족주의와 의견이 다른 자국민을 ‘부역·매국 친일파’라고 매도하고 공격하는 것은 마오쩌둥이 자신의 독재 권력을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며 홍위병을 부추겼던 것과 같아서 섬뜩하다. 참고로 문화대혁명은 대규모 숙청과 경제피폐를 초래한 끝에 중국 공산당에서조차 ‘극좌적 오류’로 평가한 사건이다. 정치·경제제도의 한계 때문에 중국 경제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G2 반열에 오를 만큼 중국 경제는 성공적으로 발전해왔다. 그 비결은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이 아니라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도광양회(韜光養晦) 원칙에 기초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 갈등을 계기로 한국 경제·사회가 더 발전하려면 ‘노노재팬’의 국민적 분노를 극일(克日)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국민들이 일본에 분노하며 바라는 게 있다면 우리의 산업경쟁력과 소득수준이 일본을 능가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이에 부응하려면 우리의 약점과 일본의 강점을 이해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 객관적 사실을 통해 판단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바탕으로 제도와 정책 방향을 바르게 고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경제가 우리 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 시장’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경제게임의 규칙에 해당하는 규제 시스템과 품질, 즉 일본의 제도 경쟁력이 한국보다 낫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를 이기려면 무엇보다 먼저 노동시장 규제, 기업활동 규제, 자본시장 규제 등의 경제제도부터 일본을 능가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 없는 갖가지 규제로 경제적 자유를 구속하는 규제를 방치한 채 ‘노노재팬’의 죽창가를 부르는 것으로 반일(反日)을 할 수는 있어도 극일(克日)을 할 수는 없다.

- 황인학 한양대 특임교수(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498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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