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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24) 우리 팀장은 왜 저럴까?] 그들의 행동에는 ‘배후’가 있다 

 

지위에 따른 책임의 스트레스 크게 마련… 능력 과신하는 ‘통제감 환상’에도 휩싸여

▎사진:© gettyimagesbank
우리가 알고 있는 지프(Jeep)라는 차종은 원래 일반명사가 아니라 브랜드였다. 미국 자동차 회사 아메리칸모터스(AMC)가 출시한 4륜 구동 브랜드였는데,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일반명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 있는 일화가 있다. 이 회사가 2차 대전 때의 특수를 고려해 4륜 구동을 일반인용으로 출시하면 어떨까 해서 여러 차례 소비자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때마다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많은 사람이 “나는 안 사겠다”고 한 것이다. 분명 괜찮을 것 같은데 왜 그럴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경영진은 고심 끝에 적게나마 출시해 보기로 했다. 시장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소비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반대로 코카콜라는 무려 20만 명을 대상으로 면밀한 소비자 조사를 한 끝에 신제품 뉴코크를 자신 있게 출시했지만 첫날부터, 그것도 미국 전역에서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는 바람에 결국 철회하는 곤욕을 겪었다. 다들 맛이 좋다고 해서 출시했는데 막상 내놓자 등을 돌린 것이다.

물어보지 말고 관찰하라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소비자 조사 무용론을 주장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소비자들에게 물어보는 것보다 그들을 관찰하는 게 낫다면서 말이다. 실제로 그는 소비자 조사를 하는 대신 그들을 관찰한 후 자신만의 통찰력을 더해 세상에 없는 신제품을 만들어냈다. 세기의 히트상품이라고 하는 아이폰은 출시 전 소비자 조사를 해 본 적이 없다. 요즘 세계의 미래를 이끄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런 잡스 방식이 대세다. 물어보지 않고 관찰한다. 빅데이터로 소비자들이 하는 행동, 그들이 남긴 흔적을 샅샅이 훑어 해석한다. 말보다 행동이 훨씬 정확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 말 다르고 행동 다른 건 예삿일이다. 어제는 이렇다 하고 오늘은 저렇다고 한다.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고객들의 말을 그대로 들었다가 큰 코 다친다. 그렇다고 안 듣자니 그건 또 엎어져 코 깨지는 일이 된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다. 물어보는 것보다 관찰하는 게 나은 이유다.

우리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에도 이런 ‘골치 아픈 고객’이 있다. ‘고객은 왕’이라고 하는데 회사에 있는 이 고객도 ‘거의 왕’ 비슷하다. 이 왕 비슷한 사람의 다른 이름은 상사다. 나의 노동과 노력을 인정하고 사주는 사람이기에 왕처럼 군림한다. 시장의 고객이 그런 것처럼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마음을 알 수 없는 것도 닮았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시장의 고객은 여러 사람이 다양한 행동을 하는데 회사에 있는 고객은 한 사람이 여러 다양한 행동을 한다. 시장의 고객은 휙 가버리면 그만인데, 회사의 고객은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장의 고객을 상대하는 게 뒷맛이 개운찮은 일이라면, 회사 속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죽을 맛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김과장이 온라인으로 올린 보고서는 누가 봐도 무난했다. 문제라면 오자 3개와 탈자 1개가 있을 뿐. 그래도 어제 저녁에 받은 일 치고는 훌륭한 편 아닌가? 하지만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오자 3개와 탈자 1개로 무려 10분 동안 김과장을 ‘깼다’. 세상에, 어제 퇴근 시간이 다 되었을 때에서야 “내일 오전 팀장들 회의에 가져가야 하니 그 전까지 보내”라고 해놓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김과장이 허투루 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어 그런 것인데.

그래도 이런 팀장은 ‘양반급’이다. 직장인들에게 자기네 팀장을 ‘고발’하라고 하면 무수한 행태들이 쏟아진다. 이상하게도 공통점이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힘든 일은 다 부하들에게 시키고 자기는 감독관 노릇만 한다. 지루해졌다 싶으면 뒷짐 지고 여기저기 어슬렁거린다. 그냥 좀 지나치면 어디 덧날까 싶어 그런지 눈에 보이는 것마다 한마디씩 어록을 남긴다. 그렇게 거의 하루 종일 입으로 일한다. 그러고 나서 퇴근 무렵엔 “아이고 죽겠다”고 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정말이지 손끝 까딱하지 않고 모든 걸 부하들에게 묻어간다. 그러면서도 말끝마다 “힘들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 눈치 살피는 게 진짜 감정노동”이라는 후렴구가 최근 들어 하나 늘었다. 우리들이 하는 말은 거의 모두 한 수 아래로 보면서 사장님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별 것도 아닌 아이디어에도 “아, 그거 괜찮네요. 해보겠습니다”라고 한다. 물론 그 일을 실제로 하는 건 우리고, 자기는 입으로 일하면서 말이다.

스티븐 코비의 해결법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에서 논쟁하는 당사자에게 “둘이 말하는 것보다 더 나은 해법을 찾아보시겠습니까?”라고 제안한다.
이런 팀장의 행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니, 세상의 팀장들은 왜 그러는 걸까(팀장 대신 사장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는 자신이 30, 40대에 읽은 책 두 권이 자신의 일과 인생에 중요한 방향타가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중 한 권이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한국어판 제목)인데 저자인 E. F. 슈마허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게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그 문제의 유형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두 유형이란 수렴하는 문제와 발산하는 문제다. 유형을 먼저 파악해야 하는 건, 이 두 유형이 완전히 다른 해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수렴하는 문제는 정보를 많이 모을수록 하나의 해법에 가까워진다. 예를 들어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에 이상이 생기면 가능한 이것저것 정보를 많이 모을수록 문제 해결이 쉬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정보가 더해질 때마다 필요 없는 것들을 제외시킬 수 있어 결국 하나의 해답에 이른다. 발산하는 문제는 다르다. 정보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문제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이다. 이걸 모르면 정보를 모을수록 복잡하고 헷갈리기만 한다. 예를 들어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신혼부부는 티격태격하는 일이 흔한데,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상대방이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시시콜콜 다 모아야 할까?

많이 해 본 이들은 알겠지만 그럴수록 싸움이 치열해진다. ‘실탄’이 많으니 공방전은 난타전이 되고 서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해결은 갈수록 멀어진다. 부부싸움은 대체로 서로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또는 습관이 달라서 생기는 일이 많기에 정보를 많이 모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까닭이다. 그보다는 서로의 생각과 방식을 알고 제 3의 대안을 만드는 게 낫다. 그런 다음, 수렴하는 문제처럼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집안 일을 누가 하느냐로 싸웠다면, 각자의 주장이 아닌 제 3의 대안을 세운 후,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식이다.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8번째 습관]에서 바로 이 얘기를 한다. 논쟁하는 당사자에게 “둘이 말하는 것보다 더 나은 해법을 찾아보시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동의하면 해결책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이유가 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는 덕분이다. 같은 방향을 보게 되면 두 사람은 방어적이나 수동적, 또는 공격적이 되는 대신, 창조적인 방법으로 정보 교류를 시작한다.

얼핏 이해할 수 없는 상사의 행동을 파악하려면 둘 중 어느 쪽이 나을까? 하나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일에 대해서는 수렴하는 문제처럼 접근하는 게 좋고, 사람에 대해서는 발산하는 문제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일에 대해서는 지난 회에 소개한 방법 등을 통해 정보를 모아가는 게 좋고, 사람에 대해서는 발산하는 문제로 접근, 그 행동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는 게 좋다.

상사라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 것이니 관찰하고 통찰해야 한다. 해보면 알겠지만 상사들이 하는 행동에는 ‘배후’가 있다. 그 행동을 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요인이 있다.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단순한 운전 아니라 순위 다투는 경주

상사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첫 번째 요인은 그가 앉은 자리, 다시 말해 지위다. 지위는 권한과 책임으로 이루어지는데, 권한이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고, 책임이란 이 힘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성과다. 어떤 지위를 유지한다는 건 그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었다고 무조건 달리는 게 아니라 운전을 잘 해야 하듯, 지위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나만 운전 잘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불시에 끼어드는 다른 차들이나 옆에서 달리는 차들에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듯 지위 유지도 그렇다. 내가 이끄는 조직만 잘 관리한다고 순항할 수도 없다. 위로 갈수록 일보다 관계, 정책보다 정치가 불쑥불쑥 끼어드는 옆 차들처럼 발등의 불로 떨어진다. 끼어드는 차에게 마음 좋게 양보해 주는 건 도로 위 운전에서나 가능한 일, 조직 속에서 어떤 지위로 살아간다는 건 단순한 운전이 아니라 순위를 다투는 경주다. 마냥 양보해 줄 수 없다.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지위를 가진다는 건 이런 권력의 자기장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수많은 자석(경쟁자)들이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는 곳이기에 신경 써야 할 일이 태산처럼 늘어난다. 자성(磁性)에 반응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자기장의 속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이사라는 직급부터는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신분’까지 바뀐다. 언제든 계약 해지 신세가 될 수 있다. 돌아가는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눈 뜨고 코 베일 수 있다.

이뿐인가? 어떤 자리에 앉게 되면 시작되는 몸 속 변화도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더 높은 지위는 승자에게 주는 일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성향들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한다. 힘을 가졌다는 생각이 뇌의 화학적 구성을 바꾼다. 마치 싸움에서 이긴 것처럼 테스토스테론을 분출시키고, 이것이 도파민 분출을 촉진해 불안과 고통을 잊게 하면서 더 큰 함성을 지르게 하고, 용기백배하게 해서 공격적으로 만든다. 한 번 이겼으니 또 다시 이기게끔 하게 한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이런 것들이 용기를 넘어 때로는 과시로, 때로는 근거 없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또 때로는 권력을 남용하게 한다. 냉정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기보다 자기 힘을 과신하게 한다. 연구에 따르면 내게 힘이 있다고 생각만 해도 내가 던지는 주사위가 다른 사람들이 던지는 것보다 더 높은 숫자가 나올 거라고 여긴다. 어떤 일을 추진하면 무조건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경쟁자들? 남김 없이 쓰러뜨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남들이 못하는 걸 자신은 해낼 수 있다고 한다. ‘통제감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다(미국 스탠퍼드대너대니얼 패스트와 데버러 그루엔펠드 연구팀). 자신은 과대평가하고, 상대나 일을 과소평가한다. 이런 환상의 포로들이 사무실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만 보고도 다 알아’. 진짜 다 알까?

실제로 연구해 보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공감 능력이 가장 낮았다. 자기 자신에 충실한 나머지 그렇게 여길 뿐 실제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에 엄청난 공감을 해주길 바라면서(사실상 요구하면서), 자신도 상대방에 대해 전폭 공감한다고 하지만 그건 대체로 자기 생각일 뿐이었다(미국 콜롬비아대 갈린스키 교수 연구). 분명히 안 될 것 같은데 된다고 하고,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느냐”고 몰아치고, “빨리 좀 하라”고 다그치는 게 다 이런 내부 호르몬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상사를 알면 좋은 일이 생긴다

문제는 전혀 다른 것 같은 이 두 요인이 상사의 마음 안에서 겹치며 난기류가 형성될 때다. 더하여 여기에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까지 더해진다면, 그들의 머리 속이 어떨까? 지금 이 자리에 1년 더 있게 될지, 아니면 떠나게 될지 모르는 요즘 같은 연말에는 또 어떨까? 팀장 회의에 들어가서 다른 팀들의 휘황찬란한 성과들을 듣는 기분은? 지난 번 회의 때 사장에게 제출한 자료에 오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때문에 “자료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심란하다는 말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 좌불안석, 전전긍긍이란 말들이 그의 마음 속을 헤집고 다닐 것이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이 세 요인이 미치는 영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걸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는 물론 위아래로부터 심각한 압박을 받게 된다. 그래서일까? 이런 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걸 자신이 가장 잘 아니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고, 스트레스가 많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짜증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일이 제대로 안 되어 성과가 나지 않으니 권한위임을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자리가 위태위태한데 내가 가진 걸 어떻게 선뜻 남에게 주겠는가. 그러다 보니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사람들이 요즘 회자되고 있는 갑질 상사, 꼰대 상사들이다.

상사가 하는 행동을 이 세 가지 차원에서 바라보면 그들을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다. 오자 3개, 탈자 1개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질책은 질책 대로 받은 김과장도 그렇다. 김과장이 자신의 팀장이 처한 상황을 모른다면 그날 하루 내내 기분은 우울하고, 팀장 얼굴은 보기도 싫을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 더 벌어지면 둘은 소 닭 보듯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지 알면 다를 수 있다. 요즘 같은 연말이 될 때마다 파리 목숨이나 다름 없게 되는 팀장의 처지를 알면 그가 하는 말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 있고, 익숙해지면 귓등으로 넘길 수 있다. 물론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고, 상사가 처한 상황과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면 조직과 상사에 대해 좀 아는 것이다. 일까지 잘 한다면 승진할 준비가 끝난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승진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면 또 다른 하나가 분명해진다. 승진할 수는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고, 대개는 오래가지 못한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508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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