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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평양 정상회담’ 전망은] 트럼프·김정은 크리스마스 깜짝쇼? 

 

김정은의 ‘연말 시한’에 쫓기는 북 대미라인… 북미 모두 파국보다 상황 반전 모색할 듯

▎지난 6월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났다.
북한과 미국이 3차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 재개를 위해 날카로운 장외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평양과 워싱턴에서 하루가 멀다고 상대 측의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각기 그린 그림이나 향후 일정표를 넌지시 내비치기도 한다. 서로 ‘시간은 우리 편’이라며 협상 재개의 문턱을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도 연출된다. 그러면서도 혹여 판이 깨질까봐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신중한 분위기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10월 초 스톡홀름 실무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이후 양측이 향후 협상이나 정상회담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가장 직접적으로 시사하고 나선 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11월 17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곧 보자(See you soon)”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3차 정상회담 전갈을 띄웠다. 그러면서 “당신(김정은)은 빨리 행동해야 하며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화 테이블 마련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비핵화 조치를 신속히 취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는 “당신이 있어야 할 그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뿐”이라고 강조했다.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통한 북한 체제의 체질 개선을 촉구하면서 그 최고의 파트너로 자신을 제시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김정은 위원장이 11월 들어 이례적으로 국무위원회(13일 담화)를 동원해 “배신감” 운운하며 미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데 따른 트럼프의 대북관리 차원으로 보인다. 또 3차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통해 북미 관계의 모멘텀을 잃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있을 수 있다.

트럼프, 3차 북미 정상회담 시사


트럼프의 언급에 북한은 빠르게 반응했다.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11월 18일 담화를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을 보면서 새로운 조미 수뇌회담을 시사하는 의미로 해석했다”고 밝혔다. 담화에서 김계관은 “무익한 회담에 더 이상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새로운 회담’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이는 앞서 북미 실무협상 북한 측 대표인 김명길이 11월 14일 담화에서 미국 측이 대화 제의를 해온 사실을 밝히면서 “시간 벌이를 해보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했던 것에 비해 회담 개최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음을 보여준다.

재일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김계관 담화가 나온 날 컬럼에서 “조선이 유예 기간으로 정한 12월 말이 다가오고 있다”며 “이제는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을 때”라고 주장했다. “그(트럼프)가 심사숙고하는 모습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는 역사적인 장면도 그려보곤 한다”는 대목에서는 노골적으로 3차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릴 것을 기대하는 의중이 드러난다. 조선신보는 북한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밝힐 때 활용해왔다는 점에서 북한 입장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북한은 실무협상 재개나 3차 정상회담과 관련해 깐깐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측의 입장 표명에 대해 일부 평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대북제제나 한미 합동 군사연습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미가 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를 연기하겠다고 11월 17일 결정했지만 북한은 미국의 대북인권 결의를 문제 삼아 “이런 상대와 더 이상 마주앉을 의욕이 없다”는 입장을 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이 실무협상 등을 재개하기 위한 전제조건의 허들을 점점 높이는 것이란 지적도 제기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한미가 연합 공중 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훈련 조정이나 유예를 검토하던 상황에 그는 원산에서 열린 공군 전투비행술 경기대회(15일 실시 추정)를 참관했다. 김정은의 지시로 2014년 시작돼 해마다 개최됐지만 지난해의 경우 북미 관계와 남북 간 화해 기류 속에서 열리지 않았던 행사에 직접 참가한 것이다. 비록 김정은이 직접 훈련을 지휘·감독하는 수준인 ‘지도’ 차원에서 올해는 ‘참관’으로 북한 보도의 표현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미국의 가시적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북한 최고지도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외무성 고위 관료나 관영 선전매체를 총동원한 대미 입장 표명에서 드러나듯 북한은 미국과의 담판을 위한 연말 총공세에 나선 형국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기대했던 대북제제 해제나 북미 관계 개선 같은 사안에 진전이 없자 미국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핵 실험 중단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체의 도발을 중단했는데도 이에 대한 보상이나 상응 조치가 없다는 북측의 불만이 깔려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돌려받지 못한 채 더 이상 미국 대통령에게 자랑거리를 주지 않을 것”이란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담화에서 이런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평양의 대미라인이 부산해진 건 김정은이 언급한 ‘연말 시한’이 코앞에 닥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 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면서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고 밝혔다. 자칫 미국과의 채널 유지나 회담 개최에 대한 전망 없이 해를 넘겼다가는 북미 관계에 파장이 미칠 수 있는 데다 북한 외교라인에 대한 책임 문제가 불거질 공산도 크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이 문책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외무성 대미라인의 마음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북한은 시간이 자신들 편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북핵과 미사일 모라토리엄(moratorium, 유예조치)을 정치적 성과를 자랑해온 트럼프가 재선 가도를 위해 북한에 더 많은 양보를 할 것이란 타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측은 북한이 강조하고 있는 연말 시한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 강하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11월 20일(현지시간)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창은 여전히 열려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에도 구체적인 비핵화 진전 조치가 있기 전에는 대북제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재로서 양측은 꼼꼼한 회담 준비와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 보인다. 하노이 노딜이나 스톡홀름 실무협상 조기 결렬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북한이 이런저런 회담 전제조건을 붙여나가고 있는 대목도 진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 러시아를 방문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11월 20일 “핵 문제와 관련한 논의는 앞으로 협상탁(협상테이블)에서 내려지지 않았나 하는 게 제 생각”이라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의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연말 시한’ 누구에게 더 부담일까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올 연말 북미 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양측의 입장을 고려할 때 파국으로 치닫는 쪽보다는 상황 반전을 모색하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대립각만 세우다 김정은이 제기한 ‘연말 시한’을 넘길 경우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스타일로 볼 때 전격적인 정상회담이 언제든 가능하고, 그 시점이 연내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빠듯한 일정이나 준비 상황, 그리고 싱가포르(지난해 6월)→하노이(지난 2월)→판문점(6월 남북미 정상회동)을 거친 장소 문제를 고려하면 12월 하순 크리스마스 시즌 평양에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갖는 상황도 전망할 수 있다.

[박스기사]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 거부한 북한 - 통미봉남 아닌 선미후남 전술 엿보여

북한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초청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에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한미 공조를 남북관계보다 우선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남북 정상이 또 만나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북한 지도부의 회의적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조선중앙통신은 11월 21일 김정은 위원장의 부산 한·아세안 회의 초청 거부 이유와 관련 “흐려질 대로 흐려진 남조선의 공기는 북남관계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며 남조선 당국도 북남 사이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의연히 민족공조가 아닌 외세의존으로 풀어나가려는 그릇된 입장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라고 밝혔다. 초청 거부 이유가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대북 인식과 여론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임을 읽을 수 있다. 통신은 “지금, 이 순간에조차 통일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북남관계 문제를 들고 미국으로의 구걸행각에 올랐다니 애당초 자주성도 독자성도 없이 모든 것을 외세의 손탁에 전적으로 떠넘기고 있는 상대와 마주 앉아 무엇을 논의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난했다. 겉으로는 외세의존으로 표현했지만, 지난해 남북 정상이 세 차례나 만나 다양한 합의를 이뤘음에도 한미 당국의 대북제재 공조로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부산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봐야 앞으로도 미국의 허가 없이는 남북관계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리라는 것이 북한 지도부의 판단임을 재확인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문 대통령의 초청에 대해 어쨌든 답신을 했고, 내용의 톤도 지금까지 대남 비판의 수위와 비교할 때 굉장히 낮다는 점에서 상황 악화보다는 상황관리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대남전략이 통미봉남이 아니라 선미후남의 전술을 엿볼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민족자주의 원칙을 준수하고 다른 한편으론 미국의 셈법 전환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달라는 메시지도 함께 담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lee.youngjong@joongang.co.kr

1511호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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