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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러시’ 중인 러시아] 생산력 키워 미국발 셰일혁명에 맞불 

 

LNG 등 수출량 극대화 노력… 해운·조선업 기회 맞도록 국가적 뒷받침 필요

▎대우조선해양의 쇄빙 LNG선. / 사진 : 대우조선해양
세계 2위 천연가스 생산국 러시아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찮다. 가스 생산력을 한층 키우면서 미국 주도의 ‘셰일혁명’에 맞불을 놓는 모양새다. 이웃의 주요 교역국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가 근래 들어 순탄하지만은 않은 한국으로서는 경제협력 강화의 호기(好機)로 발전시킬 만하다. 최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는 서방 세계의 잇단 제재에도 가스 등 주요 에너지 자원 생산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자료는 지난해 러시아의 전체 가스 생산량이 725.4Bcm(Billion cubic metres)으로 전년 대비 5%가량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액화천연가스(LNG) 생산량 급증이 눈에 띈다. 지난해 26.9Bcm으로 전년 대비 71.6%나 증가했다.

북극과 가까운 러시아 영토인 야말 반도에서 지난해부터 제2, 제3 천연가스 액화 공장이 가동되면서 생산력이 강화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극해는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약 30%를 차지할 만큼 ‘가스의 보고(寶庫)’로 유명하다. 특히 야말 반도 인근에 집중적으로 매장돼 있어 지금껏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러시아 정부도 오랜 기간 이곳을 주시했지만 과거엔 그림의 떡으로 방치해야 했다. 물보다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해에서 가스를 캐내고 이를 운반하기까지 많은 현실적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랬던 상황이 가속도가 붙은 지구 온난화로 바뀌기 시작했다. 북극해의 빙하가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기존 항로보다 짧아진 새 항로가 속속 개척되면서 러시아로서는 전기를 맞게 됐다.

이에 러시아는 약 30조원을 들여 이른바 ‘야말 프로젝트’에 나선 바 있다. 야말 반도의 가스전에서 3개의 천연가스 액화 공장을 단계적으로 건설, 연간 1650만t의 LNG를 생산하고 이를 선박으로 수출하는 프로젝트였다. 러시아의 민영 가스 업체인 노바텍이 50.1% 지분을 보유,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털(20.0%)과 중국 석유천연기총공사(CNPC, 20.0%), 그리고 실크로드펀드(중국 정부 주도의 투자기금, 9.9%)까지 고부가가치 창출을 엿보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17년 말에 첫 공장이 완성돼 본격 가동됐다. 러시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 발트해에서도 LNG 연 1300만t과 액화석유가스(LPG) 연 220만t 생산을 목표로 한 ‘발틱 프로젝트’를 검토 중이다.

프랑스·중국, 야말 프로젝트에 참여

러시아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글로벌 LNG 시장점유율을 기존 약 2%에서 8%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 전체 가스 수출량이 전년 대비 10.7% 증가한 248.1Bcm이었던 가운데 유럽으로의 수출량만 200.8Bcm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 정부의 대대적 지원사격이 이 같은 속도전을 가능케 하고 있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2011년 야말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야말 가스전의 광물채취세를 면제해주기로 결정했다. 이어 정부 주도로 항만 건설과 항로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러시아 정부는 향후 ‘가스 산업 발전 종합계획 2035’를 승인, 이런 ‘가스 러시(gas rush)’를 가속화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자국을 주축으로 한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지역의 가스 통합 시장 구축을 위한 프로그램 이행 ▶가스관 등 수출용 가스 인프라 확충 ▶야쿠티아(러시아 극동부에 있는 공화국) 지역 가스 자원 개발 ▶수송(차량)용 가스 연료 사용 확대 등을 도모할 계획이다. 지난해 러시아 내 가스 소비량은 480.5Bcm으로 전년 대비 2.7% 증가했는데 차량용 가스 연료 소비량이 17.5% 증가했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 차량용 가스 연료 소비량을 증가시켜 천연가스 내수시장을 키우려 하고 있다.

러시아가 가스 러시에 전념 중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최대 경쟁국인 미국 주도의 셰일가스 혁명 가속화로 긴장해서다. 셰일가스는 전통 가스전과 달리 퇴적암(셰일)층에 매장된 천연가스로 2000년대 들어 채굴 기술 발전과 채굴에 필요한 비용 하락으로 급부상했다. 중동이나 러시아에 많이 매장된 전통 가스와 달리 셰일가스는 전 세계에 고르게 매장돼 있으며 중국과 미국에 많이 매장돼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은 주요 매장 지역인 서부에 송유관 등 인프라가 부족하고 국영 에너지 기업도 비효율적이라 한계를 갖고 있지만, 미국은 매장 지역의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셰일가스 생산에 탄력을 받고 있다. 2009년 이후 미국이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천연가스 생산국이 된 배경이다. 2010년 약23%였던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 내 셰일가스 비중은 2035년 49%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에너지 업계는 셰일가스가 2030년 석탄을 제치고 석유에 이은 제2 에너지 자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셰일가스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전체 천연가스 가격이 안정화하면서 기존 가스 위상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연간 국가 전체 수입의 60%가량을 에너지 수출에 의존했던 러시아는 비상이 걸렸다. 셰일가스가 기존 천연가스를 대체해나가면서 세계 가스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고, 세계 각국으로서는 러시아산 에너지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도 돼서다. 러시아가 2010년대 들어 자국 내 셰일가스 채굴에 본격적으로 나선 한편, 최근 전통 천연가스 생산력과 내수 시장 소비력을 극대화해 규모에서 미국발 셰일가스 ‘도전’에 맞불을 놓는 데 나선 이유다. 김종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박사는 “야말 반도는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의 약 20%, 러시아 천연가스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면서도 이제껏 총 매장량의 12%만 생산된 잠재력 높은 땅”이라며 “야말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러시아는 (그 사이) 새로운 가스 패권국으로 자리 잡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강력한 무기 하나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은 아쉽게도 셰일가스 매장량이 전무한 데다, 근해의 전통 천연가스 매장량도 극히 미미한 수준인 전형적 가스 수입국이라 미국이나 러시아의 사례가 멀게 느껴지기만 한다. 하지만 마냥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김 박사는 “해운업과 조선업에서 기술적 강점을 갖춘 한국이 개발된 자원의 운송, 그리고 운송에 필요한 선박과 장비 시장까지 염두에 둘 만하다”며 가스 러시에 전념 중인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야말 반도에서는 생산된 LNG 수송 일부에 한국 조선 업체의 선박이 이용되고 있지만, 프랑스와 중국처럼 국가적으로 러시아의 가스 생산 현장 곳곳에서 고부가가치 창출을 노려야 한다는 분석이다.

일본도 북극해에서 기회 엿봐


실제로 최근 일본 정부만 해도 러시아의 가스 러시에서 일익을 담당하는 데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러시아가 또 달리 추진 중인 ‘북극해 프로젝트(Arctic LNG-2)’는 북극권 기단 반도에서 가스전을 개발해 연 1980만t 규모의 천연가스 액화 설비를 짓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는 2023년 생산과 수출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에 노바텍이 60%, 토털과 CNPC, 중국 해양석유그룹(CNOOC)이 각각 10%씩 출자한 가운데 일본도 민영 기업인 미쓰이물산과 국영의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JOGMEC)이 도합 10%를 투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9월 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본회의에서 “북극해에서 쇄빙선으로 LNG를 수송·환적, 아시아·태평양 지역뿐 아니라 인도양으로까지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만큼 일본 조선 기업들의 LNG선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해당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했지만 성사되진 못했다. 삼성중공업이 노바텍이 발주한 쇄빙 LNG선 15척 계약 중 일부를 체결하는 등 민간에서 다소 성과는 있었지만 갈 길이 멀다. 윤성학 고려대 러시아CIS연구소 교수는 “한국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9개 프로젝트에 5500만 달러(약 643억원) 규모 투자를 하는 데 머물렀다”며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신북방정책’에서도 러시아는 핵심적인 경제협력 대상국으로 거론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러시아의 계속될 가스 러시를 예의 주시하면서 기회를 더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스기사] 러시아-중국 잇는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개통 - 미국 겨눈 에너지 밀월 강화

러시아 동(東)시베리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하는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개통식이 12월 2일(현지시간) 열렸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개통식은 러시아 남부 소치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중국 베이징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양국 국경 지대의 가압 기지를 연결하는 TV 화상 회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약 3000㎞에 이르는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은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의 코빅타와 야쿠티야 공화국의 차얀다 등 2개 대형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러시아 극동과 중국 동북 지역까지 보내는 데 사용될 계획이다. 이날 1단계로 개통한 가스관은 차얀다 가스전에서 중국과 접경한 아무르주(州) 주도 블라고베셴스크에 이르는 2200㎞ 가스관이다. 뒤이어 2단계로 코빅타 가스전에서 차얀다 가스전에 이르는 800㎞ 가스관이 가동될 예정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에서 중국으로 이어지는 지선인 ‘동부노선’을 통해 연간 380억㎥의 천연가스를 30년 동안 중국에 공급할 예정이다. 계약 기간 전체 공급량은 1조㎥ 이상이다. 초기 단계에선 연 50억㎥ 규모로 공급을 시작해 2022년 150억㎥, 2025년 380억㎥ 등으로 점차 공급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공급할 천연가스도 먼저 차얀단 가스전 가스를 사용하고 뒤이어 2023년께부터 코빅타 가스전 가스를 보태 공급량을 크게 늘린다는 방침이다.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과 중국 석유천연기총공사(CNPC)은 지난 2014년 5월 가스 공급 조건에 합의하고 같은 해 9월부터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건설에 들어갔다. 전체 계약금액은 4000억 달러(약 47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가스관 개통은 미국과 맞서고 있는 두 나라의 전략적 협력이 강력해지고 있다는 증거로 평가된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후 서방의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1513호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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