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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면허 늘리는 카카오모빌리티] 규제 반사이익 챙기며 ‘택시왕’으로 변모? 

 

연말까지 택시 면허 1000개 확보할 전망… 웬만한 대형 택시회사 3배 수준 규모

카카오모빌리티가 국내 최대 택시회사라는 건 ‘우버는 택시 한대 없는 세계 최대 택시회사다’라고 하는 비유적 의미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나라 최대 택시회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최근 법인택시 회사 7곳을 인수해 택시 면허 638개를 확보했다. 웨이고블루 택시를 운영하는 타고솔루션즈도 인수했다. 보통 택시회사는 100개 정도 면허를 갖고 사업한다. 면허를 200개 이상 가진 기업은 거의 없다고 알려졌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이미 웬만한 대형 택시회사보다 3배 이상 수준의 거대 택시기업이다. 택시회사를 더 인수해 올해 면허를 1000개로 늘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조만간 우리는 1000대의 택시를 거느린 ‘택시왕’을 볼지 모른다.

우버에 패배한 미국 택시왕 진 프리드먼

카풀 등 야심차게 준비한 교통 신사업은 업계 반발로 접은 와중에도 택시 업계, 정부와 신규 모빌리티 사업자 간 갈등은 커지기만 하자 아예 택시와 한몸이 되어 판을 짜려는 의도다. 택시왕이 과연 우리의 모빌리티 환경을 어떻게 바꿀지 관심이 쏠린다. 그런데 미국에는 우리에 한발 앞서 등장했다 지금은 힘을 잃어가는 택시왕이 있다. 진 프리드먼이라는 뉴욕의 택시 사업가다. 그는 1996년 아버지의 택시회사를 물려받았다. 택시 운행 면허인 메달리온을 60개 정도 가진 중소 회사였다. 그는 메달리온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2012년에는 800개 이상의 메달리온을 보유했고, 2015년에는 1100개로 늘었다. 사람들은 그를 ‘택시왕’이라고 불렀다. 그는 가진 메달리온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새 메달리온을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했다. 메달리온 가격은 계속 오르기만 했으니 나쁘지 않은 사업이었다. 그러나 거품은 꺼졌고, 때마침 우버나 리프트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최고 130만 달러까지 찍었던 메달리온 가격은 25만 달러 수준으로 폭락했다. 그는 파산을 신청했고,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는 처지가 되었다.

프리드먼은 최근 몇년간 뉴욕에서 큰 문제가 된 ‘메달리온 거품’의 상징적 인물이다. 택시왕을 메달리온 투기 열풍, 메달리온으로 대표되는 미국 택시제도와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뉴욕은 1937년 메달리온 제도를 도입한다. 자기 차로 사람을 나르는 운수 사업자들이 늘었는데, 관리는 제대로 안 돼서다. 시는 당시 1만3500여 개의 메달리온을 발급했다. 메달리온을 붙인 차량만 택시 영업을 할 수 있다. 80년의 시간이 흐르고 인구가 100만 명 이상 늘었지만, 뉴욕시의 메달리온 숫자는 여전히 1만3500개를 조금 넘는 정도다. 시는 메달리온 신규 발급을 엄격히 규제했다.

메달리온은 사고 팔 수 있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그대로니 메달리온의 가치는 치솟기만 했다. 1937년 10달러이던 메달리온 가격은 13년 후 5000달러가 됐다. 80년대엔 20만 달러로 뛰었다. 메달리온은 이민자처럼 기반이 없는 사람도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였으며, 우리 개인택시 면허처럼 택시 기사의 노후 보장이기도 했다. 줄곧 우상향하던 메달리온 가격은 2000년대 들어 더욱 급격히 뛰기 시작했다. 메달리온 금융산업의 탄생 때문이다. 메달리온을 사라며 돈을 빌려주는 대출 업자와 브로커가 늘어났다. 그들은 물정에 어두운 이민자들에게 약탈적 조건의 택시 대출을 팔았다. 택시회사는 브로커와 대출 업자를 겸했다. 시 택시 당국도 메달리온 판매 홍보에 열심이었다. 메달리온은 ‘일생 일대의 기회’로 홍보됐다. 택시회사들은 메달리온을 적극적으로 사 모았다. 택시왕 프리드먼은 메달리온 가치를 높이려 인위적으로 가격을 높였다는 의혹을 받는다. 택시 사업자들은 점점 부유해졌고, 뉴욕시장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반면 기사 중엔 월 5000달러 수입 중 4500달러를 대출 이자로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거품이 꺼졌다. 빚에 몰린 기사들의 잇단 자살이 사회 문제가 됐다. 메달리온 대출을 해준 신용조합들은 금융감독 기관에, 금융감독 기관은 시에 책임을 돌렸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동안 거품은 극도로 부풀었다 터졌다. 2008년 주택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판박이였다. 다만 이번에는 책임을 돌릴 희생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침 그 시기에 인기를 끌기 시작한 우버나 리프트 같은 온디맨드 승차 서비스였다. 뉴욕시는 택시 기사 보호를 명목으로 온디맨드 승차 서비스 기사 숫자를 제한했다.

단지 1000개의 택시 면허를 가졌다는 공통점만으로 미국의 택시왕과 한국의 택시왕을 비교하기는 무리다. 미국 택시왕은 사업 성장 과정이 불투명한 음험한 사업가고, 카카오는 한국 모바일 산업의 대표이자 자랑이다. 미국 택시왕은 전통 택시 사업자고, 한국 택시왕은 모빌리티 혁신을 위해 택시산업으로 넘어간 경우다. 그러나 두 택시왕이 택시왕이 되기로 한 근본 이유는 같다. 사업을 하려면 택시 면허가 꼭 필요한데 면허 숫자는 제한돼 있고, 정부는 면허가 늘어나지 못 하게 틀어막고 있어서다. 수요는 커지는데 신규 공급은 없다면, 남은 물량을 쓸어담아 시장을 과점하는게 합리적 선택이 된다. 미국 택시왕이 메달리온을 사들인 것도, 기사들이 메달리온에 투자한 것도 택시 면허의 독점적 가치 때문이다. 일단 시장을 점유하면 정부와 유착해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막는 것 또한 합리적 선택이 된다.

수요는 커지는데 신규 공급은 없고

규제 철벽은 생각지 못한 기술 발전으로 허물어졌다. 우버의 등장이다. 소비자는 스마트폰으로 편하게 차를 불렀다. 기존 택시 외에 신규 운수 서비스 공급이 일어났다. 알고리듬 기반의 실시간 가격 조정으로 수요와 공급을 효율화했다. 기사와 승객의 상호 별점으로 신원 안전과 서비스 품질을 확보했다. 택시에 면허를 부여해 엄격히 관리해야 했던 이유들은 거의 해소됐다. 하지만 뉴욕시는 우버 기사 숫자를 제한, 실질적으로 택시 총량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국토교통부가 7월 발표한 택시 제도 개편안은 플랫폼 운송, 가맹, 중개 등의 형태로 모빌리티 사업을 할 수 있다고 해 놓았으나, 사업을 하려면 택시 감차에 쓰일 기여금을 내야 하고 운행 차량 숫자는 정부가 정한다. 결국 세련되게 포장한 택시 사업이다.

온디맨드 카풀 같이 정부와 택시 업계 맘에 안 드는 사업은 퇴출이다. 법의 빈틈을 찾아낸 죄를 저지른 타다는 기소됐고, 국회는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이런 장애물을 다 피해도 자본력이 없으면 시장 진입 자체가 안 된다. 택시 면허를 사들일 돈이 있어 택시 업계의 피해를 보전해 줄 기업만 정부가 규정한 ‘혁신’ 모빌리티 사업을 할 수 있다. 카카오 같은 회사다. 앞으로 우리는 라이언이 그려진 예쁜 택시를 앱으로 불러 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운수 서비스 신규 공급이 정부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에 소비자 편익을 불러올 경쟁 역시 제한된다. 일단 시장에 진입한 사업자는 정부와 유착해 잠재 경쟁자의 진입을 막으려 할 터다. 택시왕의 큰 몸집은 혹시 훗날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정부 보조를 요구할 근거가 된다. 지금 경쟁을 허용해 기존 종사자가 입는 피해는 눈에 보이지만, 경쟁을 허용하지 않아 앞으로 생기지 않을 소비자 편익은 보이지 않으니 정치인의 선택은 뻔하다. 이것이 지금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기존 산업 종사자와 규제를 휘두르는 정부, 이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들어줄 여력이 있는 기업이 손잡음으로써, 우리의 모빌리티 혁신은 라이언 택시를 부르는 선에서 멈출지도 모르겠다.

- 한세희 IT칼럼니스트

1513호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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