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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분양가 인하 압박] 정부·주택도시보증공사에 이어 지자체도 나서 

 

분양가심사위원회에서 기본형 건축비 등 낮춰… 위법 논란 있어 다툼 여지

▎과천지식정보타운 S6블록 공사 현장. 지난 4월 착공하면서 분양할 계획이었으나 과천시 분양가심사위원회가 분양가를 대폭 낮추면서 분양이 늦어지고 있다.
시·군·구 지방자치단체가 분양가 인하에 팔을 걷어붙였다. 분양가 관리를 해온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 정부에 이어 지자체도 가세해 전방위로 분양가를 압박하고 있다. 지자체는 정부나 HUG와 마찬가지로 집값 안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주택시장 왜곡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지자체가 이미 상한제가 시행 중인 신도시 등 공공택지 단지 분양가에 대해 자치단체장이 구성한 분양가심사위원회를 통해 가격을 옥죈다. 11월 29일 경기도 과천시가 분양가심사위원회를 열었다.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제출한 과천지식정보타운 S6블록 분양가를 재심사하기 위해서였다. 업체 측이 그간 건축비 상승 등을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심사위는 4개월 전과 같은 금액 그대로 결정했다. 지난 7월 결정한 S6블록 3.3㎡당 2205만원 분양가에서 한푼도 인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위례신도시에선 송파구 분양가심사위원회가 3.3㎡당 2400만원대에 들어온 호반건설 분양가를 2200만원대로 낮췄다. 앞서 2017년 성남시는 분양가심사위원회를 열고 고등지구 첫 분양 신청가격을 3.3㎡당 100만원 삭감했다.

‘기본형 건축비 95%’ 새로운 룰

분양가심사위원회는 상한제 분양가 산정 방식을 까다롭게 적용해 분양가를 낮춘다. 과천시 분양가심사위원회는 S6블록이 제출한 택지비 기간이자와 암석지반 공사비 등 각종 비용을 깎았다. 상한제 분양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본형 건축비도 5% 낮췄다. 정부가 고시하는 기본형 건축비에 각종 가산비용을 합친 금액과 택지비로 상한제 분양가가 정해진다. S6블록은 9월 정부의 기본형 건축비 인상을 반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천시 관계자는 “심의 내용을 공개할 수 없지만 굳이 건축비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송파구 분양가심사위원회도 위례신도시 분양가 심사에서 기본형 분양가를 정부가 정한 한도의 95%로 낮췄다.

앞으로 상한제 분양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기본형 건축비 95%’가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비용은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기본형 건축비를 5% 낮추는 것은 법으로 허용된 자치단체장 권한이기 때문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로 확대하면서 자치단체장의 기본형 건축비 5%포인트 이내(95~105%) 조정권을 도입했다. 지역 여건에 따라 건축자재 운반비·인건비 등에서 차이가 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자치단체장이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금은 분양가 인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상한제 이외 지역에선 법적으로 자치단체의 분양가 조정 권한이 없어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권고 형식으로 분양가 인하를 압박한다. 고양시는 능곡1구역 재개발단지인 능곡역두산위브 분양 승인까지 두 차례 분양신청을 반려했다. 고양시는 조합이 HUG에게 분양보증 받은 가격(3.3㎡당 1850만원)이 과도하다며 두 달간의 줄다리기 끝에 3.3㎡당 1753만원으로 낮췄다.

지자체의 분양가 인하 요구는 위법 논란이 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기 전인 2006년 지자체의 분양가 인하가 붐이었다. 경실련은 지자체가 분양가 인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천안에서 사업자가 시의 가이드라인이 넘는 가격으로 신청한 분양 승인을 시가 내주지 않자 ‘입주자모집공고안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승소했다. 법원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지자체가 분양가 인하를 명목으로 승인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법적 근거가 없어 지자체가 분양가 인하를 강제할 수 없지만 각종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지자체의 권고를 사업자가 거부하기가 어렵다. 능곡1구역 조합은 소송도 검토했지만 결국 손을 들었다.

지자체들은 고분양가가 주거 안정을 해친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성남시는 고등지구 분양가를 낮추며 “금액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고 판단했다”며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고 서민주거 안정이라는 상한제의 취지를 살린 조치”라고 설명했다. 고양시는 “주택시장의 안정화와 무주택 서민을 위한 합리적인 분양가 조정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강도 높은 분양가 인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많다. 비용을 낮추면 주택 품질이 떨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정한 상한제 가격 범위 내에서 품질을 특화하는 것조차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자치단체장들이 분양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값은 어쩔 수 없지만 분양가는 지자체가 어느 정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로 확실하게 나타나는 분양가 인하가 생색 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고등지구 분양가를 인하한 성남시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건설사 이익으로 귀속될 수 있었던 약 267억원을 시민에게 되돌려줬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마른 수건을 짜낸다”며 하소연한다. 이윤이 얼마 되지 않은 상한제 가격도 깎이면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천지식정보타운 S6블록 분양가가 3.3㎡당 300만원 내려가면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 84㎡ 기준으로 분양가가 1억원 내려가고 총 분양수입이 1700억원 줄어든다. 당초 예정한 사업비의 10%가 넘는 금액이다. 위례의 경우 앞서 분양한 단지보다 비싼 택지공급 가격과 지난 3월과 9월 두 차례 오른 기본형 건축비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주택 공급 차질 우려

그러다 보니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시작하려던 과천지식정보타운 분양이 해를 넘기게 됐지만 내년에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S6블록 분양이 막히면서 다른 단지들 분양도 멈췄다. 위례신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업체들은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는 임대주택 등 사업계획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일반 주택 수요자에게 돌아갈 분양주택 물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주택경기보다 분양가 규제에 따라 공급 물량이 몰리거나 감소하면 주택 공급이 혼란에 빠진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지나친 분양가 규제로 주택 공급이 널뛰고 교란되면 결국 집값 불안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1514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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