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네 탓 경제학’에서 벗어나려면 

 

#1. 조지 버나드 쇼는 노벨 문학상을 받는 등 20세기 전반 활약했던 영국의 작가이다. 아주 훌륭한 희곡을 여럿 남긴 그는 대단한 유머 감각으로도 유명했다.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 이사도라 던컨이 “당신 머리와 내 미모를 닮은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청혼하자 “멍청한 당신 머리와 추악한 내 용모를 닮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며 거절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그의 묘비명이 더 유명한 듯하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이는 분명한 오역이다. ‘(여기에) 충분히 (너무) 오래 머무르다간 이 같은 일이 생길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정도가 올바른 번역일 것이다. 10여 년 전 한 통신사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이 사람 묘비명을 (의도적으로?) 이렇게 번역하는 바람에 그렇게 알려졌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필자도 원문보다는 이 오역 버전을 선호한다. 아마도 뜻이 더 그럴 듯해서일 것이다.

#2.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은 2015년 4월 시간당 9.47달러이던 최저임금을 11달러로 올린 후, 9개월 뒤엔 13달러, 다시 1년 후엔 15달러로,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58%를 인상했다. 2017년 6월 워싱턴대학교는 최저임금이 11달러에서 13달러로 오를 때 일자리가 6.8% 줄었다며, 근로시간이 대폭 줄면서 연간 임금이 오히려 125달러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경제 교과서에도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실업률도 올라간다고 나온다.

#3.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상동기관’과 ‘상사기관’에 대해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상동기관이란 그 근본은 동일하지만 이후의 진화 과정이 달라 기능이나 형태는 달라진 경우이다. 예를 들면 사람의 팔, 개의 앞다리, 고래의 지느러미는 기능이나 형태는 다르지만 해부학적으로는 서로 비슷한 골격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사기관은 기원이 서로 다르지만 형태나 기능이 매우 닮은 기관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새의 날개와 곤충의 날개는 모두 비행 기관이지만, 전자는 앞다리가 변한 것이고 후자는 껍질 일부가 변해서 생긴 것이다. 상어와 고래의 지느러미도 상사기관이다.

필자는 작년, 재작년 연속 이 칼럼을 썼다. 첫 번째 칼럼에서는 새 정부에 대해 “정부 만능론을 믿지 말고 시장과 기업을 존중하며, 그 목소리를 경청하고 재정건전성에 유의”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두 번째 칼럼에서는 그 내용은 첫 번째 칼럼과 대동소이하되 “겸허(Humble), 경청(Hear), 존중(Honor)의 자세를 강화하거나 새로 취하면서, 정치적 신조(Dogma), 불통(Deaf ear), (실무부서에 대한 청와대의) 군림(Dominance)하는 자세는 버려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첫 번째든 두 번째든 필자의 이런 ‘주제 넘은’ 부탁은 전혀 반영된 것 같지 않다.

2017년 5월 새 정부 출범 당시 경제환경은 지금 생각해도 참 좋았다. 주가는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면서 민간소비 등 거시경제의 지표도 확연하게 회복되는 모습이었다. 세계 경제의 회복세에다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큰 기대도 가세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임기의 절반을 넘어선 시점에서 경제 상황은 어떤가? 2019년 경제성장률은 전망치를 여러 번 하향 수정하며 2% 수호가 관건이 됐다. 고용은 ‘일자리 정부’ 구호가 무색하게도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고도 ‘고용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통령이 “확실히 좋아지는 모습”이라고 했던 분배 면에서는 정부의 보조금 효과를 빼면 5분위 배율(하위 20%의 소득 대비 상위 20% 소득)은 2019년 3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악의 수준이다. 자영업자 등이 장사로 번 소득인 사업소득도 같은 시기에 약 5%나 줄어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수출도 최장 기간 연속 뒷걸음질을 치고 있고, 증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승률이 가장 낮은 몇 나라 중 하나일 정도이다.

얼마 전 TV에서 직접 대통령이 ‘자신 있다던 부동산’ 문제는 어떤가? 서울·수도권 등 주요 지역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뛴 것은 이 정부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투기를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중과세와 재건축 규제를 전가의 보도로 휘둘렀지만 항상 그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그쳤다. 이 모두 ‘소득주도성장’의 초라한 성적표이다. 오죽하면 얼마 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배로 교수가 “소득주도 빈곤”이라고 평했겠는가? 하지만 이 정부는 아직도 이런 부진한 경제 상황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나 야당, 전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래서 ‘Netat Economics’ 즉 ‘네 탓 경제학’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하는 실정이다.

사실 이와 같은 경제 상황은 이 정부의 정책기조가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실업률 상승, 자영업자·소상공인 부담 증가→소비·투자 부진→기준금리 인하→집값 상승→종부세 인상 등 부동산 억제정책 강화→경기 부진→금리 인하→집값 상승→부동산 억제정책 강화→경기 부진’이라는 악순환의 루프를 그대로 돌고 있기 때문이다. 흡사 자신이 만든 미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양상이다. 특히 2019년 종부세 부과 징수액은 이 정부 출범 해인 2017년 1조7000억원에서 2019년에는 3조2000억원으로 올랐으며 건강보험료도 크게 올랐다. 실제로 세금과 각종 사회보험료, 이자 등 비소비지출 비중은 이 정부 출범 전의 18.2%에서 2019년 3분기엔 통계 작성 후 최고치인 23.3%로 올라갔다. 모두 경기에 역진적인 세금 부담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을 재정으로 해결하다 보니 국가부채는 급속도로 늘어 이미 ‘레드 존’에 들어선 국가재정 상태가 몇 년 안에 일부 유럽 국가들처럼 파탄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코노미스트들도 보인다. 새해에는 세계 경제도 하강세로 돌고 특히 단단히 꼬인 북핵 문제와 방위비 분담 문제 등으로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자동차 고관세 부과 등 감정적인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은 임기 안에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거나 적어도 추가적인 악화를 막을 비책은 있는 것인가? 답은 “있다”이다.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소득주도성장’의 기치는 내릴 수 없더라도 앞서 언급한 ‘상사기관’의 예처럼 경제에 대한 실용적·기능적 접근을 하자는 것이다. 첫째, 정치적 이유 등으로 ‘소득주도성장’의 구호는 버리지 못할지라도 소비와 투자를 더 이상 누르지 않을 조치를 해보길 권한다. 예컨대 ‘최저임금’ ‘건강보험료’ ‘종부세’를 동결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더 이상 금리는 손대지 않을 일이다. 이래야 악순환의 한축을 끊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 ‘말로만’ 해온 듯한 규제완화는 실질적으로 진도를 내길 바란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잠재 성장동력을 일깨우는 좋은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청와대 등에서 경제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인사들을 지금의 ‘정치사상가’에서 경험 있는 실무형 ‘경제전문가’들로 쇄신하길 권한다. ‘이념’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단순한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남은 임기에 적어도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임기가 끝날 때까지 ‘우물쭈물 하다가는’ 한국 경제가 회복하기 힘든 상황까지 몰릴 조짐이 이미 여럿 보인다. 한 유명한 영국 희곡에는 ‘인생은 사랑보다 크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유추해서 “국가경제는 정권보다 크다”라는 말은 누군가에겐 꼭 들려주고 싶은 시점이다.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원장

1516호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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