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Section

[경치 밖 뜻을 담는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빛의 기록에 여백의 정신을 담다 

 

수묵화 같은 풍경사진… 옛 문인의 문장·철학 속에서 느끼는 힐링

▎주기중 작가의 작품 ‘Wave#9’. 언뜻보면 산 같지만 바다를 찍은 사진이다. 장노출 기법으로 파도를 운해처럼 표현했다. 태초에 ‘산과 바다는 한 몸’이라는 의미를 사진에 담았다. / 사진:주기중
사진작가 주기중의 세 번째 작품집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은 “대한민국이 사진과 사랑에 빠졌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가 ‘국민 포인트’라 불리는 관광지에 놓여진 수많은 삼각대를 지적한 것처럼 ‘출사’를 다니는 사진 동호회 회원들은 전국 곳곳의 해돋이 명소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들이 사진 위주로 재편되면서 이른바 ‘사진발’을 잘 받는 곳이라면 어디든 스마트폰을 꺼내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연남동·을지로의 ‘셀카’ 포인트에서도 다들 비슷한 사진을 찍는다. 공항이나 야구장에 가면 아이돌, 스타 플레이어들을 찍기 위해 대포알 만한 대구경의 렌즈를 든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주기중 작가는 이 중에서도 풍경사진을 찍으려는 ‘출사족’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임을 지적하며 이렇게 분석한다. “급속한 서구화로 산수화의 전통이 단절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조상들의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만큼은 ‘밈’이라는 유전자를 통해 전달됐고, 이것이 풍경사진 열풍에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팍팍한 세상살이를 떠나 자연과 더불어 쉬고 싶은 보상심리도 더해졌을 겁니다.”

왜 한국에는 세계적 풍경사진 작가 없나?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 / 주기중 지음 / 아특사, 330쪽, 가격 2만원
하지만 이런 한국에서 왜 세계적인 풍경사진 작가가 나오지 않고, 오히려 서구권에서 저명한 풍경사진 전문작가들이 나오는 걸까? 주 작가는 이를 정체성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서양의 철학은 동양과는 달리 과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자연을 탐구와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안셀 애덤스로 대표되는 미국 풍경사진의 전통은 서부 개척과 관련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서부 개척 시대에 지질 조사를 위해 촬영했던 사진들이 ‘랜드스케이프’라 불리는 풍경사진의 원조가 됐습니다.” 서부 개척정신은 풍경사진이 정립되기 이전부터 발휘됐다. 미국의 사진작가 밀턴 밀러가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홍콩과 중국으로 떠난 게 1861년이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사진기가 1837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나왔고, 1889년 이스트먼 코닥이 카메라 필름을 처음으로 대량 생산했다. 그러니 서구의 사진작가가 기본적인 기술을 습득하자마자 달려간 곳은 중국이었던 셈이다.

밀러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는데, 주로 고관이거나 부자였다. 그리고 뉴욕타임스가 1978년 밀러의 사진 등이 포함된 ‘중국의 얼굴 사진전’을 소개하면서 “밀러는 중국을 찍은 사진에 서구의 사상과 그림 기법을 적용했다”며 “19세기 화가 램브란트 그림에 쓰이는 빛이나 원근법 등은 중국의 그림 기법과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동양화에선 가까이에 있는 손과 멀리 놓인 손의 크기가 같게 그려지는 등 원근감이 무시됐다.

그 이후 많은 서양인이 카메라를 들고 중국으로 몰려왔고, 그중에서는 중국의 자연을 담은 풍경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밀러처럼 인물사진을 촬영하면서 강한 라이트를 얼굴 정면에 비추거나, 보정을 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인물사진들은 때때로 검은색 점들로 표현됐기 때문인 것도 풍경사진이 많아진 이유가 됐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설명이다.

아마도 이런 사진의 역사 속에서 주기중은 ‘왜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풍경사진가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더욱 강하게 품었다. 누구나 풍경사진을 찍으려고 하면서도, 좀처럼 멋진 풍경사진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돌파할 해결책으로 작가는 산수화의 기법과 정신을 꼽는다. 실제로 책에 담긴 그의 작품들 중에서는 수묵 산수화와 풍경사진의 경계에 있는 것 같은 사진이 많다. 구름 속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이나 설원 한편으로 걸쳐있는 숲은 물론이고 낚싯대를 바다에 힘껏 던지는 사람의 모습까지도 사진이라기보다는 한폭의 동양화 같다.

주기중의 세 번째 책 [산수화로 배우는 풍경사진]에서 사진 찍는 테크닉 소개는 극히 일부분이다. 작가는 자신의 풍경사진의 지향점을 산수화의 경지에 빗대어 설명한다. 0과 1, 두 숫자의 디지털 조합으로 포착한 빛의 기록인 사진에 여백조차 사유의 공간이 되는 산수화의 정신을 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대자연 앞에 선 사진가의 자세, 생각과 감정을 사진에 이입 시키는 문제에 중점을 둔다. 그런데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사진만큼 글도 오래 봐야 한다. 고려와 조선의 사상가는 물론 중국 육조 시대, 당과 송, 원과 청의 문인들 문장을 빼곡하게 소개하고 있어서다.

산수화의 경지에 빗댄 풍경사진 지향점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느리지만, 책 속에서 마주치는 사진과 글을 보며 작가가 머리말에서 적은 ‘산수화의 정신은 힐링’이란 말을 새삼 다시 느낀다. 힘들고 지칠 때 자연을 찾아 떠나고 싶지만, 맘 편하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주기중 작가는 아주특별한사진교실, 서울시 50+재단에서 사진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며 언론 매체에 사진 컬럼을 기고한다. 중앙일보 사진부장, 영상에디터, 멀티미디어 팀장, 시사미디어 포토디렉터를 지냈다. 2016년 포란, 2018년 COSMOS로 개인전을 열었다. 저서로 [아주특별한사진수업]이 있다. 그동안 꾸준하게 사진작업을 하며 내공을 키운 흔적들이 [사진, 그리고 거짓말]에 담겨있다.

-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1516호 (2020.01.0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