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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럭셔리' 전략 선봉장 GV80] ‘정의선호 어벤저스’가 만든 첫 고급차 

 

품질에 ‘혁신성’ 더해 名品 조건 갖춰

▎사진:제네시스
“제네시스 브랜드는 ‘인간 중심의 진보(Human-centered Luxury)’를 지향한다. 고객은 과시를 위해 멋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멋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을 원한다. 시간과 노력을 아껴주는 현명한 소유 경험, 사용할수록 만족감이 높아지는 실용적 혁신에 감동한다. 이것이 한 차원 높은 새로운 명품의 가치이며 제네시스는 이러한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

지난 2015년 11월 4일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을 알린 행사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당시 부회장)이 한 말이다. 출범 5년차를 맞은 제네시스의 드라이브는 올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출시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GV80는 그 신호탄이자 선봉장이다.

첫 SUV, 첫 직렬 6기통, 첫 주문제작 생산


▎사진:제네시스
1월 15일 공개된 제네시스의 첫 SUV GV80는 한국 시장에 ‘없던 차’라서 기대를 모은다. 우선 국내에서 생산되는 SUV에 ‘럭셔리’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차는 없었다. 국내 럭셔리 SUV 시장은 수년간 크게 성장했는데, 이 시장은 모두 수입차 차지였다. GV80 디젤 모델은 6580만원부터 시작한다. 풀옵션을 선택하면 최대 9000만원에 달한다. 가격 측면에서 럭셔리 브랜드와 경쟁해야 한다. 벤츠·BMW 등의 동급 차량과 비교하면 2000만원 이상 싸고, 렉서스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가격이 그 성능과 합당한지 따져봐야 한다. GV80은 제네시스의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15년 이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정의선호 어벤져스’가 만들어낸 첫 제네시스다. 2014년 영입돼 고성능차 개발을 담당하던 알버트 비어만 사장은 2018년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에 부임한 뒤 제네시스 개발에 손을 댔다.

비어만 사장은 GV80을 위해 새로운 3.0 디젤 엔진을 만들어냈다. 베라크루즈와 모하비에 사용하던 V6 엔진으로는 현대·기아차와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신념이 반영됐다. GV80에 현대차 최초의 직렬 6기통 엔진이 달리게 된 배경이다. 비어만 사장은 BMW에서 30여 년간 고성능 엔진을 연구한 인물로, BMW는 대부분의 차에 직렬 엔진을 세로로 배치해 특유의 후륜구동 주행질감을 완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린더가 한줄로 배치된 직렬 엔진은 실린더를 좌우에 경사지게 배치한 V형 엔진에 비해 소음과 진동도 적다. BMW뿐만이 아니라 많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직렬 엔진을 선호하는 이유다. 이 엔진은 278hp의 최고출력을 내며 최대토크는 60.0kg·m다. BMW X6의 싱글터보엔진과 비교하면 토크는 조금 달리지만 마력이 13hp 높다.

비어만이 만든 심장에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과 이상엽 전무가 얼굴과 몸매를 창조했다.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로 통용되는 벤틀리에서 합을 맞춘 두 사람은 2015년과 2016년 나란히 현대차에 합류했다. 엔진이 세로로 배치되는 탓에 후드가 긴 디자인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는데, ‘역동적인 우아함’이라는 역설적인 슬로건을 디자인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들은 여기에 더해 제네시스만의 새로운 디자인 정체성도 더했다. 브랜드 로고를 자동차 그릴과 ‘두 줄’ 형상의 헤드램프를 이용해 표현해냈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세계적인 브랜드는 각자 자신을 상징하는 디자인을 갖는다. 두 줄의 형상이 앞으로 제네시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GV80의 디자인 특징은 이뿐만이 아니다. ‘무광 외관 컬러’와 ‘녹색 시트’ 등 기존의 틀을 깬 혁신적인 시도가 더해졌다. 이상엽 전무는 기자와 만나 “녹색 시트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럭셔리 시장의 후발주자로서 새로운 브랜드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다.

우선 국내 시장에서는 이미 흥행 조짐이 일고 있다. 공식 출시와 함께 계약이 시작됐는데 첫날 기준 1만5000대가 계약됐다. 주목할 것은 이 계약이 모두 온라인으로 접수됐다는 것이다. 제네시스는 GV80에 현대차그룹 최초로 주문생산 방식을 도입했다. ‘유어 제네시스(Your Genesis)’ 프로그램은 고객이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옵션을 조합해 주문하면 생산에 돌입하는 방식이다. 컬러를 제외하고도 선택할 수 있는 조합이 10만4000개에 달한다는 게 제네시스 측의 설명이다.

한양대학교 럭셔리연구소장인 박정근 교수(경영학부)는 “전통적인 럭셔리 제품의 정의가 희소성과 높은 품질, 높은 가격 등이었다면 최근에는 ‘혁신’이라는 가치가 더해지고 있다”며 “새로운 디자인 시도와 주문생산방식의 도입 등은 럭셔리 제품으로서 GV80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데 적합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네시스 브랜드는 헤리티지가 짧지만 ‘인간중심의 럭셔리’라는 확실한 비전과 브랜딩, 마케팅 전략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재훈 현대차 국내사업본부장(부사장)은 국내 시장에서 올해 GV80의 판매 목표는 2만4000대라고 밝혔다. 제네시스 전체 브랜드 판매 목표는 8만대로 제시했다. 장 부사장은 “그래야 국내에서 고급차 시장 1위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지난해 7만8133대를 판매한 벤츠를 이기겠다는 것이다.

미국 딜러망 늘렸으니 질주 가능할까

이제 제네시스 브랜드가 뚫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해외시장 개척이다. 특히 세계 최대 럭셔리카 시장인 미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출범 이듬해인 2016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2만1233대를 파는데 그쳤다. 그나마도 2018년 판매량이 1만대 수준에 그쳤다가 G70 판매에 힘입어 늘어난 것이다.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전인 2015년 제네시스(BH) 한 차종만 2만4917대를 팔았던 것을 고려하면 처참하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미국 시장 공략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용우 제네시스사업부장(부사장)은 “GV80를 우리나라보다 미국 시장에서 더 많이 팔 것”이라고 말했다.

근거는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제네시스 미국 부진의 가장 큰 이유가 독립된 딜러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최근 딜러망을 늘리고 있다. 이 부사장은 “작년 한 해만 350개의 딜러사를 선정했다”고 자신했다. 다만 그는 “유럽과 중국 시장 진출은 올해는 힘들 것 같다”며 “시장 상황을 보며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19호 (202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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