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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산업 숨통 틔우기 나선 정부] 해양진흥공사 따라 ‘항공진흥공사’ 출범하나 

 

규제에서 진흥 중심으로 전환 목적… ‘비용의 사회화’ 지적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의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항공진흥공사가 연내에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항공산업 진흥을 위한 별도 기관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물류·관광 등 국가전략 산업의 기반인 항공산업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항공산업은 2018년 전체 수출입화물의 30.2%(금액 기준)를 실어 날랐고, 내외국인 관광객 94.6%의 이동을 담당하는 등 국가 산업을 떠받쳐 왔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과 갈등으로 일본편 수요가 줄었고, 최근 중국에서 ‘코로나19’까지 발원하면서 사상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이에 정부는 별도 기관 신설로 항공기 리스 등 금융을 지원하고 인바운드(외국인 방한객) 유치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나서 항공산업 진흥을 위한 별도 기관 신설을 주도하고 있다. 항공산업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지난해부터 불거진 항공산업 위기에 대응해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는 등 항공산업 경쟁력 제고를 추진해 왔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사태가 악화하자 지난 2월 17일에는 항공사에 대한 긴급융자를 골자로 한 ‘항공분야 긴급 지원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과)는 “국토부가 항공산업 대책을 전문성 있게 추진할 조직을 신설하려는 것”이라면서 “그동안 조직 신설 논의는 꾸준히 있었다”고 말했다.

위기의 항공산업 지원할 기관 설립 검토


신설 기관은 한국해양진흥공사와 유사한 형태인 한국항공진흥공사(가칭)가 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2018년 7월 설립된 한국해양진흥공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해운산업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해운 산업 재건을 위해 설립을 추진, 정부가 지원한 기관으로 국토부가 추진하는 신설 기관과 닮은 점이 많다. 실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2월 10일 국내 10개 항공사 최고경영자(CEO)와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 “해운산업 금융지원을 위해 설립된 해양진흥공사와 같은 방식의 항공산업 금융지원을 연내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 기관 설립 추진은 항공산업의 유래없는 위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 국토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여객 감소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당시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2002년 12월 터진 사스는 발병 4개월 후인 2003년 3월 항공여객이 전년 동기 대비 8.4% 감소했고, 메르스는 국내 발병 한 달 뒤인 2015년 6월 12.1% 감소했다. 이번 코로나19는 한달 만에 32.2%의 항공여객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초 주 546회 중국을 오가던 국내 항공사의 운항 횟수는 2월 첫째주 380회로 30% 가량 줄어든데 이어 2월 셋째주 126회로 77% 줄었다. 코로나19의 지역 감염이 확인된 동남아 일부 지역의 노선도 감축하는 추세다. 여행 심리도 급격히 위축돼 중국과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항공권 예약 취소·환불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1월 26일~2월 12일 국내 항공사 환불액은 대한항공 1275억원, 아시아나항공 671억원, 제주항공 225억원, 진에어 290억원, 이스타 190억원, 에어서울 40억원, 티웨이 227억원 등 총 2918억원에 달했다.

여기엔 지난 7월부터 이어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의 여파도 한몫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 등 경제 보복 조치를 펴면서 일본행 여행 수요가 줄자 항공업계는 중국과 동남아를 대안으로 삼았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이 하늘길마저도 막힌 셈이다. 지난해 12월 일본행 국제선 여객은 전년 동기 대비 39.4% 감소했다. 여기에 환율이 오르며 항공기 리스료(외화부채) 부담이 커졌고, 유가가 오르며 운항 원가도 올랐다. 항공사의 비용 원가 중 유류비 비중은 17~18%로, 유가 10% 상승 시 영업이익률은 평균 2.5%포인트 줄어든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35년간 항공사에 일했지만 지금이 가장 큰 위기”라고 말했다.

한국항공진흥공사가 출범하면 우선 항공기 도입 관련 공적 보증 등 항공 금융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항공업계는 매월 렌탈료를 내는 운용리스를 주로 채택해 해외 항공사에 비해 높은 임대료를 내고 있다. 이는 재무구조 악화 및 신규 투자 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국내 항공사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대한항공, 아시아나, 제주항공, 에어부산 각각 862%, 909%, 331%, 525%로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대형항공사(FSC)와 저비용항공사(LCC) 영업이익률은 각각 0%, -1.7%로 일본의 JAL(14%)이나 중국의 에어차이나(11%)와 비교해 낮았다.

국토부는 이미 ‘항공기 공적보증’을 신설해 항공사가 항공기 구입 시 차입금리, 또는 운용리스 시 리스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항공기 도입 시 항공사에 대한 신용보증을 서 보증금이나 리스료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항공사의 리스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신용보강 방안을 설계하는 작업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항공업계 관계자는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해운사의 신규 선박 도입 과정에서 채무보증을 서는 것과 유사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면서 “한국항공진흥공사의 주요 업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항공진흥공사는 향후 국가차원의 항공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중국·아랍에미레이트(UAE)·싱가포르 등은 이미 항공산업을 저성장 시대 핵심 동력으로 지정해 항공사 보조금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을 쏟고 있다. 동북아 항공 시장이 꾸준한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동북아 항공시장은 2025년까지 매년 6% 넘는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한 항공사 CEO는 “국내 항공산업은 4~5년을 주기로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항공진흥공사를 통한 면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관 설립 대신 관광기금 등 기존 지원 활용해야”

그러나 일각에선 항공사의 위기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산업 변화를 세비 지원으로 막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해양진흥공사 기금 조성에만 1조3500억원 규모의 국유 재산이 출자됐는데, 정작 산업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이라면서 “해운업계 위기로 구조조정된 인력을 재고용하는 효과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해양진흥공사에서 투자보증 부문을 맡고 있는 김종현 본부장이 대표적인 해운 업계 출신이다. 김 본부장은 한진해운 파산 전 컨테이너선 운영본부장(전무)을 역임했다.

신설 기관의 설립 대신 이미 조성된 기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부)는 “한국항공진흥공사를 만든다고 가정할 경우 기금 조성부터가 업계엔 부담일 수 있다”면서 “항공편 이용 시 여행객들로부터 1만원씩 받아 조성한 관광진흥개발기금(관광기금)을 항공사 등에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관광기금은 여행업과 숙박업계 지원에 쓰이고 있다. 한편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별도 기관 신설과 관련해 밝힐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면서 “항공기 리스 관련 보증은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23호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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