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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잔량 급감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매출·영업이익 회복했지만 ‘신규수주’ 가뭄 

 

완제기·기체부품·KF-X 모두 잠재적 악재… 안현호 사장 리더십 주목

▎지난해 11월 25일 안현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경남 사천 본사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경공격기 FA-50 모형을 전달하고 있다. /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
지난 3년 동안 회계이슈·기체사고·수출실패 등 내우외환을 겪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매출·영업이익을 정상화했지만, 신규수주에 실패하면서 수주잔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수출 확대’를 최우선으로 과제로 내걸고 취임한 안현호 사장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KAI의 경영지표는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19년 연결실적(잠정)은 매출 3조1035억원, 영업이익 275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각각 전년대비 11.4%, 88% 증가한 수치다. KAI는 2017년 김조원 전 사장이 ‘빅 배스(Big Bath·부실자산을 한 회계 연도에 모두 반영하여 위험요인을 일시에 제거하는 회계기법)’를 단행해 적자를 기록한 이후 2018년 영업이익이 1464억원에 그쳤는데, 1년 만에 큰 폭으로 회복한 것이다. 국산 중형헬기 수리온의 납품이 정상화돼 수리온 3차 양산 등 주요 납품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됐고, 수익성이 높은 완제기와 기체부품 사업에서 실적 정상화를 이뤘다는 분석이다. 한국형전투기(KF-X)와 소형무장헬기(LAH) 판매, 군사용 정찰위성을 개발하는 ‘425사업’ 등도 매출 증가에 공헌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신규수주 1조3000억원 불과


그럼에도 시장은 올해 KAI 실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당장 주가가 시원찮다. KAI의 주가는 미국 공군의 차기 고등훈련기(APT) 교체 사업 개시가 구체화 되던 2015년 8월 10만원을 넘어서며 최고점을 찍은 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검찰의 방산비리 수사와 2017년 7월 마린온 추락사고로 인한 기체 결함 의혹에 이어 2018년 9월 APT 교체사업 고배 등 악재가 이어져서다. 문제는 이런 악재들이 모두 해소되고 있음에도 주가가 여전히 하락세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 주식시장 자체가 격랑에 휩싸여 있지만 KAI의 주가 하락은 시장의 평균치를 훨씬 넘는다. 지난해 9월 4만원대에서 등락하던 KAI의 주가는 올해 3월 19일 종가기준 1만6400원까지 떨어졌다. 6개월 새 절반 넘게 감소한 것이다.

실적개선에도 불구하고 KAI에 대한 전망이 좋지 않은 이유는 수주잔고 때문이다. KAI의 수주잔고는 2015년 이후 17조~18조원대를 유지했다. 특히 2018년 말엔 18조5104억원까지 늘며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수주잔고는 17조원대가 깨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증권은 KAI의 지난해 말 수주 잔액을 16조8000억원으로 추정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KAI의 수주 잔량 감소세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항공과 방위산업은 수주잔고 대부분이 장기간에 걸쳐 매출로 인식된다. KAI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신규수주”라고 말했다.

지난해 KAI가 공급계약을 공시한 신규수주는 1조2660억원에 불과했다. 소형민수·무장헬기 체계개발 계약과 한국형 전투기 사업 계약이 몰렸던 2015년 9조2335억원 수주와 비교하면 8분의 1 수준이며, 목표치 2조6000억원와 비교해서도 절반 수준이다.

이에 대해 KAI 측은 “수주를 예상했던 일부 프로젝트가 지연된 것이 원인”이라며 “지난해 연기된 수주 물량 1조1000억원 정도가 올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KAI는 연기된 프로젝트 등을 포함해 올해 수주 목표를 4조2044억원으로 잡았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KAI의 올해 수주 목표는 대부분 국내 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크지 않다”며 “당장에 가시화된 해외수주가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회사는 이를 점진적으로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방산은 성장 한계, 해외 수주 전력해야


전문가들은 KAI가 매출과 영업이익의 성장을 지속하려면 해외 수주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봉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017년 이후 국방예산이 크게 늘었지만 올해부터는 증가세가 둔화될 것”이라며 “성장을 지속하려면 수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AI 역시 해외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항공우주산업과 방위산업 경험이 없는 안 사장이 KAI 대표를 맡을 수 있었던 명분이 바로 ‘해외 수주’이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지식경제부 차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출신이다. KAI 이사추천위원회는 그의 발탁 사유로 “산업육성정책과 해외시장에 대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수출시장 개척의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안현호의 KAI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수익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완제기 분야의 해외수주다. KAI는 2001년 인도네시아에 KT-1을 첫 수출한 이후 해외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왔다. 특히 2011년 인도네시아(KT-1), 2012년 페루(KT-1), 2013년 이라크(T-50), 2014년 필리핀(FA-50), 2015년 태국(T-50), 2016년 세네갈(KT-1), 2017년 태국(T-50), 2018년 인도네시아(KT-1) 등 8년 연속 해외에서 완제기 수주를 따냈다. 그러나 지난해엔 단 한건의 완제기 수출도 따내지 못했다. 완제기 분야에서 KAI의 일감은 2014년 말(1조4851억원)을 고점으로 지속 줄어들었고, 지난해 3분기말 기준으로 7078억원의 일감만이 남았다.

KAI는 기존 거래 국가는 물론이고 칠레(T-50), 아르헨티나(FA-50), 보츠나와(T-50), 에콰도르와 파라과이(KT-1) 등에 신규 수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이야기는 나오고 있지 않다. 지난해 11월엔 한-아세한 특별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말레이시아 총리 일행이 KAI 본사를 내방해 항공기 생산 현장을 방문하면서 경전투기(LCA) 사업 수주 기대감이 높았지만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는 상태다. 이재광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글로벌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해외 프로젝트 자체가 지연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해외 완제기 수출 계약을 따내기가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분야 역시 전망이 좋지 않다. 국내 방위산업에서는 한미 방위비 인상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국산 무기체계를 구입하는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KAI가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육성하던 기체부품 사업은 보잉 737 맥스 쇼크로 위기감이 큰 상황이다.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두 차례 여객기 참사 이후 세계 40여 개국에서 운항이 정지된 737맥스 기종 생산을 지난 1월부터 일시 중단한 상태다. KAI는 737 맥스에 미익(꼬리날개) 구조물을 납품하고 있다. KAI는 수년 전부터 보잉, 에어버스에 기체부품을 납품하는 사업을 육성해 기체부품 사업의 매출 비중이 2015년 32%에서 2019년 1~3분기 41.8%로 확대됐다. 다만 최진명 연구원은 “최근 보잉의 일부 협력사가 보잉의 생산 재개 준비에 돌입해 올 6월 쯤이면 운항이 재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며 “보잉 737맥스와 관련한 리스크는 해소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사업들 역시 리스크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형차세대전투기(KF-X) 공동개발에 나선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납부 지연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는 KF-X 공동개발 사업에 납부해야 할 분담금 1조7000억원 중 13%인 2272억원만 납부하고, 예산 부족을 이유로 2018년과 2019년 분담금 약 4000억원을 내지 않고 있다. 최악의 경우 인도네시아가 KF-X 프로젝트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광 연구원은 “인도네시아가 KF-X프로젝트에서 빠진다 해도 개발 자체에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원가 상승에 대한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해외시장전문가’ 리더십 나올까 주목


지난해 설립한 자회사 한국항공서비스(KAEMS)의 MRO 사업도 국내 항공산업의 침체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주요 고객인 저비용항공사(LCC)의 개편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도 부담이다. 이재광 연구원은 “항공산업이 좋지 않다고 MRO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저가로 수주하고 있는 MRO비용을 높이기는 어렵다”며 “다만 KAEMS는 장기적인 성장동력이기 때문에 단기 실적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고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장 상황이 이렇듯 안현호 사장 역시 올해 신년사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현 상황을 위기로 규정했다. 그는 완제기 수출과 관련해서 주력사업인 FA-50, 수리온의 성능 개량을 통한 제품 경쟁력 향상과 원가 혁신을 통한 가격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이를 통해 향후 5년 안에 연매출을 현재의 두배 수준인 6조원 규모 키우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결국 핵심은 신규 수주다. 안현호 사장이 KAI 이사추천위원회의 발탁 사유인 ‘해외시장전문가’로서 수출시장을 어떻게 개척할 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27호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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