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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대왕’ 리더들의 공통점은 불안구성원들로부터 ‘잔소리 대왕’으로 ‘찍힌’ 리더들을 만나보면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잔소리는 구성원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지만 이 불만의 밑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잘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얘기를 나눠보면 마음 가득한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의식이다. 물이 배를 띄우 듯 불안이 이들을 띄우고, 파도가 배를 몰아치듯 불안이 이들을 흔든다.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1년 짜리 파리 목숨 아닌가. 더구나 1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여기까지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진짜 위기 직전에 있는 이들이 있다. 말이 많은 리더일수록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그러니까 잔소리의 핵심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물으면 뻔한 대답이 온다. “왜 이렇게 꿈뜬지 모르겠다” “성과가 저조해 큰 일이다.” 자신의 불안함에 다른 가면을 씌운다.미국 로체스터 대학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가 실험 참가자들에게 교사 역할을 하게 했다. 1그룹은 그들이 가르친 학생들이 고득점을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지시했다. 2그룹에게는 그냥 잘 해보라고 했다. 그런 후 수업 내용을 녹음, 분석했더니 의미 있는 결과가 나타났다. 1그룹 교사들이 2그룹에 비해 말이 두 배나 많았다. 이들은 또 학생들의 말보다 자신들의 말을 우선했다. 문장에 ‘Have to, must, should’(해야 한다)를 3배나 많이 사용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학생들을 압박한 것이다. 잠깐의 실험에서도 이 정도였으니 실제로 압박을 받으면 어떨까?이렇듯 불안은 압박에서 온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못된 성격이 따로 있기보다 대체로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시작점은 우리 뇌에 있다. 우리 뇌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편도체(amygdala)는 분노, 공포, 증오 같은 생존에 직결되는 감정을 담당한다. 생존을 좌우하는 위험 감지 기능을 갖고 있어 아주 예민하다. 낯선 사람을 보면 10분의 1초 만에 저 사람이 좋은가, 나쁜가를 판별해 그에 맞는 행동을 하게 한다.인간의 뇌라고 하는 전두엽이 생겨나기 한참 전에 이미 발달한 뇌 영역이라 지금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전두엽에 앞서 판단해서 우리 몸을 움직이게 한다. 우리가 첫인상에 휘둘리고, 공황장애에 시달리게 되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에 이른다. 편도체 혼자 이러는 게 아니라 연관된 회로(circuit)들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다.한 마디로 편도체(회로)는 다섯 살쯤 된 어린아이와 비슷하다. 생존에 중요하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빨간불을 켜서 에너지를 이곳에 쏟아 붓게 한다. 분석적이고 창의적인 기능은 말할 것도 없이 억제된다. 요즘 많이 쓰이는 심리적 안전감 또한 여기서 결정된다. 심리학에서 ‘내 안의 어린아이’라고 하는게 바로 이 편도체이다. 리더의 말이 많아지는 이유 역시 이곳에 기원을 두고 있다. 마음 속 어린아이가 빨간불을 켠 것이다. 평소 이성적인 사령관 역할을 하는 전두엽이 이에 동조하면 불안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마음을 휘젓는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인정하자‘내 안의 어린아이’는 이 세상 사람들 모두 갖고 있는데. 리더들의 마음 속 어린아이가 특히 유난한 이유가 있을까?다른 건 몰라도 지위와 자동차는 한 번 높은 등급을 경험하면 낮아지기 힘들다. 낮아지면 창피나 굴욕을 느낀다. 더구나 지위는 40~50대에겐 삶의 모든 것일 수 있기에 이게 흔들리는 건 커다란 위협일 수밖에 없다. 철학자 같은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이런 말을 한다. 불안이란 자신의 존엄성이 위협을 받아 자괴감에 빠지거나 고통 받는 상황이라고. 자신의 존엄성이 지위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불안은 당연한 것이다. 지위는 한문(地位)과 영어(status) 모두 어원이 비슷하다. ‘땅 위에 서다(位, 라틴어 stare)’라는 뜻이다. 서 있는 곳이 흔들리는데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삐끗하면 회복할 수 없는 게 요즘 현실 아닌가.더구나 우리나라는 나이 들어 막상 회사 문을 나서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평생 직업으로 여러 직장을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서유럽과 달리 우리는 직장이 직업이라 직장을 떠나면 끝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어느 곳이나 조직개편 바람이 불면서 불안감이 증폭일로 아닌가. ‘왕국’이나 다름없던 사무실을 도서관이나 운동장처럼 만들지 않나, 임원실을 대폭 줄이지 않나, 갈수록 설 곳이 없어져 간다. “마음 둘 곳이 없다”는 말이 많아지는 게 괜한 엄살이 아니다.이 예민한 어린아이를 진정시킬 방법은 없을까?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의 뇌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의 연구에 의하면 방법이 있기는 있다.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다섯 살 마음’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사후 합리화나 무조건 동조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 그럴 만 해’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야’ 같은 마음으로 달래주고 인정해주면 예민함이 낮아진다. 불안이나 분노를 줄여 심리적 안정을 가다듬을 수 있다.다마지오 교수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하나같이 불안을 없애려고 하기보다 인정하는 게 좋다고 한다. 우리 생각과 달리 불안은 없어야 좋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안은 다가오는 위협을 느껴 빨리 대응하게 하는 생존 필수능력이다. 편도체를 마비시킨 쥐는 괴롭혀도 대응할 줄 모른다. 바보 같이 당하고만 있다. 지나친 불안이 나쁜 것이지 불안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압박 땐 명시적 학습체계가 우리 몸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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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축될 땐 일부러 좀더 둔감해져야당황은 말 그대로 본능이 의식에 앞서는 것이다. 물에 빠졌다면 나를 구하러 들어간 사람을 꽉 붙잡지 말아야 한다. 기본 상식이다. 그래야 구조하러 온 사람이 나를 데리고 나갈 수 있다. 하지만 허우적거리는 상황, 그러니까 당황하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놓지 않는다. 구조자를 꼼짝 못하게 해서 둘 다 불행한 결과를 만든다. 이렇듯 당황이 무의식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면, 위축은 지나치게 뭔가를 의식해서 또 다른 잘못을 만들어낸다.압박을 심하게 받는 리더들도 이 둘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 둘은 따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찾아든다. 마음에 걸리는 것에 신경을 쓰다 소심해지고 예민해져 자신도 모르게 ‘욱’ 하는 일이 일어난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자책하고 노심초사하다 또 실수하고, 엉뚱한 일을 하거나 일을 엉망으로 만든 부하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확 내지른다. 위축될 때는 좀 둔감해지고 크고 깊은 호흡으로라도 마음을 넓혀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당황스러울 땐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생각해보자. 혹시 말이 많아지고 있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 높아지는 짜증 섞인 목소리는 위축된 마음에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당황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걸까? 알아야 대처할 수 있다. 그래야 ‘재능 있는 사람의 실패 대열’에 끼지 않을 수 있다.※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