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고급 주택의 공시가 이면] 몸값은 내렸는데 보유세는 폭탄급 

 

임대사업자는 종부세 강화로 ‘부메랑’ 맞아… 임대주택 분양에도 큰 부담

▎15년째 공동주택 공시가격 1위를 지키고 있는 서울 서초구 트라움하우스 5차 전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트라움하우스 5차.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 국내 최고급 주택들이다. 트라움하우스 5차는 올해 15년째 공동주택 공시가격 1위를 보유하고 있다. 나인원한남은 옛 외인아파트 부지에 지난해 들어선 단지다. 임대기간 4년의 임대주택으로 보증금이 최고 48억원에 달한다. 올해 처음으로 공시가격 리스트에 오르자마자 ‘톱10’을 넘보고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19일 열람에 들어간 올해 공시가격을 들여다본 두 단지 모두 기쁘지만 않을 것 같다. 씁쓸한 사연이 있어서다.

15년째 공시가 1위 트라움하우스 5차


올해 전국 1383만 가구 중 1위인 트라움하우스 5차 273㎡(이하 전용면적) 공시가격이 69억9200만원이다. 공시가 제도가 시행된 2006년 이후 줄곧 순위 맨 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속사정이 편치 않다. 공시가격은 지난해 68억6400만원보다 1.9% 올랐는데 실제 몸값은 내렸다. 정부가 시가 30억원 초과 주택의 공시가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을 지난해 69.2%에서 올해 80%로 올렸다. 시세 변동이 없더라도 현실화율 상승만으로 공시가가 14% 오르게 된다. 상승률 14% 미만 주택은 시세가 떨어진 것이다.

현실화율을 적용한 트라움하우스 5차 시세가 지난해 99억원, 올해 87억원이다. 지난해보다 10% 넘는 12억원 내린 셈이다. 공시가격을 산정한 한국감정원은 구체적인 시세를 밝히지 않지만 시세 하락을 인정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워낙 고가의 주택이고 지은 지 오래된 데다 새 고급 빌라 공급이 잇따르며 수요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트라움하우스 5차는 17년 전인 2003년 4월 준공했다. 올해 공시가 9위에 오른 강남구 청담동 효성빌라 청담101(247㎡, 58억4000만원)과 같은 최고급 주택이 강남에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가물에 콩 나듯 한 거래 사례에도 시세 하락이 나타난다. 최근 실거래가격이 지난해 12월 70억원이다. 트라움하우스 5차 역대 최고 거래가격이 비슷한 크기 다른 주택형이 기록한 2008년 120억원이었다. 이 주택형은 2017년 20억원 내린 98억원에 거래됐다.

트라움하우스 5차는 핵 공격도 견뎌낼 수 있다는 지하 방공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하 4층에 있다. 지하 2층엔 고급빌라에서 볼 수 있는 기사 대기실도 갖춰져 있다. 집 안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방’이 있다. 226~273㎡ 18가구 중 16가구가 복층형이다. 한 층이 226~268㎡이고 다른 층이 5.5~26.69㎡이다. 5.5㎡짜리는 268㎡에 붙어있다. 2평(6.6㎡)도 되지 않는 공간이다. 그런데 위층이 아니고 아래층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도실’로 불리는데 서재 등으로 쓰기엔 좁고 실제 쓰임새는 입주민 외에는 모른다”고 전했다.

이런 기형적인 복층 구조는 취득세를 줄이려는 절세 목적인 것으로 업계는 본다. 규모가 큰 집은 ‘사치성 재산’인 ‘고급주택’으로 분류돼 취득세가 중과된다. 세율이 12%다. 일반주택 최고 세율(9억원 초과 3%)의 4배다.

처음에 공동주택 고급주택 기준이 공급면적 기준 298㎡ 초과였다. 1994년 준공한 트라움하우스 2차가 266㎡이었다. 그 뒤 245㎡(복층형 274㎡)으로 강화됐다. 트라움하우스 5차는 복층 274㎡ 범위 내에서 한 개 층 면적을 넓히기 위해 다른 층 공간을 최대한 줄이면서 5.5㎡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트라움하우스 5차가 지어진 뒤 복층형도 한 개 층 면적을 최대 245㎡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가 바뀌었다.

공시가격 톱10 내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 등 다른 주택의 공시가격이 치솟고 있어 트라움하우스 5차가 머지않아 1위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 임대보증금이 48억원인 나인원한남 244㎡의 공시가격이 52억9600만원이다. 10위 부산 해운대 엘시티 244㎡(54억3200만원)에 이어 11위다. 나인원한남에서 가장 작은 206㎡가 30억~33억원이다. 나인한남에서 도로 건너편에 공시가 2위인 한남더힐이 있다. 한남더힐 244㎡가 65억4400만원이다. 208㎡는 31억~34억원 선이다. 갓 지은 나인원한남의 공시가가 지은 지 9년 지난 한남더힐보다 공시가가 낮게 산정됐다. 한국감정원은 “나인원한남과 같은 임대주택은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이 공시가격 산정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최고급 펜트하우스 공시가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희소성 차이 때문이다. 나인원한남이 10가구(전체 341가구), 한남더힐 6가구(전체600가구)다. 나인원한남 펜트하우스는 다른 일반 주택형과 함께 51가구가 들어선 동에 들어섰지만 한남더힐은펜트하우스급 6가구만으로 이뤄진 동에 배치됐다.

임대보증금 최고 48억원 나인원한남

나인원한남은 임대기간이 끝나는 4년 뒤 분양전환(소유권 이전)한다. 임대기간 동안 세입자는 자기 집이 아니어서 보유세(재산세+종부세)를 내지 않는다. 올해 보유세가 가구당 2800만~6500만원이다. 지난해 12·16대책대로 종부세 세율이 더 올라가면 3200만~7400만원으로 늘어난다.

보유세 부담은 고스란히 사업자 몫이다. 나인원한남은 당초부터 보유세를 각오하고 임대주택으로 분양했다. 그런데 그사이 잇단 정부 대책으로 종부세가 강화되면서 보유세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2018년 분양 때는 주택 수에 상관없이 종부세 세율이 같았다. 2018년 9·13대책에서 다주택자 중과가 도입되면서 세율이 뛰었다. 주택 수가 341가구여서 시행자는 다주택자에 해당한다. 여기다 올해 세율이 더 오를 예정이다. 최고 세율이 2018년 2%에서 지난해 3.2%로, 올해는 4%로 2배가 된다.

나인한남의 올해 총 공시가가 1조2000억원 정도다. 올해 보유세가 400억원대로 추정된다. 2018년 분양 당시 세율이라면 절반인 200억원대다. 나인원한남이 분양전환까지 앞으로 4년 동안 내야 할 보유세가 2000억원에 가깝다. 4년 뒤 분양전환 가격이 1조8000억~2조원으로 예상된다. 시행자는 분양수입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할 상황이다. 나인원한남 관계자는 “당초 예상보다 세금이 많이 늘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나인원한남은 원래 일반주택으로 분양하려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임대주택으로 분양방식을 바꿨다. ‘꼼수’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게 예상치 못한 보유세 ‘폭탄’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이월무 미드미디앤씨 대표는 “종부세가 대폭 강화되면서 보유세가 임대주택 분양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업체가 짓는 임대주택이 종부세 면제를 받으려면 149㎡ 이하, 공시가격 6억원 이하, 8년 이상 임대의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1528호 (2020.04.0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