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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가격 폭락, 그 공포·고통에 대한 혜안 

 

포트폴리오 재조정 시기… 연금저축계좌 등 기계적 투자는 유지해야

▎코스피가 반등세로 출발한 3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41.23p(2.78%) 오른 1523.69에 개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국내에도 광팬을 거느리고 있는 미국 TV 시리즈 ‘스타트렉’의 일등항해사 스폭과 같은 순수이성의 존재란 없다. 양쪽 귀가 뾰족한 스폭은 벌컨 행성의 외계인과 지구인의 혼혈로 차가운 이성으로만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 과정에 감정이 개입할 틈은 없다. 스폭은 합리성의 화신이며 순수이성 자체이고 차도남(차가운 도시남자)과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의 극대치이다.

하지만 물렁한 살과 뜨거운 피를 지닌 인간은 감정이 있어야 판단을 할 수 있다. 신경학자들과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다루는 뇌(腦) 부위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다.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만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우리의 선험적 생각은 오류라는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감정이 없으면 결정하고 판단할 수 없다. 그게 인간이다.

공포와 고통 vs 열광과 탐욕

돈이나 투자 문제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니 돈과 투자에는 더 깊은 감정이 개입된다. 인간은 돈 앞에서 공포와 탐욕, 고통과 열광의 감정을 오간다. 공포는 고통과, 탐욕은 열광과 짝을 이룬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는 시장 공포의 전형을 보여준다. 공포지수라 불리는 VIX지수(Volatility Index)는 2008년 10월 금융위기 보다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VIX지수가 만들어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 불안심리가 가득하면 주가는 떨어진다. 이처럼 증시지수와 VIX지수는 반대로 움직인다.

공포는 안전이 위협당할 때 가장 극대화된다. 안전은 원초적으로 생명의 문제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돈도 안전과 잇닿아 있다. 돈이 있어야 삶이 안전하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심적 구조를 두고 미국의 저명 투자칼럼니스트 제이슨 츠바이크는 저서 [머니 앤드 브레인]에서 “금전적 손실이나 부족은 거의 원시적인 공포를 일으키는 고통스러운 형벌”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돈은 인생 문제의 상징적 표시이다. 돈은 생활을 유지하고 우리가 세계 속에서 유기체로 살아가는 수단을 의미한다(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그러므로 현대 세계에서 돈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 혹은 두려움은 원시인이 야생에서 맹수를 직면했을 때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한다.

공포는 고통으로 이어진다. 시장 폭락으로 손실을 입고 나면 공포감은 더욱 증폭되고 계좌 잔고를 보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요즘 필자의 심정이 딱 이렇다. 경제학과 심리학의 결합으로 태어난 행태경제학의 유명한 연구결과 중 하나가 ‘손실 회피’이다. 인간은 손실을 피하고자 하는 심적 편향을 지니고 있고, 같은 금액이라 하더라도 이익보다는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0만원 이익에서 느끼는 행복감보다는 1000만원의 손실에 느끼는 고통이 두 배의 강도로 더 크다.

공포와 반대편에 위치한 감정 상태가 열광이다. 열광은 보상이란 피드백이 강화될수록 더 고양된다. 투자나 투기와 같은 금전적 보상을 부르는 뇌(腦) 부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음식, 섹스, 마약, 니코틴, 술 등과 같은 범주의 보상체계 안에 있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인 셈이다. 더 인상 깊은 점은 실제로 투자로 돈을 버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인간은 돈 벌 기대감을 가질 때 더욱 기분이 고양된다고 점이다. 기대감은 행복과 흥분을 낳고 더 나아가 탐욕으로 이어진다. 시장의 광란은 항상 탐욕에 가득한 기대감을 자양분 삼아 피어난다.

지금은 열광과 탐욕의 시대가 아니라 공포와 고통의 시대이다. 그 공포와 고통의 원인은 가격 폭락이라는 외부적 현상에 따른 것이다. 우리가 공포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럼 우리는 이 감정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

먼저 인간이 가진 감정적 나약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에 공포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 존재이고, 자신도 예외가 아님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공포 상황에 대한 대응이다.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인간은 위협적인 상황에 직면하면, 투쟁 혹은 도피 반응(Fight or Flight)을 보인다. 갑자기 맹수가 눈앞에 드러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결과는 죽음뿐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런 상황에서 투쟁보다 도피를 택한다.

급격한 주가 하락도 인간은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팔고 시장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가. 그러나 다행히 맹수와 달리 주식시장은 우리가 정지상태로 있다고 해도 잡아먹지 않는다. 그러니 성급히 도망가지 말고 잠시 시장과 마음의 거리를 두고 감정을 추슬러보자.

그리고 연금저축계좌와 같이 오랜 기간 매월 일정액을 기계적으로 투자하는 상품에 가입한 경우엔 계속 불입하자. 과거보다 주식을 더 싸게 사서 매입 단가를 낮추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계속 하락하면? 계속 사 들여야 한다. 지금은 손실을 확정할 때가 아니라 평균 매입 단가를 지속적으로 낮춰야 할 때이다. 그러나 연금저축계좌와 같은 기계적인 투자처가 아닌 경우에는 이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경험 있는 투자자들은 초약세장을 포트폴리오 재조정의 시기로 활용할 것이다. ‘만일 지금 내가 새롭게 투자한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종목을 그대로 가져갈 것인가?’ 이 질문의 요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판단해 보라는 것이다. 지금 새로 투자하더라도 보유하고 싶은 종목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 만약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이 내려진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뿐이다. 가만히 있거나 더 사거나. 반대로 부정적인 답변이 나온다면, 그런 종목은 처분해서 그렇지 않은 종목으로 갈아타야 한다.

그럼 맞서 싸우는 것, 다시 말해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것은 어떨까. 사실 이 부분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훌륭한 선택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리스크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위기이다. 측정할 수도 모델링할 수도 없다. 지금 각국 정부가 내 놓은 모든 처방전은 치료약이 아니라 통증 완화제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거나 자연스런 소멸을 해야만 불확실성은 해소된다.

그런데 시장은 희망을 먹고 산다. 짙은 어둠 속이라도 갑자기 작은 희망 한 줄기라도 새어 나오면, 시장 분위기는 급반전할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는 사실 중 하나는 급반전 시점의 수익률이 가장 높다는 점이다. 때문에 완전히 시장을 떠나지는 말아야 한다. 물론 이 시점을 맞출 수 있다면 떠났다 들어와도 되겠지만 말이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528호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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