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개방 체제로 인한 높은 변동성...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해야
▎지난 3월 27일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1717.73, 522.83에 거래를 마쳤다. / 사진:한국거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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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세계 최고의 투자가가 될 수 있었을까? 사람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버핏이 꽤 많은 돈을 벌수는 있겠지만 그가 일군 오늘날 부(富)의 규모에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일례로 자본시장 역사만 보더라도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버핏이 본격적으로 전문 투자가의 길로 들어서 투자조합을 결성한 때,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1930년생이니 아마 1956년경일 터이다. 1956년은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증권시장이 처음 등장한 해이다. 상장 기업 수도 12개에 불과했다.버핏은 미국에서 주식투자를 하지만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한국에서 투자를 한다. 미국 주식시장이라는 경기장과 국내 증시라는 경기장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잘 이해해야 한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날씨나 고도(高度) 같은 변수를 잘 고려해야 한다. 고산지대에서 시합하는 것과 평지에서 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고, 더위나 추위에 따라서 체력 안배도 달리해야 한다. 물론 축구에서 궁극적인 목적은 골을 넣고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략과 전술에는 선수들의 능력과 조합뿐만 아니라 날씨 등의 변수가 포함되어야 한다.
작고 개방된 경제 체제와 국내 증시한국 투자자들에게 숙명처럼 놓인 환경은 어떨까. 슬픈 현실이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나라이다. 한국은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이다. 게다가 경제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기여도가 2000년대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수출의 GDP 기여율은 1990년대 40%에서 2000년대 70%대로 크게 상승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출은 상대방의 주머니 사정이 중요하다. 상대방이 우리의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수출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이 어려워지면 우리나라도 힘들어진다.더욱 중요한 점은 국내 증시는 외환(外換)과 그물코처럼 단단히 엮여 있다는 것이다. 국내 증시는 외국인 투자가 비중이 높고, 그들이 자유롭게 유가증권을 사고 팔 수 있는 소규모 개방 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주식 보유 비중은 40%에 육박한다(시가총액 기준). 외국인들의 움직임에 따라 외환시장과 환율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투자하는 미국 주식형 펀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2008년 금융위기처럼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자 펀드 가입자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환매 요청을 했다. 당연히 그 펀드는 주식을 팔아야 한다. 이 때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매도 1순위가 된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유동성이 풍부한 글로벌 기업들을 갖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조금씩 주식을 팔면 괜찮다. 문제는 짧은 시간에 많이 매도할 때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주식 매도 자금(원화)을 일시에 달러로 바꿔버리면, 원화 공급량은 늘고 달러 수요는 급증하게 된다. 환율은 날카롭게 상승하게 된다. 실제 1997년 말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미국 증시 폭락 등 주요고비 마다 주가가 하락하고 환율이 치솟는 현상이 한 번도 빠짐없이 나타났다.우리나라는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이 한 몸처럼 나타나지만 미국, 일본, 독일 등은 사정이 다르다. 환율이 출렁거릴 때도 있지만 우리처럼 변동폭이 가파를 때가 적은 편이다. 왜 그럴까. 이들 나라의 통화는 기축통화이자 안전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위기가 오면, 달러를 더 찍으면 된다. 일본은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했다. 달러는 세계 대표 통화이다. 미국이 위기에 처해도 다른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되면, 달러 가치는 오른다. 일본 정부도 세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정부임에도 외환시장의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우리나라 재정이 일본처럼 나빠지면 어떻게 될까.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바는 기축통화가 아닌 나라의 경우에는 재정위기가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외환 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외국인 투자가들이 주식을 팔고 떠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럼 당연히 환율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을 비롯해 세계 주요 국가가 직접 돈을 지급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가 출현한 이후 이렇게 직접 현금 형태로 지급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어쩌면 인류는 지금 거대한 경제적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라도 이 실험이 재정만 낭비하고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면,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는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우리사회는 이제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 안전망에 대한 비용도 향후 크게 증가할 것이다. 자금이 부족해지면 선진국들이 했듯이 결국 세금으로 충당하게 될 것이다. 결국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나 개인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세율 인상도, 부자 증세도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돈을 벌어야 세금을 낼 수 있다. 그런데 경제가 계속 저성장의 터널에서 신음하게 되면 세금 인상도 쉬운 일이 아니다.한국 주식시장이란 경기장에서 게임을 하는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먼저 우리나라는 외부에서 큰 충격이 오면 ‘작고 개방된 체제’이기 때문에 오롯이 충격을 견디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미국이나 중국이 잘못되면 그 여파를 온전히 뒤집어써야 한다.
주가폭락과 환율폭등은 동시에비관적인 시나리오에 대비한 아이디어도 가져야 한다. 위기가 닥치면 주가폭락과 환율폭등이 동시에 온다.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나빠져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아야 하겠지만 세상일이란 모르는 법. 역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달러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레 국내 증시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환율 변동으로 상쇄할 수 있다. 해외주식이든 채권이든 달러 베이스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한 분산투자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본질적인 해결책 중 하나는 외국인들에 비해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다. 최근 ‘동학개미운동’이란 말이 유행이다. 외국인들에 대항해 우리나라 주식을 우리가 사들이자는 흐름을 표현한 말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더 많이 가질수록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안전해진다. 외국인들이 팔아도 우리가 받아내서 버티면 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국내 투자자들이 주식을 더 많이 보유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등 전략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