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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FDA만 바라보는 제약·바이오업계] 인보사·메디톡신 사태에 ‘식약처 패싱’ 심화 

 

의사 출신 전문인력 수급 난제… 심사수수료 인상에 업계내 이견도

▎충북 오송 식품의약품안전처. / 사진:뉴스1
정부가 ‘바이오’를 국가의 차세대 먹거리로 정하고 나섰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능력 부족으로 인한 잦은 사태가 ‘K-바이오’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고 있다. 지난해 발발한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사태에 이어 최근 터진 메디톡신 판매 중지 사태까지 바이오 기업과 투자자의 ‘식약처 패싱’은 심화되고 있다. 바이오 주의 ‘옥석 가리기’ 투자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식약처의 판매 허가보다 ‘깐깐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결정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국내 임상은 뒤로 한 채 FDA 승인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XCOPRI, 성분명 세노바메이트)가 대표적이다. SK바이오팜은 엑스코프리의 판매허가까지 받았지만 아직 국내 임상 계획은 잡지 않은 상태다. 인보사 사태로 물의를 빚었던 코오롱생명과학도 후속 파이프라인인 신경병증성 통증치료제 신약(KLS-2031)의 임상을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다. 이 물질은 지난 2월 FDA로부터 미국임상 1상 및 2a상 개시 승인과 패스트 트랙 지정을 받았다.

미국 시장이 절대적으로 큰 것이 큰 이유지만 FDA 승인에 집중하는 것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효율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약처의 임상에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바이오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엑스코프리와 같은 ‘신화적’ 사례를 기대하기보다 식약처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식약처, 만성 ‘전문인력 부족’에 시름

지난해 7월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취소한 식약처는 최근 메디톡스의 보툴리눔톡신제 제인 메디톡신의 판매를 중지한 후 또 다시 품목허가 취소 절차를 밟고 있다. 잇따른 판매 정지 사태로 인해 빚어질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인보사 사태로 인보사를 주사 맞은 환자들과 인보사에 투자했던 주주들의 소송이 현재 진행 중인 가운데, 메디톡신 사태로 인해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메디톡스 주주들은 허위공시에 따른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기업에 대한 비판여론이 크지만 식약처가 일을 키운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허가와 관리를 담당하는 식약처가 제대로 기능했다면 이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앞서 인보사를 국내에 허가내주는 과정에서 ‘눈 뜬 장님에 불과했다’는 소리를 들은 식약처는 이번엔 의약품 관리체계의 취약점을 드러냈다. 식약처는 메디톡신에 대한 유통제품 수거 검사를 2년에 한번 꼴로 실시했지만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 메디톡신 사태는 결국 공익제보자에 의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식약처 역시 의약품 관리체계의 허점을 인정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약품 관리체계의 취약점을 보완해 단계별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라며 “의약품의 제조·품질관리시 자료 조작의 가능성이 큰 항목(수기작성·사진 등)에 대해 데이터의 수정, 삭제, 추가 등 변경이력을 추적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GMP(의약품 제조 품질) 관리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정 횟수 이상 국가출하승인 적합판정을 받는 등 위해도가 낮은 의약품에 대해선 시험검사 없이 서류검토만으로 국가출하승인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무작위로 시험검사를 실시해 서류조작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제약·바이오업계에선 식약처의 근본적인 문제인 ‘전문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식약처의 인력 부족에 대한 지적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식약처에서 근무하던 한 전문의 심사관이 “의사 인력을 확충해 달라”며 1인 시위를 벌일 정도였다. 강윤희 심사관은 지난해 9월 인력난을 비롯한 식약처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며 1인시위에 나섰다. 강 심사관은 당시 “인력이 부족해 식약처가 할 수 있는 게 FDA에서 문제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후속조치를 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실제 의사 자격증이 있는 식약처 임상심사위원의 숫자는 20명 남짓이다. 지난해 식약처는 임상시험 심사 진행 신속성 확보 및 전문성 제고를 위해 ‘전문의 임상심사위원’을 최대 25명까지 충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 역시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국 FDA는 의사 출신 심사관이 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산업규모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FDA 직원이 식약처의 6배인 1만8000여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식약처 의사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은 단적으로 나타난다.

식약처에선 그나마 채용한 의사들마저 잦은 이탈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공무원 사회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전문가가 살아남기 힘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FDA는 두 차례 연속으로 의사 출신 인사가 국장을 맡고 있는데, 그만큼 전문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식약처도 할 말은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문의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이고 있지만 채용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실제 식약처는 올해 2월 임상 의사직군 8명을 공개채용에 나섰지만 실제 3명을 채용하는 데 그쳤다. 식약처 임상 의사의 경우 급여가 최대 1억2000만원 수준이라 일반 의사 연봉에 비해 낮고, 충북 오송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많지 않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문의 고용이 어려운 것은 단순히 급여와 근무지역의 문제로만 한정짓긴 어렵다”며 “다각적인 분석을 진행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채용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심사수수료 인상으로 두 마리 토끼 잡을까

결국 식약처의 재정 확대가 필요한 부분이다. 일부 바이오업체들도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해결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해외에 비해 현저히 싼 우리나라의 심사수수료 체계를 높이고, 이를 통해 심사인력을 확충하자는 것이다. 실제 FDA도 운영비용의 상당부분을 수수료로 충당하고 있다. FDA가 신약 심사수수료로 부과하는 금액은 약 250만 달러(한화 약 28억원)인데 반해 식약처는 682만8150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목소리를 가장 많이 낸 인물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다. 서 회장은 지난해 5월 바이오헬스 혁신 민관 공동간담회에서도 이의경 식약처장에게 의약품 허가심사 수수료 인상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전문인력 확충 등을 통해 식약처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야만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역시 해외에서 일부 심사가 면제되는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의 입장이 갈려 이를 추진하는 데 속도가 나지는 않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는 수수료 인상을 통해서라도 심사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인 반면, 소형사는 비용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바이오 협회에서도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34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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