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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속도 안 나는 청년주택] “우리 동네는 안 돼” 지역 반발 부딪혔다 

 

서울시 역세권 전체의 52% 착공 일정도 못 잡아… “주민 소통 강화해야” 지적

▎서울시 은평구 대조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 ‘서울시는 청년주택 철회하라’는 건설 반대 현수막이 붙어있다. / 사진:배동주 기자
청년을 위한 집, 청년주택이 지어지지 못하고 있다.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20~30대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 청년주택이 ‘돈 없는 사람이 살 집’으로 낙인찍히며 지역민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서울시가 주거복지 핵심정책으로 추진하는 청년임대주택 ‘역세권 청년주택’은 전체의 52%(지난 1월 기준)가 착공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값싼 임대주택 과잉에 따른 집값 하락, 교통·교육 환경 저하 우려가 사업을 막아섰다. 진남영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청년주택은 기피할 시설이 아니다”라면서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값 하락 ‘님비시설’로 찍힌 청년주택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1월 기준 사업인가 완료 고시가 난 역세권 청년주택 51곳 중 절반이 넘는 27곳이 착공 일정을 잡지 못했다. 사업 고시 이후 1년 넘게 착공 및 준공 일정이 나오지 않은 곳도 7곳에 달했다. 실제 관악구 신림역 인근 청년주택은 2017년 9월 사업 인가가 완료됐지만, 3년 가까이 착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신림역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사는 “청년주택 건설을 두고 지역 주민들의 집값 하락, 주차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민원을 받은 구청은 건축허가 부담을 느꼈고, 부지만 방치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1월 이후로 착공이 이뤄진 곳이 있다는 설명이지만, 건설 지연은 여전하다. 서울시 은평구 불광역 근처 역세권 청년주택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은평구 대조동에 있는 한 아파트 외벽에는 ‘서울시는 청년주택 철회하라’는 청년주택 건설 반대 현수막이 나붙어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시가 해당 아파트 건너편 부지(대조동 2-9번지 일원)를 청년주택으로 짓겠다는 사업고시를 내고 지난 3월 착공이 시작됐지만, 현수막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해당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청년주택은 주차·교통·교육까지 나빠지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청년주택은 앞서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을 위한 청년 주거 안정 대책으로 주목받았다. 청년 주거 안정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역세권에 주택을 지어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들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청년주택은 건설부지 지역 주민들에게 집값 하락을 부추기는 ‘님비시설’로 낙인찍혔다. 서울시 은평구 대저동 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연봉이 낮은 사람이 주로 청년주택에 들어오는 데 대해 학부모들이 부담을 느낀다”면서 “가난한 청년들은 동네를 안 좋게 만든다”고도 말했다.

님비시설 낙인 효과는 서울시의 역세권 청년주택을 넘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청년 주거권 시민단체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지난해 퀴어를 위한 청년주택 논란에 휩싸였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지난해 8월 ‘서울시 빈집활용토지임대부 사회주택 공급사업’에 선정돼 1~2인 가구 청년 26명이 살 수 있는 청년주택 건설을 예정했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소득·연령 기준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 설명에 했다. 지역민들은 “성소수자가 입주하면 교육환경을 해친다”며 사업 무산 민원을 서대문구청·서울시 등에 각각 제기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주택 공급량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시작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청년매입임대주택은 지난해까지 서울 시내에 약 500호가 공급된 데 그쳤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희망하우징은 1123호실이 공급됐다. 2019년 한 해 동안만 서울로 순유입한 청년(20~39세) 인구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의 역세권 청년주택 보급도 목표에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8만호 정도의 소형주택을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사업실적은 1만5000호 수준이다. 그나마도 지역민 반대에 막혀있다.

서울시 이외에도 수도권과 부산시 등 청년주택 사업을 추진하는 모든 지역에서 청년주택 님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천시는 미추홀구 용현동 인하대역 인근에 12층 규모로 청년 창업인 임대주택 200호와 창업지원시설을 짓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인근 아파트단지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착공이 불투명한 상태에 빠졌다. 주민들은 ‘아파트 이미지 훼손’을 주요 이유로 들어 반대하고 있다. 해당 지역 한 주민은 “단지 옆에 임대주택이 있으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 소통 강화 및 구청 권한 축소’ 목소리도

부산시청 앞에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 2000가구를 짓겠다던 부산시의 계획은 지난해 ‘반 토막’ 났다. 지난해 8월 부산시청 앞 행복주택 사업의 가구수(1196가구)와 층수를 줄이고, 사무실과 주민편의시설을 확충하기로 변경했다. 부산시는 2017년 최초 계획이었던 2000가구를 1700가구로 축소한 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부산시는 행복주택 1단지를 당초 692가구를 짓기로 했지만 계획 변경을 통해 69가구로 축소했다. 인근 주민과 관할 연제구의회가 임대주택 과잉에 따른 피해, 교통난, 주차난 등 우려를 표하자 부산시 계획을 틀었다.

전문가들은 청년주택 건설 과정에서 지역민과의 소통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지역민들이 우려하는 돈 없는 사람들의 전입, 집값 하락 문제가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은 오히려 월세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 지적받고 있다. 서울시가 성동구 용답동에 공급한 청년주택만 해도 전용 14㎡의 작은 평수에도 보증금 3800만~4900만원, 월 임대료가 40만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남영 원장은 “소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며 “임대 주택 건설이 집값 하락을 부추겼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고 했다.

청년주택에 한해선 구청의 건축허가 권한을 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에서 사업인가를 완료해도 민원에 민감한 구청이 건축허가를 내지 않아 착공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이한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시 차원에서의 청년주택 사업은 사업이 가진 공공성 등으로 인해 사업인가 등 추진이 빠른데 구청 등으로 사안이 넘어오면 문제가 달라진다”면서 “민원에 직접 대응해야하는 구청이 건축허가를 들고 사업 추진의 길목을 막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년주택 사업에서는 구청 권한을 안전성 검토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36호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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