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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 大戰] ‘LNG 패권’ 대장정이 시작됐다 

 

신재생에너지 한계, 美 LNG 확대 기조… ‘브릿지(가교) 역할’ 길 듯

▎제주시 애월항 한국가스공사 액화천연가스(LNG)인수기지.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에 속도를 내고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브릿지(가교) 에너지’로 불리는 액화천연가스(LNG) 패권이 30년 넘게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 정책대로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많은 데다, 전 세계적인 친환경 흐름과 미국의 LNG 확대 기조 등을 감안하면 국내 LNG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워킹그룹이 지난 5월 발표한 논의 결과에는 오는 2034년까지 현재 60기의 석탄발전소를 30기로 줄이고, 폐지된 석탄발전소 가운데 24기(12.7GW)를 LNG발전소로 전환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현재 건설 중인 원자력발전 4기를 포함해 노후 11기의 발전을 중단하고, 3차 에너지기본계획 보급 목표 달성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린다. 이에 따라 2034년까지 석탄발전 29.0GW(기가와트), 원전 19.4GW, LNG발전 60.6GW, 신재생발전 78.1GW로 발전 비중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아직 제9차 전력 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 등을 감안하면, 워킹그룹의 발표 내용과 실제 전력 수급기본계획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 300만TOE(석유환산톤)에 불과했던 국내 LNG 소비량은 올해 5340만TOE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 5590만TOE, 2030년 6100만TOE, 2035년 6460만TOE, 2040년 7080만TOE 등 LNG 소비량 증가세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당분간 LNG 소비량 증가가 주춤할 수 있지만, 거시적 차원에서 LNG 소비량 증가는 대세라는 게 중론이다.

‘산 너머 산’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LNG발전 역할 주목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워킹그룹 논의 결과의 핵심은 신재생에너지의 대폭 확대다. 그러나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쏟아낸다. 국내 기후환경 등을 고려하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효율이 낮은 데다, 태양광·풍력발전 조성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발 등 현실적인 문제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남동발전이 2016년부터 추진한 ‘해남 신재생 복합단지 조성 프로젝트’는 극심한 주민 반발에 부딪친 상태다. 이 프로젝트는 해남군 문내면 용암·신흥리 일원에 위치한 혈도간척지에 540만㎡ 규모로 육상·수상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2022년까지 육상·수상 태양광발전 등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향후 풍력발전, ESS 등 2단계 사업이 진행된다. 그러나 514명의 이장들과 14개 읍·면 단장 등으로 구성된 해남군 이장단협의회가 태양광발전 조성 반대 성명을 내는 등 주민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박성용 문래혈도태양광반대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해남 태양광발전 인근에 있는 농가에서 수확량 감소 등 태양광발전으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민 입장에서는 신규 태양광발전 건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해남군의회에 태양광발전 건설 반대 성명도 요청한 상태”라고 했다.

이에 대해 남동발전 측은 “해남 태양광발전 건설에 대한 주민 찬반 의견을 수렴했는데 찬성이 더 많았고, 해당 결과 등을 토대로 지난해 4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다”며 “그런데 4월 이후 갑자기 반대 대책위가 꾸려졌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4월 다시 주민 찬반 의견을 물었는데 찬성 의견이 문래면 70%, 황산면 98.7% 등으로 더 많았다”며 “태양광발전을 반대하는 주민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하고 있고, 지역 상생 방안 등도 적극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풍력·태양광발전 확대의 핵심은 생산한 전력을 저장한 뒤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ESS 시설인데, 최근 ESS 화재 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5건의 ESS 화재가 발생하자 원인 조사에 나섰고, 올해 2월 ‘배터리 이상’으로 인한 사고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당시 신규 ESS 설비에 대해 충전율 제한 조치(옥내 80%, 옥외 90%)를 의무화하고, 기존 설비를 동일한 충전율로 하향하도록 권고하는 등 안전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5월 27일 전남 해남군의 한 태양광 연계 ESS에서 또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분과 위원장인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에너지정책학과)는 “완전한 재생에너지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LNG발전이 다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일각에서는 석탄발전과 LNG발전을 함께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신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했다. 유승훈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모범 국가로 분류되는 독일은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을 함께 늘리고 있는데, 석탄발전 감소를 LNG발전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라며 “ESS도 기술적으로 부족한 상태고 설치비가 높기 때문에 LNG발전이 석탄발전을 대체하는 기간은 3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중·러 ‘LNG 밀월’, 조바심 난 美 수출 확대


중국과 러시아가 LNG 분야 ‘밀월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미국이 한국 등 우방국가에 LNG 수출 압박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국내 LNG 패권 장기화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첫 파이프라인가스(PNG)인 ‘파워 오브 시베리아(Power of Siberia·POS 1)’가 지난해 12월 말부터 가동되면서 중국과 러시아간 LNG 수출입도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2024년까지 전 세계 가스 증가 수요의 4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LNG 소비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LNG 부국인 러시아의 협력으로 위기감을 느낀 미국의 LNG 수출 확대 압박도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이후부터 한국의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은 확대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2012년 미국 LNG업체 ‘사빈패스’와 장기 LNG 매매 계약을 체결해 2016년부터 20년 동안 연간 280만 톤의 셰일가스를 들여온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9월에도 영국 에너지업체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계약을 맺고 2025년부터 15년 동안 연간 158만 톤의 미국산 LNG를 수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전체 LNG 수입 물량 가운데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에 22.8%(790만 톤)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SK E&S는 2018년에만 전체 LNG 수입량 가운데 약 10%인 38만 톤을 미국산 LNG로 채웠다. 올해에는 미국산 LNG가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LNG 패권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해지면서 국내에서는 LNG 패권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치열한 ‘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LNG발전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SK, GS그룹 등은 LNG 직수입을 넘어 저장·운송을 아우르는 사업 영역을 구축한 상태다. SK E&S는 2017년 GS에너지와 공동으로 보령LNG터미널을 가동했으며, 지난해 4월에는 LNG 운반선 2척을 건조했다.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사인 SK가스도 지난해 11월 울산의 LNG터미널 운영사인 ‘코리아에너지터미널’ 지분 45.5%를 사들였다.

GS에너지는 2014년 싱가포르에 트레이딩 법인인 GS트레이딩을 설립해 직수입한 LNG를 국내에 판매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공운수노동조합 한국가스공사지부에 따르면 GS트레이딩은 해외서 직수입한 LNG를 고려아연, 한화솔루션 등 국내 회사에 올해 11월부터 재 판매할 예정이다.

기업들 패권 경쟁 ‘치열’, 비싼 가격은 숙제

포스코에너지는 지난 4월 광양LNG터미널 LNG 저장탱크 5호기를 인수해 상업 운전에 돌입했으며, ‘가스 트라이얼(Gas Trial)’ 사업도 진행한다. 가스 트라이얼은 신규 건조한 LNG 운반선이 LNG 선적 부두로 이동하기 전에 적정 온도를 낮춰 LNG 탱크에 천연가스를 충전하고 LNG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건설사인 한양도 전남 여수시 묘도에 2024년까지 총 1조3000억원을 투입해 20만㎘급 LNG 저장탱크 4기와 기화 송출 설비, 최대 12만7000톤 규모의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 시설 등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각에서는 LNG발전 ‘장기 집권’의 가장 큰 걸림돌로 비싼 비용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을 지적한다. 국내 LNG발전은 첨두발전으로, 원자력이나 석탄발전을 떼고 부족한 전력을 공급할 때 가동되는 발전이다. 전력시장 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은 가동된 발전소 중에 발전비용이 가장 높은 가격으로 결정된다. 석탄과 원자력에 비해 발전비용이 비싼 LNG 발전 횟수가 늘면, 그만큼 SMP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SMP 인상으로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다.

물론 최근 코로나19로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는 만큼, LNG발전 비중 증가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LNG 가격은 유가연동제에 따라 국제유가, 환율 등과 연동돼 결정되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LNG발전 비용도 줄어드는 구조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킬로와트시(㎾h)당 99.44원이었던 SMP는 올해 4월 75.38원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SMP 하락이 실제 소비자가 부담하는 전기요금인 한국전력공사의 전력판매단가 인하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다. 한전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한전의 전력 구입단가는 ㎾h당 87.2원으로, 지난해 1~4월 구입단가(100.7원/㎾h)보다 13.5원 하락했지만, 판매단가는 106.4원/㎾h에서 107.6원/㎾h으로 1.2원 올랐다.

이 때문에 연료 가격이 전기요금에 연동되는 ‘연료비연동제’가 도입돼야 LNG발전 비중 확대로 인한 전기요금 급증을 억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가스공사로부터 LNG를 구매할 때 발전소별로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개별요금제를 도입해 전기요금 하락을 유도한다고 밝혔으나, 실제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1540호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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