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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없는’ 혁신 기업] 서비스는 배송노동자 의존, 기술력은 미지수 

 

쿠팡·배달의민족에서 잇따른 사고… 법·제도 사각지대에 선 플랫폼 노동자

▎사진:연합뉴스, 중앙포토
지난 3월 미국 기술·경제 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는 ‘2020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아·태지역 2위로 쿠팡을 선정했다. 1위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패션 전자상거래 업체 질링고(Zilingo), 3위에는 삼성전자가 이름을 올렸다. 패스트컴퍼니는 “아마존이 못 하는 일들을 쿠팡이 해내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소비자가 자정까지 주문한 상품을 아침까지 몇 시간 만에 배송하는 서비스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쿠팡 측은 “이런 서비스를 위해 전국에 축구장 190여 개 크기의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고객의 주문을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쿠팡, 배달의민족, 토스 등 유니콘(상장하지 않은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기업들이 스스로 혁신을 말하고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통해 산업 생태계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각각 온라인 주문 배송 플랫폼, 음식 배달 플랫폼, 종합 금융서비스 플랫폼으로 업계 선두 자리를 지키며 성장하는 중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혁신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부분의 플랫폼 기업이 배달처럼 단순 노동에 의존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디지털로 연결되는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4차 산업 또는 혁신 기업으로 포장됐다는 비판도 있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아직 국내 플랫폼 서비스의 대부분은 데이터를 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며 “디지털을 이용한 사업이지만 혁신적인 4차산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기천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아마존은 무인상점 ‘아마존고’ 등 다양한 기술과 결합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고차원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쿠팡이나 배달의민족은 얼마나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혁신적인 4차산업으로 보기 힘든 유니콘들


쿠팡은 지난해 기준 직간접 고용인력이 약 3만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이 정확한 임직원 수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유통업계에서는 이 중 대부분이 물류센터 직원과 ‘쿠팡맨’이라 불리는 배송직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눈에 띄는 기술 개발이나 연구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을 놓고 보면 다른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와 크게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도 마찬가지다. 성격이 다른 금융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전체 직원 중 콜센터 직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핀테크를 내세운 기업이지만 사업의 근간에는 서비스 직원들이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플랫폼 노동자’라고 불린다. 2019년 10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플랫폼 노동의 주요 현황과 향후과제 보고서’를 보면 ‘디지털 플랫폼의 중개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고, 1회성·비상시적·비정기적으로 1건당 보수를 받는 사람’을 플랫폼 노동자라고 규정한다.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하면서, 근로소득을 얻는 근로자이기도 하다. 고용정보원은 국내 플랫폼 노동 종사자를 47만~54만명으로 추산한다. 대개 배달 노동자를 뜻하는데 플랫폼 기업에 속해 일하는 노동약자나 플랫폼에 들어와 영업하는 소상공인들도 큰 틀에서 보면 플랫폼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럴 경우 플랫폼 노동자의 규모는 훨씬 늘어난다. 문제는 ‘혁신 기업’의 근간이 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해당 기업으로부터 소외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쿠팡맨 노조에 따르면 쿠팡맨 7000여명 중 정규직은 20~3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 측은 정규직 전환비율이 90% 이상이라고 밝혔지만, 비정규직 배송 노동자의 대부분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상황을 고려하면 큰 의미는 없는 셈이다. 지난 3월 쿠팡 소속 비정규직 배송 노동자 김모씨가 숨진 채 발견되자 민주노총 산하 쿠팡지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누군가의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본의 탐욕 앞에 무한 질주와 비인간적 노동에 내몰리는 쿠팡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성장 최우선’에 소외되는 노동자·노동환경

6월 3일에는 충남 천안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한 30대 여성 식당 조리사가 청소 작업 중 쓰러져 숨졌다. 외주업체 소속이던 이 직원은 그동안 청소 약품이 독하다며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업체 측이 약품의 농도를 더 높일 것을 지시했다”며 “잠을 못 잘 정도로 기침을 했고, 심할 때는 숨도 못 쉬었다”고 했다. 지난 5월 쿠팡의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방역과 소독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는데, 정작 협력업체 직원의 건강은 신경 쓰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쿠팡은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는데도 방역 후 거의 곧바로 직원들에게 근무를 시키는 등 대처 문제로 논란을 겪은 바 있다.

배달의민족은 지난 2월부터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건당 배달 수수료를 5000원대에서 4000원대로 낮추면서 라이더들과 갈등을 겪었다. 4월에는 기존의 정액제 광고를 사실상 폐지하고 건당 중개 수수료를 받는 정률제 사업을 재개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뒤 수수료 정책을 폐지했다. 배달의민족 플랫폼에 들어와 서비스 하는 한 음식점 사업자는 “배민이 과열 경쟁을 부추겨 광고를 하게 만들더니, 나중엔 과열 경쟁이 잘못이라며 수수료 체계를 바꾸는 명분으로 삼는데 황당했다”고 말했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에서는 내부 구성원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풍토 때문에 상당수의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례는 유니콘이라 불리는 기업이 덩치는 커졌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약자들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김기천 교수는 “기업이 직원을 소외시키는 문제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다보니 노동자 소외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런 기업의 경영자는 아직도 사장이 지시하면 직원은 따라야 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떤 혁신을 말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동자도 사업자도 아닌 플랫폼 종사자

그나마 노동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배달 노동자들은 ‘개인 사업자’로 분류돼 4대보험이나 퇴직금 같은 혜택을 받기도 어렵다. 그러나 사측은 ‘원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돈을 벌 수 있어 노동자보다 사업자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반면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사실상 노동자와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지만, 법으로 규정한 형태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산업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 때문에 사업자의 지위도 누리지 못하고 노동자로 보호도 받지 못하는 ‘끼인 노동자’가 됐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오토바이 배달원들은 배달하다 사고가 나도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지난 4월 라이더유니온은 국내 최초 배달원 노동조합 설립 1주년을 맞아 정부에 안전한 배달환경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박중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라이더들은 아직도 근로계약 시 ‘사고가 나더라도 산업재해보험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며 산재보험 전면 적용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대행기사들의 안전한 근로를 위해 플랫폼사의 갑질 근절, 배달대행업체가 배달원에 지급하는 최소 배달단가 인정, 배달 산업 규제 등 6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타다 드라이버 9000여명은 회사 측에서 한 마디 상의도 듣지 못한 채 지난 4월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한국판 우버’로 불리며 혁신의 대표 기업으로 묘사되던 타다는 국회에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사업이 어려워지자 베이직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 과정에서 타다 드라이버들은 배려 대상이 아니었다. 타다는 규제를 받지 않고 베이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운전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여러 파견업체를 통해 알선하는 방식으로 사업했는데, 직접 고용한 인력이 없다 보니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쉬웠던 셈이다. 서울의 한 경영대 교수는 “근무를 지시할 땐 ‘가족’이라 말하던 기업이 서비스를 접을 때 모습을 보면 노동자를 소모품 정도로 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재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흑자전환이나 이익 증가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데, 기술력이나 제품으로 승부할 수 없는 플랫폼 기업들은 사람을 쥐어짜는 일이 있다”며 “과거 많은 대기업이 노동자를 ‘갈아 넣어’ 비용을 절감해 문제가 된 것을 보고도 혁신을 말하는 스타트업이 이를 따라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법엔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조항이 없다. 프랑스는 2016년 노동법전(Code du Travial) 개정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 권리와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을 규정하고 산재보험 적용, 직업교육,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 노동자와 독립계약자의 구별검증 요건을 규정한 AB-5 법안을 통과시키며 우버 운전기사 등을 보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전문가와 관계부처 등 다양한 논의를 통해 국내에서도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1539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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