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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언택트 의료’ 경쟁 중] AI·IoT 만나 기술 진일보, 진찰 넘어 수술·헬스케어도 

 

美, ICT 공룡 합세로 경쟁력 높여… 中·日도 디지털에 의료 문호 개방

▎독일에 주둔 중인 한 미군이 미국 미시건주의 의료진으로부터 진료를 받고 있다. / 사진:미 공군
국내 보험 메이저인 A사는 이동통신사와 손잡고 2018년 신개념 상품을 내놨다. 가입자가 착용한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운동량과 건강 상태 등을 측정, 보험료를 할인하는 서비스다. 그러나 A사는 의료계의 반발이 두려워 제대로 홍보도 못 하는 실정이라 속이 터진다.

만약 A사가 미국 기업이었다면 어땠을까? 미국에선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집된 정보로 보험료 산정은 물론 혈압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해 개개인에게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생체 신호의 변화를 보고 응급 상황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이런 방식의 의료 서비스를 이미 10년 전부터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헬스케어를 비롯한 원격의료 서비스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질병의 전파 가능성을 낮추고 의료진 부족 문제를 보완하는 한편, 효율적 의료행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대면 의료 서비스는 세계적 추세며, 기술력 경쟁도 치열하다.

의료 사각지대 해소, AI 구독형 서비스도 등장


세계에서 원격의료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미국이다. 1990년 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초고속 통신망을 이용해 실현할 수 있는 사업으로 원격의료를 선정하고 육성에 나섰다. 미국은 영토가 넓어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고, 지역별로 의료수준 차이가 커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미국원격의료협회(ATA)를 1993년 설립하며 발 빠르게 대응했다.

현재 미국은 진찰 환자 6명 중 1명이 원격의료를 이용할 정도로 활성화 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시장조사기업 ‘IBIS월드’에 따르면 미국 원격의료 시장은 2019년 24억 달러(약 2조9328억원) 규모에 달한다. 지난 5년간 34.7% 성장했다. 미국의 원격의료 서비스 시장의 95%는 심부전증·당뇨·폐질환·고혈압 등과 같은 만성 질환이다. 일상적 건강관리에 주로 활용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의료장비 사용과 관련한 원격의료 지침을 새롭게 발표했다. 감염병 유행 중에는 원격의료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의료 모니터링 기기의 사전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이다.

기존에는 모니터링 기기를 사용하려면 주 정부 면허가 필요했지만, 앞으로는 면허 없이도 미국 전역에서 원격의료 활동에 나설 수 있다. 미 보건당국은 스카이프 같은 영상 통신 기술을 활용한 의료행위에 대한 규제도 완화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높은 의료비 때문에 의료보험 미 가입자가 8700만 명에 달하며, 의사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가 매년 3만 명에 달한다. 매년 50만 가구 이상이 의료 관련 부채로 파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원격의료가 이런 의료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원격의료 등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절간 암벽에 새겨진 글은 제아무리 명문이어도 읽을 사람이 없다. 글로벌 ICT 공룡들도 의료기술 자체보다는 통신기술을 활용한 의료플랫폼의 확산과 선진화에 주력한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의료 인공지능(AI)을 연구하는 ‘딥마인드 헬스’와 헬스케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베릴리’ 등 자회사를 통해 의료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리프트 랩스’ ‘세노시스 헬스’ 등 헬스케어 스타트업도 대거 사들이고 있다.

2015년 AI 플랫폼 ‘왓슨’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IBM도 헬스케어 분야를 꾸준히 두드리고 있다. 현장에서는 아직 왓슨이 의료진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지만, 글로벌 헬스케어 회사들과 손잡고 생태계를 넓혀가고 있다.

애플 역시 아이폰 등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아마존도 의약품 판매를 시작으로 의약품 배송·의료 정보 분석·임상 기록의 유효 정보 추출 기술 등을 추진 중이다. 아마존의 AI 플랫폼 ‘알렉사’를 통해 감기·기침 판별 기능 특허도 신청했다.

의료에 AI 등이 접목되면서 새로운 개념의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의사가 환자의 CT·X레이 촬영 결과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머신러닝이 분석해 결과를 도출하는 기술도 나왔다. 의사의 필기 노트를 바탕으로 환자의 상태 및 질병의 진행 방향을 가늠하는 서비스도 나왔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이서비스를 병원에 구독형으로 제공하고 있다.

유럽은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원격의료 허용으로 제도가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프랑스는 2010년부터 상담과 자문, 감시, 의료지원 등의 경우에 국한해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있다. 독일은 대면 진료 없는 원격의료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5년부터 사전 대면 진료를 한 경우 상담을 포함한 원격의료를 할 수 있게 했다.

정보통신(IT) 인프라 및 기술 수준이 높은 아시아에서도 원격의료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제도 지원의 영향이 가장 크다. 중국은 2014년부터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 중국은 공공의료 인프라가 경제 발전 속도나 국민의 의식에 비해 뒤처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중국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3.4명에 크게 못 미친다. 이에 ICT 기술을 활용한 원격의료가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의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25년 948억 위안(약 1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10년 전 대비 9배 불어난 규모로, 전체 진료활동에서 원격의료가 차지하는 비중도 26%로 늘어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는 알리페이·바이두 등 11개 IT·의료기업이 참여해 ‘온라인 의사 상담 플랫폼’을 만들기도 했다. 중국 최대 원격진료 플랫폼 핑안젠캉이랴오커지(평안굿닥터)의 사용자도 코로나19 이후 11억1000만 명에 달했다.

SK텔레콤, 국내 원격의료 규제 피해 중국 진출

일본은 저출산·고령화와 간호 수요 증가, 의료비 부담 상승 등으로 원격의료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2015년 원격의료를 시작해 2018년부터는 건강보험에 포함했다. 2019년에는 로봇을 활용한 원격수술을 허가했고,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초진 환자에게도 일시 허용키로 했다. 일본의 모바일 메신저 라인은 ‘라인헬스케어’ 서비스를 통해 의료기관이 환자와 영상 통화로 진료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 원격의료 논의가 20년째 제자리를 맴도는 사이 의료기술과 IT 인프라가 뒤진 국가들이 먼저 치고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규제에 묶인 한국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쫓겠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뉴레이크얼라이언스와 함께 디지털 건강관리 전문회사 ‘인바이츠 헬스케어’를 설립하고,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 중국 의료 플랫폼 기업 ‘지엔캉160’과 현지 만성 질환 관리 서비스를 출시한다. 삼성전자도 미국·영국 등지에서 스마트 기기를 통해 24시간 실시간 영상 상담이 가능한 전문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봉만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성장하는 원격의료 시장을 잡고 위기 때 대응력을 높이려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며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 제한 규제부터 개선해 신종 전염병 출현에 대비하고 시장 선점을 위한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38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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