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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울린 ‘원격의료’ 4라운드] 의료계 반발에 21년째 ‘시범사업’ 이번엔 첫발 뗄까 

 

정부 시범사업·의대정원확대 강공… 의료계 총파업 불사 맞불, 논란 거셀 듯

▎코로나19로 의료진 부족과 의료진의 감염 우려가 커지면서 원격의료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대구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가 터지자 대구 지역 의료진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지원 요청을 보냈다. 대구 지역의 의료진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전국 의료계 관계자들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당시 대구 지역 의료진들은 심각한 과로에 시달렸으며,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자칫 대구 지역 병원이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다행히 의료진의 헌신적 대처와 정부의 발 빠른 대응에 사태 악화는 막았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독감처럼 대규모 감염자가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으로, 언제든 우리 생활을 괴롭힐 수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는 없다.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의료 체제로는 집단 감염 등 비상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으며, 대응 체제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 때문에 정부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월 24일 전화로 의사로부터 진단과 처방을 받는 원격의료를 일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의사가 전화로 환자의 상태를 판단해 진료·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진료비는 계좌이체 등으로 병원에 보내고 처방전은 병원이 팩스·이메일로 환자가 지정한 약국에 전송해주는 방식이다. 약은 환자·약사가 합의해 택배로 보낸다.

의료계는 정부의 이런 조치에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정지 작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전화 상담과 처방은 환자 진단을 지연하거나 적절한 초기 치료 기회를 놓칠 위험성이 있다”며 “원내조제의 한시적 허용으로 의료기관의 직접 조제와 배송을 함께 허용하지 않는 이상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정부 ‘비대면 의료 인프라’로 원격의료 추진


의료계의 판단대로 정부는 원격의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76조원을 투입해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는데, 디지털 뉴딜의 일환으로 원격의료를 포함한 비대면 산업을 육성에 나설 계획이다.

경증 만성질환자와 노인, 건강 취약계층 42만명에 웨어러블과 모바일기기, 인공지능(AI) 스피커 등을 보급해 보건소와 동네 의원 중심의 원격 건강관리에 나선다. 건강 취약계층에 웨어러블 장비를 보급해 건광관리를 돕겠다는 것이다. 취약고령층 12만명에게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맥박·혈당 등을 감지하는 등의 돌봄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또 2021년까지 전국 1000여 곳에 호흡기 전담 클리닉을 설치해 감염병에 대비하기로 했다.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비대면 의료 인프라를 미리 구축해 놓는 것이다.

정부는 6월 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6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하고 시행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원격의료라는 표현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현재 의료법 안에서 도입할 수 있는 시범사업을 대대적으로 도입해 의료·돌봄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모습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5월 14일 3차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경제중대본) 회의 결과 브리핑을 통해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과 한시 도입한 시범사업 확대를 위한 인프라 보강 등 한국판 뉴딜 정책의 중점과제 중 하나로 구체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년 넘도록 시범사업인 원격의료가 본격 자리를 잡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격의료는 1999년 시범사업이 시행된 뒤 끊임없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정부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선원·군인 등 제때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격·오지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보건소 의사와 화상통화로 원격 진단 및 처방을 받아 집 근처 약국에서 약을 받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사업이 활성화하지 못했다. 2002년엔 의사가 원격으로 다른 의사에게 조언해주는 내용으로 의료법이 일부 개정됐지만,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금지돼 있다. 현재 중소 산업단지·노인요양시설 등 일부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만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등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2010년 이후 원격의료 도입을 위해 세 차례 의료법 개정에 나섰지만, 국회에서 논의도 못 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2000년부터 21년째 시범사업인 셈이다.

정부 등 원격의료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환자의 편의성 측면에서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거동이 어렵거나 도서·벽지 주민 등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의 경우도 편리하게 집에서 진찰을 받음으로써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일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사태 때도 질병 전파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의심 환자들이 대거 병원을 방문하면 의료진과 방문객들이 감염될 가능성이 크다.

의료진 책임소재, 의료법 개정 등 과제 산적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그린 뉴딜 정책의 하나로 비대면 의료 분야 확대를 의결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의료민영화·오진 가능성 등을 반대 논리로 펼치고 있다.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자본력으로 무장한 거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을 중심으로 산업 체계가 재편될 것이라는 우려다. 또 원격의료로 환자들이 ICT 기업과 관계된 대형병원으로 몰려 지역 병·의원들은 고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5월 18일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을 두고 “의사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비열하고 파렴치한 배신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공개적으로 의사들에게 ‘전화 상담 처방 전면 중단’을 권고했다.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의료행위의 방식과 주도권을 ICT 플랫폼 기업이 쥔 채, 책임소재는 의사들에게 부여된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영상·음성 등 제한적 정보로 진단·처방을 내리기 때문에 오진의 가능성이 있다. 의사가 원격의료를 통해 오진한 경우 형사·행정책임은 부담하지는 않지만, 의료사고 발생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져야 한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책임소재와 진료범위, 재량권, 보험청구 등 세부 지침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의료행위의 주체는 의사이기 때문에 오진의 법률적 책임에서 자유롭긴 어려워 보인다.

환자의 의료정보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가도 논란거리다. 원격의료 도입을 위해서는 환자의 병력 등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가 의료정보 이용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원격의료 허용과 관련한 의료법 제34조를 개정해야 한다. 대면 진료의 원칙을 밝힌 제17조의 2항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 한다’는 규정 역시 바꿔야 한다.

또 의료정보를 통합, 운영할 전용 플랫폼도 필요하다. 이 운영 주도권을 두고도 갈등이 첨예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학병원 외과전문의는 “개인 의료정보의 공유 없는 원격의료는 있을 수 없다. 실효성 있는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종합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로써는 환자들의 편의 향상과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는 정부 주장대로 원격의료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실제 2월 24일 전화 진료·처방이 한시적으로 풀린 이후 5월 10일까지 국내 3853개 의료기관에서 26만2121건의 전화 진료가 이뤄졌다. 의료계 우려와는 달리 특별한 의료사고나 오진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형병원에 쏠릴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40%가량이 동네 의원을 이용했다.

“원격의료 세계적 대세, 한국도 피할 수 없어”


정부는 올가을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원격의료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계획이다. 코로나19와는 별개로 120만명의 의료 소외계층이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데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건강보험 재정악화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한국보다 앞서 건강보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일본이 원격의료 도입에 적극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전체 진찰 6건 중 1건이 원격의료일 정도로 보편화했다. 의료서비스가 비싸고 영토가 넓어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화상통화나 애플리케이션, 통화 등을 통한 원격의료는 실제 대면 진료보다 7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생활의료가 보편화돼 혈압·당뇨 등을 측정하고 조절할 수 있는 IoT 기기가 많이 도입됐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웨어러블 심장박동 측정기나 유방암 진단기, 혈압저하장치 등의 보급도 늘어나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망과 클라우드 서버, 로봇 수술기 등을 통한 원거리 수술 장비 개발도 빨라지고 있다.

일본은 2015년 원격의료를 전면 시행해 2018년부터 의료보험 및 건강보험에도 원격의료를 적용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한 중국도 사회적으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자 2016년부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시작했다.

한국이 이런 세계적 흐름에 동떨어질 경우 현재 세계 일류 수준의 의료 기술도 언제든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다. 원격의료가 도입되고 의료정보 교류의 길이 열리면 개인의 혈당·부정맥 등 만성질환 정보를 습득해 일상 진찰이 가능해진다. 의료·생체 정보를 습득함으로써 정밀의료와 차세대 유전체 분석 등 첨단 의료 연구도 가능해진다. 현재 국내 인공지능(AI) 및 유전체 연구 바이오 기업들은 한국에서 생체정보를 취득할 수 없어 몽골 등 해외에서 간접 샘플을 얻는 실정이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원격의료는 한국이 무조건 나아가야 하는 분야며, 기술적으로도 세계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며 “경쟁국들에 비해 늦게 열리면 의료 서비스와 기술·솔루션을 전파할 기회를 놓친다. 국부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의료 및 통신 기술은 미국에는 뒤지지만, 중국·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정부가 원격의료 체제를 갖추려면 의료계의 협력이 필요하다.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자 전문가집단이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참여 없이는 원격의료가 성립하기 어렵다. 실제 중소벤처기업부와 강원도는 5월 27일부터 강원도 내 동네 의원급 병원 8곳과 환자의 심전도·혈압·혈당 등의 원격 모니터링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차 병원의 참여가 부족해 사업이 좌초될 뻔했다. 이에 정부가 1차 병원 7개를 추가해 가까스로 불씨를 살렸다. 그나마 이곳들도 실증사업에는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강원도의사회와 제대로 된 협의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는 입장이다. 의료계가 동참하지 않는데 원격의료가 막을 올릴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갈등 골 깊어져, 정치권이 해법 모색 나서야

이런 가운데 양측 간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카드까지 꺼내 들면서다. 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확대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총파업 등 최고 수위 투쟁에 나설 태세다. 의료계는 ‘집단 휴진’ 등 거센 저항으로 2010년 이후 세 차례의 의료법 개정 시도를 모두 막아낸 바 있다.

결국 양측의 타협점을 찾는 대화의 노력과 정치권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채수찬 KAIST 대외부총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의료 민영화 우려와 오해로 원격의료가 한 발짝도 못 나아가고 있다.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38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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