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한세희의 테크&라이프] 싸이월드는 왜 페이스북이 되지 못했나 

 

토종 IT 혁신의 종말... 벤처 투자 환경의 차이도 영향 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IT 산업은 마치 수많은 생물 종이 갑자기 쏟아져 나온 5억4000만년 전 캄브리아 시대 같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과 이동통신 인프라 위에 외환위기 이후 벤처 붐 시기에 등장한 인재들이 재미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쏟아냈다.

이 시절 국내에서 등장해 세계 시장의 흐름을 앞서갔던 대표주자가 싸이월드와 아이리버였다. 싸이월드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의 원조였고, 아이리버는 어디서나 편리하게 디지털 음악을 듣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두 회사 모두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글로벌 혁신’의 실례였다.

하지만 캄브리아기 번성했던 생물들이 대부분 멸종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 살아남은 것처럼 싸이월드와 아이리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싸이월드는 계속 경영난을 겪다 폐업했음이 최근 알려졌다. SK텔레콤에 인수되어 드림어스컴퍼니로 이름이 바뀐 아이리버는 이제 MP3 플레이어 제조사가 아니라 디지털 음원 유통사다. 얼마 전 아이리버 창업자 양덕준 대표가 세상을 떴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이들이 쇠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프트웨어가 세계를 먹어치우고 글로벌 플랫폼을 가진 테크 기업의 영향력은 커져만 가는데, IT 강국이라는 한국의 존재감은 흐려지는 요즘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주제다.

‘큰 판’을 만드는 상상력의 차이

싸이월드나 아이리버의 실패를 한두 가지 원인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들과 경쟁에서 승리한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보면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 조금은 더 또렷이 보인다.

우선 개별 서비스나 제품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사람과 기업, 외부 콘텐트 제공자와 개발자 등이 참여하는 플랫폼으로 키우려는 상상력의 크기에서 차이가 났다. 1999년 창업한 싸이월드는 1촌들과 사진과 소식을 공유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세계 첫 사례다. 미니 홈피 아이템이나 배경음악을 사는 사이버 머니 ‘도토리’로 든든한 수익 모델도 만들었다.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면서 포털 네이트와도 결합했다.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도 받게 됐다. 한창 때 싸이월드는 도토리로 연 10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미니 홈피와 연동되는 메신저 네이트온도 1등 메신저가 됐다.

페이스북은 2004년 마크 저커버그 CEO가 모교 하버드대학 등 몇몇 대학의 학생 간 네트워크로 시작했다. 출발은 비슷했다. 미니 홈피 파도 타듯 친구들의 프로필에 찾아가 사진을 보고 댓글을 달며 노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사용자가 늘어나자 페이스북의 행보는 달라졌다. 외부 개발자나 기업이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활용해 서비스나 게임을 만들 수 있게 했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친구들에게 게임 초대 메시지를 보내 같이 게임을 즐기고 경쟁할 수 있게 했다. 재미있는 심리테스트 결과를 친구와 공유할 수도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겨냥해 다양한 서비스가 쏟아져 나왔고, 사람들이 이를 쓰고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페이스북 인기는 더 높아졌다. 외부 참여자들은 페이스북 사용자의 친구관계와 프로필 정보 등을 바탕으로 광고나 마케팅 등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다. 물론 페이스북이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도 폭증했다.

이는 지금 페이스북을 괴롭히는 프라이버시 침해와 사용자 데이터 오남용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하지만 사용자와 외부 기업, 개발자 등을 끌어들여 지속적으로 가치와 기회를 제공하는, 사용자 20억명 규모의 플랫폼을 키운 것이 사실이다.

반면 싸이월드는 사용자 3200만명의 실질적 국민 서비스로 자리했으나 자족적 생태계 운영에 그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디자이너들이 만든 미니 홈피 아이템을 사고파는 장터를 운영하고 미니 홈피 배경음악으로 쓰인 음악에 저작권료를 분배했지만, 그 이상의 다양한 기회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자라지 못했다. 사이버 경제의 가능성을 보여줬던 도토리는 미니 홈피를 꾸미는 아이템 거래 수단에서 더 발전하지 못했다.

아이리버 역시 삼각형 MP3 플레이어 IFP-100 등 참신한 디자인을 앞세워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MP3 휴대형 음악기기 시장을 평정했다. 하지만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고, 아이튠스 스토어를 내놓으면서 시장의 무게 추는 애플로 기울어졌다.

애플은 메이저 음반사들을 설득해 손쉽게 음악을 찾고 부담 없는 가격에 사서 아이팟에 담아 즐기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불법 복제의 직격탄을 맞은 음악업계가 디지털 음악을 팔아 재기할 기반을 만든 것이다. 사용자에게는 0.99달러를 내더라도 P2P 사이트에서 공짜 음악 파일을 찾는 것보다 편리하다는 만족감을 주는 사용 환경을 제공했다. 음반사, 아티스트, 사용자를 고루 만족시키는 사업적, 기술적 판을 까는데 성공했다.

반면 아이리버는 여전히 어디선가 구한 MP3 파일을 집어넣어 들고 다니는 휴대형 음악 재생 기기에 머물렀다. 콘텐트와 유통에 영향력을 갖지 못한 단순 재생기기는 차별화에 실패하고 시장에서 힘을 잃었다.

싸이월드만 놓고 보자면, 과감하게 사업을 밀어붙일 창업자의 유무 역시 서비스의 운명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싸이월드는 초기 성장세를 매출이 받쳐 주지 못해 서버 투자 등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4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면서 어려움을 해결했다.

창업자 도전의지 북돋는 ‘벤처문화’도 중요

그러나 1위 이동통신사 SK텔레콤의 자회사 SK커뮤니케이션즈 품에 들어간 이 결정은 훗날 싸이월드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다. 주로 통신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SK그룹 출신 임원들이 경영을 맡다 보니 변화가 빠른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벤처 문화’가 시들해졌다. PC 환경에 최적화된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서도 도통 모바일 환경에 맞는 변신을 하지 못 했다. 당시 1등 메신저 네이트온은 문자메시지 수익 감소를 우려하는 모회사 눈치에 모바일 대응을 망설이다 새로 등장한 카카오톡에 시장을 송두리째 내주고 말았다.

페이스북 역시 스마트폰 등장 초기 대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창업자 저커버그의 공격적 리더십으로 모바일 기업 변신에 성공했다. 매출도 없던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을 10억 달러와 20억 달러에 과감히 인수해 성장 동력으로 만들었다. 만약 페이스북이 초기에 야후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오늘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페이스북 등 유망 기업이 성장하도록 적극 투자하고 창업자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벤처 투자 환경의 차이도 영향이 컸다.

결국 창업자를 지원하고 성장시켜 더 큰 판, 더 효과적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저변의 크기에서 싸이월드나 아이리버의 운명이 갈린 셈이다. 우리나라도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벤처 투자, 정책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 스타트업의 글로벌 성공 사례도 나오고 있고 후배를 도우려는 선배 창업가들의 노력도 활발하다. 도전의 한계를 짓는 규제나 머릿속 상상력의 한계를 걷어내는 문화까지 자리하면 더 큰 성과가 나리라 기대된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1540호 (2020.06.2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