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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우승팀의 비결은 전술일까, 선수일까 

 

혁신의 대상이자 주체는 시스템이 아닌 ‘사람’… 혁신을 현실로 만드는 건 ‘인간’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스포츠 경기에는 언제나 의외성이 있다. 강자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약자가 늘 패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과 상관없는 경기라면, 강자의 승리보다 약자의 승리가 더 흥미롭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방법은 다양하다. 선수들은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훈련할 것이고, 코칭스태프는 효과적인 훈련법과 경기의 전략·전술을 고민할 것이며, 팀의 운영진은 유능한 선수를 팀에 데려오려고 노력할 것이다.

야구는 통계와 찰떡궁합이다. 우선 통계치를 산출하기가 쉽다. 선수들이 계속 움직이면서 새로운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축구·농구와 달리 야구의 플레이는 모든 선수가 정해진 자리에 들어서서 멈춘 상태에서 심판이 플레이를 선언하면 시작된다. 축구에서 셋업 플레이에서나 갖춰질 만한 조건이 야구에서는 기본인 셈이다. 2017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준 정규 이닝 평균 경기시간이 3시간 17분이라는데 그 대부분이 이렇게 멈춘 채 지나간다.

그래서 야구는 통계를 내기도 쉽다. 야구 통계는 좌타자 A가 투수 B를 만났을 때의 타율뿐만 아니라, 그 투수와 스트라이크 1혹은 2일 때의 타율, 1루에 주자가 있거나 없을 때의 타율, 그 투수에게 평균 몇 개의 공을 던지게 하는 지까지 세세한 조건마다 통계 값을 낼 수 있다. 야구경기의 승패는 이 통계의 합산결과인 셈이다. 통계를 얼마나 이해하고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야구경기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

베넷 밀러 감독의 2011년 영화 ‘머니볼’은 그 야구 통계의 이야기다. 영화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팀이 주축선수들을 다른 팀에 팔고 나서 2002년 시즌을 준비하는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팀의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절박하다. 선수 영입에 쓸 수 있는 예산은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서 가장 적은데 그 돈으로는 좋은 선수를 사들일 방법이 없는 거다. 그의 말대로 “우리 주제에 뉴욕양키즈와 같은 기준으로 선수를 골랐다가는 양키즈에게 박살” 날 뿐이었다.

성공 배경엔 언제나 현장 전문가들이 존재

그래서 그는 다른 기준을 찾는다. 새로운 기준으로 선수들의 효용과 값어치를 평가할 방법이 필요했던 빈 단장은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피터 브랜드(조나 힐)를 데려온다. 그가 사용한 기준은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라는, 출루율을 중심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공식이었다. 영화는 빌리 빈 단장이 이 공식으로 내실에 비해 저평가된 선수들을 영입해 마침내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20연승을 기록하고 팀을 월드시리즈에 진출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가 흥미로운 건 그 과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개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빌리 빈의 패러다임 개혁은 처음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가 기대했던 ‘가성비 높은’ 선수들은 죽을 쑤고, 팀 성적은 바닥을 긴다. 빌리 빈이 채용한 세이버매트릭스는 현재는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이 채용한 아주 당연한 진리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세이버매트릭스에 비하면 당시 스카우터들이 선수를 고르는 기준은 점쟁이나 주술사 수준이었다. ‘애인이 미인이 아닌 걸 보면 배짱이 없다’, ‘턱이 잘생겼다’, ‘배트로 공 때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체격이 미키 맨틀을 닮았다’ 등으로 선수를 평가하던 시절이다. 이런 중세시대 안목으로 선발된 선수들을, 승패 통계치를 기준으로 고른 선수들이 이기지를 못하는 거다. 물론 그가 고른 선수들은 온전히 훌륭한 선수라기 보단 가격에 비해 유용한 선수들이긴 했다. 그러나 빌리 빈의 혜안이 옳았다면 그 혁신적인 선발 기준만으로도 팀은 승승가도를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폰·테슬라는 혁신이 아닌 집념의 결과물

변화가 없자, 빌리 빈은 팀에 더 많이 개입한다. 감독의 권한인 출전 선수 선발권에도 간섭하고, 감독이 말을 듣지 않자 잘 뛰던 선수를 팔아버리는 만행까지 저지른다. 팀 내 고참 선수에게는 멘토 역할을 제안하고, 투수에게는 상대할 타자들의 통계학적 장단점에 대한 비디오 브리핑과 전략까지 코칭한다. 단장이 아니라 감독이 할 일이다. 감독보다 더 자주 라커룸에 들러 모든 선수에게 한마디씩 던지고 지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자면 감독이 따로 없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끼어들고 난리 친 뒤부터 팀이 이기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보고 있자면 영화가 뭘 이야기하려는 건지 헷갈린다. 오클랜드가 20연승을 거둔 게 세이버매트릭스 때문인지, 아니면 빌리 빈의 현란한 선수 사고팔기 기술과 감독의 영역까지 침범한 코칭 덕분이라는 건지.

그런데 현실도 이와 비슷하지 않던가. 보통 우리가 기대하는 혁신은 게임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마법의 방망이 같은 존재다. 그것 하나만 있으면 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순식간에 멸종되어야 할 공룡처럼 만들어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혁신은 그렇지 않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21세기를 만든 혁신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서핑과 미디어 재생 기능 그리고 전화 기능을 합친다는 아이폰의 개념 자체는 혁신이 아니었다. HP나 블랙베리 같은 곳에서 이미 같은 개념의 제품들을 만들던 시절이다. 아이폰의 성공은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와 공정설계자가 함께 만들어낸, 기존 제품들보다 한두 차원 높았던 만듦새 덕분이었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모터스의 주식가치는 현재 전 세계자동차 회사들 중에서 최고다. 하지만 그 테슬라 모터스가 적자에서 벗어난 건 최근이다. 생산량이 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머스크 본인이 제조공장에서 숙식하며 생산 지연 문제들을 직접 하나하나 해결한 뒤부터 지금의 성장이 가능했다. 내가 청소년 분야를 연구하며 접한 성공 사례들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현장 전문가들이 있었다.

훌륭한 정책이나 좋은 시스템은 그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게 도울 순 있어도 그 훌륭한 사람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혁신만으로는 부족하다. 혁신은 개념일 뿐이다.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인간과 인간의 문제들이다. 그런 문제는 인간의 집념과 노력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빌리 빈과 같은 혜안도 없는 주제에) 앞으로 나도 내 부서의 사소한 일에도 일일이 간섭하고 매일 직원들을 다그쳐야겠다고 결심하는 보스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사 역시 겉보기에 훌륭한 조직과 직원 복지 체계를 눈에 보이지 않게 망가트리는 인간적 요소라 하겠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 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1544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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