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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선의 심리학 공간] ‘배구 여제’ 김연경의 자존감은 어디서 오나 

 

남이 내게 하는 얘기+내가 내게 하는 얘기=균형의 힘 발휘

▎김연경의 환호. 그는 “자아가 들려주는 내면의 목소리에 스스로 귀 기울여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사진:국제배구연맹
“샐러리캡(Salary Cap, 팀의 연봉총상한액) 23억원을 15명의 선수가 나눠가져야 하는데, 후배들 주고 남은 돈을 달라고 했다.” 남은 돈은 3억5000만원. 배구선수 김연경이 최근 흥국생명과 계약한 액수다. 그에겐 돈보다 올림픽 메달이 더 중요했다. 남녀 통틀어 배구 선수 세계 연봉 1위 타이틀에 미련을 두지 않은 그의 선택에 가장 놀란 이들은 몸값 계산에 예민한 해외 에이전트들이다.

김연경이 누구인가.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팀은 4위를 차지했지만 MVP는 김연경이었다. 배구계의 명장들이 그를 향해 쏟아낸 수많은 찬사를 간결하게 요약해 준 이는 이탈리아 출신 감독 지오바니 구이데띠다. “아포짓 히터(opposite hitter, 공격수)처럼 득점하고 리베로(수비수)처럼 상대의 스파이크를 막아내고 미들블로커(middle blocker, 센터)처럼 블로킹하고 기계처럼 서브를 넣는다. 저런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러시아의 신체조건, 미국의 파워, 한국의 기술, 브라질의 순발력을 가진 선수다.”

김연경을 떠올리면 ‘식빵언니’와 ‘플렉스’, 이 두 단어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식빵언니는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혼잣말로 비속어를 뱉는 그에게 팬들이 선물한 별명이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이름이다.

그의 ‘플렉스(랩 음악에서 시작된 속어로 성공을 과시한다는 의미)’는 차원이 다르다. 최근 출연한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 그는 개그맨 양세형이 ‘누가 칭찬해주면 눈 돌아가는 스타일’이라고 놀릴 만큼, 화려한 플렉스 기술을 선보였다. 연봉 1위라는 치켜세움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이 받았다고 했다. 방을 가득 채운 트로피를 보여주며 “나는 이제 상을 그만 받아야 해요. 보세요, 둘 데가 없잖아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타인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 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김연경이니까 뭔들’이다. 거침없는 ‘식빵’도 과한 ‘플렉스’도 당당해 보여서 다 좋단다. 그의 건강한 자존감이 팬들의 눈에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그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세계 1등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그의 성공과 자존감 사이의 관계는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이다. 높은 자존감은 세계 1위의 결과일 뿐 아니라 원인이기도 하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존감을 지켜낸 까닭에 살아있는 전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은 아닐까? 김연경은 그의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존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어요. 누가 ‘너 못생겼어’라고 말하면 그 말을 듣고 상처를 받잖아요. ‘잘했어’라고 말하면 그 말도 귀 기울여 듣고 또 기뻐해요.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거예요.”

김연경의 이야기에는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가 제안한 소시오미터 이론(sociometer theory)의 핵심이 담겨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얘기는 내가 나를 얼마나 좋아해야 하는지를 정해준다. 자존감(self-esteem)은 자기의 가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다. 그러나 이것이 독립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시오미터 이론에 따르면 자존감은 온전한 내 소유가 아니다. 마치 온도계가 춥고 더운 정도를 감지하는 것처럼 내 자존감 미터기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존중하고 좋아하는지를 감지한다.

자아 이야기도 귀담아 듣고 균형 맞춰야

인간은 ‘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도록’ 설계된 존재다. 소시오미터 이론이 주장하는 바는 제법 의미심장하다. 자존감이 남의 평가라는 외부 입력값과 연동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가 ‘타인의 의견에 예민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진화의 여정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민감한 소시오미터를 가지고 있는 사회생활의 달인이었다. 남들의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속상해 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일종의 능력이었다. “남들의 생각 따위, 난 상관 없어!” 이렇게 쿨한 자들은 제 명에 죽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맹수의 공격과 거친 기후, 굶주림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왕따는 죽음을, 사람들의 인정은 안전을 의미했다.

그러니 타인의 말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내 모습을 탓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생겨 먹은 게 내 잘못은 아니니까. 다만 이제 챙겨야 할 중차대한 과제가 남아있다. 본능적인 소시오미터가 자존감을 제멋대로 다 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권리와 안목이 있음을 인식하는 작업이다. 김연경이 이 작업을 어떻게 해냈는지 그의 말을 들어보자.

“어렸을 때 키가 작았어요. ‘너는 안 된다. 그 키로 무슨 배구를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수없이 부정적인 얘기들을 들었지만 당돌하게 항상 이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왜 안돼? 하면 되지! 쟤네들보다 더 많이 뛰고 노력하면 될 거야. 안 된다는 저 말을 내가 바꿔놓을 거야’라고요. 부정적인 쪽으로만 생각을 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아요.”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소리가 소시오미터를 쥐고 흔들 때 이를 조절하는 ‘균형의 힘’을 발휘한 것이다. 자존감 미터기의 수치를 보정해 줄 내부 입력값을 찾은 것이다. 남들이 나를 향해 쏟아내는 부정적 평가와 비관적 예측이 곧 나라고 착각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김연경은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자고 제안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야) 다른 사람이 나를 세게 넘어뜨리려고 해도 넘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해외 생활을 혼자 10년 넘게 하면서 저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됐어요.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앗, 내가 이런 행동을 하네! 제 자신에 대해서 저도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내가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일. 남의 이야기를 듣느라 바빠서 이 당연한 일을 잊고 산 것은 아닐까? 나의 가치는 무엇인지, 어떤 강점이 있는지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너는 안 된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프로 선수의 소시오미터 눈금은 연봉 액수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들 ‘미쳤냐’고 했다. 김연경은 이번에도 자존감 미터기의 외부 입력값 대신 내부 입력값을 찾았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니 올림픽이 더 중요해.” 이거야말로 식빵 언니다운 고품격 플렉스가 아닌가.

※ 필자는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1543호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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