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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38) 왜 무능해 보이는 사람이 승진할까?] 팀원이 보는 팀장과 상사가 보는 팀장은 다르다 

 

전투에서 닦달하는 소대장 역할… 경영진 압박과 직원들 원성 사이에서 괴리 커져

회사를 다니다 보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일하고 싶은 마음을 꺾어 놓고 맥 빠지게 하는 그런 일들이 심심찮게 생긴다. 아무리 봐도 무능한 (것만 같은) 이들이 무난하게 승진해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는 일도 그 중 하나다. 그 사람만 보면 다들 속이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원성이 자자한데 왜 윗사람들과 회사는 모를까? 진짜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아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알고도 놔둘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직원들에게 “경영 관행 중 가장 화가 나는 게 뭐냐”고 묻자 이구동성으로 나온 대답은 “경영진으로 승진한 멍청이”였다. 미국에서는 이런 걸 ‘딜버트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여기 나오는 딜버트는 1990년대 미국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만화 ‘딜버트(Dilbert)’의 주인공 이름인데, 전 세계 65개국 2000여 개 신문에 연재됐을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덕분에 딜버트는 [뉴스위크] 등 잡지의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딜버트의 법칙’은 이 만화를 그린 스콧 애덤스가 같은 이름의 책을 출간하면서 나온 것으로, 이 책은 경영학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싱커스 50(thinkers 50)’에서 3회 연속 순위에 올랐고, 100만부 이상 팔렸다.

그에게 한 기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무능해 보이는 사람이 승진하느냐”고 말이다. 그도 한 마디로 답했다. “사실 그들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 승진의 법칙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경영학 교수들에게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물어보면 누구나 ‘명확한 정보 전달’이라고 말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교수가 사업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거죠. 성공한 경영자라면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이란 ‘나는 승진할 만하다’는 메시지를 상사에게 끊임없이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할 거예요. 캐릭터 딜버트는 입이 없어요. 사실 처음엔 실수였어요. 그런데 회사 생활에 대해 알면 알수록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경영진의 거짓말도 잘 구분해야 해요. 상사가 ‘저는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다고 쪼르르 달려가 다 말해버리면 그 부하직원은 어떻게 될까요?”

그가 하는 말은 하나였다. 이른바 ‘법칙’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의 차이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 잘 하는 것’과 ‘승진’은 별개 문제


▎스콧 애덤스의 만화 [딜버트(Dilbert)] / 사진:ilbert.com
직장생활 몇 년 해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일을 잘 하는 것과 승진은 별개라는 것이다. 이 둘의 인과관계가 밀접할수록 좋은 회사지만 좋은 회사라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애덤스가 말했듯 일을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그렇다. 조직에는 이런 딜버트의 법칙에 능통한 몇몇 유형이 있다.

일이 아니라 은밀한 커뮤니케이션에만 능통한 ‘전문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공통적으로 가진 능력이 있다.(인정받고 승진까지 하니 분명한 ‘능력’이기는 하다) 회사와 상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안다. 그들이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뭔지 잘 파악해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예를 들면 어느 회사의 오너인 회장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에게 올라오는 보고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올라오는 동안 거르고 걸러서 온다. 대체로 전문경영인 사장과 두세 명의 임원을 만나는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식보고 이외의 것들을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불러 시시콜콜 물어볼 수도 없고 이곳저곳을 다닐 수도 없다. 결국 사람을 ‘심는’ 수밖에 없다. 비공식 라인을 두는 것이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존재하는 법, 윗분의 이런 마음을 읽는 이들이 조용히 나타나 채널을 개척하고 담당한다. 공식보고에 없는 ‘저간의 상황’을 보고한다. 이들이 일을 통해 실적을 쌓으려 할까? 일 아닌 관계에 집중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우선한다. 일은 큰 사고만 나지 않을 정도로 관리한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데도 자리보전 하나는 잘 하는 사람들이다.

회장도 안다. 이런 관계가 별로 생산적이지 않고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걸.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 파악을 하는 게 그에게는 더 우선이다. 당사자들도 자신의 부하직원들이 그를 어떻게 보는지 알기에 불평불만이 퍼지게끔 놔두지 않는다. 따르게 할 수 없으니 따를 수밖에 없게끔 압력을 가한다. 자신의 힘을 증명하기 위해 힘없는 사람을 몰아세운다. 자신이 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야 하니 더 넓고 화려한 사무실을 중시하고, 고급 자동차나 비싼 시계 같은 물리적 표지에 갈수록 예민해진다. 일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보다 물리적인 힘과 과시로 자신을 증명하려 노력한다. 이들이 화려한 주인공이 될수록 부하들은 그늘에 묻힌다.

무능한 상사일수록 부하를 더 괴롭혀


이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유형도 있다. 넘쳐흐르는 자신감으로 상사들을 매료시키지만 바로 그 자신감 때문에 같이 일하는 부하들이 익사하곤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표현에 능한 면전(面前) 전문가들이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호감형으로 인식시키는데 뛰어나다. 앞서 말한 이들이 그들 상사의 마음 빈 곳을 채워주는 전문가라면,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능력 있고 카리스마가 있는지를 보여줄 줄 안다.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말을 잘 해 자신을 대단한 인물로 여기게끔 한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사회적 기술로 가릴 줄 아는 발군의 능력으로 상사의 눈을 가리고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이들이 승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토마스 차모로-프레무지크 교수는 [왜 무능한 남자들이 리더가 되는 걸]까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런 부류는 좋은 상사가 되지 못한다. 부하를 괴롭히고 애 먹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잘못한 걸 남 탓으로 돌리고, 성과가 생기면 자기 공으로 만든다.”

자기 이익에 밝은 이런 사람들은 장기적인 미래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말은 강하지만 사실은 눈앞의 이익에 전력투구한다. 일단 이익이 확실하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수중에 넣으려 한다. 뒷담화를 통해 뭐든 만들어내고 어떻게든 태클을 건다. 바람직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무능하지만 자기 이익을 취하는 일에는 굉장히 유능하다. 이들이 달려들면 상황은 진흙탕 싸움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이성적인 이들은 험한 꼴 보기 싫다며 물러나기 십상이다. 덕분에 손쉽게 원하는 걸 얻는다. 이들이 노리는 일종의 공식이며, 이런 저런 의혹을 받는 이들이 비중 있는 자리에 앉는 ‘전략’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기 과시에는 뛰어나지만 일에서 성과를 내는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욕심이 넘치기에 자신이 무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한다. 어떤 프로젝트가 괜찮다 싶으면 호언장담하며 일단 뛰어들지만 진흙탕 싸움에서나 통하는 성공 방식이 일에서 통할 리 없다. 열심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열심히 하니 성과는 없고 부하들만 죽어난다. 인지신경학자 이안 로버트슨 교수(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가 한 말 그대로다.

“지위에 대한 자신감은 있는데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기 자아가 공개적으로 모욕당할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다. (...) (그래서) 방어 차원에서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자신의 무능함이 사람들에게 드러날지 모른다는 심리적 위협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시작한 일이 성과가 없다 싶으면 공격 방향을 바꾼다. 그들이 향하는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힘없는 부하들이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너대니얼 패스트 교수의 말처럼 상사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악당 골목대장’이 된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능력이 없는 상사일수록 부하 직원을 드러나지 않게 방해했다. 무능할수록 아랫사람들을 더 괴롭힌다는 뜻이다. 욕심이 넘치기에 무능하다고 알려지는 걸 더 두려워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쥐고 흔들려고’ 하는 성향도 강하다. 모든 걸 자신의 손 안에 두려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욕심과 자신의 자리가 위험하다고 느끼는 불안이 만나면 만족을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없이 상승을 추구한다. 잘 되면 자신이 잘해서 그런 것이고, 안 되면 남 탓을 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을 만든다. 고과평가 등을 미끼로 삼아 사람을 흔들고 상대의 약점을 힘의 동력으로 활용한다. 잘 보여야 하는 사람 앞에서는 자기 과시에 열중하지만,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거나 위기 상황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는 능력을 발휘한다. 평소엔 면접 전문가이지만 이럴 땐 책임을 회피하는 면피 전문가로 재빨리 변신한다. 자신의 무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한다는 피터의 원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전형이다. 피터의 원리는 미국 콜럼비아대 로렌스 피터 교수가 1969년에 발표한 것으로 무능한 사람들이 조직을 채우는 현상을 말한다.

밑에서는 보이는데, 위에서 보면 안 보여

무능해 보이는 사람이 승진하고, 이런 이들이 설치는 데도 가만 놔두는 세 번째 이유는 그의 ‘활약상’을 윗사람들이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단위 조직을 이끌게 되는 지위를 가지면 그 윗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일이 있을 때나 보고할 때 대면하는 정도다. 같이 일을 해야 면면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가 보여주는 것만 보게 되니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모를 수 있다. 앞에서 말하는 사람들처럼 감추고 덧칠하는 능력이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한 인사 전문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의 아래에서 보면 그의 ‘항문’이 잘 보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보면 하나도 안 보여요.” 여기서 ‘항문’은 그가 숨기고 싶은 단점이다. 아랫사람들에게는 그의 못난 면이 다 드러나지만 위에서는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물리적 거리가 있다 보니 아래에서 당하는 고통의 정도를 가볍게 여기는 측면이 있기도 하고, 잘 하지 못한다는 건 어렴풋하게 알지만 무능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도 한다. 이렇듯 실상을 위에서 제대로 모를 수도 있지만 안다고 해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사정도 있다. 인사를 손바닥 뒤집듯하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고 팀장들의 불안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랫사람들 입장에서야 ‘못된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게 왜 조직의 불안을 야기한다는 건지 알다 가도 모를 일지만, 어쨌든 윗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생각한다.

일은 잘 하지만 조직 리드에는 서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영진과 직원 사이에 있다 보니 무능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쓸 때도 많다. 팀장이라는 자리 자체가 악역을 담당할 가능성이 다분한 까닭이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직장인 대상 조사에서 빠지지 않는 항목이 있다. “회사 발전을 가로막는 사람은?” 답은 거의 정해져 있다. 부장이나 팀장이다.

이상한 건 회사마다 시스템이 다르고 업종이 다르고 사람이 다른데 부장이나 팀장만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도 마찬가지다. 이 ‘꼰대’들이 승진해 고위 경영진이 되고, 팀장을 괴물로 지목했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으면 지목하는 대상이 변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다. 언제나 팀장이 발전의 장애물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 팀장이라는 자리가 경영진의 의사나 결정사항을 실행 조직에 전달해야 하는 역할인 까닭이다. 전달사항이 직원들의 호응을 얻는 것이면 무슨 문제가 있겠냐마는 그러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게 문제다. 하고 싶은 일은 못 하게 하고 하기 싫은 일만 골라서 하라고 하니 어떻게 밉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회사의 사장은 이런 말을 했다.

“팀원들이 보는 팀장과 상사들이 보는 팀장은 다를 수 있어요. 팀원들이 바라는 팀장의 역할과 회사에서 바라는 팀장의 역할이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회사에서 바라는 역할에 치중하느라 팀원들의 뜻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죠.”

조직 요구 따라야 해 자리가 ‘악역’ 만들어

실제로 리더가 된 팀장은 직원들 입장보다 조직의 입장에 서야 하고 조직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냉혹한 말 같지만 팀장이라는 자리 자체가 위에서 시키는 걸 잘 하라고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조직에 대한 의존성 또한 높아지다 보니 위에서 결정한 걸 직원들에게 강제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직원들에게는 현실적이지도 않은 걸 밀어붙이는 팀장이 억압적이고 무능해 보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서 맨 꼭대기에 있는 장군을 욕하는 병사는 거의 없다. 진격 명령을 내린 건 장군이지만 총알이 쏟아지는 전투에서 “왜 뛰어나가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건 소대장, 중대장이다. 원성도 이들이 가장 많이 받는다.

팀장이라는 자리가 딱 그렇다. 볼멘소리를 가장 많이 들을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경영진과 직원들의 사이가 세대격차라는 이름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이 괴리를 감당해야 하는 팀장의 어려움은 가중된다. 위에서는 “이것도 못하느냐”고 하고 아래에서는 “왜 이걸 해야 하느냐”고 한다.

잘 살려면 ‘부모 복’ 다음으로 필요한 게 ‘상사 복’이다. 하지만 부모도 그렇고 상사도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여러 나라에서 조사해 보니 직장인의 65%가 ‘임금 인상’보다 ‘상사 교체’를 원했다. 마음에 안 맞는 상사들 때문에 속 터지는 사람이 숱하게 많다는 뜻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544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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