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애호박·시금치 두배로 뛰어… “추석 앞두고 더 오른다” 전망
▎충남 천안에 있는 한 시설작물 농가가 장마로 수해를 입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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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서울 동작구 한 전통시장. 채소 가게에 상추가 사라졌다. 시금치도 드물게 보였다. 채소 없는 채소가게에는 손님들 발길도 끊어졌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채소가 비싸 사는 사람도 없고, 시간이 지나면 물러져 내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6월 24일 시작한 장마가 지난 8월 16일까지 무려 54일간 이어지며 상추 가격이 두 배로 올랐다. 시금치는 1㎏당 5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뛰었다. 장을 보러 나왔다는 B씨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집에서 밥 먹는 일이 늘었는데, 밥상 차리기가 무서워진다”고 토로했다.역대 최장 기간 장마가 끝나자 채소 등 식재료 가격이 치솟고 있다. 장마 초·중반 유통업체들을 중심으로 비축 물량을 풀어 가격 상승세를 어느 정도 제어했지만, 장마 후반부터 채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1973년 기상청이 전국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길게 이어진 이번 장마로 비축 물량이 바닥나서다. 축산물 가격도 덩달아 올라 코로나19 확산 속에 외식 대신 집밥을 찾는 가정뿐만 아니라 식당들도 식재료 부담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여기에 장마 이후 곧바로 폭염에 태풍까지 몰아치면서 식재료 가격 급등세가 추석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마 끝났지만, 밥상 물가 상승 계속통계청의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104.86(2015년=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0.3% 상승했다. 이른바 ‘밥상 물가’로 불리는 채소, 과일, 생선 등을 포함한 신석식품지수가 112.33(2015년=100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8.4% 올랐다. 2018년 11월(10.5%)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앞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코로나19 여파로 0%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왔다. 특히 신선채소 물가가 1년 사이 16.5%나 올랐다. 채소류는 16.3%나 뛰었고, 농산물 가격은 4.9% 올랐다. 통계청은 “장마로 채소 가격이 상승했다”고 분석했다.문제는 밥상 물가에 닥친 장마의 여파가 8월 들어 더 심각해졌다는 데 있다. 농산물종합유통정보시스템(KAMIS)에 따르면 지난 8월말 상추(상품 기준) 100g당 소매가격은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각각 2000원, 2500원선으로 집계됐다. 7월말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각각 1096원, 1561원이었던 소매가격이 1달 새 1000원씩 뛴 것이다. 같은 기간 시금치는 전통시장 기준 1㎏ 8276원에서 1만2227원으로 약 48% 가격이 뛰었다.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상추나 시금치 등 잎채소는 날씨가 습하면 쉽게 짓무르는 특성이 있어 판매 가격이 폭등했다”고 설명했다.장마로 인한 침수 피해로 시설작물 가격도 뛰었다. 애호박 1개당 소매가격은 7월말 전통시장 기준 1417원에서 8월 말 2733원으로 93% 가격이 올랐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 판매가격 역시 2010원에서 3135원이 됐다. 깻잎(전통시장기준)은 100g당 1323원에서 2221원으로 68% 상승했다. 김장채소 가격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배추와 무는 8월말 전통시장에서 각각 9508원(1포기), 3017원(1개)에 팔렸다. 7월말 배추 1포기(6010원)와 무 1개(2135)를 사는 데 필요한 돈으로 배추 1포기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붉은 고추는 13% 올랐다.과육 채소와 과일 가격도 고공행진 중이다. 수박과 토마토 주산지인 철원, 복숭아 산지인 충주 등이 집중호우 피해를 겪은 탓이다. 수박과 토마토는 장마 기간 기온이 낮아져 과숙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출하량마저 줄었다. 8월말 기준 수박은 개당 2만3000원, 토마토(1㎏)는 5000원에 가격이 형성됐다. 1개월 전만해도 수박은 1만8000원에 토마토는 4500원에 살 수 있었다. 같은 기간 복숭아(백도)는 10개에 1만7225원에서 1만7651원이 됐다. 과일 유통업계 관계자는 “복숭아는 장마로 맛이 떨어져 가격 변동이 적었지만,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전에 없던 장마’가 ‘전에 없는 밥상 물가 인상’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예년의 장마는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비를 뿌리고 지나가 피해를 보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 채소를 조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긴 장마에 비 피해를 보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워졌다. 실제 54일 동안 이어진 역대 최장 기간 장마로 폭우가 21번이나 한반도를 훑고 지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장마에서 침수·유실·매몰 피해를 본 농경지가 2만7932㏊에 달한다고 밝혔다. 축구장 3만8000개 크기다. 또 닭과 오리 등 가금류는 180만 마리 이상, 한우 400여 마리, 돼지 6000여 마리가 홍수에 휩쓸려 폐사했다.
‘육류도 올랐다’ 4인 밥상 재료비 30%↑정부 재난지원금이 소진되면서 하락세를 보였던 육류 가격이 다시 조금씩 들썩이는 것은 엎친 데 덮인 격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돼지고기 목심 소매가격(100g)은 재난지원금 등 영향으로 6월말 2450원 안팎으로 뛰었다가 이후 꾸준히 떨어졌다. 그러나 8월초 2280원 선까지 하락했던 목심 가격은 8월말 현재 2500원대로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육볶음(목심 300g)과 상추(100g), 깻잎(100g), 애호박(1개) 부침으로 4인 밥상을 차릴 때 드는 재료비는 7월말 1만680원 정도에서 지금은 1만4000원도 부족해졌다. 재료비가 30% 넘게 오른 셈이다.밥상 물가의 급등은 자영업자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가뜩이나 매출이 부진한 속에서 재료값 부담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서울 서대문에서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D씨는 “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는데 채소 가격 등 재료값이 오르는 바람에 적자를 면치 못하게 생겼다”면서 “장마 지나고 채소 가격이 오르는 건 연례행사지만, 올해는 올라도 너무 올라버렸다”고 토로했다.더 큰 문제는 코로나19 여파 속에 오른 밥상 물가를 감당할 여력마저 줄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02.68(2015년=100기준)로 지난해 7월에 비해 0.8% 하락했다. 상추(66.3%), 배추(21.2%)를 중심으로 한 농산물(14.1%)과 축산물(7.5%) 지수가 뛰면서 생산자물가를 밀어 올렸을 뿐 공산품 지수는 3.1% 넘게 떨어졌다. 생산자물가는 생산자가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도매물가를 일컫는다. 통상 한달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것을 고려하면 8월 역시 밥상 물가는 오르고, 산업 전반은 재차 약화할 전망이다.실제로 밥상 물가는 최근 물가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밥상 물가로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가 오르면서 경기 회복 불씨가 살아난 듯하지만, 골목상권은 얼어붙었고 제조업도 위기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사용을 기반으로 매출액 증감률을 유추하는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8월 셋째주(8월 10일~16일) 전국 음식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여행은 22% 감소했다. 지난 7월 2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비자물가 등 소비 지표를 기반으로 “희망의 사인, 경제회복의 불씨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던 것과 대조된다.특히 제조업이 위기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6월 중소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67%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9%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2월부터 5개월 연속 70% 선을 밑돌았는데, 2009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코로나19 충격에 공장이 멈추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밥상 물가 상승으로 소비 지표가 개선됐다고 보고 있지만, 정작 밥상을 차리고 소비에 나설 사람들은 위기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추석 차례상’에 사과 올릴 수 있을까
▎긴 장마가 지속되면서 농산물 가격 폭등이 불거진 가운데 서울 한 대형마트 농산물 코너에 채소 등이 진열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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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밥상 물가는 앞으로가 더 비상이다. 장마 후 폭염이 이어지면, 그나마 남아 있던 채소들이 타 죽기 때문이다. 이미 한반도는 장마 후 연일 폭염주의보가 발효, 2018년 위기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역대급 폭염을 기록한 2018년엔 채소류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9월(12.3%), 10월(13.5%), 11월(13.7%) 3개월 연속 폭등하며 가을 내내 폭염의 영향을 받았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장마 이후 태풍, 폭염 등 기상여건 변화에 따라 농산물 수급 상황이 악화해 농산물 가격이 크게 변동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실제 장마로 불거진 농산물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6일 중부지방이 비 소식과 작별하자 남부 지방에선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 이후 폭염은 8월 26일까지 이어졌다. 폭염은 지난 8월 27일 제주 방향에서 북상한 제8호 태풍 ‘바비(BAVI)’로 끝났다. 그러나 바비는 장마로 피해를 겪은 농가에 25일부터 27일까지 재차 최대 300㎜의 비를 뿌렸다. 경남 거창에서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 C씨는 “장마가 계속된 후 몰아친 태풍으로 사과나무들은 거의 초토화됐다”면서 “올해는 사과 생산량이 작년의 반도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정부가 밥상 물가를 잡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도 몇 없다. 특히 농산물 수입을 통한 밥상 물가 안정이 쉽지 않아졌다. 코로나19 확산과 폭염·폭우 등의 기상이변으로 중국산 농산물 수급에 차질이 생긴 탓이다. 한국은 지난해 약 70만t 중국산 농산물을 수입했지만,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서 수입량이 줄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중국산 농산물 수입량은 전년과 비교해 67%까지 감소했다. 이후 차츰 회복세를 보이나 싶었지만, 역대 최장기간 장마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장마와 폭우로 나타나면서 중국산 농산물 수입에 제동이 걸렸다.농식품수출정보(KATI) 통계에 의하면 올해 들어 1월부터 7월(누계) 동안, 전년 동기 대비 수입량이 가장 많이 줄어든 품목은 김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마늘 등의 중국 내 작황이 좋지 않은 탓으로 추정된다. 지난 7월 김치 수입량은 15만40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만2686t)에 비해 10.4% 줄어들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올해 배추와 무 등 주요 김장 재료가 일제히 오르는 데에는 중국산 김치 수입이 줄어든 영향이 작용했다”면서 “우리나라도 폭우 피해로 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라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여기에 추석을 앞두고 유통 업체들이 공급 물량 조절에 나서면서 밥상 물가는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제수용 과일인 사과는 도매가격 기준 지난해 10㎏ 당 4만4075원에서 지난 8월 이미 8만원으로 뛰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폭염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면, 채소와 과일 가격은 지금보다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면서 “과일 대신 쇠고기·돼지고기를 찾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밥상 물가 대표 품목인 육류 가격도 빠르게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비축물량 출하 등 수급안정 조치 나선 정부
▎제8호 태풍 ‘바비(BAVI)’가 지나간 8월 27일 농민이 강풍으로 떨어진 낙과를 정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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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부랴부랴 밥상 물가 잡기에 나섰다. 농림축산 식품부가 지난 8월 가동한 ‘농산물 수급 안정 비상 태스크포스팀(TF)’이 대표적이다. 농산물 수급 안정 비상 TF는 일단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상추 등 잎채소의 피해를 파악하고 주산지 동향 및 수급 상황을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채소처럼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른 품목은 농협 계약재배 물량 등을 조기 출하해 가격을 관리할 예정”이라면서 “배추와 무의 산지 작황 점검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기획재정부도 밥상 물가 상승 불안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보탰다. 기획재정부는 당장 가격 추이에 따라 추가 할인 행사와 쿠폰 지급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대형마트나 온라인 판매처에서 배추나 상추 등 주요 잎채소에 대해 최대 20%의 구매 할인 쿠폰 제공을 진행했는데, 이를 정부 차원 할인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추석 명절 비용 부담이 커질 경우 전국 농협·수협·산림조합 특판장을 통한 할인 및 직거래 활성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