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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규직 시대’ 선진국은 어떻게] 연봉 1억4000만원 소프트뱅크도 ‘투잡’ 허용 

 

미·EU 3분의 1이 플랫폼 노동자… 저성장·낮은임금상승률·일손부족에 변화 불가피

한국보다 앞서 연봉제와 비정규직제가 정착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긱 이코노미의 확산 속도 역시 빠르다. 일자리는 고정되지 않았다는 사용자·노동자 모두의 보편적 정서 속에 플랫폼 노동이 촉발한 N잡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너그럽다.

플랫폼 노동이 일반화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도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 역시 기업 공채의 축소, 수시 채용의 보편화, 임금상승률 정체, 플랫폼 경제 대두 등 일자리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발맞춰 정책은 물론 사회문화의 변화를 염두에 둬야 할 때다.

플랫폼 경제 활동이 가장 보편화한 지역은 유럽이다. EU집행위원회의 2018년 발표에 따르면 EU 14개 회원국의 성인 9.7%가 독립형 일자리 경제(긱 이코노미)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노동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2017년 5월 기준 디지털 중개 노동자가 161만명으로 전체 취업자 수의 1% 수준에 그쳤다. 다만 퓨리서치 설문조사에서는 지난 1년간 플랫폼 근로를 경험한 미국 성인이 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형 일자리 5년 뒤 부가가치 2조7000억 달러


미국과 유럽의 독립형 일자리 근로자가 경제활동 인구 대비 20~30%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맥킨지는 2016년 미국과 EU 15개국의 독립형 근로자 수가 1억6200만명으로 전체 생산가능인구의 20~30%에 달하는 것으로, MBO파트너스는 2018년 4180만명의 미국인이 월 1회 이상 독립형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각각 조사했다.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규정과 산출, 조사 방식 등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기관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서구 국가에서 플랫폼 일자리가 보편화했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맥킨지에 따르면 독립형 일자리 경제는 2025년 약 2조7000억 달러(약 3170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한다. 세계적으로 전체 노동인구의 1% 정도만이 플랫폼 경제에 참여하고 있어 향후 성장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플랫폼 일자리가 커지는 것은 저임금·임시직 근로의 보편화 때문이다. 미국에서 일자리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은 1980년대다. 당시 쌍둥이 적자로 경제 불황에 시달리던 미국은 경영 효율화가 화두가 되며 기업들의 정리해고가 상시화됐다. 특히 일본의 제조업이 부상하며 자동차·철강 등 미국의 전통산업이 경쟁력을 잃었다. 1979~95년 미국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4300만 개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하며 노동자들은 임시직이나 독립형 일자리에 매진하게 됐다. 여기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량 실직이 발생하면서 노동자들은 지속해서 일자리를 제공하는 플랫폼 경제에 복무하기 시작했다.

기존 직장인들도 임금이 오르지 않자 보완 소득원을 마련하려 플랫폼 노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었다. 더구나 정보통신(IT) 플랫폼에 기반을 둔 일자리는 저숙련 근로인 경우가 많아 투잡이 용이하다.

플랫폼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달라진 점은 고학력 젊은 세대의 참여가 늘었다는 것이다. 플랫폼 근로 종사자 중 35세 미만의 비중은 미국 35.2%, 유럽 39~51%로 조사됐다. 플랫폼 노동은 크게 개발·디자인 등 웹 기반과 배달·청소 등 물리적 공간에 제한을 받는 지역 기반으로 나눌 수 있다. 새로 플랫폼 노동에 뛰어든 젊은 층은 웹 기반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또 전체 플랫폼 근로자의 절반가량이 대졸 이상이다. 웹 기반 근로자는 대졸자가 67.0%에 달해 전체 산업의 대졸자 비중(41%)을 크게 웃돈다.

일본은 아예 정부가 투잡을 독려하고 있다. 일본은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로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생산성이 한계에 부딪혀 기업이 임금을 인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손이 필요한 기업이 급여를 높여 구직자들을 끌어 모을 수는 있지만, 채용을 더 했다고 기업 매출이 그만큼 오르지 않는 저성장의 구조적 함정에 빠졌다. 급여가 높은 순서대로 기업들이 근로자를 쓸어 가면 중소·영세 기업들은 존립이 어려워져 정책적으로도 섣불리 임금 인상을 유도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통해 가정주부의 경제활동 참여를 독려하고 정년을 70세로 연장키로 하고 있다. 더불어 2018년 1월부터는 ‘부업·겸업의 촉진에 관한 지침’을 발표해 부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된 대기업 121개 중 50%가 부업을 허용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2017년 11월 부업을 허용했고 현재 약 430명이 부업을 갖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평균 연봉은 1253만엔(약 1억4000만원, 2019년 기준)으로 일본 대기업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플랫폼 노동 면세·복지재원 마련, 보장제도 강화해야

이런 플랫폼 일자리가 대두하며 앞으로 기업들 사이에서 신입공채는 사라질 수 있다. 필요한 곳에 적절한 인재를 정해진 기간만큼만 고용하는 형태가 보편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전체적으로 소득이 감소하는 한편 안전성과 연속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미국의 경우 플랫폼에서 주당 35시간미만 근로하는 시간제 근로자 비중은 27.6%로 전체 취업자(18.3%)를 웃돈다. 독일·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7개국의 플랫폼 경제 종사자 중 시간이 날 때만 일하는 비중은 15~26%로 전체 취업자의 임시직 비중 2~11%에 비해 높다. 영국은 전체 독립형 일자리 종사자 가운데 12%만이 매일 근로를 하고 있으며, 주당 16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경우도 80%에 달한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보호망을 갖추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우버 등 플랫폼 근로자를 직원으로 처우하도록 하는 ‘AB(의회법안)5’ 법안을 올 1월부터 시행했다. ‘근로자가 특정기업의 일상적 사업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 계약업자가 아닌 직원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로써 플랫폼 노동자도 임금의 안전성과 복리후생, 노조가입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영국은 플랫폼 경제로 발생한 수익을 연 2500유로까지 면세해주고, 플랫폼 업체에 복지 부담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다. 프랑스는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노동과 사회적 대화의 현대화’ 법안을 2016년 통과시켰다. 독일 역시 디지털 플랫폼 산업의 공정한 시장 형성을 목표로 노동 환경의 쟁점과 과제를 제시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동 4.0’을 추진하고 있다.

최기산 한국은행 조사국 과장은 ‘글로벌 긱 경제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플랫폼 경제는 사업가치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순기능을 제한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빠른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에 주요국들은 기존 산업과의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플랫폼 종사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553호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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