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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중국의 대외 전략에서 읽는 한국의 위치와 환율 

 

대선 앞둔 미국의 대中 파상공세에도 둔감한 환율 시장

1997년 2월 거인이 눈을 감았다. 20세기 초에 태어나 산전수전을 겪은 뒤 노구(老軀)를 이끌고 남순강화(南巡講話, 남방 지역을 순회하며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 건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시장경제 도입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힌 사건)로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까지, 덩샤오핑은 20세기를 온전히 살며 눈부신 유산을 남겼다.

고립되어 있었던 중국의 개방을 진두지휘하고 치밀한 개혁을 단행한 것은 그가 국제적 시야까지 갖췄기에 가능했다. 청년 덩샤오핑은 프랑스와 소련에서 6년을 체류하며 견문을 넓혔고, 오랜 세월 대외업무를 수행하는 등 최고 권력자에 오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에즈라 보겔(Ezra Vogel)의 표현에 따르면 덩샤오핑은 말 그대로 ‘준비된 지도자’였다.

그는 허술한 제도를 그대로 둔 채 단지 시장 개방만으로는 앞선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급진적인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처참한 결과로 권력이 개인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었을 때 생기는 폐해를 체감하며 교훈으로 삼아 효율적인 정치 시스템으로 발현했다. 코로나19의 발상지로, 그리고 초기의 은폐로 인해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역병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경제를 정상화하여 가장 우월한 회복력을 보이는 것도 중국이다.

미국 대선 이후 긴장완화 기대감

현재 중국을 향해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는 미국과 이를 받아내며 버티는 중국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정치인은 한편으로 연기자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만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국가의 지도자 역시 겉으로 보여줘야 하는 이미지와 속내가 다르다. 이러한 관점에서, 덩샤오핑의 미국 파트너였던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와 현재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9년 초 취임한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H.W. 부시는 1970년대 중반 미국 국무성의 베이징연락사무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덩샤오핑과 친분을 쌓은 이래, 서로 신뢰하는 특별한 관계로 발전했다. 부시는 최대한 덩샤오핑의 입장을 배려했고 미국 내 반중 여론을 의식해 비밀특사를 파견하여 긴밀히 소통하며 사정을 설명하고 직접 양해를 구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트럼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사업가이고 TV쇼 진행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미국 내 반중 여론이 더욱 고조되어, 대선 후보들은 표를 의식해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중국은 재선을 노리는 미국 대통령의 이런 입장을 알고 있다. 따라서 대선 이후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의식하는 듯하다. 실제로, 최근 중국은 연일 쏟아지는 미국의 강경 조치에 상응한 보복 수위를 조절하는 인상이다.

재임 기간 중국을 압박하면서도 협상(거래)을 시도하며 사업가로서의 기질을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은 부상하는 중국에 두려움과 반감을 느끼는 미국 유권자들에게 강경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 11월 3일 미국 대선 이후에는 양국 관계의 경색 국면이 잠시나마 완화될 여지가 크다고 보는 배경이다. 9월 중순 이후 원달러 환율이 양국 관계의 경색에 둔감해진 것은 이러한 판단에 근거한 것일 수 있다.

국경을 접하는 이웃 나라가 많은 중국은 적대국으로 포위당할 경우 활동 반경에 제약이 커지므로 이를 사전에 예방하려 한다. 덩샤오핑 시대에 소련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적대적으로 맞설 당시에도 접경국들을 포섭하기 위해 부단히 공을 들였다. 이렇듯 주적을 분명히 하고 동맹을 구축하여 대항하며, 적의 동맹을 균열시키는 것이 중국의 대외 전략이다. 따라서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중국은 이미 한국이 수교 이후 자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도록 유도하며 빠져나가기 힘들게 옭아맸다.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연결고리가 너무 두터워지다 보니, 국가 중대사가 중국의 이해와 엮인 경우 자유로운 선택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특히 미국 정부가 달러화를 무기화하여 제재를 일삼는 데 대응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에는 위안달러 환율의 하락이 두드러진다. 5월 말경 1달러당 7.20 위안에 육박했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6월부터 거의 일방적인 하락 흐름을 탔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5월에 내수에 초점을 둔 쌍순환(또는 이중순환) 개념을 제시하며 내수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아직 진행형이다 보니 글로벌 수요의 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인데다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 하겠다고 협박하는 미국의 압박이 겹치자, 이제 제법 커진 내수의 성장 동력을 자극하여 난국을 헤쳐 나가려는 시도다. 내수 확대를 꾀한다면 위안화 약세보다 강세가 유리하다. 여기에 보험사의 주식 보유 한도 상향 등 중국의 시장친화적인 정책, 미·중간 1단계 무역합의 결과 외국 금융기관의 사업 허가 등이 맞물려 월가 IB(투자은행)의 중국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 대내외 여건은 위안화 강세

중국 내 변수가 위안화 강세 유인을 키운 상황에서, 대외적 여건도 같은 방향에 서 있다. 중국 국채가 글로벌채권지수에 속속 편입되며 위안화 자산에 대한 글로벌 자본의 투자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정책 변수도 달러화 약세 여건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 연준이 꿋꿋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며 달러화의 안정에 역할을 하는 것이다.

9월 초순까지만 해도 위아래가 꽉 막혔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에 하단을 낮춘 것도 이러한 배경이 바탕이 됐다. 단기 변동성은 있겠지만, 중국과 미국의 정책적 요인을 보면 원달러 환율이 여건에 따라 추가 하락할 수는 있어도 당분간 크게 오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정말 중국과 디커플링을 할 수 있을까. 미국과 유럽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디커플링을 외치지만,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이미 중국 시장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라 디커플링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애플·테슬라 등이 중국 거대 시장을 포기할 수 없고, 중국 내 사업을 확대 중인 월가 IB(투자은행) 등의 이해관계로 인해 미국이 중국 시장을 완전히 버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 필자 백석현은 -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54호 (2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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