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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진출 선언한 현대차, 상생이냐 독식이냐] ‘메기 역할’ 내세운 ‘오픈 플랫폼’ 실체는? 

 

“수익 아닌 제네시스 경쟁력 제고 노림수” 분석도

▎서울 동대문구 장한평 중고차 시장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오픈 플랫폼’. 지난 10월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동욱 현대자동차 정책조정팀장(전무)이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과 관련해 강조한 키워드다. 기존 중고차 매매업자들과의 ‘상생’을 강조하기 위해 꺼낸 단어라는 해석이다.

현대차의 골목상권(중고차 시장) 진출 논쟁에서 눈여겨볼 점도 여기다. 현대차가 말하는 오픈 플랫폼의 실체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만약 오픈 플랫폼이 온라인으로 딜러와 소비자간 매매를 중개하는 형태라면 현재 현대캐피탈·현대글로비스의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고차매매협회의 우려는 현대차가 직접 차량을 매입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에 집중돼있다. 독점에 대한 우려다. 결국 현대차가 말하는 ‘오픈 플랫폼’이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중고차 시장 진출 가능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케케묵은 ‘골목상권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정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통해 2013년부터 중고차 판매업에 대한 대기업의 진출과 사업 확장을 제한해왔지만 이 제도는 지난해 일몰됐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을 요청해오고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이미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중소벤처기업부에 전달한 상태다.

‘오픈 플랫폼’은 ‘골목상권 상생’ 명분용?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먼저 움직였다.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운을 띄웠고, 매매사업자들이 반발하며 이슈가 됐다. 이어 국감에 증인으로 나선 현대차 임원이 진출을 공식화했다. 중고차 매매사업자들의 반발은 커져간다. 중고차 매매 양대 조합 중 한 곳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단식투쟁에 돌입한 상태다.

그렇다면 정말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입은 기존의 중고차 매매상들의 밥그릇을 뺏는 것일까. 중고차 판매업계는 국내 자동차 판매의 70~80%에 달하는 현대·기아차의 과도한 영향력이 기존 중고차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한다. 지해성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사무국장은 “국내 중고차 사업의 거래 구조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은 고객들이 새 차를 사면서 자신이 타던 차의 판매를 대리점 위탁하고, 이런 매물이 매매상에게 연결이 되는 구조였다. 현대·기아차가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게 되면 결국 자동차 매입의 대부분을 뺏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이에 맞서 중고차 사업 진출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국감 증인으로 나선 김 전무는 ‘소비자 후생 증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고차 시장의 정보비대칭으로 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현대차는 국내 수입차 브랜드와 달리 인증중고차 사업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 중고차 시세 방어를 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수입차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차들의 인증중고차 거래에선 딜러사가 실제 사업 주체”라며 “국내에서 제조·판매 분리가 되지 않은 현대차가 수입차 딜러사들의 인증 중고 사업을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건 합당한 논리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 하는 게 적절한지를 보기 위해선 ‘중고차 시장’이 골목상권에 해당하는 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동반위는 앞서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 업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서에 “시장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함에도 대기업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으며, 산업경쟁력과 소비자 후생의 영향을 포함하여 일부기준이 미부합하다고 판단했다”고 기술했다. 중고차 판매업이 사전적 의미의 ‘골목상권’에는 부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현재 중기부는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 결정을 보류하고 있다. ‘대기업의 진출이 가능하다’는 결정이 확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현대차 역시 본격적인 중고차사업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국감에서 “결론 내지 않는 상태는 중고차 판매업계 편에서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판매업을 골목상권이라고 볼 수 없지만 ‘상생’을 위한 방안이 도출될 때까지 결정을 미뤄 업계 종사자들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다.

김 전무의 ‘오픈 플랫폼’ 발언은 이런 상황 속에서 나왔다. 중고차사업의 실행을 위해선 상생을 강조해야 했고, 이를 위해 오픈 플랫폼이란 키워드를 도입했단 분석이다.

그러나 취재 결과 현대차가 처음 중고차 시장 진출을 도모했을 당시 ‘오픈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 중기부 상생협력지원과 관계자는 “현대차가 어떤 형태의 오픈 플랫폼을 하겠다는 건지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라며 “국감에서 김 전무의 발언이 있은 이후 현대차가 말한 오픈 플랫폼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고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오픈 플랫폼에 관해서는 어떤 사업형태를 갖춰야 할지 내부 논의 중”이라며 “현재 공개할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글로비스·캐피탈 사업과 차별성 나오나


▎장세명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부회장이 ‘중고차 판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나섰다. / 사진: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현대차그룹은 지금까지 중고차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사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고차 관련 플랫폼 사업은 지속해 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 IT서비스 기업 오토에버닷컴(現 현대오토에버)을 출범하며 중고차 경매 시장에 진출했고, 2003년 이 사업을 물류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에 넘겼다. 현대글로비스는 현재도 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고차 경매 사업은 중고차 판매업자들이 차를 매입할 수 있는 도매 창구로, 플랫폼 사업에 가까운 모델이다.

할부금융 계열사인 현대캐피탈은 ‘오토인사이드’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제휴 중고차 업체들과 ‘내차 팔기’와 ‘내차 사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IT업계가 행하는 ‘플랫폼’ 사업에 한층 더 가깝다. 2015년부턴 현대캐피탈 임원으로 퇴직한 강귀호 대표가 설립한 ‘오토핸즈’가이 플랫폼의 운영을 담당하며 ‘현대캐피탈 인증중고차’라는 이름으로 브랜드 인증중고차 사업도 벌이고 있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기존 플랫폼 기반 중고차 사업자들의 폐해에 비추어 오픈 플랫폼을 통한 상생 가능성도 낮다고 주장한다. 지 사무국장은 “엔카닷컴의 경우 처음엔 광고 단가가 낮았는데, ‘프리미엄 광고’ 등을 도입하며 단가가 점차 높아져 플랫폼을 활용하는 업체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며 “이젠 광고를 올리지 않으면 판매가 안 되는 구조라 많은 매매상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차의 오픈 플랫폼에 대해 기대하는 분위기다. 현대차의 진짜 사업 목적이 ‘중고차 시장’에 있지는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입의 진짜 목적은 ‘인증중고차 사업’을 통해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제네시스는 한국 시장에서도 결국 벤츠, BMW 등 수입차 브랜드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데, 제네시스의 신차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서 인증중고차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중고차의 저가 유통을 막아야 신차 고객을 유입할 수 있고, 경쟁 차종에 대한 ‘트레이드-인’ 프로그램 등을 원활히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 전문가로 꼽히는 신현도 유카 대표는 “중고차업계는 직원들에게 연봉 3000만원을 주면서도 많은 이익을 남기기 어려운데, 평균연봉이 1억원에 가까운 현대차가 중고차사업을 통해 돈을 벌려 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고급차 브랜드로 전략 육성 중인 제네시스 브랜드의 잔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중고차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분석했다.

실제 인증중고차 사업이 활성화 된 수입차 업계에서도 이 사업으로 수익을 남기는 수입차 딜러사는 거의 없다. 인증중고차 판매 네트워크 운영을 위해선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정비사업 확대를 위한 시너지 정도를 기대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일부 딜러사들은 수입사로부터 판매보조금을 수령하기 위해 억지로 인증사업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차 ‘AS 비용 공유’ 모델 가능할까

현대차가 추진하는 오픈 플랫폼이 기존의 플랫폼 사업을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중고차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박 장관은 국감에서 “중고차의 AS(판매후서비스)에 상생의 고리가 있다고 본다”며 “AS 관련 비용을 중고차업계와 현대차가 공유하며 다른 수입차와도 분담을 얘기해봐야 한다”고 말한 게 단초다.

신현도 대표는 “중고차 시장의 신뢰가 높지 못한 이유는 품질보증제도가 정착이 되지 못한 이유가 크다”며 “이번 기회에 완성차와 수입차, 중고차 매매업계 간 ‘공적 보증’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새로운 방안이 도출된다면 소비자까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57호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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