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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긴급재난 문자, 잡음 아닌 ‘신호’로 격상할 방법은? 

 

신호와 잡음 구분 자의적인 경우 많아… 마컴의 연구 일상에서도 필요

▎한국 초계기에 설치된 레이더 화면
회의 중에 경보음이 울렸다. 그것도 여러 곳에서. 핸드폰이 수신한 긴급재난문자 메시지 알람이었다. 안내 내용이 급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한 번 보고는 다시 회의를 계속했다. 최근에 극장이나 공연장에 갈 일이 없어서 나는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영화 보다가 긴급재난문자가 오는 바람에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가끔 본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이 단어를 검색하면 제일 위에뜨는 연관검색어가 ‘차단 방법’ 이다. 어떤 외국 브랜드의 차량 소유자들의 가장 큰 불평 거리는 메인 콘솔화면에 수시로 뜨는 긴급재난문자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역시 차량 근처에서 발생한 확진자 동선 안내가 많이 뜬다. 문제는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도 짜증이지만 시효가 지난 메시지가 계속 들어온다는 점이다. 연초에 발생했던 코로나 확진자 동선 문자를 아직도 받고 있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해당 차량 소유자 커뮤니티에서 이 문자 폭탄을 피하고자 자동차의 기능 일부를 차단하는 방법까지 공유된다. 위의 스마트폰과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한때 긴급재난문자 시스템은 정말 중요한 정보를 제때 전달하지 못한다는 질타를 받았었다. 2016년 발생한 경주지진 사태가 대표적인 경우다. 신속한 메시지 전달을 위한 정비가 그때 이뤄졌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과 관련된 정보들은 특히 긴급한 재난정보와 단순히 주의해야 할 정보 사이의 경계선 사이에 있다. 그래서 더욱 이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마컴의 ‘신호탐지이론’, 인간 감각 연구에 새로운 장 열어


▎아이폰 iOS 업데이트 이전까지 관공서에서 보내는 코로나 관련 문자는 긴급재난문자로 인식됐다.
1960년에 J. 마컴(Marcum)이라는 연구자가 공군의 레이더 탐지병들이 비행기를 탐지할 확률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레이더 기술은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레이더의 화면은 흐릿한 영상만을 비춰줄 뿐이어서 거기 보이는 얼룩이 진짜 비행기인지, 아니면 새때나 구름 혹은 단순한 기계의 잡음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레이더의 정확도뿐만 아니라 그 기계를 조작하는 탐지병의 감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국방부의 중요한 연구과제였다. 마컴의 논문도 이런 연구과제의 일환이었다. 마컴의 이 논문은 인간의 감각을 다루는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전까지 인간의 지각능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어떤 신호(signal)를 주었을 때 그 신호의 세기 변화나 차이를 사람들이 얼마나 잘 탐지하는지, 혹은 피부에 전달된 신호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아맞히는지 등에 대한 연구를 했다. 여기서 신호는 당연히 100% 신호였다. 하지만 마컴은 그렇게 연구할 수가 없었다. 마컴이 연구해야 하는 레이더 신호는 100% 신호인 적이 없었으며, 거의 언제나 잡음(noise)과 뒤섞여 있었다. 중요한 문제는 그 잡음들 속에서 신호를 탐지해내는, 혹은 지금 보이거나 들리는 것이 신호(비행기)인지 아니면 잡음(새때나 구름 혹은 기계적 오류)인지 판단해야 하는 것이었다.

마컴이 주목한 이런 종류의 문제를 신호탐지이론(Signal detection theory)이라고 한다. 마컴은 레이더 탐지병이 레이더 화면의 얼룩이 신호인지 잡음인지를 정확히 탐지하는 것은 기계적 정확도나 감각의 예민성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의 문제라고 봤다. 간단히 말해, 레이더 탐지병이 의사결정을 할 때 다음과 같은 경우의 수가 있는 것이다.

우선 레이더 화면의 얼룩이 진짜 비행기인데 그것을 비행기라고 판단하는 경우다. 이는 모든 레이더병이 기원하는, 제때 비행기를 잡아내는(Hit) 경우다. 두 번째는 레이더의 얼룩이 사실은 비행기가 아니라 구름인데 비행기라고 착각하는 경우다. 이를 잘못된 경보(False Alarm)라고 한다. 세 번째는 비행기로 인해 발생한 레이더 화면의 얼룩을 비행기가 아니라고 착각해 놓친(Miss) 경우다. 마지막은 비행기가 아닌 얼룩을 비행기가 아니라고 제대로 감별하는(Correct rejection) 경우다.

이 네 가지 경우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일단 스크린의 의심스러운 얼룩을 비행기라고 판단하기로 하면, 비행기를 놓칠(Miss) 가능성은 줄어드는 대신 비행기가 아닌 잡음을 비행기(신호)라고 오판(False Alarm) 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비행기임이 확실한 신호가 아니라면 전부 잡음으로 간주하기로 하면 오판의 가능성은 줄어들지만 진짜 비행기를 놓칠(Miss) 가능성은 커진다. 추론통계학에서 말하는 1종 오류(alpha) vs 2종 오류(bete)와 같은 문제다.

신호의 정확한 탐지는 단지 레이더 탐지병이나 방사선과 의사에게만 주어진 과제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신호와 잡음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반드시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다. 길거리에서 들리는 소음 중에 내가 당장 들어야 하는 경고음이 있을 수도 있다.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의 말속에도 진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의도하지 않게 섞인 곁가지들이 있기 마련이다. 신호를 잡음으로 간주하거나 잡음을 신호로 오해하면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면 그 결과는 내 행복뿐만 아니라 안전과 생명의 위협으로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신호와 잡음을 적절히 구별하는 능력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배우고 익혀야 하는 생존의 기술이다.

신호와 잡음 구별 능력 일상에서 필요한 기술

그런데 신호탐지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기계적으로 신호와 잡음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맥락에 따라 자의적으로 그 기준을 조정한다. 그것이 실제 상황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이 아무리 잡음이라고 해도 일단 신호로 간주하고 주의를 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나중에도 비슷한 소리에 불필요하게 놀라지 않을 테니까. 반면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 해도 빈번하게 들려온다면, 그건 당장 무시해도 되는 거다. 지금 안 들어도 어차피 또 들려올 것이고, 내가 안 들어도 다른 누군가가 들을 테니 말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잔소리를 무시한 건, 그 내용이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흔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긴급재난문자는 원래 태풍, 해일, 지진, 화산폭발, 테러 같은 정말로 긴급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서 대피 나 대응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서 메시지 발송시스템 자체도 일반적인 문자메시지와 다른 경로를 사용한다. 이렇게 특별하고 귀중한 신호를 전달하기 위한 메시지 경로를 “운전시 전좌석 안전띠 착용, 커브길 등 위험지역 안전운전으로 고향길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같은 내용으로 낭비한다면, 그건 신호를 잡음으로 격하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1557호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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