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19) 2020 노벨경제학상에서 바라 본 경매이론의 현실과 미래] 19세기 형식으로 노벨상 소식을 접한 스승과 제자 

 

경제학은 이론과 현실을 접목해야 함을 알려준 계기

▎2020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폴 밀그롬(왼쪽)과 로버트 윌슨(오른쪽) 스탠퍼드대 교수. 두 사람은 사제 지간이다.
경매이론은 경매시장의 특성과 참가자들의 의사결정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다. 2020년 노벨경제학상은 경매이론을 연구한 스승과 제자인 미국 경제학자 2명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미국의 한동네 사람이다. ‘높은 나무’란 뜻의 스탠퍼드대학 주변의 팔로 알토(Palo Alto) 마을에서 둘은 40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산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10월 12일(현지시간) 수상자로 지명한 이들은 폴 밀그롬(Paul Milgrom, 72)과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83) 두 명의 스탠퍼드대 교수다.

로버트 윌슨은 스톡홀름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다. 제자는 자느라 스웨덴에서 온 노벨 경제학상 수상 전화를 받지 못했다. 노벨위원회 측은 이웃에 사는 스승 로버트 윌슨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길을 건너 폴 밀그롬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 자고 있던 제자를 깨웠다. 영문을 모르던 제자는 처음에는 화를 냈다. 그는 잠을 푹 자려고 핸드폰을 무음 처리했었다. 노벨상을 받은 제자가 이번의 로버트 윌슨을 포함해 3명인데, 자신까지 이번 수상자로 들어있으니 스승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팔로 알토의 아름다운 마을의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은 그들을 특별히 조명하고 있었다. 미시간대 수학과를 졸업한 제자는 보험회사 계리원과 컨설팅회사 컨설턴트로 일한 후 나이 서른에 스탠포드 MBA에 진학했다. 제자의 재능을 엿본 스승이 제자에게 박사 과정을 제안했다. 제자는 3년 만에 학위를 땄는데, 1979년 경매이론 논문으로 ‘레오나드 사비지상’을 받았다. 그게 둘을 경매로 이어지게 한 인연이었다. 노벨경제학상을 이미 받은 두 명의 수상자인 앨빈 로스, 벵트 홀름스트룀도 스승 로버트 윌슨의 제자이다. 제자인 폴까지 노벨 경제학상을 타면서 스승인 로버트 윌슨은 3명의 수상자인 트리피타를 갖게 된. 이번에 스승까지 수상했으니 크리켓 용어로 노벨 해트트릭을 기록하게 됐다.

폴 밀그롬 교수와 그의 제자 3명 노벨 경제학 수상

경매는 어디에서든 벌어지고, 우리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기에 두 교수를 선정한 게 일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노벨위원회는 “두 교수가 경매 이론을 발전시켰고, 새로운 유형의 경매 형태를 고안해 전 세계 매수자와 매도자, 납세자에게 도움을 줬다”고 노벨 경제학상 선정 이유를 발표했다.

제자는 스승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스승이 노벨상 수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얼마나 미안했을까? 스승은 항상 제자를 경매 이론의 선두주자로 생각했고 자랑의 대상으로 여겼다. 시장 디자인과 경매 디자인에 있어서 제자는 늘 앞서가는 존재였다. 물론 과거에도 경매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서 방법을 연구해낸 것이 성과로 인정받았다.

둘은 경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응찰자들이 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이론적으로 명확히 했다. 그 결과 이들이 고안한 새로운 경매방식으로 입찰이 간단해졌고, 자원 배분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둘의 경매이론은 이익 극대화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혜택을 목표로 했다.

두 교수는 경매이론에 앞서 게임이론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긴 미시경제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밀그롬은 경매이론의 초기부터 대부분 연구에 참여해 기틀을 잡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윌슨은 존 내쉬 이후 게임이론의 굵직한 연구를 진행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노벨위원회는 성명에서 “둘은 라디오 주파수(radio frequencies)처럼 종래의 방법으로는 팔기가 어려운 상품과 서비스를 위한 새로운 경매방식을 고안하는데 통찰력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밀그롬은 실제로 다수국가의 주파수 경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광고 경매 기법 개발 때 조언한 바 있다. 사람들은 가장 비싼 값을 부르는 응찰자에게 물건을 팔거나, 가장 싼 가격을 부르는 응찰자에게 물건을 샀다. 요즘은 매일 경매를 통해 가재도구뿐만 아니라 예술품과 골동품, 증권, 광물, 에너지 등 천문학적인 금액의 가치가 있는 재화의 주인이 바뀐다. 공공 조달도 경매를 통해 진행된다.

당신이 응찰자라면 어떤 정보를 기반으로 전략적으로 행동할까? 스스로 아는 정보와 다른 이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동시에 전략 자산으로 고려하지 않을까? 수상자들의 이론을 좀 더 현실적인 각도에서 다루어 보기로 한다.

윌슨 교수는 입찰자들이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를 의식해 최상의 추정치보다 더 낮은 가격에 응찰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하여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커다란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말한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입찰자는 불확실한 상품의 경매에서 낙찰될 때 일반적으로 그 자산이 실제 가치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경향이 있다.

교수가 동전이 가득 있는 항아리를 만들어 경매를 제안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학생들은 입찰서를 쓸 수 있고, 가장 높은 입찰 가격을 쓴 자가 항아리 내용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하자. 그의 이름을 밥이라 하자. 모든 사람이 입찰서를 작성한 후, 교수는 어떻게 입찰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학급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다. 밥은 45달러를 쓴 높은 입찰가다.

“축하해, 밥, 방금 항아리에 있는 동전을 다 땄어!” 교수가 말한다. 그가 따낸 항아리에는 20달러가량의 동전이 들어 있었다. “기분이 어때?”

“별로입니다.” 밥은 항아리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듣기도 전에 말한다. 밥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일까?

많은 경매 우승자는 밥처럼 승리에 저주받은 감정을 느낀다. 경쟁 입찰 협상 시나리오에서 이기는 게 협상 테이블에서 최적이거나 가치를 창출하는 결과가 아닐 수 있다.

실제 일화를 보자. 1950년대에 미국 석유 기업들은 멕시코만의 석유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했다. 당시에는 석유매장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했다. 기업들은 석유매장량을 추정하여 입찰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는데 입찰자가 몰리면서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2000만 달러로 입찰가격을 써낸 기업이 시추권을 땄지만, 후에 측량된 석유매장량의 가치는 1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낙찰자는 1000만 달러의 손해를 본 것이다.

승자의 저주란 무엇인가?


▎2018년 6월 차세대 이동통신 5G 주파수 경매 신청 마감일에 한국 통신 3사가 주파수 할당 신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윌슨은 1960년대와 1970년대 3편의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 합리적인 경매 입찰자들이 그들이 입찰 중인 물건의 가치를 얼마나 과대평가할 수 있는지 제시했다. 위에서 제시한 항아리 사례의 경우, 항아리 자체는 누구에게나 객관적으로는 같은 액수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입찰자마다 항아리에 동전 중 미화 쿼터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에 대한 짐작은 갈릴 수 있다. 이처럼 경매 대상에 대해 임차자의 정보는 다르지만, 누구나 집단으로 공통의 가치가 부여된 상황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입찰자가 낙찰받는 것을 ‘공통가치경매(common value auction)’라 한다.

윌슨은 이 이론과 관련한 최초의 분석틀을 제공한 인물이다. 실제 사례로는 국고채 입찰, 기업공개(IPO) 입찰, 스펙트럼 경매, 값비싼 미술품, 골동품 경매 등이 있다. 스펙트럼 경매는 정부가 경매 시스템을 사용해 전자기 스펙트럼의 특정 대역으로 신호를 전송하고 희소한 스펙트럼 자원을 할당하는 권리를 판매한다. 윌슨은 논문에서 낙찰가가 물건의 진가를 넘나드는 경향인 ‘승자의 저주’를 조사했다.

승자의 저주는 신중한 입찰자들이 저주를 피하고자 경매대상을 낮게 평가하게 할 수 있으며, 입찰자들이 경매대상의 실제 가치에 대해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특히 문제가 된다. 평균적으로 입찰자들이 정확하게 가치를 추정한다면, 가장 높은 입찰가는 상품의 가치를 과대평가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합리적 입찰자들은 역선택을 예상할 것이고, 평균적으로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스승인 밀그롬도 1982년에 로버트 웨버(Robert Weber) 교수와 함께 쓴 논문에서 상기 공통 가치 경매와 개별가치경매(private value auction)를 다루었다. 개별가치경매는 경매 대상에 대한 각 입찰자의 가치 평가가 다르고 또래 기업의 평가와 무관한 경우를 의미한다. 밀그롬 역시 승자의 저주를 분석했는데, 가격이 저렴하게 시작되어 상향 입찰되는 영국식 경매는 높은 가격으로 시작되어 하향 입찰되는 네덜란드 경매보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데 더 낫다고 판단했다. 입찰자가 낙찰되면서 입찰자들은 영국식 경매 과정에서는 경매 대상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는 진위 증명서, 전문가 평가, 다른 입찰자의 가치 평가에 대한 추정치와 같은 정보를 중시한다. 경매 대상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더 높은 수익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잘 알려진 여러 경매방식의 전략을 분석해서 응찰자들이 여러 경매 중에서 서로의 추정가치에 대해 알게 되면 매도자의 기대 이익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현재도 승자의 저주는 회자된다. 은행권의 우량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고객 혜택을 차별화해 신용도가 좋은 고객에게는 예금금리를 얹어주거나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조건은 기본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은행은 다른 은행의 고객을 뺏어오기 위해 무보증 신용대출 금리를 떨어뜨려 출혈 경쟁을 감수한다. 금융대전의 성패가 돈 되는 고객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에 달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은행이 우량고객 확보에 무리수를 둘 경우 수익성을 해칠 수 있다. 개별 은행은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우량고객의 가치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주파수 경매에서 빛이 난 경매이론

경매이론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994년 미국을 필두로 각국이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Frequency Auction System)를 시작하면서다. 기존에 예술품이나 꽃, 수산물, 정부조달 등의 거래에서 주로 이용되던 경매방식이 국가정책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20세기 초 작은 대역 거리에서 무선 신호를 전송하는 데 성공한 이후로 물리학자들, 엔지니어들, 발명가들은 음성·데이터·비디오 신호를 전송하기 위해 전파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전파는 휴대전화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무선 데이터 네트워크, 아날로그 TV 방송, 무선 전화기, 레이더, 전자레인지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한국에서 전파는 인공적 매개물이 없이 공간에 전파하는 3000GHz보다 낮은 주파수의 전자파라고 정의된다. 주파수는 헤르츠 또는 초당 사이클로 측정된다. 1 헤르츠는 1초에 1 사이클이다. 가장 일반적인 무선 주파수인 텔레비전, 라디오,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주파수는 초당 100만 사이클 또는 메가헤르츠 단위로 측정된다. 주파수는 다양한 사업자가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대상이고, 정부 입장에서는 적절한 가격을 받으면서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동통신 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어떻게 이 모든 공중 송신이 뒤엉키는 간섭을 피하고 진행될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전파를 이용한 방송을 원하는 모든 기업이나 개인은 연방통신위원회(FCC)로부터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FCC는 서로 다른 유형의 무선 기술인 AM 라디오, 휴대폰 신호, 텔레비전 방송, 기타 채널에 서로 다른 주파수 범위를 할당한다. 예를 들어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시작하면서 특정 무선 주파수에서 작동하려면 FCC에 면허를 신청하고 구입해야 한다. 1994년 이후 FCC는 전자파 주파수의 가용 주파수에 대한 면허를 경매에 부쳤다. 기획사는 익명의 경매는 경쟁을 늘리고, 돈을 더 모금하며, 다수의 구매자 간의 불공정한 담합이나 밀약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정했다.

혹시라도 있을 담합이나 기타 부작용이 생겨서는 안 되기에 경매 제도를 설계하기는 쉽지 않다. 주파수 경매는 방송통신용 전파(주파수) 이용 면허를 가장 비싼 값을 부르는 사업자에게 주는 할당 체계이다.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입찰을 반복하는 ‘동시 오름차순 경매’가 일반적이다. 전문용어로 동시다중라운드(Simultaneous Multiple Round Auction) 방식의 주파수 경매라 하는데, 동시에 각 주파수 대역별로 여러 라운드 입찰을 진행해 하나의 입찰자가 남을 때까지 경매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특정 대역에 대한 최고가 입찰자가 정해지면 그 이후 라운드부터 다른 대역에 입찰할 수 없도록 해 낙찰자가 되고도 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걸 피할 수 있도록 했다.

1994년 미국이 이들의 경매이론을 도입해 주파수 경매를 했으며 이후 다른 국가에서도 이 방식을 뒤따랐다. 한국은 오랜 준비 끝에 2011년 8월 처음으로 주파수 경매를 치렀다. 주파수 1.8GHz 대역 내 폭 20MHz를 두고 이동통신 시장 1, 2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 KT가 격돌해 관심을 모았다. 승자는 SK텔레콤이었다. 9950억원을 내고 2021년까지 10년간 주파수를 쓰게 되었다. KT는 대신 800MHz 대역 내 폭 10MHz를 2610억원에 확보했다. LG유플러스도 2.1GHz 대역 면허를 4455억 원에 사들였다.

윌슨 교수는 완전 경쟁시장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는 전통적인 시각에 의문을 품고, 오히려 소수의 경쟁기업 간에 전략적인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형성 과정에 관심을 뒀다. 밀그롬 교수는 주파수 경매의 초기부터 참여해 최근까지 제도 설계에 큰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도출했다. 밀그롬은 경매이론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현실 참여를 통해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낸 주역이다. 밀그롬과 윌슨이 고안한 새로운 경매방식은 미국 무선주파수 경매는 물론 라디오 주파수, 전기, 천연가스, 이산화탄소 배출권 경매 방식에도 활용되고 있다. 항공기 이·착륙 권리와 같은 무형의 상품과 서비스도 경매에 부칠 수 있게 됐다.

노벨경제학자에게 배우는 은밀한 교훈

이번 노벨경제학 수상은 경제학이 이론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고 분석할 수 있다. 경제학이 이론을 넘어 현실과 접목되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경제이론가는 경제모델을 만들어서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을 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논문이 현실을 반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전통 경제학이 가정하는 완전 경쟁시장이나 인간의 합리성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인간의 합리성 한계를 인지한 행동경제학이 인기를 얻으면서 경제학의 지평이 넓어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두 학자는 경매와 관련한 이론을 넘어 현실 적용을 중시했다. 이전엔 1개 아이템을 가지고 진행하는 경매 이론만 있었지만, 두 학자는 여러 개 아이템을 동시에 경매했을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이론화했다. 예를 들어 유명 포도주를 1병만 경매할 때는 기존 경매 이론으로도 시장 특성과 참여자 행동 방식에 대해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포도주를 여러 병 경매할 때는 1병씩 팔아도 되고 3~5병으로 묶어서 팔아도 되는 등 여러 경우의 수가 생긴다. 두 학자는 이러한 현실적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경매할 방안을 연구했다. 실제로 그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획기적 방식의 수많은 경매 형태가 탄생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마련된 국유자산은 정부가 관리하고 운영하여 책임지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통신(KT의 전신)을 국영기업으로 운영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상황은 언제든지 달라질수 있다. 정부가 공공재, 국유자산인 주파수를 경매 방식을 통해 파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그래야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다. 환경오염 문제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경매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볼 때 경매이론의 적용 가능성은 미래에도 얼마든지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의 배출 감축을 위한 시장 기반 정책수단이다. 이 제도는 일반적으로 원칙에 기초해 운영된다. 정부가 경제 주체들을 대상으로 배출허용 총량을 설정하면, 대상 기업체는 정해진 배출허용범위 내에서만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 즉 배출권을 부여받게 된다. 배출권은 정부로부터 할당받거나 구매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경매가 이용될 수 있다.

밀그롬 교수를 기억하는 제자들은 그가 어려운 이론을 쉽게 풀어 설명을 너무 잘해 매번 강의 능력에 감탄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기후변화가 지구촌 최대의 이슈가 된 지금 우리는 경매이론을 다시 들여다보며 경제학의 현실과 미래를 조망하게 된다. 옥션을 통해 주파수 시장이 형성되고 인터넷이 개발됐다. 이후 이베이 등 검색엔진이 시장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옥션이 여러 가지 경제활동을 통합시킨 디지털 소통 창구였던 셈이다.

사제는 빛났다. 스승은 추측에 주로 의지했다지만 겸손했고, 제자가 매우 정확했다고 치켜세운다. 스승이 만든 주파수 경매 디자인은 제자가 집어넣은 매우 혁신적인 요소에 실제 많이 의존했다. 스승은 전통적인 경매 이론가였으나 제자가 경매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매우 혁신적이었기에 서로 보완이 되었다. 스승은 제자가 상자 밖에서 생각하고, 매우 혁신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우리는 진정 그들처럼 아름다운 사제 간의 미덕을 대학에서 발휘하고 있을까? 학자라는 라이선스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야말로 노벨경제학상이라는 라이선스를 진정으로 쟁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울산 경제부시장이다.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식탁 위의 경제학자들][명작의 경제][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등이 있다.

1557호 (2020.11.02)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