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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한국 경제에 긍정적 시선과 탄력 받은 원화 강세 

 

환율 전망에 부화뇌동 말고 보유 목적 되새겨야

오를 때는 요란했지만, 내릴 때는 시나브로였다. 환율은 그렇게 지난 몇 달간 슬그머니 조금씩 내려왔다. 눈치를 챘을 때는 많이 내려온 후였다. 머뭇머뭇하다 초조해진 사람들이 생겼는데, 시기별로 몇 가지 포인트가 있었다.

먼저, 환율이 하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꽤 오래전이다. 코로나19 창궐로 금융시장이 혼비백산하던 3월, 미국의 연준은 금융시장이 정신을 다시 추스르도록 달러화 유동성을 폭넓고 화끈하게 공급했다. 그렇게 환율 하락이 시작될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 하지만 문제는 급속히 달러화 유동성이 경색되었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원인 유발자였던 코로나19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광범위하게 퍼질지,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남길지 정보가 부족했다.

8월 본격화된 위안화 강세 배경은 코로나19 선방


연준의 정책이 달러화를 안정시키면서 가치를 하락시켜도 시장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달러화를 대신할 매력적인 통화가 없었던 것이다. 환율은 상대 가격이기에, 환율의 방향성이 형성되려면 혼자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모든 자산들이 단기간에 급락했지만 투자자들이 패닉에서 벗어나 자산을 저가에 매수하려 했을 때는 가장 유동성이 좋고 믿음직한 달러화 자산이 우선 순위였다. 기술을 선도하는 미국 주식이나 미국채가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며 원달러 환율은 코로나19 창궐 후의 상승폭을 되돌렸지만, 달러화 자산을 매도해서 환율이 하락한 것이 아니라 유동성 경색이 완화되는 과정이었다.

5월에는 손발이 안 맞아 전전긍긍하던 유럽에 호재가 생겼다. 유로화는 급등했고 외환시장 전반에 달러화 약세 흐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암울한 글로벌 경제 전망으로 한국 경제의 수출 전망도 불투명했기에, 시장참가자들은 원화를 매수할 유인을 느끼지 못했다. 유로화의 초강세가 글로벌 경제의 선순환 과정에 동반된 것이라면 원달러 환율도 하락할 수 있는 변수이지만, 유럽 내부의 정책 변수였던 탓에 미치는 힘이 미약했다.

6~7월 외환시장을 달군 유로화의 초강세는 8월을 지나며 일단락되었다. 디플레이션에 근접할 만큼 저조한 유로존의 물가를 우려하여, 유로존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제동을 걸었다. 유럽 호재에 흥분했던 시장의 관심이 그렇게 유럽에서 멀어졌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1994년 단일환율제라는 외환체제 개혁으로 위안화의 명목가치를 단번에 57%나 절하한 뒤 수출이 급성장하던 중국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덮치자,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서둘러 내수 확대 정책으로 전환했던 경험이 있다. 이번 위기에도 당시의 방식을 따를 필요가 있었다.

글로벌 수요 부진이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황에, 미국은 중국과 디커플링을 외치며 동맹국들에 같은 대오(隊伍)에 설 것을 독려하니 중국의 수출 전망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돌파구는 내수 활성화에서 찾아야 했기에 5월 중국 지도부가 내수활성화에 방점을 둔 쌍순환 개념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커진 내수 시장은 지지대가 됐고, 2020년은 중국의 ‘전면적 소강(小康) 사회 건설’을 완수해야 하는 해이기에 빈곤 탈피에 힘을 실어야 하는 정책 목표에도 부합했다.

마침 몇 년 전부터 주식과 채권의 주요 벤치마크 지수에 중국 주식·채권이 포함되며 글로벌 자본까지 중국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 독립적인 통화정책, 환율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불가능한 삼위일체(trilemma)’ 틀에서 볼 때도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신중한 중국 통화정책과 글로벌 자본의 유입으로 인해, 위안화 가치가 자연스럽게 상승하며 위안달러 환율은 하락했다. 하지만, 위안화 가치가 상승하기 시작한 6월 이후에도 시장은 중국 경제 및 위안화 강세의 지속성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생산은 정상화되었지만, 소비 회복은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중국이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고 의문점들을 하나 둘씩 지워가며 중국 경제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이 형성되었고 8월부터는 위안화 강세가 본격화됐다. 그 와중에 중국 경제와 밀접한 한국도 방역이나 경제적 측면에서 선방하자, 9월부터 위안화 강세를 업고 원화 가치 상승(환율 하락)이 탄력을 받았다.

중국 경제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인 시기에는 경험적으로 한국에 대해서도 긍정적 시각이 형성되는데,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실제, 한국의 3분기 성장률은 시장 기대를 뛰어넘어 직전 분기 대비 1.93%(속보치) 상승했는데,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수출 품목의 개선세(15.6%)가 뚜렷했고 설비투자도 6.7% 증가하여 민간소비의 부진을 만회했다. 한국에 긍정적인 시선이 형성되자, 원달러 환율만 하락한 것이 아니라 상대 통화를 불문하고 대부분의 환율이 급락한 것이 최근 환율 하락 국면의 특징이다. 위안화만 예외다.

달러화 외에 다른 통화들의 환율이 하락한 배경에 대해서도 의아해하는 시선이 많은데, 원인은 원화의 강세다. 유로존의 팬데믹(pandemic) 회복 기금 호재가 묻혔고, 안전자산인 엔화도 묻혔으며 노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로 공방중인 파운드도 밀렸고,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의 호된 보복에 직면한 호주달러도 밀렸다. 모두 원화 강세 때문이다.

중국을 향한 긍정적 시선이 원화에도 영향

외화를 보유한 입장에서는 초조한 시기이지만, 9월부터 역외 세력들이 원화 강세를 주도하고 있어 여전히 환율 하락 리스크를 의식해야 한다. 특히, 주식이나 채권 자본의 유입을 동반하지 않고 단지 외환시장에서 원화 강세 방향성에만 베팅하는 투기적인 세력의 움직임에, 우리 외환당국도 적절한 시기에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환율에 민감한 경제주체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한국이 채택한 자유변동환율제의 제도적 특성상, 당국에게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절세를 고민하는 기업이라면 연말이 오기 전에 보유한 달러화를 일부 처분하면 그만큼 절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보유함으로써 생기는 연말 결산시 외화의 평가(환산) 손익은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을 감수하며 달러화를 매도함으로써 손실을 확정하면 세무상 비용으로 인정된다. 환율이 다시 반등해 주지 않는다면 수출 기업이나 달러화 보유자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 다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유동성 좋고 가장 신뢰하는 달러화를 보유한 개인이라면, 시장의 환율 전망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보유 목적을 되새겨야 하는 시기다. 미국 대선도 단기적 영향에 그칠 수 있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1558호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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