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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근영의 팝콘 심리학] 영화 ‘엑시트’가 보여준 한국 청년의 자화상 

 

어떤 세대보다 작은 기회에 치열한 경쟁… ‘꼰대의 6하 원칙’에 상처받기도

▎2019년 7월 개봉한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 사진:CJ엔터테인먼트
2019년에 개봉한 ‘엑시트’는 지난해 가장 성공한 영화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재난과 코미디라는 어울리지 않을 두 요소를 절묘하게 조합해서 스릴과 통쾌함, 그리고 재난에 관한 유용한 정보까지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영화를 요약하자면 젊고 유능한 두 청춘 남녀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발휘해서 사상 초유의 테러로 인한 재난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그 능력은 바로 대학시절 암벽등반 동호회 활동을 통해 쌓은 등반과 생존기술 등이다. 흥미로운 건, 이들은 오래전부터 이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이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거나 인정해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평상시 구석진 곳에 처박혀 있던 인물이 비상사태를 만나 숨겨왔던 능력을 발휘해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전개는 재난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이고, 이 영화도 이를 충실히 따랐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 이런 상투적인 공식을 넘어서는 진정성이 담겨있기에 성공을 거두었으리라.

규범적이고 교육수준 높은 한국 청년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영화 중반, 두 주인공이 천금 같은 구출 기회를 옆 빌딩의 어린 학원생들에게 양보하는 대목이다. 이들은 이미 가족 혹은 고객을 위해 자신의 기회를 양보한 바 있다. 그 이후에 그들은 기지와 순발력으로 온갖 난관을 극복해가며 마침내 구출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구조헬기가 자신들을 발견해 접근하는 동안, 이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엉엉 운다. 이 구조의 기회를 아이들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감이나 용기가 있어서 양보한 것은 아니다. 독가스는 점점 높이 차오르는 상황, 더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어쩌면 다시는 구조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목숨이 걸린 기회를 양보한다. 이 선택으로 인해 자신들은 죽을 수도 있음을 알기에 울음이 터진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어린아이들을 눈앞에 두고 자기들이 먼저 구조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론 보도만 보자면 우리나라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심각하고 흉악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 반대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청소년 범죄가 심각했던 시기는 90년대까지였다. 당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범죄들이 저질러졌고 사건의 빈도도 사회의 안정을 위협할 만큼 높았다. 97년에 제정된 ‘청소년 보호법’에는 미성년자에게 부탄가스와 본드를 팔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가스와 본드 남용이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 청소년 범죄에 혀를 차는 기성세대가 가장 험악한 청소년이었다는 얘기다. 지금도 한국 부모들이 자녀의 게임중독을 염려하는 동안, 외국에서는 청소년들의 약물남용과 각종 강력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고등교육을 이수한 비율이 높다. 그리고 가장 규범적이기도 하다. 한국의 치안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안정되어 있음은 다들 아실 것이다. 서울처럼 밤거리를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이런 치안 수준은 청년들의 낮은 범죄율에 크게 기대고 있다.

연령대별 범죄율 통계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16~24세 사이의 남자가 범죄의 주류를 이룬다. 이 비율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급격히 감소한다. 반면 한국은 전체 범죄율 자체가 OECD 가입국 중에서 가장 낮다. 무엇보다 청년층이 범죄의 주류가 아니다. 절도범은 미성년자와 노년층에서 가장 높고, 폭력 범죄는 19세 전후로 가장 높지만, 그나마도 45세에서 50세 연령대의 범죄율보다 약간 높을 뿐이다. 그러니 한국의 청년들이 규칙을 잘 지킨 덕분에 우리 사회의 범죄율이 낮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현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이 질병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청년층 덕분이다. 최근 할로윈 이벤트와 함께 무책임한 청년들이 비난받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정당한 비난인지 의문이다. 코로나19의 치명율은 30세 이하에서 ‘제로’다. 비록 후유증이 있다지만, 젊은이들은 병에 걸려도 위중해질 가능성이 적고 대부분 쉽게 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방역정책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자신들의 일자리가 제일 먼저 없어지고, 공부하거나 여가를 보낼 곳도 다 폐쇄되는 와중에도 이들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정부의 지침을 따른다. 청년들이 방역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유럽과 미국에서 팬데믹이 어떤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지 살펴보면, 우리는 청년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청년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선 모든 기준이 이들에게만 높아졌다. 매년, 내가 일하는 연구기관에서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마다 나는 세대 격차를 실감한다. 내 학력은 신촌의 한 대학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곳에서 십여 년을 지내며 박사학위까지 받은 것이 전부다. 유학은커녕, 어학연수 경력조차 없다. 2005년 나는 이 자격만으로 지금 직장에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이유는 당연히 높은 경쟁률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여러 편 출판한 젊은 학자들도 채용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직장은 소위 ‘꼰대’들이 물을 흐린다. 그들은 21세기에 적절한 상식이나 매너를 갖추지 못한 채로 조직이나 사회의 위계 구조에 기대어 타인, 특히 하급자나 초심자에게 불합리한 요구를 강제한다.

꼰대의 6하 원칙(5W1H principle)은 이들의 행태를 잘 묘사한다. 여기서 Who는 “내가 누군 줄 알아?”이고, What은 “니가 뭘 안다고?(너는 아무것도 모른다)”이며 Where는 “어딜 감히?”이고, When은 “나 때는 말이야”, How는 “어찌 감히 나한테?”이며, Why는 “내가 그걸 왜?(알아야 하느냐, 해야 하느냐 etc.)”이다. 즉, 이들은 권위에 기대 불합리한 요구와 주장을 일삼지만 책임과 역할은 기피한다.

요약하자면, 한국사회의 청년들은 가장 과소평가된 집단이다. 이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정보를 두고 있으면서 그 어떤 세대보다 더 적은 기회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일탈하기보다는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영화 [엑시트]는 이렇게 인정받지 못한 성실한 청년들의 초상이다.

※ 필자는 심리학 박사이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연세대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를, 온라인게임 유저 한·일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험인간], [심리학오디세이], [팝콘심리학], [무심한 고양이와 소심한 심리학자] 등을 썼고 [심리원리],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1559호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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