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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투자자는 경제 흐름의 냄새를 가장 먼저 맡는다” 

 

스타트업 생태계, 코로나19 이겨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가속화에 대응해야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프라이머는 초기 창업자가 투자를 받고 싶은 대표적인 액셀러레이터로 꼽힌다. 요즘 주목을 받는 스타트업인 커뮤니티 기반의 패션·뷰티 커머스 ‘스타일쉐어’, 가이드와 여행객을 중개하는 온라인 플랫폼 ‘마이리얼트립’, 부동산 실거래가 조회 플랫폼 ‘호갱노노’, 핸드메이드 작품을 살 수 있는 장터 서비스 ‘아이디어스’, 유기농 생리대로 미국 아마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라엘’ 등에 프라이머가 초기 투자했다. 2010년 1월 한국 최초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 설립 후 현재까지 189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프라이머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외부 자금 없이 파트너의 자금으로만 투자한다는 것. 현재 프라이머에는 김상현 전 네이버 대표, 김대영 슈피겐코리아 대표, 오치영 지란지교 창업자, 배기홍 스트롱벤처스 공동대표 등 13명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와 투자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경영 현장에서 얻은 인사이트와 경영 노하우를 후배 창업가에게 제공하고 있다. 권 대표가 “VC는 자금으로 스타트업을 도와주는 것이라면, 액셀러레이터는 창업가가 좋은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본지가 실시한 온라인 설문 조사 ‘스타트업 투자자 20명이 진단한 한국 경제’ 결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11월 말 권도균 대표를 만났다.

미국 경제에서 실리콘밸리의 역할 비중 높아

많은 액셀러레이터가 정부의 모태펀드나 정책자금, 기업자금 등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프라이머의 행보는 놀랍다. 외부 자금을 받아 투자하게 되면 투자사의 이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우스(업계에서 액셀러레이터나 VC를 일컫는 말) 고유의 특성과 투자 철학만 고집하기도 어렵다. 또한, 장기 투자는 더욱 어려워진다. 외부 자금으로 투자하면 4~5년 동안 투자를 하고 이후 2~3년 안에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프라이머는 권 대표와 구성원의 투자 철학을 유지하고,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권 대표는 “투자자도 경영자들처럼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돈을 대주겠다는 기업도 많지만 일절 받지 않는 것은 액셀러레이터 본질에서 벗어날 우려 때문”이라며 “우리는 후배 창업가를 이해하는 선배 창업가들의 자금만 받기 때문에 투자를 한 후에도 오래 기다릴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직접 창업을 하고 엑시트(자본 회수)까지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고집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아자동차와 데이콤연구소 등을 거쳐 1997년 이니텍을 시작으로 5개 회사를 연쇄 창업했다. 2008년 이니텍과 이니시스를 3000여억원에 매각해 엑시트에 성공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경험해보고 싶은 행보다.

권 대표는 성공스토리를 쓰는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후배 창업가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1년에 1000여 팀이 프라이머에 지원하는 이유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흐름이 한국 경제에 시그널을 줄 수 있나?

“아직은 한국 경제 흐름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지금 스타트업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10년 혹은 20년 후에 한국 경제에 희망이 없다. 닷컴 열풍이 불 때도 ‘거품’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그때 씨를 뿌려서 모바일이나 IT, 바이오 쪽에서 세계와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미 실리콘밸리는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나. 코로나19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가속화되고 있다. 스타트업이 한국 경제의 선두에 설 것이다. 투자자는 이런 흐름의 냄새를 가장 먼저 맡는 사람들이다. 가장 늦게 냄새를 맡는 곳이 대기업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초기 스타트업 투자자로서 어려운 점은?

“프라이머의 경우 큰 변화가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에 투자를 줄이거나 투자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하던 대로 했다. 정부 정책과 지원 덕분에 오히려 VC는 투자 환경이 좋았을 것이다. 경제 역사를 보면 다 망할 것 같은 상황도 회복이 되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설문 결과 스타트업 생태계의 타격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뭔가?

“정부 부양책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정부는 투자업계뿐만 아니라 스타트업도 많이 지원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스타트업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줄이면서 민간 생태계가 자생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정책 효과 발휘

핀테크, 모빌리티 등 몇 년 전만 해도 투자가 집중되었던 분야에 투자자의 관심이 줄었다.

“규제 때문일 것이다. 타다금지법이나 핀테크 기업이 규제 때문에 발목이 잡히는 것을 보면서 관심이 줄었다. 타다의 경우 법을 바꿔서라도 운영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은 투자를 어렵게 한다. 여전히 핀테크와 모빌리티 분야는 큰 시장이지만, 투자자들은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커머스 분야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았다.

“이커머스 시장은 성숙기에 들어섰다고 판단한다. 이제 신세계나 롯데 같은 대기업이 들어와도 쉽지 않은 분야가 됐다. 작은 스타트업 역시 독특한 자기만의 무기가 없으면 뛰어들기 어렵다고 본다.”

DH의 배달의민족 인수는 어떻게 예상하나?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서 예상하기 어렵다. 다만 공정위는 독점의 우려가 있을 때가 아니라, 독점의 징조가 보일 때 대처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한국 스타트업에 1000억원, 2000억원 투자를 하거나 배민 규모의 딜은 국내 투자사가 하기 어렵다. 배민처럼 대규모의 엑시트가 이뤄져야 해외 기업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배민과 같은 엑시트 사례가 있어야 그런 규모의 딜이 또 생길 수 있다. 사례가 나오는 게 중요하다.”

내년에도 코로나19의 영향은 지속할 것으로 보나?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그 영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만큼 임팩트가 컸다. 그렇지만 내년이 되면 사람들은 일상으로 되돌아가려고 할 것이다. 그동안 움츠려있던 여행 같은 분야는 대폭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마이리얼트립은 세계적인 기업이 될 것이다.”

-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1564호 (20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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