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약세에 대한 기대는 유효하나 실제 거래는 신중해야
▎코스피가 이틀째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12월 21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0원 오른 1102.7원에 마감했다. / 사진:연합뉴스 |
|
아이작 뉴턴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비상한 지적 능력을 투자의 세계에까지 뻗쳤다. 손실을 봤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뉴턴은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금융 버블의 역사에서 단골로 회자되는 남해회사(The South Sea Co.) 버블의 희생자였다. 한때 남해회사 주식을 매입가의 두 배에 팔아 큰 이득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매도 이후에도 주가가 솟구치자 다시 거액을 투자했다가 속된 말로 상투를 잡았다.반면, 케인스는 경제학계에 새긴 눈부신 족적만큼 투자에서도 크게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뼈아픈 좌절이 있었는데, 처음 손을 댔던 외환 거래에서였다. 당시 그는 영국 재무성을 대표하여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을 향해 프랑스를 위시한 승전국들이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하는 과정에서 베르사유 조약 등에 참여했고,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는 독일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배상금은 결국 후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케인스에게서 얻는 교훈케인즈는 1차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프랑스의 강경한 입장에 비판적이었다. 1919년 저서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서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교묘하게 중부 유럽(독일)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면, 감히 예견하건대, 머지 않아 복수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로부터 50년 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했던 프랑스가 알사스-로렌 지방을 잃고 배상금까지 떠안았던 굴욕에 대한 앙갚음으로, 독일 경제를 아예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 케인스의 주장이었다. 그의 경고는 결국 나중에 2차 세계대전으로 현실이 되었다.어쨌든 케인스는 자신이 경고한 취지를 그대로 투자에 연결했다. 독일 마르크화를 매도한 것이다. 당시 독일 제국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비용 조달을 위해 금본위제도를 포기하고 채권 발행을 남발하면서 일찌감치 인플레이션이 시작됐다. 그리고 패전 후의 막대한 전쟁 배상금이 결국 그 유명한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1923년 마르크화가 완전히 붕괴되면서, 케인스의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케인스는 웃지 못했다. 돈을 빌려 투자한 것이 독이 됐다. 그 이전에 1920년 마르크화가 반짝 반등했을 때 이미 그의 자산이 거덜났던 것이다.돈을 빌려 투자하는 레버리지 투자는 수익이 생기면 이익률이 커지고, 손실이 생겨도 증폭된다. 따라서, 손실이 생겼을 때 원본이 완전히 소실되기도 쉬워 만회가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게다가 통화가치는 장기적 추세가 형성되더라도 단기적으로 예측불가의 변칙적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레버리지에 투자한 많은 사람이 실패로 귀결되듯 그 역시 레버리지의 제물이 된 것이다.케인스의 투자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일까.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는 사람은 예외로 하고,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는 과도한 부채라는 인식을 재확인할 것이다. 또 하나 시사점이 있다면 환율 방향성에 대한 투자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뚜렷해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확신을 가지면 위험하다. 외환시장이 어디로 튈 지는 장담할 수 없다.통화가치는 개별 기업 주식과 달리 본질적으로 내재가치를 추정할 수 없다. 엮인 거래도 너무나 많다. 전세계 주식과 채권, 원자재, 부동산을 향하는 자금이 국경을 넘어 거래되면 모두 외환거래를 거쳐야 한다. 서로 다른 수요와 목적을 지닌 자본이 서로 다른 길을 향하며 교차한다. 시장참가자들의 심리가 개입되고 각국 정책 당국의 의도, 국제적 역학관계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더구나 환율은 주가와 같은 절대 가격이 아니라 통화가치의 상대 가격이다. 환율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을 실제 거래로 연결할 때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한두 차례 환율 방향성에 베팅해서 이익을 얻었다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비상한 능력을 가졌던 케인스까지 굴복시켰던 것이 통화가치에 대한 베팅이다.원달러 환율이 12월 첫 주까지만 해도 무섭게 하락하면서 연저점을 거듭 다시 쓰자, 비교적 짧은 시간에 경제 주체들 사이에 환율 하락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는 듯 했다. 하지만, 달러당 1080원을 위협했던 환율은 12월 7일을 기점으로 이후 오히려 반등해 1100원선을 회복하기도 했다.가장 큰 배경은 역설적으로 올 하반기 원화 가치의 상승폭, 즉 환율 하락폭이 컸던 데 있다. 많은 기관투자자들에게 연말을 앞두고 차익을 실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당선 윤곽이 드러난 11월 4일 이후, 원달러 환율 하락폭과 코스피 상승폭이 월등했던 만큼 글로벌 자본이 한국 원화 자산에서 차익을 실현할 유인이 있었다.
연말 달러화 반등의 해석11월 들어 한국 기업 주식을 무섭게 쓸어 담던 외국인들이 11월 마지막 거래일에 MSCI 지수의 정기 비중 변경으로 일간 기준 사상 최대의 순매도 금액인 2조4000억원을 쏟아냈다. 이런 이벤트는 일회성이었지만, 그 이후로도 코스피에서 꾸준히 순매도 포지션을 유지하며 차익을 실현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는 자본들이 많았다면 기계적으로 한국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일부 정리하면서 원화를 팔고 달러화를 다시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하반기 원화 강세에 베팅했던 헤지펀드 등 투자자들도 같은 맥락에서 차익을 실현하고 외환시장에서 발을 뺀 것으로 보인다. 연말을 앞두고 환율이 슬금슬금 올라갔던 이유다. 이 밖에 영국의 변종 코로나19 출현 소식이나, 한국의 백신 확보 실패 등도 일부분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원화 강세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시선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반하는 움직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 필자 백석현은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