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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도 ‘배출가스 제로’ 아니다] 다가오는 LCA 규제… 전비 높이고, 배터리 생산과정 배출 줄여야 

 

BEV 전환 방향성 바꾸진 못해… 한국은 2024년부터 본격 논의

많은 자동차 제조사는 순수전기차(BEV)에 대해 ‘제로 에미션’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연료를 연소시켜 이산화탄소(CO2)를 발생시키는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차는 주행 과정에서 배출가스를 내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분간 전기차에 ‘제로 에미션’이라는 표현을 붙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기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CO2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생산과 폐기 과정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주기에서의 배출량을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온다.

LCA 기반 규제 도입 선언한 EU

유럽위원회는 지난 2019년 새로운 자동차 환경규정을 발표하며 2023년까지 LCA(전생애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를 기반으로 한 규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명시했다. 현재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선 ‘총배출량 규제’를 통해 자동차가 달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CO2를 제한하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자동차가 만들어져 운행되고 폐기되는 순간까지의 탄소발자국을 모두 규제하는 걸 목표로 한다는 얘기다.

규제도입이 예고되며 완성차업계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그간의 배출규제 충족도 어려웠는데, 신경 쓸 게 훨씬 더 많아졌다. 물론 LCA 규제를 도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LCA를 산출하기 위해선 수많은 데이터가 요구되는데, 모든 부품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배출량을 집계하고 표준화한다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 상황에서 규제 도입은 LCA의 분야 중에서 WTW(유정에서 바퀴까지·Well To Wheel)를 기반으로 먼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크다. WTW란 연료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과 자동차 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을 모두 고려하는 걸 말한다.

WTW의 개념을 적용하면 현재 전기차는 ‘제로 에미션’이 아니다. 화력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CO2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태양광·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기를 모두 주입한다고 가정해야 비로소 ‘제로 에미션’이 된다. 현재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수급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WTW가 적용되면 규제 대응은 어려워진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가 ‘탄소중립’을 추진하기 때문에 BEV는 WTW 관점에서도 장기적으론 ‘제로 에미션’에 수렴하게 되겠지만 당장의 규제가 문제다. 만약 현재 A사가 유럽에서 100g/㎞의 탄소를 배출하는 내연기관차 1900대와 BEV 100대를 판다면 이 회사의 평균 CO2 배출은 95g/㎞다. BEV를 100대(5%)만 팔아도 올해 유럽의 기준(97g/㎞)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는 BEV에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계산되는 평균 배출은 더 적다.

그런데 WTW 개념이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이 회사는 규제 달성이 불확실해진다. 1㎞를 주행하는데 필요한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50g의 CO2가 든다고 가정하면 WTW 개념상 A사의 평균 배출은 97.5g/㎞가 된다. 내연기관 연료 정유 과정에서 나오는 배출도 더해지기 때문에 그 수치는 더 늘어난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은 EU에선 전기차의 배출이 적지만 대부분의 발전을 석탄으로 하는 중국 등지에선 전기차가 고연비의 내연기관보다 오히려 더 많은 배출을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WTW를 기반으로 한 규제가 적용되면 자동차 회사들의 친환경차 보급 계획도 달라질 전망이다. 더 많은 BEV를 팔거나, 내연기관의 배출을 줄여야 한다. 전기차 개발 방향에서의 우선순위도 바뀐다. 기존에 중요했던 건 ‘1회 충전 주행 가능거리’였다. BEV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측면에서다. 해결방법은 쉬웠다. 대용량의 배터리만 탑재하면 그만큼 주행가능거리가 늘어났다. 그런데, WTW 규제가 적용되면 같은 양의 전기로 얼마나 더 길게 주행할 수 있느냐(전비)가 중요한 개발방향이 된다. 실제 일본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WTW 개념을 활용한 규정을 만들어냈는데, 여기서 BEV의 배출량은 ‘전비(Wh/㎞)’와 반비례하게 산정된다.

일각에선 WTW 규제 아래선 BEV보다 하이브리드차(HEV)를 확대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다만 환경 전문가들은 ‘BEV’로 전환을 가속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본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WTW 개념을 적용한 규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BEV로 전환하는 속도를 늦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일부 단체들이 일부 잘못된 가정들을 통해 BEV의 친환경성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경우가 있는데, 글로벌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높이는 상황을 고려할 때 BEV의 보급이 가장 효율적으로 CO2 배출을 낮춘다는 인식은 각국 정부와 자동차업계에 이미 공유된 명제”라고 설명했다.

아직 규제의 방향성은 보이지 않지만 향후 완전한 LCA 규제가 도입되면 WTW보다 훨씬 큰 영향이 일어날 수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완성차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의 탄소 발자국을 추적해 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이호근 대덕대학교 교수(자동차학)는 “LCA 규제의 도입은 결국 전기차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국내 기업의 경우 유럽 현지 부품사와의 합작을 강화하고 로컬 소싱을 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O2 배출 높은 배터리 산업에도 영향

LCA는 BEV에 또 다른 요구를 하고 있다. BEV 생산 과정에서 CO2 배출은 내연기관차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부품인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적지 않은 CO2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배출을 낮추고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게 중요해진다.

일각에선 EU의 LCA 규제 도입 추진이 자국 내 배터리 산업의 육성을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해석한다. EU는 일반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배터리 강국들보다 재생에너지 발전 믹스가 높기 때문에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CO2가 적다. 최근 유럽 지역에서 배터리 공장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해외 공장 투자 결정에 있어 생산에 드는 비용과 자재수급·판매 과정에서 물류비가 최우선 고려 사항이었는데, 최근엔 LCA 측면에서 탄소배출 분석을 포함해 적절성을 따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아직 국내에선 LCA와 WTW 개념을 반영한 규제 계획은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 행정예고한 규제안(2021~2030년 온실가스 연비·기준)은 LCA 측면에 대해선 감안하지 않았다”며 “다만 2024년에 이뤄질 평가에서 LCA 측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3년 유럽의 규제 동향에 따라 한국에서도 LCA 개념을 바탕으로 한 규제가 현실화 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70호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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