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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 다가온 디지털보험의 세계] “생활밀착형·디지털보험 중심으로 발전할 것” 

 

퍼마일 자동차보험 1년 만에 10만명 모아... IT기기 활용한 상품 다양화 가능

지난해 2월 자동차보험 시장에 국내 최초로 ‘탄 거리만큼만 매월 후불로’ 내는 상품이 출시됐다. 한국에 처음 설립된 디지털 손해보험사 캐롯손해보험이 출시한 ‘퍼마일 자동차보험’이다. 상품 출시 1년 만에 1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모았다고 하니 성장 속도가 빠르다. 카카오도 디지털보험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보험은 말 그대로 보험의 전 영역을 디지털화 하고, 디지털 채널을 통해서만 판매하는 보험이다. 기존 보험사처럼 판매 조직을 따로 두지 않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흔히 말하는 인슈어테크(InsurTech)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디지털 보험사의 등장은 보험업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아보기 위해 퍼마일 자동차보험에 가입했다.

주행거리가 짧은 가입자에게 안성맞춤


▎캐롯 플러그와 스마트폰 앱을 통해 퍼마일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실시간으로 주행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 사진:캐롯손해보험
기자가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기간은 20년 정도. 초기에 추돌사고를 낸 이후 보험료가 올라갈 정도의 큰 사고는 없었다. 대부분 그렇듯 지인의 소개를 받은 보험설계사를 통해 자동차보험에 처음 가입했다.

별사고가 없었던 탓에 보험료는 조금씩 인하됐고, 5년 전 다이렉트 보험으로 가입하면서 보험료는 더욱 낮아졌다. 직전 부부한정 운전으로 가입했던 다이렉트보험료는 대중교통 및 티맵 안전운전 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경우 40만원대로 낮출 수 있었다. 당시 조금 더 저렴한 다이렉트보험이 있는지 찾았을 때 한 상담사가 “그 정도 보험료면 정말 낮은 수준”이라고 칭찬(?)을 받을 정도였다.

퍼마일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는 방법은 다이렉트 보험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스마트폰 앱을 다운로드받은 후 인적사항과 차량번호 및 본인인증을 거친다. 이후 부부한정 특약 등 운전자 범위를 지정하고 1년 동안 주행할 거리를 최대 2만4000㎞ 내에서 지정하면 연간 예상 보험료를 받게 된다. 운전거리를 늘릴수록 보험료는 올라간다. 1년 7000㎞ 주행을 정하니 기존 다이렉트보험보다 10만원 정도 저렴했다. 이후 8000㎞, 9000㎞, 1만㎞ 등으로 주행거리를 높이니 기존 보험료와 차이가 줄어들었고, 1만1000㎞를 선택하자 기존 보험료보다 높아졌다. 퍼마일 자동차보험은 주행거리가 짧은 이들이 보험료를 낮출 수 있는데 안성맞춤이다.

퍼마일 자동차보험의 보장 내용은 기존 자동차보험과 비슷했다. 대인배상1부터 대물배상, 무보험상해, 자차손해 등의 보장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보장금액은 가입자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다이렉트 보험과 비슷하다. 1년에 5번을 이용할 수 있는 긴급출동서비스부터 간병비지원, 차량단독사고 손해보상 등의 특약도 가입자가 고를 수 있다. 캐롯손해보험 관계자는 “가입자가 가장 신경쓰는 게 사고가 났을 때 보험사의 대처가 빠르냐인데, SK스피드메이트와 계약을 맺고 있어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료는 연 납입과 월 납입에서 선택할 수 있다. 연납입도 1년에 주행거리를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월 납입은 말 그대로 매월 주행거리당 보험료와 주행거리를 곱하고, 여기에 기본 보험료를 더해서 정해진다. 기자에게 적용된 ㎞당 보험료는 20원이 채 되지 않았다. 거리당 보험료는 가입자의 나이와 운전 경력, 그리고 차량의 종류 등에 따라 달라진다.

퍼마일 자동차보험은 주행거리가 보험료를 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캐롯 플러그라는 IoT 기기가 해결사였다. 캐롯 플러그는 퍼마일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 받게 된다. GPS가 적용된 기기로 자동차 시가잭에 꽂아 사용한다. 캐롯 플러그를 통해 가입자의 주행거리 데이터를 보험사가 받게 되고, 이를 통해 매월 보험료를 산정하게 된다.

퍼마일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후 집으로 배송된 캐롯 플러그를 사용했다. 마트 등을 이동한 후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뜬 주행거리와 캐롯 플러그를 통해 계산된 주행거리를 비교했다.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캐롯 플러그의 또 다른 장점은 가입자가 자신의 주행거리를 스마트폰 앱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주행거리를 조절하는 가입자들도 생겼다고 한다. 캐롯손해보험 관계자는 “주행거리에 비례해 보험료가 산정되기 때문에 퍼마일 가입 후 주행거리를 신경 쓰는 이들이 많다”면서 “가까운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의 노력을 하게 된다. 자동차의 주행거리가 짧다는 것은 사고 위험이 줄어드는 것이고 또 환경보호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한다는 부가적인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캐롯 플러그에 있는 SOS 버튼을 누르면 보험사와 빠르게 연결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 전화번호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캐롯 플러그를 악용하는 가입자도 있다. 쉽게 말해 캐롯플러그를 조작해 주행거리를 짧게 하는 것이다. 캐롯손해보험 관계자는 “우리도 이런 문제를 예상했고, 이를 방지하는 다양한 방안을 가지고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면 가입자에게 관련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보험 강점, 손해보험에 잘 맞아


기존 자동차보험은 평균 주행거리만 반영해 보험료를 산정한다. 주행거리가 짧은 가입자가 손해를 보는 구조다. 퍼마일 자동차보험은 기존 보험방식에 대안을 제공했다. 기존 보험사에는 없는 틈새 보험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생활밀착형 보험 서비스에서 디지털보험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분석하는 이유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생명·연금연구실 실장은 “디지털보험은 고객이 잘 알고 있거나 가입하는데 부담이 없어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일반적으로 생명보험 상품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접 골라서 가입하기 어렵지만, 자동차보험이나 펫보험 같은 생활밀착형 보험은 고객이 직접 선택하는 데 부담이 없다”고 설명했다.

IT 기술의 발전은 디지털 보험사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다. 캐롯 플러그는 GPS가 적용된 IoT 기기다. 기존에 있는 기술을 보험에 적용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자동차 타이어 및 엔진오일 교체 등의 소모품 교체시점을 알 수 있다. 자동차 정비소와 연결할 수 있는 마케팅까지 가능하다.

만일 건강관리에 필수기기가 된 스마트워치를 보험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개인별 맞춤 건강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헬스케어 시스템을 통해 고객에게 맞는 솔루션도 제공할 수 있다. 여기에 헬스케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스마트홈 기기를 보험에 적용하면? 다양한 집안의 위험을 고객에게 미리 알려줘서 사고를 방지하거나 짧은 시간에 사고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보험사의 수익을 늘릴 수 있다. 보험사의 수익성은 고객의 사고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캐롯 플러그 같은 IoT 기기와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활용하는 보험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은 2010년대 초반부터 인슈어테크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 일찍부터 IT 기술을 보험에 접목했다. 2011년 설립된 메트로마일(Metromile)은 무료 무선장비를 통해 주행거리와 자동차 상태 진단 데이터를 고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Pay-per-mile’ 보험을 서비스하고 있다. 2013년 설립된 오스카(Oscar)는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결합한 건강보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도 Clover Health, Collective Health 등의 인슈어테크 기업이 IT 기술을 보험 상품에 접목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온라인 보험사 레모네이드(Lemonade)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보험금 지급을 3분 이내에 결정하고 있다. 구글은 오스카, 레모네이드 등 10여 개의 인슈어테크에 투자했다. 이외에도 영국의 OCTO, 브라질의 City Mile 등의 보험사도 IoT 기술이나 웨어러블을 활용하고 있는 보험사로 꼽힌다. 중국의 핑안보험그룹, 일본의 손보저팬 등도 디지털 혁신에서 성과를 내는 보험사로 꼽힌다.

美, IT 기기 결합한 인슈어테크 기업 성장 중

이에 반해 국내 보험사의 디지털 혁신은 더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험사는 그룹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별다른 변화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보험산업 전망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면 채널 영업환경 악화, 소비 여력 감소에 따른 보험 수요 위축 등이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보험사의 변화는 필수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생명보험은 2020년 2.5%에서 2021년 -0.4%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손해보험도 2020년 6.1%에서 2021년 4.0%로 성장이 둔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5월 보험연구원이 국내 보험회사 CEO 38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보험업계의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투자수익 감소(41%)’, ‘보험 수요 감소(23%)’를 꼽았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중점을 둬야 할 사안으로 ‘신성장 기반 조성(27%)’, ‘디지털 기반 확대(24%)’를 답했다.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틈을 노리고 디지털 보험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캐롯손해보험을 시작으로 하나손해보험, 카카오, 네이버, 토스 등이 디지털 보험사 설립을 진행 중이다.

특히 카카오는 지난해 12월 29일 금융위원회에 디지털 손해보험사 설립을 위한 예비인가를 신청해 올 하반기에 카카오 보험 상품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버는 지난해 7월 이사회를 통해 ‘NF보험서비스’ 법인 설립을 승인한 바 있다. 카카오페이 이성기 실장은 “보험시장은 양분화가 될 것”이라며 “컨설팅이 필요한 상품은 대면과 하이브리드 형태로 비대면화가 확대된다. 생활밀착형 보험은 ICT와 보험의 결합을 통해 디지털보험 중심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기존 보험사들도 디지털 혁신팀을 꾸리면서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교보생명·삼성생명·삼성화재·농협생명 등이 디지털사업부 및 본부 등을 결성하면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김규동 실장은 “2021년은 본격적으로 디지털 보험사가 나오기 시작하는 해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기존 보험사들이 변화를 서두르지 않았는데, 디지털 보험사의 등장이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1572호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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