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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 카드사, 속여서 가입시키고 환불은 막았다] 채무면제·유예상품 판매 중단 후에도 5년 수수료 6750억원 챙겨 

 

가입자 카드값서 매월 일정 비율 떼 가…“관리감독 강화해야” 지적

프리랜서 강민지씨(31)는 지난 1월 말 삼성카드로부터 107만원을 돌려받았다. 2015년 3월 입원 등 사고 시 카드값을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고객 혜택 상품이라는 설명에 무심코 가입했던 ‘채무면제·유예상품’이 사실 매달 1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까지 수수료를 떼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환불을 요청한 결과였다. 강씨는 “지난해 카드대금청구서를 확인하고야 6년 가까이 매달 돈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카드사 측에선 처음에 ‘소멸성 상품’이라 환불이 안 된다고 했다”면서 “무료로 알고 있었다고 불만을 제기한 후에야 환불됐다”고 말했다.

삼성카드 등 국내 대부분 카드사들이 2010년대 대대적으로 판매했던 채무면제·유예상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카드사들이 상품수수료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가입시키면서 불거진 불완전 판매 논란에 따라 2016년 판매를 중단했지만, 기존 가입자에 대한 서비스는 현재도 유지되고 있어서다. 특히 카드사들은 뒤늦게 가입 사실 및 수수료 납부 상황을 인지한 고객들의 해지·환불 요청에 항의 시에만 환불해 주는 등 차별 대응을 하고 있다. 강씨는 “환불 사례를 보고 불만을 표하기 전까진 환불이 없다고 했다”면서 “항의하지 않으면 돈을 못 받는다”고 했다.

소비자 상담 79.3%가 불완전 판매

현재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는 ‘채무면제·유예상품 환불’ 관련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수수료 환불을 받기 위해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에 대한 경험담들로, 지난 1년간 네이버에만 총 19건이 등록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 채무면제·유예상품 환불을 받았다는 박아무개씨(35)는 “새는 돈을 막기 위해 KB국민카드 카드대금청구서를 봤다가 채무면제·유예상품을 봤다”면서 “당초 해지만 진행했다가 인터넷을 보고 환불을 신청했고, 가입 당시 녹취록까지 확인한 끝에 환불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채무면제·유예상품은 카드사가 매월 회원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회원에게 사망·질병 등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카드 채무를 면제하거나 결제를 유예하는 상품으로, 일종의 보험에 해당한다. 2005년 삼성카드가 첫 선을 보인 후 2008년부터 롯데·BC·신한·하나·현대·KB국민카드 등이 일제히 상

품을 출시, 7개 전업 카드사가 모두 시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전화 판매를 통해 고객을 모집, 수수료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불완전 판매가 만연했다. 결국 금융감독원이 수수료와 납입 액수 명기를 의무화하는 등 관리감독을 강화하자 카드사들은 2016년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전문가들은 카드사 채무면제·유예상품 가입자 대부분이 불완전 판매에 따른 가입자일 수 있어 약관에 대한 설명을 재진행하고 해지 요청 시 항의 여부와 관계없이 환불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카드사가 판매를 중단하기 이전인 2015년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카드사 채무면제·유예상품 소비자 상담 중 79.3%가 불완전 판매 관련이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계약자가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청할 경우 납입료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며 “카드사는 카드 유효기간이 만료에 따른 재발급 시기에라도 상품 약관 등을 재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드사들은 카드 재발급 과정에서 채무면제·유예 상품 수수료 및 약관에 대한 별도의 설명을 진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씨는 “고객 혜택 상품이라는 말에 끌려 2015년 3월 가입 후 70회차, 5년10개월을 꾸준히 내는 동안 카드 재발급도 받았지만 별도의 설명은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2016년 5월 불완전 판매를 막기 위해 의무화한 기존 가입자에 대한 약관 및 수수료 안내도 지켜지지 않았다. 강씨는 “수수료 관련 별도 연락을 받은 적 이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카드사가 수수료 부과 등 안내를 미루고, 항의 전까진 환불도 않는 이유는 채무면제·유예상품에서 나오는 수익 때문이다. 카드사는 채무면제·유예상품 판매 중단에도 불구, 기존 가입자를 통해 비용 부담 없이 쏠쏠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는 회원이 낸 수수료 일부를 보험사에 보험료로 납부하고 회원에게 보상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보험사가 책임을 지는 구조기 때문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삼성·롯데·BC·신한·하나·현대·KB국민카드 등 7개 카드사는 2005년 채무면제·유예상품 출시 후 지난 해까지 수수료 2조1508억원을 거뒀다.

KB국민카드를 끝으로 국내 7개 전업 카드사 전체가 채무면제·유예상품 판매를 중단한 2016년 3분기 이후로도 카드사들은 6754억원 수수료 수입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보험사에 낸 보험료(1375억원)를 제외한 순수익만도 5379억원에 달했다. 신한카드가 1589억원으로 가장 높은 수수료 수입을 올렸고, 삼성카드(1451억원), 현대카드(1343억원), KB국민카드(1092억원), 롯데카드(573억원)가 뒤를 이었다. 하나카드와 BC카드는 각각 356억원, 35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도 채무면제·유예상품 가입자가 141만명을 넘는 덕이다.

불완전 판매로 판매 중단했지만, 카드사 수익은 ‘쏠쏠’

특히 카드사들은 2016년 하반기부터 지난해까지 채무면제·유예상품 가입자들 카드값에서 0.35%씩 떼어 6754억원을 만들고도 카드값 면제나 유예에 1078억원을 쓴 데 그쳤다. 가입자들이 낸 수수료의 16%만을 실제 보상에 쓴 것이다. 보험개발원은 2011년 말 낸 ‘채무면제·유예상품 수수료율 적정성 검증보고서’에서 수수료를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보상율을 23%까지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채무면제·유예상품은 카드사의 쏠쏠한 돈벌이 수단”이라면서 “판매 중단으로 관리감독도 멈췄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감독원 등이 카드사들의 채무면제·유예상품 실태에 대한 재감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영대)는 “채무면제·유예상품은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해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감독당국 관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72호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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