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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분쟁서 패배한 SK이노베이션] 美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촉각… 합의냐 항소냐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합의금 놓고 온도차 여전… 분쟁 장기화 가능성도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중인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 / 사진: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이 나오면서 SK이노베이션이 궁지에 몰렸다. 2020년 2월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예비결정)을 내렸던 ITC는 1년 만인 지난 2월 10일 LG에너지솔루션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동시에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활용해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한 리튬이온 배터리와 배터리 셀, 모듈, 팩, 소재의 미국 내 수입을 10년간 금지했다. 이미 수입된 품목에 대해서도 10년간 유통과 판매를 금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에서 분사되기 전인 지난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배터리 관련 핵심 기술을 다량으로 유출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이에 SK이노베이션 측은 인력 채용도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투명하게 채용된 것이며 영업비밀을 유출한 사실도 없다고 반박해 왔다. ITC는 판결문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정보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조직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이뤄졌고, 법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판단했다.

美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촉각


ITC의 최종 결정이 나온 상황에서 양측의 분쟁을 가를 만한 변수는 3가지가 꼽힌다. 우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미국 대통령은 ITC 위원회의 최종결정 이후 60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거부권이 행사되면 ITC가 SK이노베이션에 내린 ‘수입금지 명령’은 효력을 잃는다. SK이노베이션은 총 3조원 가량을 투입해 미국 조지아 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기 때문에 미국 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 미국의 공공이익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켐프 조지아 주지사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거부권 행사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가장 긍정적인 상황이지만 과거 사례를 비춰볼 때 행사 가능성은 미지수다. 일단 ITC 의결에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1975년 이후 총 6번에 불과할 정도로 드물다. 최근 10년간으로 좁혀보면 지난 2013년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권 침해 소송에서 삼성전자가 승소한 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유일하다. 다만 이 건은 영업비밀 침해가 아닌 특허권 침해 분쟁이었다.

ITC 최종 판결에 포함된 제한적 허용 조항도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낮춘다.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당시에는 ‘ITC 결정이 자국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여론이 강하게 터져 나오면서 거부권 행사로 이어졌다. 이번 최종 판결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려면 미국 국민들의 권익 침해가 부각돼야 하는데 ITC가 제한적 허용 조항을 추가한 점이 여기서는 발목을 잡는다.

ITC는 SK이노베이션에 10년간 수입 및 영업, 판매 금지 명령을 내리면서도, 포드의 전기픽업트럭 F150과 폴크스바겐의 모듈식 전기구동 매트릭스(MEB)에 들어가는 배터리 부품과 소재는 각각 4년, 2년간 수입을 허용했다. 또 이미 판매 중인 기아 전기차용 배터리 수리 및 교체를 위한 전지 제품의 수입도 허용했다. 폴크스바겐과 포드 입장에서는 2~4년 뒤 배터리 공급망을 변경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미국 소비자의 피해는 최소화하기 위한 조항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당장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는다면,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LG에너지 솔루션과 합의하거나, 미 연방고등법원에 항소하는 방법 등 두 가지 선택지가 남는다. 단 연방고등법원에 항소하더라도 항소 기간에는 수입금지 및 영업비밀 침해 중지 효력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2010년 이후 ITC 최종 결정에서 수입금지 명령이 나온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총 6건이며, 이 중 5건이 항소를 진행했으나 결과가 바뀐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 합의하거나 항소하거나

한국을 대표하는 두 배터리 업체가 분쟁을 종료하기 위해서는 상호 합의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꼽힌다. 다만 두 업체의 입장이 여전히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LG에너지솔루션 측에서는 “침해된 영업비밀에 상응하고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 안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품목에 대한 미국 내 사용 금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단호하게 대응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합의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3조원 안팎을, SK 측은 8000억원 가량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합의를 예상하기에는 차이가 큰 금액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폴크스바겐과 포드에만 제한적으로 공급이 허용된 2~4년 이후 6년여간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영업이익은 3조원이 안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며 “터무니없는 금액으로는 현실적으로 합의가 어렵다”고 밝혔다.

양사의 합의는 일단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확정된 후에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후에도 변수는 남아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이번에 ITC에서 최종 판결을 받은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함께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관련 민사소송,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이 ITC 및 미국 연방법원에 상호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 등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사소송에서 피해액을 어떻게 인정해줄지에 따라 양측의 입장이 갈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함께 특허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 최종 판결로 이미 미국 내 수입 금지 처분을 받았기에 특허소송까지 합쳐서 합의를 봐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1573호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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