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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 장전한 쿠팡, 어디를 겨냥하나] 김범석 작사, 손정의 작곡 ‘한국판 아마존’의 꿈 

 

뉴욕 증시 상장으로 5조원 확보… 해외 교두보 마련 등 신사업 투자 가능성 높아

▎ 사진:연합뉴스
“2년 내 나스닥에 상장해 세계로 도약하겠습니다.”(2011년,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청년 창업가의 무모한 도전으로 읽혔던 이 포부는 10년 뒤 현실이 됐다. 쿠팡이 뉴욕증시에 입성하면서 약 5조원 규모의 실탄 마련에 성공한 것. 자금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진 쿠팡은 그동안 나스닥과 같은 해외 상장을 꾸준히 준비해왔다. 외국 전문가를 잇달아 영입하고 세금 구조를 개편하는 등 상장 준비 작업이 계속됐고 지난 3월11일 마침내 결실을 이뤘다.

쿠팡 상장이 주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절실했던 건 ‘돈’이다. 계속된 영업손실로 쿠팡 누적적자는 41억 달러(약 4조6700억원)에 이른다. 이익률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해도 지난해 역시 5257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사실상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상장을 통한 실탄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신규 투자에 발목이 잡히고 경쟁사에게 주도권을 뺏기는 절체절명 위기에 직면했을 수도 있는 상황. 쿠팡의 5조원 실탄 확보와 공격 투자를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 재편으로 해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업계와 시장의 관심은 이제 쿠팡이 확보한 자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다. 쿠팡이 얼마를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매출과 고객 트래픽, 점유율 등 유통산업 판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지만 일단은 쿠팡이 밝힌 물류센터 확대와 신사업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수익성 낮은 홈플러스·요기요 ‘홀푸드마켓 데자뷰?’


일각에서는 쿠팡이 온라인 식료품 배송 서비스인 로켓프레시 확대에 사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인수. ‘한국판 아마존’을 꿈꾸는 쿠팡이 아마존프레시의 오프라인 확장과 같은 전략을 펼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아마존은 2018년 미국 최대 유기농 식품체인 홀푸드마켓을 인수하면서 온라인 식료품 배송 사업을 오프라인으로 확대한 바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보는 시각은 회의적이다.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공산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85%, 식품은 15% 정도. 공산품 부분에서 압도적 성과를 내고 있는 쿠팡이 15% 시장을 위해 5조원 안팎의 홈플러스를 인수한다는 것은 투자 대비 얻는 수익이 매우 낮다는 분석이다.

아마존 역시 홀푸드마켓을 인수했지만 월마트의 막강한 식품 인프라를 넘어서지 못했고, 2019년엔 온라인 시장의 식품 점유율마저 월마트에 내주는 등 성적이 좋지 않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아마존을 무조건 따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성공모델을 통한 선택적 모방 형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도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가설”이라고 선을 그었다.

배달앱 쿠팡이츠에 투자금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매물로 나와 있는 요기요 인수를 통해 배달앱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쿠팡이츠(닐슨 점유율/6.8%)가 요기요(30.3%)와 만나면 시장 1위인 배달의민족(59.7%)과 점유율 격차를 단번에 줄일 수 있다.

다만 요기요와 쿠팡이츠의 IT 기반 시스템이 서로 다르고,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같은 회사에 인수됐지만 독자회사 형태로 경영된 점 등을 비춰볼 때 투자대비 얻을 수 있는 시너지는 낮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업계에선 쿠팡이 지향하고 있는 아마존의 수익모델을 잘 들여다봐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본적으로 아마존의 수익 모델은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유통 플랫폼에 투입하는 구조. 여기에서 나오는 고객들을 활용해 인공지능(AI)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신사업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즉 기업 인수를 통한 흡수·성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쿠팡 관계자도 “투자금을 인수에 활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자금 투입처는 어디일까. 현재로서는 물류와 신사업 투자에 무게가 실린다. 쿠팡은 지난해 약 9900억원을 투자해 국내에 7개의 지역 물류센터를 설립했는데 오는 2025년까지 30개 도시에 150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보유한다는 계획이다. 쿠팡의 익일배송 서비스인 로켓 배송망을 전국적으로 더 촘촘하게 구축하기 위해서다.

쿠팡에 따르면 현재 인구 70%가 쿠팡의 물류거점 내 11㎞ 이내 거주하고 있는데 물류센터를 더 늘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빠른 배송을 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서울은 오전 12시까지 주문하면 익일 배송이 이뤄지지만 부산은 오후 7시 기타 지역은 오후 5시인 곳도 있다. 모든 고객이 동일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이 시스템이 안정화되면 오전 2시까지 주문해도 당일배송이 가능해진다는 게 쿠팡 측 설명이다.

물류 인프라와 그로인한 인력투입 외 비용은 쿠팡플레이, 라이브커버스 등 관련 신사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쿠팡이 해외 진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전혀 예상치 못한 신사업에 투자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물류센터에 우선 투자…“손정의 조언 있을 것”

이커머스업체 고위 관계자는 “쿠팡이 지난해 싱가포르 온라인 동영상서비스업체 훅을 인수한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해외서비스 구축이나 오프라인 형태의 사업 등 지금까지 와는 다른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며 “꾸준히 쿠팡에 돈을 밀어 넣어온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도 방향성에 대한 조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쿠팡의 앞길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쿠팡의 진격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에 대항하려는 경쟁사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어서다. 한때 온라인 쇼핑 분야에서 경쟁자였던 이들은 반 쿠팡 기조 아래 서로 피를 나누며 힘을 합치고 있다. 인터넷쇼핑 점유율 1위인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손잡은 데 이어 이마트와도 제휴를 추진 중이다. 온라인쇼핑 후발주자인 카카오도 이커머스 사업 차별화를 선언했고 11번가 역시 아마존과 손잡고 온라인 쇼핑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카카오는 매물로 나온 오픈마켓 1위 이베이코리아의 유력한 인수 후보로도 거론돼 앞으로 온라인 쇼핑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 밖에 배송직원들의 노동환경 문제, 누적 적자로 인한 수익성 개선, 재고 부담으로 인한 브랜드사의 철수 등도 풀어야 할 과제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온라인 유통 사업의 가치는 단기적 이익보단 절대적 시장점유율 확보에서 비롯된다”면서도 “쿠팡의 불확실성은 클리오와 LG생활건강 등 쿠팡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쿠팡에서 철수하는 브랜드사가 늘어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쿠팡이 녹록하지 않은 시장 상황에서 새 돌파구를 열어갈 수 있을까. 글로벌 상장으로 업그레이드 될 쿠팡의 행보에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1576호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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