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ews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심화하는 백신 확보 경쟁, 결국 선진국만 승자 

 

백신 접종 늘어도 2차 팬데믹 확산… 변이종도 나와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안동L하우스에서 백신을 검수하고 있다. / 사진:SK바이오사이언스
전 세계적으로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백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각국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서 이를 통한 팬데믹 탈출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백신 확보 경쟁이 전쟁 수준으로 과열되고 있다. 영국와 이스라엘이 빠른 속도로 접종을 이어가며 방역 봉쇄를 하나씩 푸는 것도 한 요인이다.

양적 경쟁은 당연, 백신 부작용 발생에 ‘질적 전쟁’까지 돌입

결국 지금은 백신이 코로나19 탈출의 유일한 탈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백신 확보를 둘러싼 여러 나라와 지역 간 경쟁이 심각한 감정싸움까지 번지기 일쑤다. 현재로선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제품으로 평가 받는 mRNA 백신인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과 모더나 백신을 개발한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국내 생산 물량을 자국에서 먼저 소비하는 ‘백신 접종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자국에서 집단면역을 이룬 다음 남는 백신을 타국에 돌리겠다고 공언한다. 대놓고 미국 우선주의를 외쳤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패배로 물러났지만 그가 내세웠던 자국 우선주의는 조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백신 국가주의’ 형태로 재연되고 있다.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두고도 영국과 유럽연합(EU)이 신경전을 벌인다. EU는 백신 공급이 생각보다 원활하지 않자 영국 생산기지에서 만든 백신을 더 많이 넘기라고 요구한다. 이에 영국은 자국에서 생산한 물량을 자국에서 접종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EU도 지역에서 생산된 백신을 해외에 반출할 때는 일일이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유럽에서 백신을 수입하는 일본은 이 때문에 백신을 찔끔찔끔 들여올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제력이나 외교력도 백신을 원활하게 확보하는 데는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존슨(J&J) 백신에서 혈전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일부 보고되면서 백신에 대한 선호가 갈리고 있다. 유럽의약청(EMA)와 각국 보건 당국은 접종에 대한 이익이 부작용 우려보다 크다고 판단하고 연령 제한 등 새로운 규제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직 특별한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은 mRNA 백신과 그렇지 않은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을 보는 소비자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과학적으론 항체를 만들고 면역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대중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같은 코로나19 백신인데 종류에 따라 선호도와 계급이 나뉘는 셈이다. 각국 정부는 빠른 접종을 위해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는 ‘양적 전쟁’과 대중이 원하는 종류의 백신을 확보하는 ‘질적 전쟁’을 동시에 치러야 할 상황이다.

생산기지 특정 지역에 집중… ‘백신 부익부빈익빈’ 유발

백신 생산기지를 보면 대부분 지리적으로 편중돼 있다. 물량 확보 전쟁이 치열해지고 백신 국가주의가 판치기 쉬운 환경이다. 독일 국제방송인 DW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주요 백신 생산기지는 주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인도, 중국 등 백신 개발을 주도한 나라에 자리하고 있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mRNA 백신은 전 세계적으로 모두 6개의 생산 기지에서 나온다. 유럽연합(EU) 지역에선 독일과 벨기에에서 만든다. 독일 마인츠에 본사가 있는 바이오엔테크는 마르부르크에 새 공장을 건설해 2월 가동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마르부르크 공장에서만 첫 반년 동안 2억5000만 회분을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 바이오업체 모더나가 개발한 mRNA 백신인 모더나 백신의 경우 대부분 본사가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서 생산한다. 2021년 생산 목표는 10억 회분이며, 최소 6억 회분은 공급할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은 8000만 회분을 추가 구입하는 조건으로 8000만 회분을 계약했다. 미국은 3억 회분을 추가 구입하는 조건으로 2억 회분을 확보했다. 대량 구매를 약속하는 나라에 공급 물량을 더 배당하는 방식이다. 한국·영국·일본·스위스·캐나다도 물량을 확보했다.

스웨덴·영국의 다국적 제약기업인 아스트라제네카(AZ)와 영국 옥스퍼드대, 그리고 인도의 백신제조업체인 인도혈청연구소(SII·임상시험용 백신 제공)가 공동 개발한 AZ 백신은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이다. AZ 백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백신 생산 능력이 있는 SII라는 거대한 공급 파트너가 있는 만큼 2021년 30억 회분이라는 엄청난 물량을 생산·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혈전 파동으로 일부 국가에서 해당 백신에 대한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연령 제한이 생기는 등의 문제로 인해 접종 지역 확산이 주춤해진 상태다.

러시아가 개발한 아데노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인 스푸트니크V(가말레야) 백신은 러시아 국부펀드인 RDIF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생산 능력에 한계가 있어 인도·중국·브라질·한국 등 50개 이상의 국가에서 올해 12억 회분을 생산할 계획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멸시켜 만든 불활성 백신인 중국의 시노팜 백신은 올해 10억 회분 공급이 목표라고 중국 관영 영어신문인 차이나 데일리가 보도했다. 인도가 개발한 불활성 백신인 코백신은 인도의 4개 생산 시설에서 올해 7억 회분을 공급할 계획이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타에 따르면 4월 21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5억1514만 회분의 백신이 접종됐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6.6%에 불과하다. 1억 회분 이상 접종한 나라가 중국·미국·인도 등 3개국이며, 1000만 회분 이상 접종한 나라(지역 제외)는 모두 12개국이다.

‘백신=인기’ 백신 확보 경쟁 계속되는 이유

중국이 1억9502만 회분(2019 추정치인 14억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1.4%)으로 가장 많고, 미국이 1억3326만 회분(인구의 39.9%)으로 그 다음이다. 인도가 1억965만(8.0%), EU가 8623만 (19.4%), 영국이 3303만(48.7%), 브라질이 2480만 회분(11.7%)으로 그 뒤를 따른다. EU 회원국이기도 한 독일이 1727만 회분(20.6%), 프랑스가 1276만 회분(18.7%)이다.

인구에 대한 접종 비율을 따지면 인구 500만 이상 국가 중에는 이스라엘이 536만 회분 접종으로 인구의 62.0%에게, 아랍에미리트(UAE)도 508만 회분 접종으로 인구의 51.4%에게 각각 1회 이상 주사해 접종률이 가장 높다. 그 다음이 영국(48.7%)과 칠레(40.7%), 미국(39.9%) 등이다.

글로벌적으로 치면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고 고속으로 접종하는 나라는 사실 일부일 뿐이다. 소외된 나라가 적지 않다. 가난하거나 정부가 미처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나라는 접종에서 소외되고 진단면역 확보가 미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물량 경쟁에서 밀린 나라들은 올해 안에 집단 면역을 확보할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 나라들은 결국 백신 확보에 외교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 입장에선 백신 확보가 권력을 지키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16년부터 배임과 수뢰 혐의를 받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과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보리스 존슨 총리가 정부 수반인 영국이 백신 확보와 접종에서 세계 수위인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백신 세계대전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 진입, 인도에선 3중 변이 바이러스까지


▎지난 16일 인도 집권당 BJP 유세 현장에 인파가 몰려 있다. / 사진:BJP 공식 홈페이지
게다가 통계를 살피면 백신의 보급에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다시 대유행기에 접어들고 있다. 수치를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도미터에 따르면 4월 22일까지 전 세계 219개 국가와 지역에서 1억4468만 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사망자는 3075만 명에 이른다.

월도미터에 따르면 2019년 12월 31일 코로나19가 처음 보고된 이후 전 세계 일일 확진자는 계속 증가해 지난 1월 8일 84만 392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강 곡선으로 전환됐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서서히 확대되면서 효과를 나타내고 각국에서 시행한 이동·활동 제한 등 적극적인 방역 활동이 효력을 발휘한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 확산 등으로 사람들의 의식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코로나19는 새롭게 2차 대유행기에 접어들고 있다. 일일 확진자는 2월 28일 32만3022명을 기록하면서 사실상 바닥을 치고 반등으로 이어졌다. 3월 들어 계속 증가하다 4월 10일 이후 하루 80만 명을 넘어섰다. 4월 20일에는 83만2682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지난 1월 8일 수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일일 사망자도 3월 11일 9573명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글로벌 2차 대유행이 얼마나 계속될지,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예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미국·이스라엘 등에서 코로나 접종이 초고속으로 이뤄지고, 영국과 이스라엘이 일부 제한을 해제하면서 마치 코로나19가 잡혀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통계 수치로 본 글로벌 상황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특히 인도와 브라질이 심각한 2차 대유행을 겪고 있다. 인도는 4월 21일 하루 확진자가 역대 최고인 31만5802명에 이르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숫자가 단일 국가의 1일 확진자 기록으로는 최고치라고 전했다. 인도에선 이날 하루 2103명이 코로나19로 숨졌다.

이처럼 인도가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데는 2가지 이유가 꼽힌다. 역학적으로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으며 정치·사회적으로는 힌두 민족주의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선 인도 18개 주에서 채취한 1만787건의 샘플을 조사한 결과, 771건에서 변이종이 발견됐다. 736건은 영국발 변이종, 34건은 남아공발 변이종이었으며 1건은 브라질발 변이종이었다. 이들 변이종은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높은 것으로 지적돼 왔다. 바이러스를 포함한 생물체의 DNA 염기 서열은 생물의 특성과 활동 매뉴얼에 해당한다. 바이러스에서 이 서열이 바뀌는 변이는 다른 생물보다 훨씬 흔하다. 하지만 대개는 바이러스의 세포 침투력, 즉 감염력과 전파력에는 별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최근에 발견된 영국발·남아공발 변이종은 전파력이 훨씬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인도에선 영국발과 남아프리카공화국발 변이종이 확산하는 것은 물론 ‘이중 변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변이종도 등장해 퍼지고 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인도 보건부 산하 ‘코로나19 바이러스 게놈 컨소시움(INSACOG)’이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DNA 염기서열을 조사한 결과 독특한 사실을 발견했다. 바이러스 표면 돌기 중 2군데에서 변이가 일어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인도 바이러스 학자 샤히드 자메엘은 BBC에 “새롭게 발견된 B.1.617 변이종은 영국발·남아공발과 마찬가지로 전파력이 강하다”고 말했다. B.1.617 변이종은 E484Q 돌기와 L452R 돌기 등 두 군데에서 변이가 발견돼 미디어 등에서 ‘이중 변이종’으로 불린다. BBC는 최근 인도 일부 지역에서 ‘삼중 변이종’도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인도 내 코로나19 재확산의 또 다른 요인은 힌두 민족주의다. 인도 집권당인 BJP는 힌두민족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인도 인구의 주류가 믿는 힌두교는 일년 내내 지역별 축제와 명절이 있고, 이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함께 종교 행사를 연다. 힌두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인도의 BJP 정권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이러한 종교행사나 축제, 성지순례를 막지 않고 있다.

인도에서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시작됐음에도 지난 14일 인두교의 쿰브 멜라 축제는 그대로 진행됐다. 이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축제를 즐겼다. 힌두교에서 신으로 여기는 갠지스강에는 집단으로 들어가 몸을 담그는 종교 의식을 치르는 신자로 가득했다. 신과 마주하는 종교 행사에서 마스크나 거리두기는 기대할 수 없었다. 힌두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모디 총리와 BJP 정권의 고민이 깊어갈 수밖에 없다. 이는 인도나 모디 총리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1583호 (2021.05.0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