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돈 풀기 정책 이해하지만 국가채무 적정성 지켜가며 일자리 늘려야한국판 ‘아스펜 인스티튜트’ 설립해 보수·진보, 노조·기업 대화의 장 열어야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코로나19라는 블랙스완을 한국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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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남덕우 경제관’ 807호는 남덕우 기념사업회 회장실이다. 김광두(73) 서강대 석좌교수의 업무실이기도 하다. 그 방 바로 옆에 서강학파를 소개하는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 그곳에선 서강학파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서강학파의 등장은 한국 시장경제의 태동이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김만제 전 포스코 회장, 김덕중 전 교육부장관, 김병주 전 금융통화위원,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종인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서강학파의 일원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역임한 김광두 교수는 현재 서강학파의 좌장 격이다.김 교수는 2019년 1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직에서 사의를 표명한 이후 공적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개혁보수 성향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의 원장직에만 충실했다. 소득주도 성장 등 문 정부 경제정책에 비판적이지만, 애정은 거두지 않는 스탠스로 비쳐졌다. 2018년 8월, 월간중앙 인터뷰 이후 수차례 만남을 고사했던 김 교수가 2020년 5월 14일 다시 응답했다.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로금리를 띄우고 있다. 이에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더 하라’고 맞서고 있다. 미국이 어디까지 돈을 풀까? 우리는 어디까지 따라가야 할까?“돈을 풀고, 재정을 과감히 지출하는 건 미국과 독일 같은 기축통화국들에서 할 수 있다. (그렇게 해도) 당분간 인플레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이렇게 가면) 외환시장이 염려된다. 우리의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어가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이 나갈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 관점이다. 이런 식으로 재정을 푼다면 2~3년이면 가능할지 모른다.”
국가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견해도 있다.“(국가부채를 우려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국채를 팔기 시작하면, 증권시장에서도 나갈 수 있다. 우리가 (외환보유고) 4000억 달러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만으론) 방파제가 될 수 없다.”
“우리가 2~3년 살고 죽는 게 아니잖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시절의 김광두 교수(오른쪽)가 문재인 대통령 (가운데)과 청와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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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정부 돈으로 해결하려 드는 ‘재정중독’ 우려도 나온다.“정부 역할이 강화될수록 민간 역할이 약해진다. 이러면 경제가 다시 뛰어올라가야 할 때 민간의 회복력이 있겠느냐는 고민이 발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국가 재정의 지속적 투입과 전 국민 고용보험을 꺼냈다. 이후 5월 14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로 회의를 열고, 재정으로 일자리 154만3000개를 만들고, 임금 근로자 70%의 고용보험 가입 추진을 발표했다.“전 국민 고용보험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여건이 된다면 좋은데, 얼마나 재정이 소요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가 2~3년 살고 죽는 게 아니잖나? 5~10년 뒤도 봐야 한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경제 회복력 유지’라는 기준을 생각해야 한다.”
일각에선 ‘지금 정부라도 나서서 무리하지 않으면 당장 다 죽는다’는 의견도 있다.“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정부 돈이 안 드는 것부터 해보자. 첫째, 규제를 많이 풀어주면 돈을 안 쓰고도 민간이 활동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주체가 타협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어려운데 자기 몫만 그대로 지키겠다는 자세로 나가면, 더 어렵게 될 수 있다. 서로 조금 양보하면 오히려 비효율이 없어지고, 생산성이 올라가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 규제 혁파를 하고,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면, 돈을 조금 들여도 밝은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노동·기업·정부 간 사회적 대타협은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한 전례가 없다.“그걸 조종하는 게 국회의 몫이다. 다만 국회나 기업·노동계·이익단체·시민단체 등이 서로 모이기가 만만찮다. 이들을 모이게 할 수 있는 중간 대화체가 우리 사회에 부족하다. 현재 진영으로 갈라져 있다 보니, 아무리 좋은 논리가 나와도 반대 진영에서 얘기하면 그냥 반대한다. 서로 양보하고, 통합할 수 있는 대화 창구가 약하다.”
그런 모델이 있나?“가령 미국의 아스펜 인스티튜트(Aspen Institute)는 콜로라도에 캠프를 설치해놓고 2박 3일, 3박 4일 동안 국회·정부·기업·전문가 등 20~30여 명이 모인다. 결론을 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상대편이 생각하는 바를 듣자는 것이 목적이다. 몇 년 전, (김 교수가 원장을 맡은) 국가미래연구원과 장하성(현 주중대사), 김상조(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개혁 연대가 대화했다. 한 달에 한 번씩 1년6개월 이상 계속했다. 그때 보수와 진보가 많을 얘기를 나눴다. 서로 무엇을 양보할지, 양보하면서 얻을 게 뭔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는데 굳이 양보하겠나? 오히려 색채를 더 강화하지 않을까?“민주당이 압도적이니까 오히려 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사회적 대타협은 정부 산하에 있으면 잘 안 된다. 문성현 위원장이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하면 좋겠지만, 정부 산하이기에 한계가 있다. 순수한 민간, 중립적 입장의 주체들이 만들면 된다.”
전경련·대한상의가 할 수 없는 일정부나 노동계가 참여할까?“운영 주체가 중립적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말을 자유롭게 꺼내기 위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상대방 머릿속 생각을 아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공간이 생긴다면, 규제 혁파에 관해 기업의 민원 사항이 적지 않을 듯하다. 기존의 전경련이나 대한상의는 정부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전경련은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 이미지 낙인이 찍혔다. 전경련이 뭐를 하자고 하면, 그들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적 신뢰가 많이 약한 것이다. 경총은 노사 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역할이 제한돼 있다. 대한상의는 워낙 다양하게 모여 있어서 의사결정이 원만하지 못한 편이다. 그렇기에 아스펜 인스티튜트 타입의 조직이나 대화체가 민간 수준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그런 기관을 만들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을 모으려면 운영 주체로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사람들, 각계의 핵심 리더들이 들어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설령 기업 얘기를 듣고 싶어도 정부에 마땅한 루트가 없는 듯하다. 김상조 정책실장이 5대 기업 사람들과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정도로 알고 있다.“(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시절) 나와 김수현(당시 정책실장), 김상조(당시 공정거래위원장) 셋이 5대 기업인을 만나는 채널을 만들었다. (5대 기업과)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대화체였다. 거기서 자유롭게 얘기했다. 기록으로 남기지 말고, 솔직한 대화를 하자고 했다. 김수현이 물러났고, 나도 여기(외곽)에 있으니까 부담스러워 안 하는 것이다. (남아 있는) 김상조 실장이 필요에 따라서 만나고 있다. 5대 그룹으로 제한한 것은 대화라는 것이 너무 다수가 모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30명이 모여서 2시간 대화하면 무슨 대화가 되겠나.”
그런 기관이 생겨서 생산적 논의가 나와도 정치권력에 반영되지 않으면 소용없다.“오히려 기회다. 그동안 국회선진화법 등으로 일정한 세력이 반대하면 못 했다. 국회 상임위에서 (절차에 시간이 걸려서) 의원 몇 명만 반대해도 못했다. 이런 장벽이 있었는데(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가 됐다. 그동안의 제약을 오히려 극복할 기회가 됐다. 좋게 보면 정책을 자유롭게 입법할 수 있고, 운영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리쇼어링의 조건
▎5월 11일부터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온라인 신청이 시작됐다. / 사진:성동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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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도, 김 교수도 일자리 문제를 중시한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을 언급했다. 이게 한국적 현실에서 얼마나 가능할까?“기업이 한국 밖으로 나간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시장, 다른 하나는 노동시장에서의 임금이다(한국은 소비시장이 작고, 노동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 벤처는 규제로 리쇼어링이 어렵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허가되지만, 한국에선 못하는 것이 많다. 이 세 가지 중 소비시장은 어차피 제한돼 있다. 결국 노동시장과 규제를 바꿔야 한다. 규제를 혁파하고 노조와 기업이 사회적 타협을 통해 양보를 이뤄내는 노력이 있어야,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올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조금 더 갈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수출액이 5번째로 큰 나라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것이다. 세계가 어려우면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의 경제는 쉽지 않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은 우리 모두의 생존 문제다. 생존을 위해서 서로 양보해 우리 시스템을 생산성 있는 쪽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면 오히려 기회다.”
최근 페이스북에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다’는 글을 올렸던데.“국가 채무는 빚을 남긴다. 누가 갚겠나? 젊은 사람들이 앞으로 내야 할 세금이다. 국가 채무가 늘어나면 정책 운용의 경직성이 생긴다. 젊은 세대들이 한창 활동할 때, 대응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일각에선 우리나라 국가 채무가 다른 나라에 비해 건전하니까 조금 더 투입해도 괜찮다고 주장한다.“소위 D1(국가부채)에 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70%인데 우리는 40%밖에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두 가지를 생각하면 된다. 첫째, 고령화 속도다. 고령화가 되면 재정 부담이 늘어나게 돼 있다. 둘째, 군인 연금 등 연금이나 국영기업의 부채는 정부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에서 적자가 계속 쌓여가고 있다. 이런 요인들을 집어넣고 조금 더 확대해서 보면, 우리가 OECD 선진국들보다 형편이 좋은 게 아니다. 셋째, 속도다. 이 속도로 가면 국가채무가 50%로 될 것이다. D3(공공부문 부채)로 차원을 넓혀 보면, 110%까지도 갈 것이다. 위험 수준이다.”
재난지원금이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것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잘못됐다고 본다.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 줄 필요는 없다. 그것을 받는다고 해도 그들한테 큰 도움이 안 된다. 선별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더 주는 것이 더 바람직했다. 행정적으로 어려워서 그렇게 했다고 그러는데 이해가 안 된다. 우리가 세계에서 행정 전산화가 가장 잘된 나라다. 정치적 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 세금이다.”
다른 질문인데,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어떻게 봐야 할까?“사과할 만하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삼성에서 상속 문제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여러 ‘노력’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것에 대한 사과는 필요하다. 우리 시대가 가장 추구하는 가치는 공정성이다. 그 공정성에 위배되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이 맞다.”
결국에는 지배구조 문제로 연결된다. 삼성이 4세 경영을 접겠다는 말은 미국의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전문경영인 체제로 간다는 뜻이 된다. 주주 이익에 충실한 이해관계자 경영에 대해 일각에선 장점을 인정하지만, 장기투자 같은 오너십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오너 경영인과 전문경영인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다. 다만 오너라 하더라도 공정한 질서를 지켜야 한다. 오너 경영에서 방향성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전문경영인들이 한다고 반드시 잘하느냐면 또 모른다.”
“미래통합당에 미래 없다”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는 진영을 가리지 않는 건설적 소통을 바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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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경제의 인플레 우려가 적다고 진단했다. 재정정책과 별도로 통화정책 측면에서 돈을 더 풀거나 금리를 추가로 내리는 것에 대한 견해는?“현재는 어렵기 때문에 일단 풀어야 한다. 자본시장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그 돈이 나중에 누구에게 가겠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부자에게 모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진다. 지금 워낙 어렵기 때문에 일단 돈을 풀어서 금융시장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길게 보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돈의 양과 흐름에 관한) 전략이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돈을 투하해도 의도대로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과 승수효과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현재는 돈을 푼다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란 걸 다 안다. 그런데도 돈을 푸는 이유는 만약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실물시장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선 여기부터 안정시키기 위해 돈을 푸는 것이다. 당장 투자로 연결되는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
언젠가는 풀린 돈을 회수해야 하지 않겠나?“(코로나19)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하는지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1년 만에 끝나면 다행이고, 3년 이상 간다면 회수 문제는 그때 가서 얘기를 해야 한다. 돈을 무한히 푼다는 것은 체제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전혀 부작용이 없고 좋은 일은 아니다. 망하지 않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정치 얘기를 묻겠다. 국가미래연구원 홈페이지를 통해 ‘미래통합당에 미래가 없다’고 발표했다.“(쓴웃음을 지으며) 없다. 지금 하는 것 봐라. 미래가 없다.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들은 알 것이다. 알면 거기에 맞춰 변화를 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다.”
보수 정당은 경제적 측면에서 민주당과 어떻게 차별화를 가져야 할까?“시장과 민간의 중요성이다. 정부가 너무 커지면 민간이 상대적으로 죽는 것이니 정부가 지원하더라도 시장을 살리는 방향으로 지원해야 한다.”
김형오 전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교수를 영입하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왜 제의를 고사했나?“만나긴 했었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정치를 하나?(웃음) 내가 지금 정치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미래통합당은 2019년 민부론을 내놨다. 그러나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호소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부족하다. 그런 대안을 못 내놨기 때문에 총선에서 패한 것이다.”
이렇게 계속 보수가 무기력해지면, 한국에서 시장의 위상이 계속 내려가는 것은 아닐까?“위기에 대응할 때 같이 생각해볼 점이 회복력이다. 위기 이후 얼마나 반등할 것인지, 반등의 힘을 길러줘야 한다. 위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더라도 그 대책이 회복력을 키워주는 내용의 대책이 돼야 한다. 회복력은 민간이 하는 것이지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잘되려면 대안을 내놨어야 했다. 이렇게 정부가 많이 (간여)하면 경제의 탄력성과 회복력·복원력이 떨어진다. 미래통합당은 지금 정부 방식보다 더 낫다는 무언가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별로 못 내놨다.”
“J노믹스의 원래 핵심은 교육”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골격을 이루는 J노믹스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시절부터 일관되게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나 주52시간 노동 제도에 우려를 표시해왔다.“(세간에서) 설계자라고 하는데, 그 의미부터 정리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 시절에 ‘문재인의 경제 비전’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주로 내가 만들었다. 집권 이후 문 정부의 경제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내가 설계한 개념과 다르다. 그것은 여러 과정을 통해서 달라진 것이다. 본래 처음에 후보 시절에 만든 비전은 ‘사람중심’과 ‘성장경제’였다. 핵심은 사람의 능력을 키워주자는 것이었다. 교육도, 재훈련도 중요했다. 이쪽에 투자를 많이 하자고 한 것이었다.”
왜 교육이었나?“그것이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교육과 재훈련이란 어렸을 때부터 나이가 들었을 때까지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건강과 관련된 것도 있다. 교육에 투자를 하면 그것이 곧 내수가 된다. 동시에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인적자원)의 능력이 올라가니 경쟁력도 생겨서 기업도 좋다. 양극화는 캐피털리스트가 다 가져가고, 노동자는 못 가져가는 체제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노동자의 생산성이 올라가면 노동자의 몫이 늘어난다. 노사관계에서도 노동자가 전문가면, 사용자가 함부로 못 한다. (이에 비해) 소득 인상(소득주도성장 정책)과 근로시간 조정(주52시간제)은 소화할 수준으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속도 조절을 계속 얘기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직에서 사의를 표명한 뒤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적이 있나?“만난 적 없다. 그분이 민간인을 왜 만나겠나?(웃음)”
문 대통령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복합적일 것 같다.“그런 개인적인 감정은 이 자리에서 얘기할 성격이 아니다.(웃음)”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김 교수가 무심코 손목시계를 봤다. 여전히 그의 손목에는 청와대 휘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2018년 8월 인터뷰 때와 김 교수의 신분은 달라져 있었지만,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음을 어렴풋이 실감할 수 있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시절에도 김 교수는 입에 쓴 말이 책무인 듯 처신했었다. 다만 그는 대안을 갖는 고언(苦言)을 추구하는 듯했다.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김 교수는 “첨언이 있다”고 했다. “사회적 대타협이 잘되려면 그 기구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직접적으로 눈에 보여야 한다. 그 기능 중 하나가 국제통상외교를 도와주는 것이다. 기업인들의 네트워크는 정부보다 좋다. 기업인의 정보력과 인적 관계를 정부가 경제외교·통상외교에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려면 상시적으로 정보 교류가 있어야 한다. 내가 말한 아스펜 인스티튜트 같은 조직이 정보 교류의 장(場)이 될 수 있다. 정치인들도 알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정치인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선 이런 곳에 와서 자주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 워싱턴에 싱크탱크가 많다. 싱크탱크에 국회의원들이 수시로 간다. 점심시간에 샌드위치 미팅도 한다. 다 도움이 되니까 하는 것이다. 이런 조직을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면 나부터 참여할 생각이 있다.”-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 녹취 정리 심민규 월간중앙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