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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文정부의 딜레마 

대기업 소유와 경영 분리 신호탄 될까? 

삼성 준법감시위 권고 따라 경영권 승계 논란과 노조 문제 개선 다짐
정부 산업정책에 삼성 협조 필수적… 금융시장은 호의적 반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 6일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
기업의 가치는 시가총액으로 나타난다. 2020년 5월 시점에 코스피 시가총액 1위는 삼성전자다. 대략 284조4000억원으로 독보적 1위다. 2위인 SK하이닉스(약 61조원)를 4.5배 이상 앞선다. 시가총액 3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약 40조4000억원)다. 5위는 배당에 중점을 두는 삼성전자 우선주(약 33조3000억원)다. 그리고 9위가 전기차 에너지로 주목받는 2차전지를 개발하는 삼성SDI(약 20조3000억원)다. 이들 삼성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전부 현대자동차(약 19조6000억원)보다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차 등 3대 신성장 산업을 더욱 강력히 육성해 미래먹거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지목한 3대 신성장 산업은 삼성 핵심 계열사들과 맞물린다. 반도체와 IT의 삼성전자, 바이오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미래차의 삼성SDI가 그것이다. ‘삼성은 대한민국 경제의 현재이자 미래’라고 규정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삼성 내부적으로 이를 절감하고 있는 듯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준법 선언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2019년 4월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았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은 5월 6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해 국민께 실망과 심려를 끼쳤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의 사과는 ▷경영권 승계 ▷노조 ▷시민사회와의 소통 등, 세 가지 사유에서 나왔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이 경영권 승계 논란이다. 2013년 1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래 이 문제는 계속 ‘이재용 체제 뉴 삼성’의 발목을 잡았다. 2015년 9월 성사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적법했느냐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실질적 지주회사다.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주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의 비율로 합병이 이뤄졌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 23.24%를 보유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제일모직이 고평가된 배경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있다. 제일모직은 당시 비상장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6%를 소유하고 있었다. 즉,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평가가 제일모직의 고평가로 이어진 셈이다. 이때(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당기 순이익을 1조9049억원으로 책정한 회계방식이 적정했느냐, 그리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증시 상장(2016년)에 특혜가 개입했느냐를 놓고 지금까지도 다툼이 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대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가지고 있던 대주주였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388억원의 손실을 끼치는 배임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배후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이 끼어 있다고 보는 판결이 나왔다. 그 여파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8년 11월 14일 주식 거래정지 판결을 받았다. 이후 한국거래소 심사를 거쳐 12월 10일 거래가 재개됐다.

그동안 이 부회장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16년 11월 소환 조사를 받았고, 2017년 2월 구속기소 되기에 이르렀다. 그해 5월에 중앙지법은 이 혐의를 받아들여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후 2018년 2월 서울고법은 “경영권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이 부회장은 풀려났다. 이후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선고했고, 2020년 2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3월, 이 부회장에게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다. 그 결과 5월 6일 대국민 사과가 나온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선언했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며 “법을 어기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 지탄을 받을 일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약속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4세 경영을 접은 삼성이 스웨덴 발렌베리 모델로 갈 것인가’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2019년 12월 18일 한국을 방문한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의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과 만났다. 발렌베리그룹은 지주회사 인베스터AB 산하에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에릭슨과 스웨덴 최대 은행 SEB를 비롯해 샤브(항공·방위산업체), 일렉트로룩스(가전), 아틀라스 콥코(산업공구), ABB(자동화설비), 아스트라제네카(의약) 등을 소유하고 있다. 스웨덴 국내총생산의 30%가량을 책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렌베리 가문의 기업경영은 1856년부터 시작됐다. 발렌베리 가문은 ‘존재하나 드러내지 않는다’는 독특한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공익재단이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거대 기업집단을 160년 이상 지배해왔다.

한국과 스웨덴은 상속·증여세 체계가 다르다. 스웨덴에서는 재단이 공익 목적에 부합하게 운영되는 한, 상속·증여세가 전액 면제된다. 그러나 한국은 공익재단이더라도 상속·증여세 혜택에 제약이 따른다. 명목상 공익재단을 만들어놓고 탈세의 온상으로 만드는 일부 한국 재벌들의 구태를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삼성이 발렌베리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기란 어렵다. 다만 이사회 중심 경영체제가 강화될 것이란 예상은 우세하다. 삼성은 2018년 3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했다. 2019년 2월에는 사외이사인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이사회 의장에 선임했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에서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하고, 이들이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스티브 잡스에서 팀 쿡으로 넘어간 애플이나, 빌 게이츠에서 스티브 발머를 거쳐 사티아 나델라로 CEO 권력 이양한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삼성의 승계 구도가 설계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나스닥 시가총액 1등으로 이끈 나델라 CEO는 인도 출신이다. 재계에서는 “장차 삼성에서도 외국인 CEO가 탄생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지배구조가 기업 가치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삼성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건 실천이다. 실천 방안이 구체화하면 시장 신뢰도 얻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다만 그 실천 방안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실제 이 부회장도 대국민 사과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신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할지에 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관해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파기 환송심 양형에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경영권 승계로 인한 국민연금, 삼성물산, 투자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원상복구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 방안 없이는 사과의 진정성 문제가 남는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총선 압승에도 삼성 안 건드리는 민주당의 셈법


▎가업 승계의 모범이라 할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의 마르쿠스 회장.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 5월 이후 외아들인 이 부회장은 실질적 삼성그룹 총수다. 그러나 여전히 승계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지분 4.18%, 삼성생명 지분 20.76%, 삼성물산 지분 2.84%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지분이 0.7%인 이 부회장으로선 아버지의 지분 일부를 물려받아야 할 텐데 상속세가 걸린다. 재계에서는 12조~13조원의 상속세가 부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상속·증여세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1억원까지 10%, 5억원까지 20%, 10억원까지 30%, 30억원까지 40%가 추징된다. 그리고 30억원을 초과하면 50%가 추징된다. 가령 12조원의 상속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30억원을 제외한 11조9970억원이 50% 추징구간에 들어가는 식이다. 게다가 상속 지분에 기업경영권이 포함되면 최고 65%까지 ‘할증’이 붙는 구조다. 이 부회장이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을 두고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고 털어놓은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포함됐을 터다.

삼성그룹의 승계가 이 부회장의 선언처럼 진행될지는 현재로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재계 1위 삼성의 선언은 나머지 대기업들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익명의 오너그룹 관계자는 “삼성이 저렇게 나오는데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고백했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4·15총선 이후에 이뤄졌다. 총선에서 여당인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이에 관해 한 재계 인사는 “차라리 방향성이 선명해져서 괜찮다”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의 ‘코드’에 충실히 주파수를 맞추는 쪽으로 재벌 총수들이 대응할 것이란 정황증거다.

이 부회장의 ‘무노조 경영’ 사과도 그 연장선상에 자리한다. 그는 “삼성의 노사는 기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동안 삼성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삼성 82년 역사에서 무노조 경영은 지워지게 될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향후 노조의 경영 참여로 가는 단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의회 권력까지 장악한 문재인 정부에 삼성은 중의적 의미로 다가온다. 수사의 대상이자 교감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문 정부의 산업정책, 일자리정책은 현실적으로 삼성을 빼놓곤 성립이 되지 않는다. 박용진 의원은 “(삼성의 지배구조에 비판적 견해를 취하는 주장은) 민주당 내에서도 원래 없었다”고 토로했다. 민주당이 이럴진대, 미래통합당에서는 더 유보적이다. 총선 승리로 민주당의 책임이 커진 만큼 약점으로 지적된 경제 살리기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회장에 관해 민주당은 줄곧 신중한 자세다. “이 부회장의 이익과 삼성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박 의원이 예외적이다. 이를 두고 진보 진영의 한 인사는 의미심장한 해석을 남긴 바 있다.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거래정지를 해제한 것은 ‘털고 가자’는 암묵적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해 이 부회장과 만난 자체가 정치적 결단이다.”

삼성물산 주가의 일시적 급등 배경

이 부회장 공언대로라면, 향후 삼성은 오너 경영인 체제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뀐다. 주주 자본주의와 임직원·노조·지역사회·국민을 중시하는 소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이동이다. 그러나 좋은 취지와 별개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우려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이에 관해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분석을 한 바 있다.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은 7년간 적자를 보면서도 반도체에 투자했다. ‘삼성 망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던 그런 장기투자를 지금은 못 한다. 그때는 오너 경영자의 판단으로 투자했는데, 이제는 주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오너 경영인 체제는 틀렸고, 전문경영인은 옳다는 이분법적 시각을 경계하는 발언이다.

금융시장은 이 부회장의 사과에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5월 6일 삼성 관련 주가는 대체로 견고했다. 삼성물산 주가는 일시적으로 급등하기도 했다. 향후 삼성의 승계가 불확실해지자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에 수요가 일시적으로 쏠린 것이다.

이 부회장은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도 강조했다. 실력과 도덕성을 동시에 증명해야 하는, 지금까지와 다른 관점에서 이 부회장이 시험대에 올랐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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