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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정치권 ‘뜨거운 감자’ 기본소득 

‘쩐의 전쟁’에 대한민국이 취했다 

긴급재난지원금 효과 맛본 정치권 대책 없이 ‘베팅 경쟁’... 단기적 증세 명분과 표심 확보 수단 되면 갈등만 깊어져

기본소득 논쟁에 불이 붙었다. 논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듯하다. 정치·사회·경제 등 여러 갈래로 분화한다. 논쟁에 참전한 이들은 동상이몽을 꾼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발전적 대안으로서 기본소득 논쟁은 더 활발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논쟁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가 기본소득 논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사진은 2013년 10월, 스위스 국민들이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를 기념해 동전 쏟기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2016년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의 반대로 도입안은 부결됐다.
2020년 한국 사회가 기본소득 논쟁으로 함몰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비상대책인 긴급재난지원금은 대중의 반신반의를 기대로 바꿔놓았다. ‘국민 모두에게 대가 없이 지급하는 돈’의 매력은 기대 이상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긴급재난지원금 수령률은 99.7%로 집계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나서서 독려한 자발적 기부금은 당초 예상했던 3조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282억원에 그쳤다.

‘쩐’의 위력을 실감하고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정치인들이다. ‘기본소득’을 의제로 삼았고 ‘전 국민 30만원’, ‘전 국민 80만원’, ‘전 국민 고용보험’ 등 베팅 경쟁이 벌어졌다.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치면서도 포퓰리즘이 아니라는 군색한 항변을 빼놓지 않는다.

기본소득 논쟁은 학계에선 꽤 오래된 주제다.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고 마르크스주의가 태동한 1800년대 중반 유럽에서 구체화했다.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는 “1848년 조제프 샤를리에가 제안한 토지 배당금은 현행 소유 제도의 경우 토지 소유자가 자연을 찬탈한 것에 기초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자연권에서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00년 넘는 근·현대화 과정에서 기본소득 논쟁은 학자들의 이론에 그쳤을 뿐이다. 실제 이를 전면적인 국가 정책으로 채택한 나라는 아직 없다. 자연히 대중들도 이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지금의 기본소득 논쟁을 격발한 트리거(trigger)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경제 활동이 중단되면서 부각된 국가의 책임론과 코로나 이후 달라질 사회상에 대한 불안감 증폭이 기본소득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보다 앞서 대중적 이슈가 된 건 2016년에 일어난 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2016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바둑 경기에서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5전 4승을 거뒀다. 세기의 대결은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거란 우려를 확산하는 기폭제가 됐다.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은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란 지극히 현실적인 걱정이다.

알파고와 코로나가 격발한 기본소득 논쟁


미국의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2005년에 출간한 저서 [노동의 종말](민음사)에서 대중이 갖게 된 공포의 근거를 제시했다. 제조업 부문의 단순 반복 작업을 기계가 대체하면서 2001~2003년 사이에 약 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리프킨은 2050년쯤에는 전통적인 산업 부문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전체 성인 인구의 5%밖에 필요치 않을 거라고 예견했다.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가 거의 필요치 않은 농장·공장·사무실이 일반화하리라는 전망이다.

리프킨의 예견을 뒷받침하는 최신 통계가 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35개 국가에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연간 근로시간은 -1.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라정주(재)파이터치연구원 원장(경제학 박사)은 국제로봇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의 ‘OECD 국가 자동화 지표’ 통계를 인용해 2017년 인구 1만 명당 로봇 대수에서 한국이 710대로 OECD 국가들 중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제조업 부문에서 로봇의 노동력 대체율은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예측했다. 각국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과 자동화가 맞물려 생산 효율이 증가하면서도 노동량은 줄어드는 추세가 나타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공지능 발달과 자동화 수준의 혁신이 가속화하면 일자리 감소는 예상되는 수순일 수 있다. 자발적 의지로 ‘무(無)노동’을 선택한 게 아닌 이상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돌릴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럴 경우 인류사를 지배해온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라는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2016년부터 본격화한 기본소득 도입 실험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2016년 6월 스위스의 기본소득 도입 시도는 이 의제를 대중화한 계기가 됐다. 이듬해에는 핀란드가 2년에 걸친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국내에선 2016년 성남시가 시작한 ‘청년배당’ 정책이 기본소득 실험 사례로 꼽힌다. 성남시는 지역에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 모두에게 분기별 25만원씩 연간 100만원을 지급했다.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후 경기도지사가 된 뒤 2019년부터 이를 경기도 전체로 확대해 ‘청년기본소득’이란 이름을 붙였다.

기본소득 실험들의 결과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학계에서 머물던 기본소득 논쟁을 사회 이슈로 끌어올렸다. 2019년 4월 29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개막식에서 연설하는 이 지사.
실험들의 결과는 어땠을까? 우선 국내 사례인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살펴보자. 성남시에 따르면 청년배당 시행 첫해인 2016년 113억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해 207명의 취업 유발, 192억원의 생산 유발, 113억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상품권 유통량은 청년배당 시행 전보다 1.8배 늘었고, 회수율은 99.7%로 나타났다. 청년들에게 지급한 배당금이 고스란히 지역경제 동맥으로 스며들었다는 의미다.

경기도가 시행하는 청년기본소득에 대한 만족도는 10명 중 8명으로 긍정적이다.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한 가장 큰 이유는 만 24세로 특정 연령에만 지급해 보편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다.

더 극적인 효과는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지급한 재난기본소득에서 나타난다. 정부가 전 국민에게 최대 100만원(4인 가구 기준)을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지급한 것과 별개로, 경기도는 도민 1인당 10만원 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다. 둘 다 사용 기한이 있는 상품권 형태다.

경기연구원이 최근 BC카드 매출 자료를 토대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과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년 동기 매출을 기준(100%)으로 도내 지역화폐 가맹점의 매출은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시작된 15주차(4월 6~12일) 118%, 17주차(4월 20~26일) 140%, 20주차(5월 11~17일) 149%, 21주차(5월 18~24일) 159%, 22주차(5월 25~31일) 159%로 나타났다. 8주 평균 전년도보다 매출이 절반 가까이(44%) 늘어난 것이다. 이는 코로나 사태 초기 중소상공인 매출이 폐업 위기까지 내몰렸던 상황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변화다. 이 지사가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 정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선순환을 만들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경제 대책”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런 결과에 기초하고 있다.

반면 국가 차원의 기본소득제 도입 실험 결과는 대부분 효과를 확인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핀란드는 2017년 25~58세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골라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3만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했다. 실업급여를 받는 실업자들이 구직을 기피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본소득제의 실업률 감소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알아보려는 취지였다. 결과는 실패로 나왔다. 핀란드 정부의 최종 보고서는 기본소득이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당초 목표했던 고용 촉진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2017년부터 3년간 저소득층 4000명에게 매달 1320캐나다달러(약 115만원)를 지급했다. 하지만 재원이 고갈돼 당초 3년으로 계획했던 실험을 1년 만에 중단해야 했다. 스위스는 2016년 전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 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친 적이 있다. 하지만 의외로 재원 마련 방안이 불확실하다는 여론이 일면서 국민의 77%가 반대해 시행하지 못했다. 2018년 빈민 1000가구에 가구당 월 1000유로(약 135만원)를 지급했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실험도 고용 증가나 창업·구직의욕 고최, 직업훈련 참여 등의 고용 효과를 거의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남시·경기도의 성과와 외국의 실험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데에는 보편성의 차이가 있다. 성남시와 경기도는 청년이라는 특정 연령을 타깃으로 했다. 그리고 재난기본소득은 항상성 없는 일회성 보조 수단이었다. 계층 구분 없이 전 인구를 표본으로 삼아 장기간 지속한 외국의 실험과는 목적이나 수단, 대상 등 설계부터 차이가 있다.

국가 예산 1년치 다 써야 1인당 월 ‘80만원’


지역의 정책을 국가 전체로 넓혀 일반화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운용 시스템은 기초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는 돈이 필요하면 증세나 국채를 발행해 재정을 늘릴 수 있지만, 지자체는 증세나 지방채 발행 권한이 없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우선순위를 두고 집행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가 지급한 청년기본소득의 경우도 기존의 예산에서 다른 항목을 줄여 생긴 여윳돈을 투입하는 식으로 집행됐다.

만일 국가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어느 정도의 재정이 필요할까. 더미래연구소의 기본소득 관련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씩 지급하려면 180조원이 필요하다. 50만원으로 높이면 필요 예산은 309조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한 해 총지출 예산은 460조원이었다. 1년 예산의 60%가량 있어야 월 50만원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에 따르면, 기본소득의 성격은 보편성·무조건성·개별성(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정기성·충분성을 갖춰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충분성을 충족하려면 최소한의 생계 보장이 가능한 월 80만원 수준(GDP의 25%)이 되어야 한다. 필요한 예산 규모는 500조원으로, 1년치 국가 예산을 온전히 쏟아부어야 완전한 기본소득제를 실현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지급 비용을 대폭 줄인다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재정 투입에 비해 충분한 실익을 거둘 수 있는지가 문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저소득자는 용돈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받고 고소득자는 기본소득까지 받게 돼 오히려 실업 문제는 해결안 되고 소득 불평등만 심화될 것이다. 기본소득으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설사 지급 비용을 대폭 줄인 부분적인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더라도 연간 수백조원의 추가 예산을 마련할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증세의 해결로 귀결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1년치 국가 예산, 또는 그 절반 수준의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증세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위한 방편으로 로봇세가 거론된다. 일자리를 가져간 로봇이나 AI가 줄어든 일자리와 인간의 소득 감소분을 세금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로봇이나 AI는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있는 법인격체(法人格體)가 아니다. 결국 이는 로봇으로 노동력을 대체한 기업이나 고용주에 대한 증세를 의미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집행해 재정적자 100조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정부는 이미 다양한 세원 발굴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일반 담배의 50% 수준인 액상형 전자담배의 제세부담금을 일반 담배 수준으로 인상한다는 방침을 굳히고 인상폭을 검토하고 있다. 또 가상화폐 거래 시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세금을 매기는 세법 개정도 검토에 들어갔다. 부동산 세제를 정비해 과세 사각지대 차단에도 나섰다. 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에서는 세금 부담 여력이 있는 이들로 범위를 좁히는 핀셋 증세나 부자 증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인식을 토대로 ‘보편적 증세’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필요한 증세 규모는 지금 검토 중인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거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2017년 OECD가 영국·핀란드·프랑스·이탈리아를 대상으로 기본소득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3개국(핀란드·영국·프랑스)의 빈곤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는 최저보장 소득 수준만큼 기본소득을 주려면 증세가 필요한데, 국민 대다수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셈법으로만 본다면 기본소득은 정치인에겐 누구라도 마다 못할 매력적인 의제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정치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솔직하게 보여주는 불변의 진리다. 어차피 줄 돈이라면 남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줘야 제대로 생색난다. 기본소득 테이블에 여야 정치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숟가락을 얹는 이유다. 이재명 경기지사로부터 열린 ‘만찬’에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전 장관 등 대권 잠룡들이 입장했다.

‘기본소득 만찬’에 둘러앉은 정치권의 동상이몽

이재명 지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경기 부양을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재난기본소득’으로 단숨에 전국적 관심을 받는 후보가 됐다. 이 지사는 6월 5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5월 정례 전국 16개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 조사에서 전달보다 2.7%p 오른 70.3%를 기록하며 자신의 역대 지지율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1위를 지키고 있는 김영록 전남지사(72.2%)를 바짝 추격 중이다. 6월 12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4개월째 2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이 지사의 선호도는 한 달 전(5월) 11%에서 6월 들어 12%로 상승했다. 코로나 사태 대응 과정에서 신속한 행정 능력과 재난기본소득 이슈를 선제적으로 주도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의원은 28%에서 더 확장하지 못하고 정체됐다. 박원순 시장과 김부겸 전 장관은 1%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백가쟁명식 난상토론은 이처럼 지지율 등락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비롯됐다.

박 시장은 이 지사의 기본소득 도입 대신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를 새 의제로 들고 나왔다. 6월 11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코로나19 위기로 올 상반기 실직자가 210만 명이고, 그중 절반인 105만 명이 비자발적 실직자”라며 “이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고, 다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게 해주는 최대 생존자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지사의 기본소득 재원 확보를 두고 “말씀보다 현실적으로, 실증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며 “10만원씩 줘도 62조원이 들어가는데 모든 국방과 사회복지를 없앨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의원도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하고 그에 관한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면서 “기본소득제의 개념과 재원 확보 방안, 지속 가능한 실천 방안은 무엇인지 논의·점검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친문 핵심인 김경수 경남지사는 “기본소득 논의로 넘어가는 건 조금 빠르다. 기본소득은 국민 100만 명 중 50만 명만 일해도 10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생산성이 나와야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이 지사에 대한 견제구인 셈이다.

민주당의 의원 중심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는 기본소득제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냈다. ‘더좋은미래’는 86세력 중심의 민주당 내 최대 계파로 꼽힌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6월 초 공개한 ‘진보 진영의 복지 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기본소득은 증세만으로는 재정 실현 가능성이 낮고, 기존 복지제도와 통폐합돼 실질적인 복지 혜택을 오히려 하향 평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기본소득을 대체할 방안으로 고용보험과 실업부조의 확대를 제안했다. 더좋은미래 소속인 신동근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의 단체 SNS 대화방에서 “진보좌파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불평등 완화(해소) 대신에 경제 활성화(살리기), 경제 성장이라는 우파적 기획에 함몰됐다고 봐야 한다”며 이재명식 기본소득을 비판했다. 김부겸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본격적인 기본소득 논의에 앞서 고용보험 확대가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기본소득을 포퓰리즘 성격의 퍼주기라며 부정적이었던 야권 인사들도 어느새 논쟁에 발을 들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그렇다. 김 비대위원장은 6월 4일 “우리는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대변혁기에 들어가고 있다”며 “기본소득을 검토할 시기”라고 말했다. 이원욱 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같은 날 “통합당 당대표께서 의제화했으니 기본소득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쟁화할 전망“이라며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여·야·정 추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쩐의 전쟁’으로 끝나면 모두 불행

정치권의 논쟁이 이대로 간다면 다가오는 2022년 대선은 여야 구분 없는 ‘쩐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치권의 논쟁 과정이 표심에 매몰돼 자칫 합리적 대안보다 ‘퍼주기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정치학)는 “이슈 선점을 통해 표를 얻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실질적 결론을 도출하기보다 관심을 유도하고 의제 형성을 통한 전시 효과를 노리는 거라면 이는 생산적인 논쟁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제는 어느 날 법을 만들어 뚝딱 시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벌어지는 기본소득 논쟁의 수준은 여전히 상상력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기본적인 방향과 성격,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경제적 효과나 복지 확대의 담론으로 포장된 논쟁은 코로나의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낸 단기성 의제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는 이념의 대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난 100여 년에 걸친 논쟁의 역사가 방증하고 있다.

논쟁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갑론을박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된 메시지는 정치적 레토릭에 경도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단지 당장 급한 증세의 명분이나 정치인들의 표심 확보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소모적인 갈등만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동석 인천대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한 국채 발행은 위험하고, 증세도 어려운 시점에서 재정 지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사회적 합의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적 틀을 구비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본소득제는 정말 고용이 종말되는 시기에 불가피하게 써야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07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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