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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향] 北원전 건설 문건 삭제 미스터리, 진실은? 

北원전 건설+동북아 슈퍼그리드 현실화했다면 최악의 시나리오 

전력공급 차단 권한 북에 넘겨주려 했나… 핵보다 치명적인 에너지 안보 위험
민주당, USB 공개하고 정무·정책적으로 판단 잘못 내린 부분에 대해 사과해야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을 다녀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2020년 12월 4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2019년 12월 1일 감사원 감사를 하루 앞두고 무려 444건에 이르는 문건을 삭제한 혐의다. 주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한 문건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북한 원전 관련 문건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언론이 검찰 공소장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60 pohjois’라는 폴더 안에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과제’, ‘북한 전력산업 현황과 독일 통합사례’ 같은 문건이 다수 들어 있었다. ‘pohjois’는 핀란드어로 ‘북쪽’이라는 뜻이다. 검찰이 공소장에 명시한 북한 원전 문건은 모두 17개. 이름이 동일한 문건을 제외하더라도 13건이다. 이들은 왜 북한 원전 문건까지 삭제한 것일까.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문건 못지않게 이들 문건 역시 공개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어떤 민감한 내용이 포함됐기에 삭제했을까. 의혹이 제기되자 산업부는 지난 1월 31일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내부자료’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틀 뒤인 2월 1일 갑자기 원문이라며 문건 하나를 공개했다. 삭제한 문건을 대체 어디에서 찾은 것인지 그리고 왜 문건 하나만 공개하는 것인지에 대한 배경 설명은 없었다.

이 문건에는 북한 원전 건설과 관련한 세 가지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1안은 과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부지인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원전 2기와 사용후핵연료 저장고를 건설하고 방사능 폐기장 구축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이다. 2안은 비무장지대(DMZ) 내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이다. 3안은 신한울 3·4호기를 건설한 후 북한으로 송전하는 방안이다.

문건 곳곳에 ‘BH’, 청와대 보고용?


▎검찰 공소장에 나온 산업부 공무원들의 삭제 문건 목록 중 북한 원전 지원과 관련한 문건. / 사진:검찰 공소장 범죄일람표 캡처
산업부는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에서 이 문건을 공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첫째, 1안에서 사용후핵연료 저장고를 건설해주기로 한 대목이다. 1995년 KEDO와 북한 사이에 경수로 공급협정을 체결할 당시 사용후핵연료는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고, 결국 반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시 사용후핵연료 영구저장시설과 핵연료성형공장 건설을 요구했다. 이것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사용후핵연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핵무기 원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995년에 불허했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꺼이 건설해줄 생각을 한 것이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속 H축의 허리에 해당하는 ‘접경지역평화벨트’에 원전을 설치할 생각을 한 대목이다. 탈원전을 전면에 내건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에서 원전은 평화에 상반되는 개념이다.

셋째, 신한울 3·4호기를 활용하고자 한 대목이다. 신한울 3·4호기는 문재인 정부 초기 2017년 12월 탈원전 정책의 상징적 조치로 건설 중단을 선언한 대상이다. 그런데 갑자기 2018년 5월 북한 원전 문건에 등장한 것이다. 북한 원전 지원 때문에 탈원전 정책까지 뒤집을 생각을 했다는 점이 놀랍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지난 2월 5일 국회 대정부질문 때 이렇게 답했다. “지난 2월 3일 산업부 웹하드 내에 있는 원전산업정책과 저장 공간에서 두 번째 버전(v1.2)이 있는 것을 추가로 확인했다.(중략) 530개 파일이 파일명이 변경되거나 지워졌기 때문에 정확히 확인하긴 어렵지만, 상당한 분량이 웹하드와 컴퓨터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삭제 문건 대부분을 찾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성 장관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문건 정도라면 여야 국회의원에게 열람 형태로라도 공개 못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북한 원전 문건들이 작성된 시기는 2018년 5월 2일과 18일 사이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정부 제1차 남북 정상회담과 2018년 5월 26일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사이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BH’라는 문구가 제목 곳곳에 등장하는 청와대 보고용 문건을 작성한 것이다. 청와대로부터 요구를 받고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의미한다.

산업부는 이와 관련해 거듭 ‘내부자료’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무자가 하필 이 시기에 북한 원전 관련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점도 의문이지만,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사소하기 짝이 없는 내부 자료를 왜 황급히 또 알뜰하게 삭제하려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감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을 것이란 의혹은 산업부가 전체 문건을 공개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 원전 문건 작성과 관련해 해당 내용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했을 것이란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 도보다리 회담 당시 USB에 담아서 줬다는 구체적 내용과 함께였다.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 회동 때 문 대통령이 “발전소 문제…”라고 발언한 것이 한 근거였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2018년 4월 3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구두로 그것을 논의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자료를 하나 넘겼는데 거기엔 담겨 있다. 신경제 구상을 책자와 PT 영상으로 만들어서 직접 김정은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그 영상 속에, PT 영상 속에 발전소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원전보다 더한 내용 포함돼 있었나


▎산업부가 공개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 / 사진:검찰 공소장 범죄일람표 캡처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이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월 2일 이런 해명을 내놨다. “신재생에너지 협력, 낙후된 북한 수력·화력 발전소의 재보수 사업, 몽골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 슈퍼그리드 망 확충 등 아주 대략적 내용이 포함됐다. 원전은 전혀 포함이 안 돼 있었다.”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2월 5일 한 방송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신경제 구상이 담긴 USB를 전달한 곳은 정상회담이 진행됐던 판문점 평화의집 1층이었다. 정식 의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 회담장보다는 무게감이 덜한 곳에서 전달했다.(중략) 정상회담 과정에서 원전을 지어주겠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고 원전의 ‘원’ 자도 나오지 않았다.” 산업부 원전 문건 작성 시기로 추론해볼 때,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전달한 USB에는 원전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보다 더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탈원전 공약을 내걸기 위해 준비 중이던 문 대통령은 2012년 민주당 상임고문 당시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을 주창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났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일본·중국·러시아·몽골의 전력망을 연계시켜 상호공급 체계를 만드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이 구상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탈원전 이후 초래될 전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전력지원 문제 역시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은 러시아 극동 지역의 수력발전소와 몽골 태양광 발전소 등에서 생산한 저렴한 전력을 북한을 경유해 들여오는 것이 핵심이다. 이때 일부를 북한에 나눠주는 안을 포함한 방식이다.

이 구상의 문제점은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몽골과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들여올 때 북한을 경유하는 방안을 택했을 경우다. 북한이 중간에서 차단할 경우에 우리는 심각한 전력난을 겪을 수밖에 없고 사태가 장기화하면 경제난까지 우려해야 한다. 우리 사회와 경제의 생살여탈권을 북한에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북한 핵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면서 치명적인 안보상 위험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2015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갈등을 겪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가스와 석탄 공급을 중단한 데 이어 전력 공급 중단까지 단행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주독 미군 감축을 결정하면서, 독일이 탈원전 정책 이후 러시아산 가스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가까운 나라를 지켜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탈원전 이후 전력 부족으로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될 경우 우리도 이런 처지로 몰릴지 모른다.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는 전력 공급 차단 권한을 북한에 넘겨주려 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상황이지만 야당도 언론도 이 부분은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안보상 의미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이에 문재인 정부는 취임 이후 이 사업에 꽤 속도를 내왔다. 문재인 정부 초기였던 2017년 9월 송영길 당시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일행이 일본을 방문해 손정의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상업운전 가동을 위한 채널 구축 방안에 대해 협의를 진행했다. 2018년 5월에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역시 일본을 방문해 손정의 회장을 만나서 같은 의제인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관해 논의했다.

2017년 11월, 조환익 당시 한국전력 사장은 방한한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을 만나 한·러 전력망 연계사업의 적극적 추진을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6월 김종갑 한전 사장도 러시아 국영전력회사 로세티의 파벨 루빈스키 사장과 ‘한·러 사이 전력계통 연계를 위한 공동 연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019년 7월 4일, 문 대통령은 손정의 회장을 다시 만났다. 그 직후인 2019년 9월 김종갑 사장은 국회에서 열린 ‘2019 퓨처 E 포럼’ 개회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한·중·일 전력망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위해 중국과 양국 전력연계사업을 위한 공동개발 협약(JDA)을 맺었고 일본 소프트뱅크와의 1차 예비 타당성 조사 결과도 긍정적이다. 때가 온다면 북한과 연계해 러시아 등의 전기를 끌어올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한 손정의 4번 만난 文 정부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은 2019년 7월 청와대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을 접견하고 혁신성장,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추진했던 사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2016년 9월 손 회장을 만나 이렇게 요청하기도 했다. “손 회장의 아시아 슈퍼그리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스마트그리드 분야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므로, 역량 있는 한국 기업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달라.”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조환익 한전 사장이 이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결정적 차이점은 박 정부 시절에는 북한을 경유하는 방안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6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정훈 당시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북한으로 슈퍼그리드 송전선 매설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조환익 당시 사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북한을 거쳐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망은 서해를 통해 올 것이라고 답변했다.

반면에 김종갑 현 사장은 2018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출석해 이렇게 답변했다. “러시아로부터 가공선을 연결해 전기를 끌어오는 문제는 북한을 거쳐 와야 하므로 언젠가는 이야기해야 하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안을 이야기할 때는 아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의 H, 동서축은 각각 북한을 경유해 중국과 러시아로 연결되는 전철 노선이다. 그 전철 노선 상단부의 가공선으로 전력을 국내로 들여오는 한편, 북한에도 나눠주겠다는 구상이다.

정의용 장관의 해명처럼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USB에는 원전 관련 내용이 전혀 없었을까. 산업부가 공개한 문건의 내용처럼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단된 경수로 지원 사업에 비해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이 북한에 더 유리하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일부 설명을 포함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USB를 전달받은 뒤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당국은 내부 검토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점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추가 자료 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때 중단된 경수로 지원 사업의 재개를 희망하면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해 알려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런 전제에서만, 왜 산업부가 황급히 북한 원전 지원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으며 또 청와대 보고용 문서를 작성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우리는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에게 원전 건설 관련 3가지 대안을 제시했을 것이란 추론을 해볼 수 있다.

북한 경유하는 송전선 검토했다면 큰 문제


이와 관련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월 3일 이런 지적을 내놨다.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고 4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후속 조치를 준비해달라고 강력히 주문했다. 문제의 북한 원전 추진 문건이 5월 2~15일 작성된 이후 김정은이 5월 신포 경수로를 점검하고 5월 26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진행한 뒤 2019년 신년사에서 원전 활용을 강조했다.(중략) 현재까지 공개된 사건을 시간 순으로 나열만 해도 전체 퍼즐의 윤곽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2018년 5월 6일 북한 당국이 관계 부처에 경수로를 점검한 뒤 건설 재개 가능성과 필요한 물자를 상세히 보고하도록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1월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나라의 전력문제를 풀기 위한 사업을 전(全) 국가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중략) 수력발전소 건설을 다그치고 조수력과 풍력, 원자력 발전 능력을 전망성 있게 조성해나가며”라고 언급했다. 김종인 위원장의 지적은 결국 우리 정부가 북한 원전과 관련해 지원 약속을 했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신포 경수로 점검에 나서는 등 원자력발전을 추진하기로 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문제의 USB에 대한 야당의 공개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청와대는 결국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정의용 장관은 지난 2월 2일 이렇게 언급했다. “내용은 언젠간 공개될 거라 본다. 지금 공개하는 건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도 같은 날 USB 공개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야당이 책임지겠다고 하면 면밀히 검토하겠다.” 하지만 이튿날인 2월 3일 한 방송에 출연해서는 이렇게 언급했다. “절대 공개해선 안 된다.(중략) 외교상 기밀문서이고 정상회담 장소에서 건네진 것이기 때문에 기록물로 가지 않아 열람도 안 되는 것이다.” 하루 만에 말을 슬쩍 바꾼 것이다. 북한 원전 또는 그 이상의 제안 내용이 없다면 열람 형태로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청와대는 영원히 묻어버리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 원전 이슈의 4월 재보선 영향은 한정적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지난 1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북한에 원전도 지어주고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도 추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산업부 방안 중 1안대로라면 북한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확보가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경수로 기술을 활용한 핵잠수함 보유도 가능해진다. 아울러 남한에 대한 전력공급권까지 쥐게 된다. 일거삼득(一擧三得)인 상황이다. 이미 핵무기 개발을 완료했다면 핵무기까지 보유함으로써, 우리 안보를 총체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갑’의 위치로 확실히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최악의 잔혹 드라마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것을 방지하려면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더라도 사용후핵연료를 남김 없이, 또 즉시 반출하도록 해야 한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북한을 경유하는 방안은 피해야 한다. 북한에 전력을 제공하더라도 일단 우리나라를 거쳐서 공급하도록 송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동북아 슈퍼그리드로 도입하는 전력 총량은 예비전력 수준에 한정해야 안전하다.

북한 원전 이슈의 4월 재보선에 대한 영향은 한정적일 것이다. 전국적 이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중도층 일부가 국민의힘 지지로 돌아서게 만드는 효과는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또다시 좌파 프레임이냐”는 여당의 반박을 논리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은 전통적인 좌파 프레임의 식상함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가 추진했던 북한 원전 사업과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에 추가하려 했던, 북한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안보상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를 정확하게 간파해 지적해야 국민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비공개, 곧 숨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 공개를 전제로 정무적으로 또 정책적으로 판단을 잘못 내린 부분에 대해 사과하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른다.

- 이종훈 정치평론가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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