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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文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 김오수의 행보 

“방탄 될지 발톱 드러낼지는 모르는 일(전직 검찰 간부)” 

문 대통령, 김오수에게 검찰에 대한 불만과 향후 가이드라인 제시
충직한 참모 이미지 벗고 결단력 있는 리더 모습 보여줄지 관심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5월 4일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격려는 고맙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쉽지 않다.” 법무부가 검찰총장 후보자들의 명단을 10여 명으로 압축해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 넘겼을 때,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는 격려를 전해오는 주변 인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으레 나오는 “응원해달라”는 말 따위는 없었다고 한다. “짐짓 겸양하는 투도 들떠 하는 투도 아니었다. 실제로 마음을 비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반응을 접한 한 인사의 전언이다.

문재인 정부가 선택한 마지막 검찰총장은 김 후보자였다. 김 후보자는 박상기·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법무부 차관으로서 보좌한 인물이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를 향해 “적극적 소통으로 검찰 조직을 안정화하는 한편, 국민이 바라는 검찰로 거듭나도록 검찰 개혁이라는 시대적 소임을 다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어렵고 힘든 시기에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 후보자가 5월 말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취임하면 적어도 법적으로는 2년 임기를 보장받게 된다. 그의 임기는 본인을 임명해준 정권과 새로운 정권을 관통한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모든 검찰총장의 일이 어렵지만, 정권 교체기의 검찰총장은 뭔가를 결정하는 일이 더욱 고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권 교체기의 검찰총장을 ‘치욕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였다’고 회고한 검찰총장도 있었다. 김 후보자가 마주한 현실은 본인의 말대로 쉽지 않아 보인다. ‘현실은 정직하다’가 그의 카카오톡 메신저 상태메시지에 적힌 말이다.

외풍 거세지고 고려할 상황 다양해질 듯


▎2017년 당시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오수 법무부 차관.
“김 후보자에게 ‘특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김 후보자가 너무 힘들 것이란 사실이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정권의 마지막 검찰총장에게 다가오는 시간을 ‘불확실성’이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의 임기 반환점 이전에 대선이 치러진다. 외풍은 예년보다 거세고, 사건의 단계마다 고려해야 할 상황은 다양해질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검찰총장은 대선 이후 사퇴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언급하는 이도 여전히 많다. 물론 검찰총장의 2년 임기를 법으로 보장한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불확실성의 초입에서, 김 후보자는 권력으로부터 명확한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질의응답 때 검찰 개혁 성과를 평하던 중 “여러 수사를 보더라도 이제 검찰은 청와대 권력을 별로 겁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전직 검찰총장은 “김 후보자를 향한 이 발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하나는 현재의 검찰에 대한 불만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의 검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고 단언했다.

검찰총장들이 취임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다짐하는 것은 일선 검사들의 소신에 대한 버팀목, 바람막이 역할이다. 이는 다시 말해 수사를 놓고 검찰에 불어닥치는 외풍이 끊임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외풍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한 전직 검찰총장은 “좀 살살 해달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실세’를 겨냥한 수사가 진행되던 어느 날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지금 당장 만나자”는 전화를 받은 일이 있다고 했다. “법무부에서는 차관과 검찰국장이 나갈 테니 대검찰청에서는 차장과 중수부장을 데려오라. 회의를 좀 하자”는 것이었다.

“장관님, 청와대에서 아침부터 무슨 말씀이라도 들으신 모양이군요.” 이 검찰총장이 차분히 말하자 장관은 그렇다고 했다. 이 검찰총장은 “우리를 부르시면 안 된다. 장관께서 처리해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이런 거절과 불편함이 검찰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왔다고 믿고 있다. 그는 “검찰총장이 직접 수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외풍을 막는 일이 원래 임무”라고 말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모든 검찰총장이 유사한 일을 겪고, 또 유사하게 대응해왔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검찰총장에게 청와대의 의중이 전달되는 통로는 제각각이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조율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전직 검찰총장들은 말했다. 내거는 명분은 의논인데, 실제로는 의중 전달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검찰총장이 청와대와 ‘코드’가 다른 경우, 대검 내부의 다른 관계자가 ‘채널’로 선택되기도 한다. 채널이 된 대검 간부가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끝내 총장에게 말을 옮기지 않은 적도 있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가끔은 일부러 문을 열어두고 휴식하는 모습을 직원들에게 보였다고 한다. “어차피 검찰총장은 잠을 자고 있으니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검사들은 검사들의 일을 하라”고 말하는 일종의 ‘액션’이었다는 것이다. 검찰총장으로 지명되기 전에 민정수석으로부터 국정 기조에 대한 공감 여부를 질문받았다는 이도 있다. 다만 의중 전달이 구체적인 수사의 외압으로 느껴질 때는 각자가 가치관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라고 한 전직 검찰총장은 말했다. 그는 “단 하루만 총장직에 있고 말더라도 좋다는 인식으로 임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총장에게 전달되는 모든 메시지가 부적절한 압력인 것은 아니다. 과거 한 검찰총장은 정치권에서 자신의 조기 교체설이 나온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 검찰총장은 보고가 ‘팩트’가 아니며 누군가가 꾸민 이야기임을 단번에 알아봤다고 한다. 더욱 신뢰할 만한 다른 경로를 통해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문 대통령으로부터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며 소임을 다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웃복싱? 한 대 맞고 한 대 때리는 스타일”


▎3월 4일 사의를 표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검찰총장들을 향했던 외풍과 김 후보자가 걸어온 행보를 겹쳐 보는 이들은 아무래도 기대보다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전지검의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수사, 서울중앙지검의 청와대 ‘기획 사정’ 의혹 사건 수사 수위를 적절히 조절할 만한 인사를 골랐다는 관측이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김 후보자는 검찰 직접수사 부서 축소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의 힘을 빼는 과정에서 정권의 의중을 반영하는 행보를 보였다”고 말했다. 대검중수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우리에게 총은 안 겨누겠다’는 인사를 고르지 않았겠냐”고 했다.

김 후보자가 차기 검찰총장으로 거론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검찰 관계자들에게 공통으로 회자하는 사건이 있었다. 김 후보자가 법무부 차관으로 재직하던 2019년 9월 강남일 당시 대검 차장을 만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를 ‘별도의 수사팀’이 맡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 사건이다. 김 후보자는 그때 “수사가 진행 중인데 우리 법무부나 검찰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권의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김 후보자를 발탁한 이유가 ‘방탄’이라 보는 이들은 이 사건을 그의 편향성의 근거로 든다. 김 후보자의 검찰 선배였던 한 인사는 “괜찮은 인물이었는데 차관 시절 그 일만큼은 왜 그랬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 대화를 두고 김 후보자는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했고 검찰은 ‘외압’이라고 했다. 이 제안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하자”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대검 반응과 김 후보자 설명에 약간 차이가 있다. 당시 대검에서는 “윤 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 구성이 제안됐고, 수사의 중립성을 흔드는 일이라서 거절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이후 국회에서 “‘별도의 수사팀 같은 것을 만들어서 총장께서 수사하면 어때?’ 정도였다”고 말했다. 다만 김 후보자도 국회에서 “(검찰총장이) 수사지휘권을 온전히 행사할 것이냐, 아니면 일정 부분만 행사할 것이냐 하는 부분은 총장님마다 다르셨다”며 “그런 취지의 이야기”라고 했다.

2~3분간 차를 마시며 나눴다는 이 대화의 파장은 컸다. 앙금이 가라앉지 못한 채 법무부와 검찰은 긴 갈등 국면에 빠져들었다. 윤 전 총장은 윤 전 총장대로 성격이 강하고, 김 후보자는 김 후보자대로 윤 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선배라서 서로 섣불리 양보하거나 봉합을 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시 법무부의 제안을 부적절하다고 성토했던 대검 간부들은 추 전 장관 취임 뒤 각 지방으로 흩어졌다. 이후 윤 전 총장은 실제 여러 사건의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했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별도 수사팀 제안 사건을 기억하는 검사들이 많이 있다”며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꼭 풀고 가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를 깊이 아는 이들은 이 사건에 참모의 충심 기질이 비친다고 했다. “일단 아이디어를 내고 뭔가가 되도록 만들려는 충심 때문이지, 뭔가를 재고 따진 것은 아니다.” 김 후보자와 검찰에서 함께 근무한 한 인사는 “그 추진력 때문에 모시기 힘들었다. 추진력은 있는데 정무 감각은 없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상급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절대 흘려듣지 않고, 상급자가 강조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일단 뭔가 결과를 내려고 애써 보는 성격이라는 얘기다. 그 과정에 사심은 없다는 것이 주변 평이다. 이 인사는 “스트레이트가 날아오면 피하면서 ‘아웃복싱’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김 후보자는 차라리 한 대 맞고 한 대 때리는 스타일”이라고 권투에 빗댔다.

전직 검찰총장 등 검찰 원로인사들은 김 후보자의 ‘감사위원 탈락’ 이력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김 후보자를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어쨌거나 감사원 감사위원이 못 된 인물을 법 집행 최고 책임자로 두는 선택은 아쉽다”고 말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국회에서 “제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배제했다”고 말했었다. 김 후보자의 선배인 한 검찰 원로인사는 “감사위원 탈락 때문에, 검사들이 과연 존경하고 따를 것인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친정권’, ‘예스맨’으로 이해하는 건 단편적


▎1월 27일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를 떠나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 후보자가 법무부를 떠난 뒤 금융감독원장·공정거래위원장·국민권익위원장 등의 후보군에 계속 오른 일도 결국 ‘우직한 참모’ 캐릭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후보자를 “고위공직자 후보로 거의 최다 ‘노미네이트’된 분”이라고 일컬었다. 다양한 역량이라는 말로 풀이됐지만, 김 후보자를 아끼는 사람들은 “너무 자주 하마평에 오르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때면 김 후보자는 “내가 자리를 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검증에 비동의하면 천거해준 분들께 예의가 아니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답했다고 한다. 한 인사는 “예컨대 위에서 ‘공적조서를 쓰라’고 하면, 안 될 줄 알면서도 묵묵히 쓰는 사람이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추진력 있는 참모의 이미지를 벗고 결단력 있는 리더의 모습을 새로 보여주는 것도 김 후보자의 당면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이후 김 후보자가 과연 정권이 의도하는 ‘예스맨’이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이가 많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김 후보자를 둘러싼 정치적 편향성 등 여러 논란이 있다는 점을 안다면서도 “총장이 되면 좀 달라진다. 정권만 바라보지는 않게 된다”고 말했다. 검사들을 감독하고 국가적 법 집행을 결정하는 위치에 오르게 되면 그냥 ‘현상유지’를 할 것인지, 나라의 미래를 다질 것인지 자연히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가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많은 법조인은 윤 전 총장의 사례를 든다. 문재인 정부는 고검 검사였던 윤 전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했고 검찰총장으로 직행시켰다. ‘우리 편’으로 의심하지 않았던 윤 전 총장이었지만 이후 검찰과 여권은 크게 충돌했다. 김 후보자의 또 다른 선배는 김 후보자를 두고 “순종적으로 ‘방탄’ 역할을 할지 반대로 ‘발톱’을 드러낼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일 정권이 노골적인 요구를 해온다 할 때 맹목적으로 따를 스타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평가들은 ‘김오수도 결국 검사’라는 말로 회자한다. 김 후보자를 자주 만난다는 한 인사는 “나는 ‘김 후보자가 기본적으로 특수부 검사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김 후보자가 언론이 보는 것보다 유연한 태도를 가진 건 확실하다고 전했다. 김 후보자를 ‘친정권’이나 ‘예스맨’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단편적이라는 지적이었다.

그의 수사를 지켜본 이들도 비슷한 평가를 남긴다. 김 후보자는 2009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일 때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인 효성그룹의 비자금 수사를 진행했었다. 당시 사정을 아는 한 인사는 “정권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다”고 말했다.

당시 김 후보자는 검찰 수뇌부와도 갈등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 결과 나타난 비자금의 액수는 김 후보자가 수사팀 지휘를 맡기 이전보다 늘어났다고 한다. 김 후보자는 이후 원주지청장으로 옮겨 갔고, 그다음에도 검사장 승진 코스와는 거리가 먼 공정거래위원회 파견검사로 일했다. ‘특수통’으로 공인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낸 이가 받을 인사는 아니었다는 것이 주된 평이다.

그와 함께 수사해본 인사는 “해바라기처럼 정권을 따르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수사팀 후배들을 아꼈고 “잔정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밤중 집에 가다가 부원들이 모인 사실을 알고 돌아와 회식비를 결제해 준 일도 있다. 대검 과학수사부에서 근무할 때는 빈 공간에 정원을 만들어서 직원들이 좋아했다.

조직 안정과 정치적 중립 다 이룰까


▎취임 35일 만에 퇴임식 없이 물러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 사진:연합뉴스
‘검찰 독립’과 ‘민주적 통제’의 갈등 속에서 검찰총장의 빈 공간이, 역설적으로 검찰총장이 징계를 받던 국면에서 확인된 바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조미연)는 지난해 12월 윤 전 총장이 추 전 장관의 직무집행정지 조치에 대해 제기한 집행정지를 인용하면서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 감독권에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고 썼다.

당시 모처에서 결정문을 내려받아 읽은 윤 전 총장은 그 부분을 “의미 있다”고 짚었다. 이후 “대검으로 가겠다”며 복귀를 서둘렀다. ‘맹종은 안 된다’는 것은, 인사청문회 통과시 공익을 대표하는 검사들을 총지휘하게 될 김 후보자에게도 당연히 적용되는 지적이다.

내정 이후 김 후보자의 행보에는 검사들의 독립성에 대한 배려가 일정 부분 깃들어 있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꾸려진 직후 대검 반부패강력부가 준비하려던 전국 검찰청의 주요 사건 수사 상황을 “보고받지 않겠다”고 먼저 밝혔다.

본인이 조사를 받았던 수원지검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향후 취임 이후에도 법에 따라 정확히 회피하겠다”고 했다. 그는 신상팀장(청문지원팀장)만 제외하고 인사청문회 준비단 주요 인사를 모두 대검 인사로 채웠다. 현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검찰총장의 다른 말은 갈림길에 선 총장이다. 그간 대검 총장실을 채우고 비운 많은 선배처럼 김 후보자도 선택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정권으로부터 신임받으면 힘 있는 총장이 되고, 정권의 뜻을 거스르면 총장의 힘을 빼는 일이 뒤따른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정권에 잘 보이면 그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사실은 명백하다”면서도 “하지만 자신의 행보가 아니라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첫째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정권과 통하면 힘을 받을 것이고, 정권을 거스르면 전례처럼 온갖 압박을 받고 쫓겨날 것”이라고 했다.

김 후보자가 공언대로 조직 안정과 정치적 중립성을 다 이룰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그의 구체적인 입장을 엿볼 기회는 조만간 찾아온다. 그는 5월 말 인사청문회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하는 대전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게 된다.

조 전 장관 가족 비리 수사,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수사 등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들에 대해서도 어떤 시각인지 평가를 촉구받을 수 있다. 수사와 더불어 김 후보자가 검찰 후배들에게 보낼 메시지 중 하나는 연쇄적이고도 큰 폭으로 이뤄질 검찰 인사 내용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김 후보자가 취임할 경우 내실 있게 의견을 청취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자의 의중이 얼마나 반영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임 윤 전 총장의 경우 1년여간 검찰 인사에서 사실상 의견을 묵살당했다. 검찰총장들은 가장 중요한 권한 중 하나로 인사권을 꼽아왔다. “법에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돼 있지만, 사실은 장관과 총장이 협의해서 하는 것”이라는 게 역대 검찰총장들의 인식이었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수사 지휘가 되지 않고, 반대로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면 잔소리할 일도 없다”고 말했다.

사자가 이끄는 양, 양이 이끄는 사자


▎서울 서초동에 자리한 대검찰청 청사.
지난해 추 전 장관의 인사제청으로 좌천된 검사들의 복귀 여부, 윤 전 총장 징계에 관여한 검사들의 행선지, 사상 첫 ‘피고인 중앙지검장’이 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유임·승진 여부 등은 뻔한 관전 포인트다.

전직 검찰총장은 전통적으로 검사장 인사의 숨은 관전포인트를 서울남부지검과 수원지검, 부산지검으로 꼽았다. “법무부에 양보해도 괜찮은 곳이 있지만, 사건이 터지는 곳들은 총장의 의중이 반영돼야 한다.” 김 후보자 역시 취임하면 주요 검찰청은 차장검사의 인사에까지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고 법조계는 짐작한다. 한 인사는 “조언할 기회가 있다면, 최근 계속돼온 ‘코드 인사’는 탈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권 교체기의 검찰총장이었던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총장으로 와도 수사는 건드리지 말라고 발톱을 세운다”고 말했었다. 김종민 변호사는 “한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양 떼 부대가 한 마리의 양이 이끄는 사자 떼 부대보다 강하다는 격언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검찰총장이 어떤 의지를 갖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에 따라 조직은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정권이 자기 사람을 찍는 관행이 예전에는 달랐는가. 그런데도 사건이 터지면 수사는 하는 게 검찰이다. 김 후보자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 이경원 국민일보 법조팀장 neosarim@kmib.co.kr

202106호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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