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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 이경돈 서울디자인재단 대표 취임 1년, 무엇을 바꿨나 

기업·디자이너와 협업 늘려 ‘DDP의 브랜드화’ 성큼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노후시설 문제 320건 중 200여 건 해결… “손님 맞을 준비 끝”
“코로나 침체 딛고 맥킨지 행사 문의 등 글로벌 위상 높아져”


▎이경돈 대표는 인터뷰 내내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 곳곳을 안내하며 서울디자인재단의 프로그램과 비전을 설명했다.
2015년 [뉴욕타임스(NYT)] 선정 ‘꼭 가봐야 할 명소 52곳’에 포함됐던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그러나 이곳 역시 코로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방문객이 2019년 1171만 명에서 2020년 671만 명으로 급감한 후 2021년 739만 명에 그쳤고, 2019년 72.3%에 달했던 대관률은 2020년 18.9%에 이어 2021년 43.8%에 머물렀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이경돈 서울디자인재단 대표는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소상공인, 청년 디자이너의 디자인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공적 역할과 디자인 트렌드를 선보이는 전시 공간 기능의 균형을 지키면서, DDP를 중심으로 재단의 지속 가능한 비전을 세워야 했다. 10월 12일 DDP에서 만난 이 대표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재단은 공공문화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다. 1년 동안 고유 프로그램의 성과를 높이고, DDP를 ‘디지털 디자인 플랫폼’으로 재설계하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DDP 위상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협업 시도


▎9월 말부터 열흘간 진행된 ‘서울라이트 2022 가을’의 ‘코스모 워커’ 장면. 12월 16일부터 1월 1일까지 ‘서울라이트 2022 겨울’이 펼쳐질 예정이다. /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 부본부장,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장, 신구대 공간디자인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이 대표는 이론·현장 경험을 갖춘 공간디자인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가 내년 아시아지역 행사를 앞두고 ‘도쿄나 DDP 중에서 하고 싶다’고 문의를 해올 정도로 DDP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며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했다는 점을 살려 DDP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를 진행하고, 디자인 관련 자료를 보관해 시민들이 열람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디자인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취임한 지 1년이 됐다. 무엇에 가장 주력했나?

“모든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면 노후된다. 2013년 완공한 DDP는 잦은 이벤트, 하루에 3만 명 가까이 방문하는 곳이다 보니 노후 속도가 빨랐다. 특히 DDP는 외관과 인테리어 모두 특이한 구조를 띠고 있어 관리에 기술적인 문제가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전시조명의 조도가 상당히 떨어졌고, 4만 5133장 외피가 있는 건물 특성상 내피에 흐르는 빗물 처리 문제도 발생했다. 취임 후 보수정비 리스트를 만들어보니 320여 건이더라. ‘아, 내가 AS 하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현재 200여 건을 해결했다. 시설팀의 일이 많아졌지만 팀의 업무 성취감이 상당히 높아졌고, 건축물 관리 연간 체크리스트를 마련했다는 의미도 크다. 코로나 시국에서 축소된 DDP의 역할을 살리기 위해서는 손님 맞을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취임 후 굵직한 행사를 치러냈다.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팀 버튼의 월드투어’ 전시가 DDP에서 진행됐다. 팀버튼 프로덕션이 기획한 월드투어 전시의 첫 장소로 선정됐다. 9월엔 ‘빛의 예술가’로 불리는 이탈리아 현대 예술가 마르코 로돌라의 전시를 유치했고, 현재 진행 중인 세계적인 그래픽 아티스트 장 줄리앙의 국내 최초 협업 야외 전시도 화제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의 전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구찌가 구찌가든을 만들어 애드벌룬을 띄웠는데, 홍보영상에 나온 ‘피렌체에서 DDP까지’라는 타이틀은 DDP의 위상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맥킨지의 문의도 연장선상이다.”

진행 중인 기아의 미디어 아트 전시도 같은 맥락인가?

“올해 BMW, 볼보, 포르셰 등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가 DDP에서 전시를 했는데 기아도 합류하게 됐다. 기아는 6개 전시 공간에서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과 약속을 표현한 미디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2월 서울라이트 본행사에서도 DDP 외벽을 채울 예정이다. 최근엔 이수그룹과 건설현장 폐자재를 활용해 가방 등 다양한 소품을 만드는 협업을 진행했다. 쓰레기 줄이기 효과도 있고, 기업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됐다. 우리는 ‘DDP에서 전시 했다’는 단순 공간 개념을 넘어 ‘DDP와 함께했다’는 브랜드화를 추구한다.”

19일부터 ‘서울디자인 2022’가 열리는데 올해 특징은?

“2014년부터 열려온 ‘서울디자인위크’와 2019년 시작한 ‘DDP디자인페어’의 확장 버전이다. 그동안 두 행사가 DDP 중심으로 열렸다면, 올해는 디자인 관련 학회와 협회와의 협력을 통해 더 확대했다. 올해는 ‘뷰티풀 라이프’를 주제로 20개 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즐길 수 있게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게 특징이다.”

다양한 경력·네트워크가 협업에 도움이 되겠다.

“협회나 학회, 재단 등 단체의 대표끼리 소통하는 단계에서 그 일원들도 함께 일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자평한다. 좋은 전시회지만 대관 여건 탓에 2~3일 정도에 끝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DDP 안으로 들여왔다. 이런 전시가 지난해 5개 정도였는데 올해 35개로 대폭 늘었다. 디자인은 실생활에 응용되면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게 된다. 그 기회를 DDP가 제공함으로써 기관과 협회, 단체가 협업했을 때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

‘디지털 디자인 플랫폼’ 목표로 예술·기술 결합 중


▎전 세계 디자인 관련 매거진 107종을 구비한 ‘매거진 라이브러리’에서는 건축·인테리어·공예 등의 역사를 편리하게 짚어볼 수 있다. /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이경돈 대표는 취임 이후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DDP, ‘디지털 디자인 플랫폼’으로 재도약”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인 청사진으로 디자인의 가상 디지털 자산화, 서울디자인 2022,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개최, 디자인 매거진 라이브러리 사업 등을 제시했다. 가장 속도가 빠른 사업은 지난 7월 3층에 개관한 ‘매거진 라이브러리’다. 도서관(Library)·기록관(Archives)·박물관(Museum)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 라키비움(Larchiveum)을 추구한다. 그래픽, 산업디자인, 건축·인테리어, 뷰티·패션, 라이프스타일 등 디자인 관련 분야 국내외 매거진 107종이 온·오프라인 형식으로 구비됐다.

‘매거진 라이브러리’ 개관의 의미는?

“월간지는 그달의 화제를 담은 기록물이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면 곧 역사가 된다. 시대의 기록이 담긴 잡지를 통해 국내외 디자인 역사와 디자인이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알 수 있다. 라이브러리 한쪽에 미용실 의자를 구비해 옛날 미용실에서 이런저런 잡지를 들춰보던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잡지 열람 외에도 전시, 북토크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의 권위는 어떻게 세울 것인가?

“우리 재단이 3회째 진행해온 휴먼시티디자인어워드를 재설계해 내년부터 ‘서울디자인어워드’로 재출범한다. 그동안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공간 이슈를 다룬 작품이 많았는데 이를 사람의 공간으로 확대하자는 취지다. 상업적인 목적은 제외하고 공공·안전·핸디캡·유니버셜 디자인 콘셉트를 추구한다. 오랜 기간 고민과 논의를 통해 마련한 콘셉트이며, 공공 영역의 세계적인 디자인어워드로 발전시킬 것이다. 물론 권위 있는 어워드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DDP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소상공인과 청년 디자이너의 피부에 와닿는 사업이 있다면?

“소상공인과 청년 디자이너의 디자인 기능 강화를 지원하는 것은 우리 재단의 핵심 역할이다. DDP 주변 지역 소상공인을 우선 대상으로 해서 DDP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봄 축제에 이어 가을 축제에도 참가하며, 향후 유휴 공간을 활용한 상설판매도 기획하고 있다. 청년 디자이너들에겐 NFT(대체불가능토큰)와 메타버스 등 새로운 분야에서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고 있다. DDP 3층에 NFT 상설전시장을 구축해 온·오프라인 전시를 진행하고 있으며, DDP를 활용한 다양한 NFT 상품 개발도 함께 할 계획이다.”

‘조직 내 MZ세대’ 통해 소통창구 확보


‘영디자이너잡페어’ 취업컨설팅이 눈에 띈다.

“삼성·SK·LG 등에서 일하는 3~5년 차 디자이너(스타터)들이 디자인 전공 대학생(비기너)들의 포트폴리오를 점검해준다. 모의면접을 통해 개선점과 최신 취업 트렌드를 반영한 취업 코칭, 직무 테스트 등 맞춤형 취업컨설팅을 진행한다. 지난해 청년 디자이너 약 70명이 신청해 29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대학생이 창업하거나 창업 후 제조업체와 협업하는 과정에서도 재단이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젊은 층을 비롯해 현장 디자이너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나?

“나이와 이력 탓에 기성세대 편향, 협회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는 임명장 받을 때 시장님께도 들었던 말이다(웃음). 취임 후 디지털디자인팀을 만들었고, MZ세대를 향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소통의 핵심은 ‘우리 조직의 MZ세대’다. 앞서 말한 매거진 라이브러리의 미용실 콘셉트 포토존, 이수그룹과의 컬래버도 젊은 직원들의 제안에서 시작했다. 무엇보다 MZ세대의 니즈와 우리의 서비스 공급 능력을 매칭하는 게 중요한데, 내부의 목소리에서부터 찾고 있다.”

DDP의 ‘디지털 디자인 플랫폼’ 구상은?

“DDP는 특정한 장소가 아닌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공간이라는 하드웨어와 콘텐트라는 소프트웨어의 매칭으로 장소의 가치, 즉 브랜드화를 이뤄내야 한다. 전시행사장이었던 코엑스가 K팝 등 한류 콘텐트를 공간에 채우면서 ‘K컬처 성지’로 탈바꿈한 것이 대표적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적합한 콘셉트를 찾았고 이를 발전시킨 결과 코엑스는 브랜드가 되었다. DDP도 그렇게 가야 한다.”

기업·디자이너들에게 DDP 활용법을 제안한다면?

“‘멋진 건축물이야’ 감탄만 말고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라 주문하고 싶다. 실내의 의미도 있지만 업무의 공간을 말한다. 재단과 DDP에는 스타트업, 중견, 대기업 등 기업의 생애주기에 맞는 서비스 기능이 존재한다. 우리는 수익을 내는 기관이 아니라 디자인 관련 다양한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곳이다. 노크하면 바로 반응하는 것이 우리 특징이다.”

- 글 조득진 월간중앙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211호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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