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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향] 파행으로 치닫는 연말 국회 

민생은 ‘三苦’에 신음하는데 정국 주도권 잡기에 혈안 된 여야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이태원 참사·대장동 수사 두고 여야 강대강 충돌
내년 예산안 처리 시한 촉박한데 민생 안건은 표류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와 이태원 참사 책임 논쟁 등으로 여야가 맞붙으면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도 파행이 거듭되고 있다. 11월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행정안전부 경찰국 예산 삭감을 두고 여당 간사인 이만희(왼쪽) 국민의힘 의원과 야당 간사인 김교흥(오른쪽) 민주당 의원이 대립하고 있다.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민생은 뒤로한 채 유불리를 따지기 급급한 정치 상황이 그렇다. 정치권의 시계(視界)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탁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의회권력과 정부권력을 무기 삼아 한 치도 양보 없이 긴장을 높여가고 있다. 그런 사이 예산 심사는 멈춰 섰고 경제 위기에 대한 고민도 실종됐다. 민생은 좌초 일보 직전이다.

정국 경색을 심화하는 가장 큰 요인은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다. 대선 전 성남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비리 의혹으로 출발해 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으로 확대됐다.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됐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공사 기획본부장(사장 직무대리)이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뒤 검찰에 협조적으로 돌아서면서 이 대표를 궁지로 몰았다.

지난 10월 25일 석방된 유 전 본부장은 불법 정치자금 8억여 원을 조성해 이 중 6억원을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곧바로 김 부원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해 구속했다. 김 부원장은 지난해 4~8월 제20대 대선 경선을 치르면서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인 남욱 변호사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8억47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 부원장은 당시 이 대표 캠프 총괄본부장으로 조직 관리를 맡고 있었다. 검찰은 김 부원장이 유 전 본부장에게 대선 자금 용도로 20억원 가량을 요구했다고 보고 있다.

유 전 본부장과 김 부원장에 이어 검찰의 다음 타깃은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으로 향했다. 정 실장은 자타공인 이 대표의 최측근이다. 이 대표가 단체장을 지낸 성남시와 경기도에서 정책실장으로 보좌했다. 검찰은 정 실장이 유 전 본부장 등 대장동 개발 일당에게서 금품 1억4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뒀다. 지난 9월 29일 검찰이 유 전 본부장 거처를 압수수색할 당시 유 전 본부장에게 휴대전화를 창밖으로 던지라고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있다.

검찰은 김 부원장을 구속하자마자 정 실장의 자택과 민주당사 내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며 정 실장을 압박했다. 11월 15일에는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3시간에 걸쳐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튿날 정 실장을 부패방지법 위반, 특가법 위반, 사후수뢰,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 실장이 구속될 경우 이 대표는 손발이 잘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변방에서 대선후보, 제1 야당 대표가 되기까지 동고동락했던 측근들을 모두 잃는 셈이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멈춰 선 국회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11월 9일 국회 본청에 있는 정진상 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16일 정 실장에 대해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최종 목적지가 이 대표란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김 부원장 공소장에는 이 대표가 57차례 언급된다. 다만 공모관계로 적시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후 정 실장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에서는 이 대표의 책임론을 좀 더 강하게 암시한다. “성남시장 이재명과 정 실장이 (위례신도시) 사업자 공모 전인 2013년 10월 29일 유 전 직무대리로부터 보고를 받고 남욱 변호사 등을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자로 선정하기로 했다”는 대목에서다. 정 실장과 김 부원장 몫으로 매겨졌다는 차명 지분을 ‘이재명 측 지분’이라고도 적시했다. 이 대표가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고, 이익 배분 등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리란 의심을 내포한 대목이다. 이는 몸통에 대한 검찰의 시각이 달라졌음을 뜻한다. 정 실장에 대한 수사와 사법처분은 이 대표를 향한 관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의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제1 야당 대표를 사법처리 선상에 올리는 것은 필연적으로 강한 반발을 부른다. 수사와 재판 과정을 고려하면 약 500일 남은 2024년 4월 총선까지 여파가 미칠 수 있어서다. 민주당의 한 원외 인사는 “민주당으로서는 검찰의 강공을 강공으로 맞받아치는 것 외에 달리 방책이 없다”고 했다.

당사자인 이 대표는 연일 검찰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이 대표는 11월 13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428억 약정설’이란 제목의 김의겸 당 대변인 서면 브리핑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 실장과 김 부원장, 유 전 본부장이 천화동인 1호 배당금 700억원을 나눠 갖기로 했다는 검찰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김 대변인은 “녹취록에 정진상과 김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며 “무엇보다 700억원의 주인이 유동규 단 한 명임을 명백하게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 날에는 “검찰이 수사가 아니라 창작을 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최소한의 개연성 없이 ‘설정 오류’로 가득 찬 창작물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야당 탄압을 위한 조작 수사”(김현정 민주당 대변인)라는 게 민주당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대책위는 “검찰은 유 전 본부장이 정 실장에게 돈을 건네는 과정에서 CCTV에 녹화되지 않으려 계단을 이용해 이동했다고 했지만, 정 실장이 살던 아파트는 동 출입구부터 CCTV가 설치돼 있고 차량 출입구에도 CCTV가 4대나 설치돼 있어 사각지대가 없는 구조”라며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대장동 특검’ 카드도 여전히 살아 있다. 발의 시점을 저울질하는 중이다. 앞서 이 대표는 김 부원장이 체포되자 대장동 특검을 제안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방탄 특검’이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강행할 경우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태원 참사에도 ‘정부 책임’과 ‘이재명 방탄’ 충돌


▎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 3당 원내 지도부가 11월 15일 김진표 국회의장을 면담하고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요구서 채택을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참사를 정쟁으로 몰아가려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리스크’가 여야 공방을 가열하는 사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악재가 터졌다. 158명(11월 16일 기준) 사망자를 낸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그것이다. 핼러윈데이 축제 분위기를 즐기려는 인파가 운집하면서 수 시간 전부터 위험 징후가 나타났지만, 안전 당국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드러나면서 정국 상황이 급변했다. 정부 책임 여론이 높아지면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대장동 수사로 수세에 몰렸던 민주당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태원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국정조사 카드를 꺼냈다. 정의당과 기본소득당도 동참했다. 참사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경찰의 셀프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다.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함께 특검 실시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11월 14일에는 범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단 사흘 만에 국민 33만 명이 온라인 서명에 동참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요구를 저지하겠다는 태도다. 참사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집중될 경우 국정 동력이 약화할 게 불 보듯 뻔해서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를 방어하기 위한 민주당의 이슈 전환 전략으로 보기도 한다. 11월 15일 주호영 원내대표가 주재한 초선의원 비공개 간담회에서 대다수가 국정조사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앞서 3선 이상 중진과 재선 의원들도 국정조사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표를 향해 오는 수사 칼끝을 피하려는 ‘물 타기용 방탄 국조’이기 때문”이라며 “이번 국정조사가 결국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했다.

그래도 국민의힘 내에서 고민은 여전하다. 이미 야 3당과 무소속 의원 181명이 국정조사 요구서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이 반대해도 본회의 처리를 막을 방법은 없다. 협상이 결렬되면 국조 기간과 범위 등을 야당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작정 실익 없는 반대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이 미뤄뒀던 ‘대장동 특검’도 여전히 살아 있는 변수다. 정진상 실장 이후 검찰의 칼끝이 이 대표를 향할 게 뻔한 급박한 상황에서 마냥 미뤄둘 수 없어서다. 다만 이태원 참사 국조와 특검이 겹쳐 있다. 무리하게 추진하다가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민심을 달래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제도를 보완하는 게 민생정당의 역할에 맞다”며 “동시다발적으로 이슈에 대응하기보다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쟁에 묻혀 정부 예산안 심사는 공전


▎국회에서 여야 대립이 격해지면서 광장도 보수와 진보로 쪼개졌다. 10월 29일 촛불승리전환행동 주최로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제12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정부 퇴진’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여야의 대치 국면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는 정쟁의 장이 됐다. 내년도 예산안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 세운 것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온전히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639조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법정 처리 시한은 12월 2일까지다. 32개 비경제부처를 대상으로 한 11월 14일 예결위 전체회의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출석했다. 여야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상민 장관 책임론과 이재명 대표 측근에 대한 검찰 수사를 놓고 격돌했다.

우원식 예결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지휘 책임이 있는 분들이 져야 할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외면하고 사법적 책임만 주장할 경우 자칫 책임의 범위를 축소시키고 참사 원인을 소수의 일탈행위로 몰아갈 개연성이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임오경 민주당 의원은 “불법건축물 묵인, 대량 군중 운집 예측에 대비하지 않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경찰청장과 마약 수사에만 치중하도록 한 윗선과 관리·감독 주체인 행안부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여당은 민주당이 참사를 정쟁에 이용한다고 맞섰다. 경찰 출신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적 요소를 배제하고 규명이 이뤄진 후 행정적·정치적 책임을 논하는 게 옳다”며 “정치적 책임부터 먼저 요구하는 것은 정치공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조수진 의원도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명단과 영정 공개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분이 바로 이재명 대표”라며 “대장동 부패 게이트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한 김문기 전 처장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이때와 비교된다”고 비꼬았다.

여야가 정쟁에 골몰하는 터에 민생은 뒤로 치우쳐 있다. 당장 경제·금융 위기 대응에 나서야 할 기획재정위원회는 조세개혁과 경제 관련 예산을 심사할 법안소위와 예산소위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11월 30일 전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해야만 법정시한을 맞출 수 있지만, 처리 여부는 불투명하다. 만약 법정시한을 넘길 경우 헌정 사상 유례없는 준예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준예산 체제가 되면 전년과 동일한 예산만 집행할 수 있어서 정부 정책 추진과 민생 현안 대응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통상적으로 예산안과 함께 처리하는 정부 세제개편안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법인세 인하, 종합부동산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등 민생 관련 세제개편안이 이번에 처리해야 할 법안들이다.

여론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경고음

국회가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표로도 나타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 77건 중 단 한 건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종부세법 개정안, 법인세법 개정안 등은 ‘부자감세’란 이유로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과 재난의료지원비 개정안은 정치색이 없는 민생법안인데도 처리가 요원하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3고(苦)’에 시달리는 민생은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

연일 긴장을 높이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태도는 수수방관에 가깝다. 국제사회 공조 등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은 딱히 나오지 않는다. 대북 민간 채널 노하우를 가진 야권도 잠잠하다. 미국과 직접 담판하려는 북한의 ‘남한 패싱’ 전략에 무방비 상태다.

여론은 여야에 모두 냉소적이다. 11월 14일 발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민주당 지지율 흐름은 이전 조사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당초 이태원 참사가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됐지만, 실제로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를 기회로 정부 책임론에 불을 지핀 야권의 공세가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거꾸로 민주당을 향해 ‘재난의 정쟁화’, ‘이재명 방탄’으로 역공한 여권의 프레임도 민심을 얻지 못한 셈이다.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검찰 수사에 대한 인식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SBS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11월 7~8일 전국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야당 탄압을 위한 정치 보복 수사’란 응답은 44.8%,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라는 응답은 48.8%였다.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심이 진영싸움으로 흐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8년 전 세월호 참사의 경험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에도 참사를 놓고 여야는 정부 책임론과 재난의 정쟁화 프레임으로 격하게 맞섰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정부여당 지지율은 10%p 빠졌다. 하지만 한 달 뒤(5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광역 8석, 기초 117석,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11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이태원 참사 국가 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11월 5일 서울 시내에서는 ‘윤석열 퇴진’과 ‘이재명 구속’ 구호가 부딪혔다.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의 한 단면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강한 정파성과 정치적 양극화는 상대를 무력화하거나 제거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정당화하고, 정치는 결국 선악의 대결적 구도로 바뀐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212호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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