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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전당대회 ‘숨은 손’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행로 

“尹이 보기에 장제원의 대체재가 없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정중동 행보하다 이태원 참사 이후 존재감 높여, 대중성 약한 김기현 의원과 결합
영남 지도부에 대한 수도권 민심의 우려와 장 의원에 대한 비토정서 극복은 과제


▎장제원 의원은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김기현(오른쪽) 의원과의 연대 과정에서 ‘윤심의 대리인’으로 각인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김기현 선배를 띄워야 하니까 언론 노출을 한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김 선배가 부각돼야 하지 않겠나?”

1월 12일까지만 해도 장제원(56) 국민의힘 의원은 한껏 몸을 사렸다. 나설 때와 빠질 때를 판별하는 장 의원의 명석함은 여의도에서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조차도 인정하는 능력이다.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장 의원은 “내가 차기 당대표의 조건을 이야기하면 또 여러 말이 나올 것 같다”며 “지금은 인터뷰 타이밍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3월 8일 치러지는 당대표 이슈와 다소 거리가 있는 중대선거구제 개편안에 관해서도 장 의원은 “대통령께서 선거법 개정을 얘기했는데 내가 말하면 너무 탄력받을까 봐 조심스럽다”며 “헌법 개정 얘기가 나오니까 대통령님이 ‘선거구 개편의 필요성’을 일반적으로 말씀하신 것 아니겠나”라고 답했을 뿐이다.

이랬던 장 의원이 하루 사이에 ‘저격수 모드’로 돌변했다.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 강행이 트리거였다. 그는 페이스북에 ‘약자 코스프레’, ‘제2의 유승민’ 등을 써가며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의 특이점은 출마 후보보다 장 의원이 더 ‘인싸’처럼 보이는 현실에 있다. 장 의원이 ‘윤심(尹心)의 대리인’처럼 각인됐기 때문이다.

‘김장연대’로 활로 모색 후 ‘반윤’ 저격수로


▎윤석열(왼쪽)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마친 뒤 장제원 의원을 따로 격려하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돌이켜보면 2022년 10월 29일 터진 이태원 참사는 예기치 않은 ‘나비효과’를 국민의힘에 불러왔다.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에 따르면 “이때까지만 해도 용산 대통령실은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권 장관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고, 한나라당~새누리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을 거치며 단 한 번도 탈당한 적이 없다. 지역구도 서울(용산)이다. 또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고, 윤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장고 끝에 수락했다. 그 의원은 “국민의힘은 전통적으로 당대표는 적자(嫡子)를 뽑는다. 대선 후보는 적자가 아니라 양자여도 되지만, 당대표는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여의도에선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사람을 중용하는 기준’을 이렇게 구별한다. “문 전 대통령은 이해관계를 매개로 설득 혹은 타협한 다음에 충성심을 요구한다. 반면 윤 대통령은 로열티를 먼저 증명해야 시혜를 베푼다.” 일례로 문 전 대통령은 한때 정적이었던 박지원 전 의원을 ‘필요에 의해’ 국정원장에 임명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했다. 나경원 전 의원이 13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하자 곧바로 윤 대통령은 경질로 대응했다. ‘자기 정치는 용납할 수 없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윤 대통령 기준에서 ‘나·이·유’와 대조적인 캐릭터가 권 장관과 장 의원이라고 할 수 있다. 권 장관은 애당초 당권에 관심이 컸지만, 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맡긴 대통령의 의중을 따랐다.

장 의원도 2021년 9월과 2022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아들(래퍼 노엘)의 무면허 운전 및 경찰 폭행 혐의가 터지자 윤석열 캠프 종합상황실장직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대선 사전투표 하루 전날인 2022년 3월 3일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끌어내며 윤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윤핵관’ 논란이 절정에 달하며 대통령실의 소위 ‘장제원 라인’이 숙청되던 8월 말에도 장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 “계파 활동으로 비칠 수 있는 모임이나 활동 또한 일절 하지 않겠다”며 일체의 변명 없이 자세를 낮췄다.

이후 로키로 잠행하던 장 의원은 이태원 참사 이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키기 위해 다시 볼륨을 높이기 시작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정진석 비대위원장 등 당 수뇌부를 겨냥해 특유의 명료하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이를 두고 “장 의원 발언은 윤 대통령의 뜻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PK 출신 국민의힘 인사는 “장 의원이 얼마나 윤심을 잘 해독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일정 부분은 자기 생각이 끼어 있을 것이다”라고 보면서도 “대통령실이 그런 장 의원을 제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장 의원을 대체할 마땅한 카드가 당내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봤다.

이태원의 비극 여파로 용산이 지역구인 ‘권영세 당대표’ 시나리오는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여기서 떠오른 대안이 김기현 의원이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장 의원이 나서서 소위 ‘김장연대’라는 입에 착 달라붙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약한 김 의원을 띄우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는 영남이 결정?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공부모임인 ‘국민공감’의 첫 회동은 의원총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북적였다.
2022년 12월 20일 경남혁신포럼에 상임고문 자격으로 참석한 장제원 의원은 “윤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자유 우파의 민심”이라며 “그걸 분리해서 ‘나는 민심을 받는 사람’, ‘나는 당심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해괴망측한 논리”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는 울산이 지역구인 김기현 의원도 참석했다. 김 의원은 축사에서 “제가 봐도 정말 대통령이 신뢰하는 분”이라며 장 의원을 추켜세웠다. 장 의원도 “김 의원은 울산시장을 하면서 행정 경험을 쌓았고 국회에서는 4선, 원내 사령탑까지 한 투쟁력과 전략을 동시에 가진 분”이라고 화답했다.

‘김장연대’와 ‘윤심’의 행로에 대해 국민의힘 중진은 “윤 대통령 입장에서 헤아려봐라. 좋아서가 아니라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문제가 적을 것 같은 사람을 당대표로 시키고 싶은 것”이라고 정리했다. ‘대권 후보를 뽑는 게 아니라 집권 초 여당 대표를 뽑는 것’이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보수정당의 역사에서 선거 결과가 좋았을 때의 대표는 강재섭, 황우여 같은 관리형이었다. 오히려 대선 후보군에 속했던 김무성, 황교안 대표 체제에서 치렀던 최근 두 차례 총선은 기대를 한참 밑돌았다.

‘2024년 총선에서 패하면 바로 레임덕’이라는 공포심을 가질 법한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 특유의 수직적 일사분란함으로 선거에 임하고 싶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권성동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섰다가 스스로 철회한 것도 ‘친윤’ 간 교통정리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여의도에서는 “장제원 의원이 ‘형님’인 권 의원을 직접 만나 사퇴를 요청한 것”이 정설로 통한다. 둘은 중앙대 선후배 관계다.

국민의힘 당대표를 결정짓는 책임당원 현황도 장 의원의 영향력을 넓히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선거인단 명부 작성 기준은 당비 납부 현황을 반영해 1월 31일로 정해졌다. 대략 84만 명 이상이 투표권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충청 지역의 당협위원장은 “국민의힘 책임당원은 인구 비례가 아니다”라며 “부산과 울산, 경남 그리고 대구·경북의 표심이 과대 대표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책임당원 숫자가 적은 호남은 전체 투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질 것이고, 반대로 책임당원 수가 많은 영남은 올라가는 구조다. 심지어 영남의 비율(40%)은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37%)의 그것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확인됐다.

그는 “장제원 의원 지역구가 부산(사상구)이다. 김기현 의원 지역구는 울산(남구을)이다. 여기에 TK는 ‘윤심’이 실렸다고 판단하면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짙다”고 기류를 전했다. 이어 “장 의원은 김태흠 충남지사, 이장우 대전시장 등 충청지역 인사들과도 유대감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김장연대’의 대세론이 먹힐 수 있다는 시각이다.

121석 걸린 수도권 선거를 어찌할까

실제 2022년 12월 10일 장 의원 지지 모임인 ‘여원산악회’는 경남 합천에 집결했다. 버스 60대를 나눠 타고, 3000명 이상이 모여 세를 과시했다. 2022년 12월 7일에는 장 의원이 주도하는 친윤계 의원 모임인 ‘국민공감’이 출범식을 가졌다. 국민의힘 현역 의원 115명 중 무려 71명이 참석했다. ‘김기현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 장 의원이 사무총장이 돼서 막후 공천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에 대해선 비관적 견해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첫째,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수도권 선거는 망한다’고 본다. ‘김장연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나경원(서울 동작을), 안철수(경기 분당갑), 윤상현 후보(인천 미추올을)는 전부 지역구가 수도권이다. 실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의 우려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서울 지역 모 의원은 “수도권 121석 중 현재 17석뿐”이라고 말했다. 실정이 이럴진대 “중도층 확장이 안 되는 영남 지도부가 들어서면 더 힘겨워진다”는 논리다. 이런 프레임에 대해 장 의원은 “지역구민을 무시한 패륜적 발언”이라며 강한 톤으로 반박했다. 뒤집어보면 그만큼 ‘뼈 때리는’ 지적이라는 반증이다.

둘째, 김기현 의원의 캐릭터를 꼽을 수 있다. 민주당 인사조차 김 의원의 인품과 합리성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평가할 때 꼭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알고 보면 무서운 사람이다.” 여기엔 “김 의원이 대표가 된 뒤, 장 의원에게 당의 그립을 맡기면 그 순간 죽는 길”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스마트하기로 소문난 장 의원도 이런 구도에 무심할 리 없다. 그럼에도 ‘김장연대’에 올인하는 이유에 대해 국민의힘 내에서는 “지난해 8월 대통령실에서 사화 수준의 숙청을 당한 이후 장 의원에게 거의 유일한 활로”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내 일각에서는 윤심이 모든 이슈를 뒤덮는 화두가 돼버렸고, 장 의원이 ‘단독 드리블’을 하고 있는 상황을 편치 않게 바라보고 있다. “김기현 당대표가 되면 2024년 총선은 비대위원장 체제로 치를 판”, “나경원 노이즈를 이렇게 키우고 장 의원이 원톱처럼 행세하게 만든 용산 대통령실 정무라인이 문제”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새어 나오고 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302호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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