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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미(美)의 원점, 예(藝)의 기원, 술(術)의 원조를 찾아서’(24)] 아름다움은 바티칸 절대 권위의 원천… ‘바티칸 뮤지엄 편’ 上 

서방 예술의 원점이자 세기의 비밀 간직한 문화유산 

역대 교황들 전용 수집품으로 이뤄진 바티칸 뮤지엄 전시물
지중해 문명의 유산을 보관, 서양을 대표하는 문화사 보고


▎바티칸 뮤지엄 대정원에 들어선 대우주. 신은 하느님 단 하나에 그치며, 우주와 세상의 창조주도 하나뿐인 신이다. / 사진:유민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선언과 함께 전 세계 박물관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로마 바티칸 뮤지엄은 시류 흐름과 무관한 인류 문명 문화의 무게 중심이라 볼 수 있다. 역대 교황 전용 수집품으로 이뤄진 바티칸 뮤지엄 전시물을 통해 종교의 의미와 미의 원점에 대해 알아본다. 상하 2회에 걸친 현지 리포트로, 상편은 정치적 관점에서 본 바티칸 뮤지엄의 의미와 내용이다.

매년 가을이 되면 일본 문화계 전체를 흥분케 만드는 특별전 하나가 있다. 보통 10월 말에 2주 동안 개최하는 연례행사 ‘쇼우소우인(正倉院)’ 특별전이다. 전염병 해방 원년인 올해는 75주년 특별전이 열릴 전망이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나라(奈良)시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다. 평균 20만 명 정도 관람객이 찾는다. 별로 많지 않은 수라 말할지 모르지만, 통상 3개 정도 갤러리에 작품 60여 점이 전시되는 점을 고려하면 인산인해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대략 시간당 1000명씩 몰려든다. 쇼우소우인 특별전은 그냥 가면 누구나 볼 수 있는 행사가 아니다. 관람 희망자가 일본 전국에서 몰려온다. 아예 국립박물관 앞에서 잠을 자면서 장시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쇼우소우인 특별전이 어떤 성격의 행사이기에 매년 일본 문화계 전체를 흔들어놓을까? 전시물이 일본 천황 소유품이란 점이 핵심이다. 비밀스럽고, 터부도 많은 곳이 황실이다. 쇼우소우인 특별전은 역대 천황들이 수집했거나 사용했던 예술품을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이벤트다. 특별전이 쇼우소우인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유는 천황이 아끼는 보물과 예술품을 보관하는 황실 전용박물관의 이름이 바로 쇼우소우인이기 때문이다. 서기 756년 설립한 목재 조형물이며, 지금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 건물 자체가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다. 천황에 관한 모든 것이 그러하듯, 원래 쇼우소우인 보물은 일반인에게 공개할 수 없는 특별하고도 신성한 물품으로 여겨졌다. 19세기 말 메이지(明治)시대 이후 특별전이 간헐적으로 열리기는 했지만, 초대객은 천황 친척이나 정부 고위관계자, 외국 요인에 국한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쇼우소우인 보물이 국민 모두에게 개방된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1년 뒤인 1946년이 특별전 원년이다. 천황의 인간 선언과 함께 황실 개방 상징으로 특별전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쇼우소우인 특별전

쇼우소우인 전시물의 하이라이트는 도자기·그림·책·조형물·가구·문서·옷·무기·농기구다. 보통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명실상부 고대 보물들이다. 10여 년 전 NHK를 통해 역대 전시됐던 특별전 예술품에 대한 방송을 접한 적이 있다. 페르시아에서 이미 사라진, 전설로만 통하던 서기 6세기 제작한 칼라 유리병이 특별전에 등장해 유라시아 문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백제가 일본 황실에 보낸 것으로 알려진 청동제 칼도 특별전에 등장했다. 상식적 얘기지만, 천황 역사가 시작된 나라시는 백제 문명 문화의 영향권에서 성장한 땅이다. 페르시아 유리병도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과 백제를 통해 나라시에 유입된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쇼우소우인 특별전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백제는 물론 삼국시대와 이후 고려와 조선 역사도 한층 더 입체적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말 로마에 머물렀다. 장기 숙박인 탓에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기 위해 가정집에서 묵었다. 호텔보다 저렴한 데다 현지인들과 일상적 대화도 가능하다. ‘숙박=공부·체험’이다. 운 좋게도 집주인이 고대 그리스 전문가였다. 시칠리아대에서 철학 교수로도 일한 마리오(Mario)란 이름의 80대 초반 노인이다. 언어는 물론 문학·예술·철학·신학에 이르는 그리스 문명 문화에 정통했다. 아테네 역사와 관련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전혀 다른 관점의 얘기도 꽤 들었다. 부럽고도 놀란 것은 서재에 꽂힌 책들이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발간된 그리스 관련 책이 수백 권에 달했다. 워낙 오래된 책인 민큼 벌레도 먹고, 너덜너덜 해어진 상태였다. “역사를 공부하는 동안 역사 그 자체가 된 것 같다”고 말하자 마리오가 크게 웃었다. 그는 “철학과 사상의 깊이는 우주 근본에 비교될 수 있다. 끝이 없다. 노벨 철학상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철학과 사상이 역사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마리오와 대화 도중 쇼우소우인 특별전 얘기가 나왔다. 필자가 꺼낸 것이 아닌 마리오가 질문하면서 화제에 올랐다. 그는 “쇼우소우인 전시물과 바티칸 보물을 비교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동서 문명 문화사를 일본 천황과 로마 바티칸 교황을 통해 비교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와닿았다. 그러나 마리오의 생각은 필자 추측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시작됐다. 그는 “동서 비교도 있지만, 세계 최고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제도권 조직이란 점에서 비교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제도권 조직이자 법통으로 서(西)의 교황, 동(東)의 천황을 넘어서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 “수많은 조직·왕조·국가가 번성했지만, 하나의 법통만으로 이어진 현존 최고 조직은 일본과 바티칸 두 군데로 압축된다”고 마리오는 강조했다. 유명한 이집트 파라오부터 유럽 합스부르크나 부르봉 왕조,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가 떠오르지만 사라진 지 오래다. 유럽에서 살아남은 영국 왕실도 9세기 색슨왕이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전부 1200년 역사를 이어왔다. 나름 길지만, 일본이나 바티칸에 비하면 한참 어리다. “인류를 대표하는 최고 법통이자 권위로서 일본과 바티칸을 비교해보고 싶다. 7년 전부터 쇼우소우인 방문 신청서를 넣었다. 고령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불가능하다는 답만 온다.”

세계 최고(最古) 제도권 조직이자 법통의 소장품


▎그리스 조각상으로 뒤덮인 바티칸 뮤지엄 1층 전시관. 르네상스는 재생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바티칸은 세속 예술의 상징인 르네상스를 따르고 발전시킨 문화 수호자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80대 마리오의 결의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충동 하나가 솟구쳤다. 바티칸 뮤지엄 방문이다. 앞서 강조했듯 쇼우소우인 특별전은 일본만이 아닌 유라시아, 중국, 한반도 역사를 이해할 키가 될 수 있다. 반면 로마 한복판 바티칸 뮤지엄은 서(西)를 대표하는 문명·문화사의 보고(宝庫)다. 이탈리아와 유럽 전체는 물론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지중해 유산 전체가 보관돼 있다. 쇼우소우인처럼 뭔가 비밀스러운 이미지도 강하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를 봐도 ‘교황청=비밀 터부’로 묘사된다. 마리오처럼 일본과 바티칸 두 곳을 비교 연구할 수준은 못 되지만, 적어도 아시아 밖의 어제를 자세하게 이해할 공간이 될 수 있다. 부끄럽지만, 사실 바티칸 뮤지엄은 10여 년 전 이미 두 번이나 경험한 곳이다. 그러나 대부분 겉핥기로 스쳐 지나가는 방문에 불과했다. 문화 소양도 부족했지만, 두 번 다 여름에 들렀던 만큼 땀에 절어 엄청난 인파에 떠밀려 다닌 기억이 전부다. “전염병 덕분에 바티칸 뮤지엄이 한산하다. 지금은 한 달 내 예매가 가능하다.” 마리오의 정보를 기초로 곧바로 인터넷 예매에 돌입했다. 운 좋게 1주일 뒤부터 아침 10시 30분 이후로 예매가 가능했다. 오전 10시 30분 티켓 이틀분을 예매했다. 하루만으로는 안 된다.

아침에 일어나 음료수와 점심 도시락을 미리 챙겼다. 문을 닫는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관찰하기 위해서다. 루브르 뮤지엄의 경우 점심 준비와 함께 찾아갔지만, 전부 살피는 데 꼬박 6일이 걸렸다. 아침 일찍 바티칸 뮤지엄으로 출발했다. 비교적 따뜻한 날씨다. ‘르네상스’는 바티칸 뮤지엄에서 가장 주목할 키워드다. 오해하기 쉬운데, 바티칸 뮤지엄은 성화(聖画)나 예수의 조형물로만 채워진 곳이 아니다. 구약성경 스토리를 주제로 한 미켈란젤로 천지창조나 라파엘로 성화도 있지만, 대세는 속(俗)에 관한 7만여 개 전시물이다. 성화와 가톨릭 관련 작품으로 채워진 곳은 뮤지엄 바로 옆 대성당 산피에트로(St. Pietro)다. 종교적 관점에서 산피에트로가 성(聖), 뮤지엄은 속(俗)이라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바티칸 뮤지엄의 하이라이트는 그리스·로마 조각이나 예술품들이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우상이라 규탄하면서 불태우고 파괴한 작품들이다. 성(聖)의 상징인 바티칸이 우상의 대표 격인 그리스 신이나 로마 역사에 관련된 예술품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다. 칼로 난자당한 얼굴과 부러진 코를 가진 입상이나 조각은 에게해 주변 고대 유적지에서 만날 수 있는 일상 풍경이다. 제우스와 헤라 얼굴의 경우 거의 대부분 망치로 짓이겨져 있다. 대부분 기독교 신자들 소행이라 보면 된다. 우상 파괴는 모세 십계명에 따른 성스러운 행위다. 그러나 바티칸은 우상을 없애기보다 수집하고 전시하는 데 앞장선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톨릭 총본부 한복판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미리 얘기하자면 가톨릭의 권위와 교황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예술적 심미안도 있지만, 바티칸의 영광을 높이기 위한 문화 전략, 나아가 종교 프로파간다로서의 뮤지엄이다.

바티칸 뮤지엄 하이라이트는 그리스·로마 예술품


▎교황의 수집품 1호 라오콘 군상. 교황의 정통성과 바티칸의 권위를 확인하기 위한 종교 프로파간다의 상징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오전 10시 30분, 정확히 바티칸 뮤지엄에 찾아갔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게 느껴졌다. 그러나 긴 행렬도, 암표 브로커도 없는 안정된 분위기다. 바티칸 뮤지엄은 입구 통과 즉시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간다. 보통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지만, 바로 옆 나선형 계단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 좋다. 바티칸 명물인 높이 30m 정도 달팽이 계단을 만날 수 있다. 원래 1505년 만들어졌지만, 1932년 무솔리니 정권 당시 보수·확장한 아름다운 계단이다. 계단 높이가 낮고, 계단 사이 거리가 50㎝ 정도로 넓다.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다. 달팽이 계단의 특징이지만, 올라갈 때를 기준으로 벽이 오른손 쪽에 붙어 있다. 승마 상태에서 오른손에 칼이나 창을 들고 위로 올라가도 곧바로 공격하기 힘든 구조다. 칼이나 창이 벽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뮤지엄 2층에 올라가는 즉시 바티칸 수집품 제1호로 달려갔다. 주인공은 ‘8각형 정원(Octagonal Co urtyard)’이라는 이름의 정원에 전시된 ‘라오콘 군상(Laocoön and His Sons)’이다.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Pope Julius II)가 구입한 조각으로, 당시 막 완성한 달팽이 계단을 타고 바티칸 내부에 보관했다고 볼 수 있다. 바티칸 뮤지엄은 역대 교황들이 수집한 예술 작품을 기반으로 한 공간이다. 바티칸 그 자체가 아닌 교황의 관심사나 취미에 따른 수집이다. 현재와 같은 대규모 뮤지엄으로 외부에 공표된 것은 18세기 들어서부터다. 그러나 이미 교황의 예술품 수집은 200여 년 전인 16세기 초부터 시작된다. 율리우스 2세는 바티칸 역사상 처음으로 성화가 아닌 세속적 예술품을 구입한 교황이다. 일반인과 무관한 바티칸 내부 성직자에게만 공개된 작품이다.

라오콘 군상은 이후 뮤지엄 수집품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된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집 1호가 그리스 신화 관련 조각이란 점이 중요하다. 라오콘 군상은 기원전 13세기 그리스 트로이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한 대리석 조각이다. 트로이 신관 라오콘과 두 아들이 주인공이다. 바다뱀의 공격으로 고통받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그리스 청동상이나 대리석 상을 모방한 작품으로, 기원전 1세기 로마가 그리스 조각가들을 불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관 라오콘은 그리스와 전쟁 당시 성문 밖에 세워진 트로이 목마를 보면서 당장 태우라고 말한 인물이다. 교활한 그리스의 계략이라고 폭로하면서 트로이 시민에게 눈물로 호소한다. 그러나 그 순간 라오콘은 갑자기 실명하게 된다. 그리스를 지지하던 여신 아테네가 라오콘의 입을 막기 위해 장님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라오콘은 눈이 먼 뒤에도 계속해 목마를 불태우라고 말한다. 바다뱀은 여신이 보낸 마지막 비수(匕首)다. 라오콘과 두 자식 모두 뱀에 감긴 채 죽어간다.

역사적으로 1506년은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본격화한 때다. 중세의 신 일변도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 세계인 근세(近世)로 진화하던 시기다. 르네상스는 중세의 끝이자 근세의 출발점으로 연결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인간중심(人間中心) 정신을 되살리자는 것이 근세, 즉 르네상스의 핵심이다.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재생’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창조가 아니라 1000년 중세 암흑시대 앞의 역사와 문화, 즉 서기 5세기 이전 세계의 부활이다.

교황 정통성 드러내고 이교도에 대한 경고 의미


▎20세기 만들어진 콜론나 비너스 복제품. 고대 로마 당시 제작된 프락시텔레스의 복사 입상은 바티칸 뮤지엄에서 10여 년 이상 미공개 상태다. / 사진:유민호
교황이 라오콘 군상을 수집할 당시의 유럽은 종교계 대지진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중세를 지배한 가톨릭이 비난의 대상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1517년 발표한 마르틴 루터의 가톨릭에 대한 95개 반박문이 그 출발점이다. 바로 종교개혁이다. 16세기 유럽인은 ‘교황=가톨릭’이 아니라 ‘신, 성경, 가톨릭, 교황’이 전부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교황을 비난해도 불지옥과 무관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성(聖)을 내세우지만, 뒤로는 속(俗)에 탐닉한 성직자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하늘을 찌른다. 비록 작지만, 라오콘 군상은 그 같은 시기에 등장한 황제 전용 구원투수 중 하나다. 내부 불만 제거용이라고 할까? 교황은 성직자에게만 공개된 라오콘 군상을 통해 자신과 가톨릭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저주했다고 볼 수 있다.

신관 라오콘은 트로이 교황에 해당된다. 16세기 트로이는 오스만 터키에 의해 점령된 이슬람의 땅이기도 하다. 이교도 신관이 하늘의 저주로 장님이 되고, 악의 대명사 뱀에 물려서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신이 내린 최고의 법통인 교황이 아닌, 다른 종교나 종파에 빠질 경우 라오콘 같은 신세가 될 것이란 경고와 협박이 뮤지엄 1호 수집품에 드리워 있다. 교황은 유럽 전역에 불기 시작한 개신교를 이슬람에 준하는 또 하나의 이교도로 풀이했다. 마르틴 루터와 같은 개혁파 종교인들도 라오콘 신세가 될 것이라 강변했을 것이다. 바티칸의 권위, 교황의 정통성, 이교도에 대한 경고, 내부 성직자들의 불안과 동요를 잠재울 구원투수로서 라오콘 군상이다. 신화와 그리스 역사 속 라오콘이란 점보다 신의 저주로 죽음에 이르는 이교도 신관이란 점이 율리우스 2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바티칸 뮤지엄 방문에 앞서 필자 나름의 중요 예술품 리스트를 만들었다. ‘콜론나 비너스(Colonna Venus)’는 라오콘 군상에 이은 필자의 두 번째 핵심 관심 작품이다. 아테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 teles)가 만든 비너스 입상의 복사판이다. 프락시텔레스는 프랑스 루브르 뮤지엄이 자랑하는 ‘미로의 비너스(Venus de Milo)’ 원형을 제작한 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로의 비너스도 복사물이다. 필자 판단이지만, 2500여 년 전 조각가 프락시텔레스는 미켈란젤로와 로댕은 비교도 안 될 인류 최고 최상의 예술가로 느껴진다. 그가 남긴 것이 ‘확실한’ 원형 대리석 조형물은 현재 단 하나도 없다. 바티칸의 콜론나 비너스 복사판은 로마 시대 작품이다. 그렇지만 프락시텔레스 원작에 가장 가까운 걸작으로 평가된다. 라오콘 군상을 접한 뒤 곧바로 콜론나 비너스 전시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전시 물품이 아니란 맥 빠지는 얘기만 들었다.

예술이든 문학이든 해석하기에 따라 의미나 가치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라오콘 군상 이후 우상의 대표 격인 그리스 신이나 로마 황제에 관한 조각과 예술품이 바티칸으로 몰려든다. 로마 황제 얼굴을 새긴 조각에 대해 ‘아무리 강력한 권력자라도 언젠가 전부 죽는다’는 식의 종교적 해석을 붙이면서 수집했다고 볼 수 있다. 벌거벗은 몸매의 콜론나 비너스는 어떨까? ‘육신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언젠가 썩고 사라질 뿐, 신성한 영혼과 순결한 신앙만이 천국행을 보장한다’는 명분과 함께 바티칸 어딘가에 ‘은밀히’ 보관되지 않았을까? 그리스·로마 예술품은 교황만 아니라 당대 왕이나 명문 귀족들도 경쟁적으로 수집했다. 가격이 폭등한 것은 물론이다. 교황은 그런 수집 열풍을 조장한 선두주자였다.

교황이 수집 열풍 조장하면서 예술품 가격 폭등

바티칸이 현재와 같은 초대형 건물로 등장한 것은 대성당 산피에트로가 완성된 1626년 이후다. 이전까지만 해도 다른 교회 수준에 그쳤다. 원래 대규모 확장에 들어간 인물은 라오콘 군상을 수집한 율리우스 2세다. 바티칸 토지는 원래 대지의 여신 ‘키빌레(Cybele)’ 신전이었다. 지금도 바티칸 쪽으로 완만한 경사가 이어져 있지만, 원래 높은 언덕이었던 땅이다. 16세기 초 초대형 교회로 ‘갑자기’ 개축하게 된 계기 중 하나지만 콘스탄티노플, 즉 현재 이스탄불이 이슬람에 함락된다. 1453년 오스만 터키가 점령하면서 1000년 역사 비잔틴 대제국이 멸망한다. 국교이던 그리스 정교도 사실상 사라진다. 맏형 격이던 비잔틴의 그리스 정교가 사라지면서 서로마 이탈리아 가톨릭이 기독교 대형(大兄)에 오른 셈이다. 가톨릭 교황은 기독교 맏형답게 최대 규모 성전 건립에 나선다. 호화찬란한 내부 장식과 함께 이탈리아 특유의 예술적 감각을 바티칸 전체에 확산한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작품은 바로 그 같은 이탈리아 독자 예술의 상징물이라 볼 수 있다. 르네상스는 바로 그 같은 분위기를 이끈 당대 시대정신이자 문예사조다. 그리스 정교가 행사하던 비잔틴 맏형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한 ‘주체·자립’ 예술로서의 르네상스인 셈이다. 바티칸 규모가 커지면서 내부를 채울 장식품 수요도 폭증한다. 그리스·로마 유물과 르네상스 이탈리아 예술가 작품만이 아닌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예술품도 수집품 리스트에 올라간다. 서방 최고 종교 조직으로 부상한 가톨릭 위상에 맞는 이탈리아 주변 국가 예술품 전부를 수하(手下)에 둔다.

이틀간 바티칸 뮤지엄 방문을 끝낸 뒤 마리오와 식사를 함께 했다. 이탈리아인들이 바티칸 뮤지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물어봤다. 마리오는 ‘뮤지엄=절대 권위’라는 말을 반복했다. “종교에서 말하는 미는 외면이 아닌 내면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면이 아름답다면 외면도 빛날 수밖에 없다. 교회 어디에 가도 접할 수 있는 마리아 성화를 보라. 지적이며 영혼을 느낄 분위기와 함께 아름다운 외모의 어머니로 그려진다. 가톨릭은 그리스 정교와 달리 마리아 신앙을 극대화한 종교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어머니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는 진리이자 파워다. 뮤지엄은 절대 권위와 정통성의 출발점이다.”

마리오의 얘기를 들으면서 18세기 대영제국, 19세기 프랑스 나폴레옹, 20세기 독일 히틀러가 보여준 ‘특별한 집착’ 하나가 떠올랐다. 점령지 내 예술품 약탈이다. 바티칸 뮤지엄이 존재하는 한, 쇼우소우인 특별전이 열리는 한, 교황과 천황의 법통과 권위도 계속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03호 (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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